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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샛별교회

회개와 엘로이

작성자당진샛별교회ㅡ이손치과병원ㅡ소박한거인|작성시간26.06.14|조회수17 목록 댓글 0
인생은 '맛보고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최근 한 강연에서 배우이자 소설가인 차인표 작가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영어 단어 '선택하다(Choose)'와 '맛보다(Taste, Choose의 어원)'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뜻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또한 '맛보고 분별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시편 34편 8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다윗은 우리에게 머리로 하나님을 이해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맛보아 알지어다" 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책상 위의 학문이 아닙니다. 혀끝으로 음식을 맛보듯, 삶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직접 경험하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무엇입니까?
차인표 작가의 말처럼, B-D, 탄생 Birth 과 죽음 Death사이에 놓인 수많은 선택과 경험을 하나씩 맛보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주여,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까?" 라고 묻고,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살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켜봐주시는 하나님
창세기 16장에 하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라에게 학대받고 광야로 도망친 여종 하갈. 아무도 그녀를 봐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하나님이 그녀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하갈이 부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엘 로이(El Roi) —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성경 어디서도 이렇게 가슴 시린 이름은 없습니다.
누구도 봐주지 않던 한 여인이 발견한 하나님의 이름 —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관객이십니다.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시편 121:4)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12장은 더 놀랍습니다.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헬라어로 '증인(μάρτυς, 마르튀스)'은 곧 '바라보는 자, 관객'입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응원하는 관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대 한가운데, 예수님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늘이 여러분의 관객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관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관객이 되어주셨기에, 우리도 누군가의 관객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서 4장은 말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도서 4:9-10)

로마서 12장은 말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15)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프레임'이 아니라 '관객'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틀(frame)이 아니라, 누군가를 따뜻하게 지켜봐주는 관객(audience)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를 내 기준의 프레임에 가두면, 그 사람은 질식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의 관객이 되어주면, 그 사람은 살아납니다. 박수쳐 주고, 응원해 주고, 넘어졌을 때 일어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 그 한 사람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꿉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서로의 관객이 되어주는 공동체입니다. 내가 그의 관객이 되고, 그가 나의 관객이 되는 그 거룩한 시선의 교환 —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엘로이하나님 #오직예수당진샛별교회 #하나님의임재 #당진이손치과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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