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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회 토요걷기 6월13일 행주대첩 승전축하 한강수변의 행주문화제 축제장을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작성자오늘은|작성시간26.06.14|조회수62 목록 댓글 1

행주대첩(幸州大捷)**은 임진왜란 중이던 1593년(선조 26년) 2월 12일, 권율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백성들이 행주산성에서 압도적인 수의 일본군을 격퇴한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입니다. (한산도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꼽힙니다.)
​행주대첩의 핵심적인 역사적 사실과 의의를 요약해 드립니다.
​1. 당시의 상황
​시기: 1593년 2월 12일 (음력)
​장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에 위치한 행주산성
​병력 차이:
​조선군: 권율 장군이 이끄는 전라도 근왕병, 승병(처영 대사), 의병, 그리고 성안의 주민들을 합쳐 약 2,300명 ~ 3,000명 내외.
​일본군: 벽제관 전투에서 명나라 군대를 격파하여 기세가 등등했던 우키타 히데이에, 이시다 미쓰나리,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등이 이끄는 약 3만 명의 대군.
​2. 주요 전투 전개와 승리 요인
​일본군은 3만 대군을 7개 부대로 나누어 파상 공세를 펼쳤으나, 조선군은 철저한 준비와 신식 무기로 이를 막아냈습니다.
​지형적 이점: 행주산성은 한강을 뒤에 두고 있는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배수진을 친 조선군은 물러설 곳 없이 결사전으로 맞섰습니다.
​첨단 무기의 활용: 조선군의 비밀병기인 **화차(신기전기화차)**와 변이중 화차가 대활약했습니다. 한 번에 수십 발의 화살과 총탄을 쏟아내는 화차와 변이중의 총통 화차는 밀려드는 일본군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외에도 수차석포(투석기), 천자총통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민·관·군·승병의 총력전: 권율 장군의 지휘 아래 군인뿐만 아니라 처영 대사가 이끄는 승병들이 치열하게 싸웠고, 성안의 부녀자들과 백성들까지 돌을 나르며 전투를 도왔습니다.
​화살 보급의 극적인 순간: 전투 후반, 화살이 떨어져 위기에 처했을 때 경기수사 이빈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배가 한강을 통해 극적으로 수만 발의 화살을 보급해 주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3. '행주치마'의 유래
​행주대첩 하면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행주치마'**입니다.
성안의 부녀자들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든 후, 그 치마에 돌을 가득 담아 날라 석전(石戰)을 도왔다는 데서 '행주치마'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깊이 남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행주라는 지명이 원래 있었고 치마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학설도 있지만, 당시 백성들의 눈물겨운 항전 노력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일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4. 역사적 의의
​한양 탈환의 발판: 행주대첩의 패배로 큰 타격을 입은 일본군은 결국 한양에서 철수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맞이합니다.
​전세의 역전: 명나라 군대의 패배로 침체되어 있던 조선군의 사기를 하늘을 찌를 듯이 높여주었습니다.
​현재 고양시 행주산성 정상에는 이 극적인 승리를 기념하는 행주대첩비와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가 지어져 있어, 당시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행주산성 정상 행주대첩승전비와
탑에서 하늘의 도움을 생각하고...

한강변 천혜의 요충지 행주산성 정상에서 한강을 바라봅니다.

저녁노을에 한층 한강의 아름다움을...

밤하늘에 빛나는 시간은 드론800기로

마치는 시간은 축하 불꽃축포로

밤하늘을 멋지게 드론준비

행주대첩 출정식 영상홍보물

행주대교에 저녁노을빛

드론축하쇼

축하 불꽃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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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오늘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4 행주대첩 문화제에서
    축하의 시간
    어려운 순간에도
    슬기롭게 지켜온 선조님들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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