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26ㆍ6ㆍ11목요 걷기(동구릉)다산님 주관

작성자행복의나라로|작성시간26.06.11|조회수42 목록 댓글 6

시작

조선 태조 이성계의 릉, 봉분 위 무성한 풀은 태조 이성계의 유언에 따라 

그의 고향인 함흥에서 가져다가 옮겨 심은 억새라고...

 

고향에 묻히고 싶었으나 한양에서 함흥이 너무 멀어 뜻을 이루기 힘듦을

알고 정 그렇다면 고향의 억새라도 가져다가 봉분을 덮어 달라하여 그의 릉

봉분에는 다른 왕릉의 봉분과 달리 이렇게 억새가 덮혀 있는 것

 

한 나라를 세운 시조로서 대단한 권력자였던 그도 죽음을 앞 두고 고향을

그리는 심정은 갑남을녀와 하등 다를 바 없었던 듯...

 

무장으로 고려 말의 혼란한 시기에 여기저기서 벌어진 전투를 치르며 이순신

장군처럼 패배를 모르고 연전연승 끝에 무공이 높았던 장군 시절의 이성계와

 

정도전과 뜻을 같이 하며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왕권을 능가히는 권력을

잡은 후 권력자로서 조선을 건국하기까지 그가 겪은 여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실질적인 조선 건국의 설계자는 그가 아니라 정도전일 것이고 또 그의 셋째

아들로서 뒷날 조선의 3대 왕이 된 태종이 없었더라면 그가 조선 건국의 험란

한 길을 무사히 걷는 일도 어려웠을 것이나

 

그런 저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 조선이라는 새나라를 세우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그의 의중과 달리 많은 고려를 지키려는 수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했고

 

그가 사랑하던 둘째 부인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에게서 얻어 애지중지 하던

방번과 방석(막내였음에도 세자로 책봉됨) 두 아들마저

첫째 부인 신의 왕후 한씨의 아들 이방원에 의해  살해 당함은 물론

조선 건국의 혁혁한 설계자 정도전을 비롯한 지지세력들을 일거에 잃었음에도

이를 막을 수 없었으니

 

개인 이성계로서의 그의 심정은 이럴려고 고려를 무너뜨리고 숱한 고비를 넘어

여기까지 왔던가 자괴감, 후회 막급, 비참을 넘어 참담

하다는 표현으로도 결코 자신의 심정을 표현할 수 없었을 것...

 

그래서 세상에 대한 의욕을 잃은 나머지 모든 것 다 뿌리치고 홀연히 한양을 떠나

함흥에 들어가 칩거해버렸을 것...

 

그 후 600여년의 긴긴 세월이 흘러가고 그가 세운 나라가 같은 후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악랄한 이민족 일제에 의해 빼앗기는 수모 끝에 다시 국권을 되찾아 신분질서 없는

모두가 평등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어  여기 건원릉에 잠든 그를 돌아보고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행복의나라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2
    ㅎㅎㅎ~~~
    고맙습니다~
  • 작성자아침향기 | 작성시간 26.06.12 회기역 에서 뵈었을 때 반가웠어요, 행복님..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며 걸은 순간도 감사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행복의나라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2 거기는 춘천행도 용암행도 탈 수 있는 곳이라
    집중하고 있지 않으면 순간 잘못 타기 쉬운 곳ㅃ

    타고 보니 전광판에 '춘천행'이 눈에 들어와
    놀라 얼른 내리는데...아침향기님이었네요^^ ㅎㅎ
  • 작성자다산 | 작성시간 26.06.12 사진이 시원시원하네요 멋진 사진 잘 보았구요 항상 동행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사진찍으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행복의나라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2 어느 릉보다도 동구릉에 가보고 싶었어요
    기억에 남은 안내와 해설에 감동을~
    행복했네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