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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영목사설교

120129 너희도 가려느냐?(요 6:60-71)

작성자삼영|작성시간12.01.29|조회수85 목록 댓글 1

 

 

본문 : 요 6:60-71

▷제목 : 너희도 가려느냐?

▷날자 : 2012. 1. 29

 

 

“브루투스, 너마저”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Gaius Julius Caesar,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사)는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 공적을 이용해서 로마의 황제로 등극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원로원에서는 로마의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서 브루투스를 중심으로 시저의 살해를 모의한 후 전격적으로 시저를 칼로 찌르고 만다. 사실 시저는 전도유망한 브루투스를 자신의 심복으로 만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였고, 어쩌면 자신의 아들처럼 애지중지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을 항상 의식하였지만 설마 브루투스가 자신을 찌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는 살해를 모의하였던 자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사정없이 칼로 난도질을 할 때, 브루투스가 함께 가담한 것을 보고 한마디 절망의 말을 던진다.

“브루투스, 너 마저!”

 

황제나 다름없는 무소불위의 장군, 시저의 죽음에 대해 민중들은 두려움만 가득할 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한다.

 

마침내 장례식을 앞두고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가 시민들에게 시저의 죽음에 대한 찬반양론의 연설을 하게 된다. 먼저 등단한 브루투스는 “나의 은인인 시저를 살해한 것은 그분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시저가 살고 우리 모두 노예가 되길 원하느냐, 아니면 시저가 죽고 우리가 자유인이 되길 원하느냐”라고 묻는다. 그러자 모두들 ‘브루투스 만세’를 외치며 더러는 그를 황제로 모시자는 소리도 들린다.

 

뒤이어 상복을 입고 등단한 안토니우스는 그동안 시저가 수많은 전리품으로 국고를 채웠으며 세 번이나 왕관을 거절했다고 밝히면서, “내 마음이 잠깐 시저의 관 속에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면서 한숨을 쉬고는 울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관을 열고 시신의 옷을 벗기며 20여 군데의 칼자국을 군중들에게 보여준다. 마침내 그가 “나의 재산을 시민 한 사람당 75드라마크씩 나눠주라”는 시저의 유언장을 읽을 때 군중들은 ‘브루투스 타도’를 외치는 폭도로 변해버렸다.

 

브루투스는 이성에 호소하는 연설을 한 반면에 안토니우스는 감성에 호소했다. 2000년 전에도 역시 대중들은 이성보다도 감성 쪽에 기울었던 것 같다. 군중들의 마음은 이처럼 순간적으로 표변해 버린다.

 

브루투스는 시저의 양아들이라 할 만큼 총애를 받고도 시저를 배신하고 죽이는데 앞장섰다. 브루투스는 대중 앞에서 그럴듯한 말로 시저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했지만 쾌변에 불과했다. 사람이 어찌 그렇게 배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도 아니다.

브루투스를 이어 등단한 안토니오의 연설에 상황은 역전되고, 브루투스는 배신자로 역사에 영원히 낙인 찍혔다. 그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우스가 이끄는 군대와 싸우다 패배하고 자살하였다. 배신자의 결말은 언제나 비참하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는 배신자들이 많다. 사람은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고 은혜를 받았으면 감사하며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하기는 고사하고 배신하는 행위는 얼마나 비열하고 악한지 모른다.

 

예수님에게도 배신자가 있었다.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고, 그 후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있다. 아마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배신자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

 

본문 예수님께 은혜를 입고 예수님을 따르다가 배신하고 떠나가는 제자들에 관한 말씀이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경종이 되고 은혜가 되길 바란다.

 

예수님이 벳세다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1만 명이상을 배불리 먹이신 사건이 일어난 이튿날, 가버나움에 계실 때다. 어제 본 이적에 놀라서 다시 찾아온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지만 이 떡을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이런 말씀을 가르치신 후 사람들을 보내고, 가버나움 회당에 가셔서 이번에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셨다.

제자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말한다. 예수님 당시 제자는 2종류가 있었다. 예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고 따르는 12제자가 있었고, 12제자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이적과 가르침에 감동을 받고 제자가 있었다. 12제자는 예수님과 침식을 함께 하며 배우는 제자이고, 다른 제자는 그렇지 않았다. 12제자는 많이 보고, 많이 배워서 믿음이 확고했지만 다른 제자들은 믿음이 희미했다.

 

가버나움 회당에 모인 다른 제자들 중에서 수군거리며 불평이 터져 나왔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니 도대체 무슨 말이냐?”

 

그들이 정말 몰라서 어렵다는 말은 아니다. 정말 몰라서 그랬다면 수군거릴 필요 없이 예수님께 직접 여쭈어 보면 될 일이다. “예수님,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는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무슨 뜻인지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안 돼 임마, 그렇게 쉽게 가르쳐 주었는데도 이해를 못해? 바보 같이”하실까?

아니면, “아, 그래? 그렇다면 내가 자세히 설명해 주지” 하시겠나?

예수님은 온유하고 자비하신 분이시다. 10번이고 100번이고 정말 몰라서 묻는다면 친절히 대답해주는 분이시다.

 

모르면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수군거리기만 하는 것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불평,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수군거리는 이유를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니, 너희가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너희는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이 말씀은,

 

내가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말을 너희가 안 믿는데, 조금 있어 봐라.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하늘에 올라갈 것이다. 그래도 안 믿겠느냐? 는 뜻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란 말씀이 진리임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은 영적인 진리를 말씀하시는데 그들은 육체적으로만 생각하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음으로,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생명을 얻어 살게 되는 것은 너희 속에 있는 영이다. 육체가 아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육체의 생명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설명해도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끝까지 안 믿을 것이다. 그래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수님의 이 같은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내었는가?

66절 -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님을 떠나간 사람들이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아니했다고 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되 영구히 떠나버린 것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했다. 호기심으로 한두 번 따라온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여러 번 체험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던 사람들이다. 아마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통해 병 고침을 받고, 문제가 해결되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예수를 믿고 따르기로 마음에 작정했던 사람들이다. 틈만 있으면 예수님에게 달려갔던 사람들이다.

 

그때도 5병2어의 기적을 경험하고 그 이튿날까지 찾아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영원히 떠나버렸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고 자기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에 너무나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말씀이 어렵다는 말은 말씀에 실망했다는 말이다.

 

왜 실망을 했을까? 그들이 예수님의 그 말씀에 실망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무엇일까?

26절을 다시 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은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유익 때문이다.

예수님을 이용해 병을 고치고, 배 고품을 해결하고, 인생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능력 있는 예수님을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옹립해서 로마의 식민지에서 해방을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예수님을 따랐다.

 

그런데 이게 뭔가?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뭐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기가 막혀서! 우리는 그런 말을 들으려고 따르는 것이 아니다. 자, 가자. 다시는 안 온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배신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셨나?

날이면 날마다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온갖 병을 고쳐주셨다. 병을 고치실 때는 단체로 하시지 않으셨다. 일일이 만나주시고, 만져주시고, 고쳐주셨다.

이런 일을 하시느라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고, 갈릴리 바다에 제자들과 함께 배타고 가실 때는 너무나 피곤하여 풍랑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곤하게 주무셨다.

그런데 그 말씀이 마음에 안 든다고 분개하고 떠나가다니! 배신이 아니고 무엇인가?

 

가룟 유다는 배신자 중에 배신자였다. 그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한 사람으로 선택을 받았다.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말씀을 많이 들었고, 놀라운 기적들도 많이 체험했다. 받은바 은혜가 얼마나 큰지 말로 다 표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해 실망하고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아 죽이도록 은 30에 팔아버렸다. 배신자 중에 배신자였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그렇게 배신할 줄 모르셨단 말인가? 알고 계셨다.

70~71절

가룟 유다가 마귀라고 하셨다. 알고 계시면서 왜 가만히 놔두셨을까? 일찌감치 박살을 내든지 쫓아내버려야지. 왜 그냥 내버려 두시는가?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뜻이었다. 그렇다고 배신자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 배신자의 최후는 항상 비참한 것이다. 가룟 유다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예수님이 5병2어의 이적을 행하시고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유익보다 훨씬 차원 높은 영적이고 영원한 유익을 주기 위해 주신 말씀이다. 5병2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예수님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려고 애를 쓰셨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시기 때문이다. 5병2어의 기적을 통해 얻는 유익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생명을 얻는 유익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에 피다. 병 고침을 받거나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문제를 해결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태산이라면 그런 것은 한 줌의 티끌에 불과하다. 배신자들은 다 진주목거리의 가치를 모르는 돼지와 같다.

 

제자들이 배신하고 떠나는 것을 보신 예수님이 남은 12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 말씀하실 때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 얼마나 쓸쓸하고 마음 아프셨을까? 그들은 천국을 향하여가다가 방향을 바꾸어 지옥을 향하여 걸어간다.

 

그렇다고 강제로 붙드시지는 않으신다. 기독교는 이슬람처럼 한 손에 코란을, 다른 한 손에 칼을 드는 종교가 아니다. 충분히 알게 한 후에는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 결코 강제로 믿게 하지 않는다.

 

“너희도 가려느냐?” 하시니 베드로가 즉각 나섰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베드로는 어째서 냉큼 이런 말을 했을까? 순발력이 빠른 사람일까? 믿음이 다른 제자들보다 더 좋은 걸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배신도 잘했으니까. 예수님이 체포당했을 때, 3번이나 모른다고 저주하면서까지 배신했다. 얼마나 야비하고 비겁한가. 그러다가 즉시 회개했지만.

 

베드로는 성격이 급하고 말을 잘했다. 아마 다른 제자들도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는 다 똑 같았을 것이다.

다른 제자는 알았지만 말하기를 참았고, 베드로는 참지 못했다. 누가 더 낫는가? 저도 모르겠다.

 

어쨌든 베드로의 대답은 정확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이 세상 무엇보다 가장 귀한 영생이 주님께 있는데 우리가 누구한테 가겠습니까? 우리는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주님은 베드로의 이 말을 들으시고 기쁨과 위로를 얻으셨을 것이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주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2명의 제자 중에 가룟 유다가 있다는 사실, 주님은 얼마나 슬퍼하셨을까.

 

이제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묻겠다. 제가 주님을 대신하여 묻겠다.

“너희도 가려느냐?”

가슴에 손을 얹고 엄숙한 마음으로 대답해 보라.

“너희도 가려느냐?”

.

.

.

.

누가 베드로처럼 대답해 보자.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할렐루야!

 

브루투스는 은인을 배신했다. 사람을 배신해도 비열하고 악하다. 그러나 주님을 배신하는 일은 인간을 배신하는 일에 비할 바 아니다. 얼마나 악한지!

우리가 주님을 배신하면 주님은 슬퍼하시겠지만 손해 날 것은 없다. 배신하는 내가 손해일 뿐이다. 내가 불행해지고 영원히 망할 뿐이다.

 

주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 주시고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셨는가. 주님의 은혜는 말로 다할 수 없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주님을 배신하는 사람이 절대 없기를 바란다. 아멘!

가룟 유다 같은 사람도 절대 없기를 바란다. 아멘!

 

죽을 때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절대 배반하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날마다 주님과 함께 저 천성을 행해 힘차게 달려가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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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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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태원 | 작성시간 12.01.30 시저와 부루투스, 안토니우스의 이야기가 큰 교훈이 됩니다.
    너희도 가려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무슨 답을 할까 생각하며, 더 교훈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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