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사뉴스 이은영입니다
민주화투쟁 이끈 동지이자 라이벌…6년 시차로
영면70년대 40대 기수론 경쟁…87년, 92년 대선 맞대결하며 '관계악화'
2009년 8월 DJ 서거 직전 YS의 문병으로 극적인 병상 화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서거했습니다. 이로써 영호남을 대표하며 한국 현대 정치사를 이끌어왔던 이른바 '양김 시대'도 저물게 됐습니다.
'양김'으로 일컬어져온 김영삼, 김대중 두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에서는 손을 맞잡은 '동지'이자 '동반자'였지만 권력 앞에선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영원한 '맞수'이자 '경쟁자'였습니다.
파란만장했던 정치역정 만큼이나, 두 사람의 관계도 굽이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굴곡의 연속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출발부터 달랐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남 거제 지역 유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한 뒤, 총리 비서로 시작해 만 26세의 나이에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남 신안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선거에서 연거푸 떨어지다 어렵게 정치에 입문한 자수성가형 정치인으로 평가됩니다.
출신 지역과 정치적 배경은 판이했지만 두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르는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한국 야당사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며 중대한 정치적 고비 때마다 협력과 경쟁을 이어갔습니다.
'양 김'이 처음 맞붙었던 1968년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은 김영삼 전대통령이, 2년 뒤 야권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김대중 전대통령이 승리합니다.
군사정권에는 함께 맞섰지만 두 사람은 1987년 대선 후보 단일화에 끝내 실패했고, 이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져 야권 진영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3년 뒤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으로 '양 김'은 완전히 갈라서게 되고, 이후 두 사람은 줄곧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오랜 기간 이어지던 갈등은 지난 2009년 8월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찾아가며 극적으로 풀립니다.
그러나 이제 6년여전 김대중 전대통령에 이어 지난 22일, 김영삼 전대통령까지 서거하면서 30년 이상 한국 정치사를 이끌어온 양김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님의 서거에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