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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수어뉴스&매거진

5월 광주의 그날, 농인 김경철씨를 아시나요

작성자한국농아방송|작성시간24.05.23|조회수132 목록 댓글 0

https://www.youtube.com/watch?v=-gZf9Orj8jA

수어뉴스 촬영 당시의 기준으로 제작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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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농아방송 김청숙 앵커입니다

 

지난 518일은 광주민주화운동 44주년이자 광주의 두 번째 희생자인 농인 김경철 씨(당시 28)의 억울하고 슬픈 죽음을 애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김경철 씨가 광주의 첫 번째 희생자로 인정됐지만 2개월 전인 20243‘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전북대학교 농학과에 재학 중이던 이세종(당시 20) 열사가 첫 희생자인 것으로 공식 확인했습니다 둘의 사망 시간은 1시간 가량 차이납니다

 

광주의 두 번째 희생자가 시위대도, 학생도 아닌 평범한 농인 김경철 씨였다는 것은 광주에 내려온 계엄군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여실히 드러납니다 1980518일 광주를 진압한 전두환의 7공수여단은 무차별 살육 작전에 나서며 시위를 했던 전남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위를 하지 않은 학생과 시민들까지 군홧발로 차고 진압봉으로 두들겨 패며 끌고 갔습니다

 

김경철 씨는 518일 그날, 광주 시외버스터미널에 있었습니다 딸의 백일잔치가 끝나고 귀가하는 친척을 배웅한 뒤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공수부대원이 보이자 시민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지만 소리를 듣지 못해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던 김경철 씨는 7공수여단 부대원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김경철 씨는 장애인증을 내밀었으나 군인들은 꾀를 쓴다며 무차별적으로 구타했고 연행된 후 적십자 병원에서 1980519일 새벽 3시에 숨을 거뒀습니다

 

당시 진료비 청구서의 금액이 2100원밖에 안되는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었던 것을 보면 의사가 손써 볼 틈도 없이 심각한 상해를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고인의 사인명은 뒤통수가 깨지고, 눈이 터지고, 팔과 어깨가 부서지고, 엉덩이와 허벅지가 으깨졌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김경철 씨는 1952년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청인이었지만 6살에 바위에서 놀다 떨어져 심하게 다친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김경철 씨의 어머니는 의사에게 항생제 주사를 놓는 법을 배워 집에서 김경철 씨에게 주사를 놓았지만 하루에 한 번씩 반 병만 놓아야 하는 것을 어머니가 빨리 낫게 하고 싶은 마음에 하루에 두 번, 한 병을 다 놓는 바람에 약물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일어났고 결국 뇌막염을 앓다가 후유증으로 농인이 되었습니다

 

김경철 씨는 언제나 진취적으로 생활하며 제화 기술을 익혔고 서울에 올라가 양화점에 취직해 기술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광주에 돌아와서는 시내 다방과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구두를 수선하는 일을 했습니다 농인 여성을 만나 결혼해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났고 딸의 백일잔치 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김경철 씨를 모티브로 한 국내 영화도 간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2007년 개봉된 <화려한 휴가>에는 금남로에 저지선을 치고 주둔하는 계엄군에게 장애인이 몰매를 맞아 죽고 다음날 리어카에 실려 길가에 버려진 그의 시신에 아버지가 태극기를 덮어주며 흐느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2017년 개봉한 <택시운전사>에도 김경철의 사망 일자 대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김경철 씨가 지금도 살아 있었다면 어느덧 ‘72세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김경철 씨를 비롯해 광주의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경제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김경철 씨와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모진 고통과 풍상 속에서 이루어낸 것입니다

 

한국농아인협회는 고인 김경철 씨와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엄숙한 마음으로 추모하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수어뉴스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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