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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中國 人(인)! 大 中國 夢(꿈)!

작성자孔 明 之交|작성시간14.10.18|조회수46 목록 댓글 0

      강한 중국부활 꿈꾼다

슈퍼맨다시 (漢)·당 (唐) 시대로 …‘

     

 

           현시대의 중국 지도 자들^^

 

 

중국을 통치하는 방식이라는 면에서 지금의 집권 공산당은

과거 통일 왕조와 다를 바 없다.

강력한 중앙 행정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질적 요인들을

‘중화(中華)’라는 이데올로기로 묶어가는 측면이 특히 그렇다.

그렇다면 같은 왕조적인 통치자로서  올림픽 후

 공산당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과거의 왕조는 무엇일까.

중국중앙방송(CC-TV) 등 관방을 대변하는 핵심 언론들이 내놓는

컨셉트는 한()과 당() 왕조다. 올림픽이라는 건국 이래 최대 이벤트를 치르면서 중국이 두 왕조를 거론하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그곳에는 두 왕조가 구가했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음은 불문가지다. 두 왕조의 핵심 개념은 강()과 성()이다.

강성한 대국을 노리는 중국의 꿈이 올림픽 이후의 생각이다. .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 소유자  한( 漢) 무제

 


◇공산당의 국가 모델은 한·당=중국인들이 역대 중국 왕조를 평할 때

이 두 왕조를 표현하는 방식은 대개 일치한다.

‘강한 한 나라(强漢)’와 ‘성세를 이룬 당 나라(盛唐)’다.

품삼국(品三國)』이란 책으로 일약 중국 최고 고전 전문가로 부상한 이중톈(易中天) 샤먼(厦門)대학 교수는 아예 이 두 시기를 ‘한당기상(漢唐氣象)’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중국 CC-TV는 올림픽을 통해 노래 한 곡을 발표했다.

‘다시 한·당으로 돌아가자(重回漢唐)’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한족의 옷을 입고, 예의의 나라를 일으켜 한·당으로 돌아가,

 다시 중화의 문화가 넘치는 성세를 읊고 싶다…”는 내용이다.

각종 중국 국내 언론들은 올림픽 을 통해 “전체적인 기조는

 漢·唐의 성세에 맞춰.

중국적 특색을 최대한으로 표현하되 그 주요 컨셉트는 한과 당이라는 두 왕조의 색채로 칠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왜 한·당인가=중국은 최근 강대국과 부흥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국가 발전의 지향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우선 공산당 정치국 집단학습에서 채택했던 ‘강대국의 흥망성쇠’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CC-TV 2006년 ‘대국굴기(大國<5D1B>)’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TV에서뿐만 아니라 이를 책과 CD 등으로 만들어 대대적으로 뿌렸다. 이어 중국은 2007년 다시 ‘부흥의 길(復興之路)’을 만들어 낸다. 같은 CC-TV 제작진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앞의 것은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역대 강대국의 흥망사,

뒤의 것은 중국이 걸어온 역사의 뒤안길과 새 중국이 거대 강국으로 변해야 한다는 필연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중국사의 대가 민두기(19322000) 교수는 “중국인에게 있어 이상은 미래를 지향해 탐구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의 바탕 위에 ‘상정된 과거’의 실재에서 얻어지게 되어 있다”라 말한 바 있다. 중국인은 미래의 모델을 과거의 영광에서 찾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대국굴기’ ‘부흥의 길’은 이를테면, 중화의 세기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중국 당국의 의지가 담긴 표현이다. 한 왕조와 당대, 나아가 청()나라 중기까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현재 미국이 세계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도 높다. 중국의 부상이 세계의 강대국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울러 그 모델은 과거 중국 역사에서 가장 강대하고 번영했던 한과 당 왕조다. 베이징 올림픽은 이런 개념을 축으로 치루어졌다..

◇왕조 이름에 정치를 담다=

과거 중국에서는 오랜 혼란 끝에 통일 정권이 들어선 뒤

그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쉽게 망하는 수가 많았다.

그 다음에 들어선 정권이 새로운 역사적 방향에 순응하면서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했다. ()을 이은 한(), ()를 이은 당()이 그 경우다.

군벌 할거를 통일한 국민당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이끄는 공산당이 강한성당(强漢盛唐)을 모델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방(劉邦)이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세운 한은 개국 초기

 북방의 강국 흉노에 굴욕적인 친화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무제(武帝) 시기에 이르러 강력한 중앙집권제와 유교로의 국론 통일을 바탕으로

흉노를 토벌하고 실크로드를 개척해 제국의 영역을 넓혔다.

한 왕조는 중화민족의 상징이다.

                                     중국의 대표적 명군주 당  태종  !


정관지치(貞觀之治:617~649)로 꽃을 피운 당 나라는

과거제도를 통한 문벌귀족 타파와 관용적 문화·종교정책에 힘입어

 세계 제국으로 번성했다.

당 제국의 건국 세력이 북방계의 혼혈 집단이었음은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은 따라서 한 왕조에 비해 동·서 교류와 통합에 보다 적극적이었다.

개방성·국제성을 통해 화려한 문명이 꽃핀 성당의 치세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에 비해 송()과 명()은 제한적인 제국이다.

 나름대로 치세를 이룩했지만 전자는 문인정치에 골몰해

동북방의 금()에 굴욕을 당했고,

후자는 만리장성을 재구축하고 바다를 닫는 ‘해금(海禁)’정책을 취했다.

개혁·개방의 대세를 유지하면서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강대국을 지향해야 할 중국으로서는 맞지 않는 이미지다.

 한·당 왕조와 공산당의 이미지는 이렇게 겹쳐진다.

 

 

당 태종의 명마 !

시진핑이  주석이 강조  ,大 中國 人()! 大 中國 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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