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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 <두 노인>

작성자흰돌|작성시간26.06.14|조회수23 목록 댓글 0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러시아의 대문호 Leo Tolstoy(톨스토이)가 남긴
단편 「두 노인」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신을 향해 가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를 조용히 묻는 작품입니다.

<어느 마을의 두 노인>

러시아의 작은 마을에
서로 친하게 지내는 두 노인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엘리사라는 농부였고
또 한 사람은 에피임이라는 비교적 부유한 농장주였습니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성지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우리 살아 있을 때 한 번은
하느님께 기도하러 예루살렘에 가야 하지 않겠소?”

어느 날 두 노인은 드디어 결심합니다.
가족에게 일을 맡기고
조금의 돈을 챙겨 멀고 먼 순례길에 나섭니다.

*길 위에서 벌어진 뜻밖의 일

며칠 동안 길을 걷던 어느 날,
엘리사는 물을 마시기 위해 한 집에 들르게 됩니다.
그 집 안에는
굶주린 아이들과 병든 어머니,
그리고 절망에 빠진 가장이 있었습니다.
가뭄과 가난으로
가족 모두가 굶어 죽을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 모습을 보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 성지로 가고 있지만…
이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는 결국 결심합니다.
순례길에 쓰려고 가져온 돈으로
밀을 사고, 소를 사고, 밭을 다시 일구어 그 가족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가진 돈은 거의 다 써버렸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생각합니다.
“아마도 나는 예루살렘까지 갈 수 없겠구나.”
그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갑니다.

*끝까지 순례를 마친 노인

한편, 에피임은
혼자서 긴 길을 계속 걸어
마침내 예루살렘 성지에 도착합니다.

성전에서 기도를 드리며
수많은 순례자들 사이에 서 있는데…
그 순간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엘리사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저 사람이 나보다 먼저 와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엘리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짜 순례는 어디에 있을까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에피임은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제야
길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굶주린 가족을 위해
순례 비용을 모두 써버리고
돌아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순간
에피임은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멀리 예루살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도 계셨구나.”

* 톨스토이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이 단편은 우리에게
아주 조용하지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종종 큰 목표와 거창한 일을 위해 먼 길을 떠나려 합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신을 만나는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의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다고.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어쩌면
가장 위대한 순례일지도 모릅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 순례의 길

우리는 매일 삶이라는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혹시 오늘
우리 곁에도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요?

멀리 있는 위대한 일을 찾기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
어쩌면 그 순간
우리 역시 조용히 하늘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무리 한 줄

“신에게 가는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속에 있다.”

<마음으로 떠나는 순례 이야기>
~~~~~~~~~
이 글을 읽고 두 가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성경 속에 나오는 사마리아인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돈은 물론 옷까지 빼앗기고, 죽음 직전의 상태로 길가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가던 사제와 레위인은 그를 외면한 채 지나갑니다.
그를 구해 준 이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는 상처를 싸매 주고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게 하며, 비용까지 맡긴 뒤 길을 떠납니다.

또 하나 떠오르는 이야기는 드라마 「허준」입니다.

허준과 스승 유의태의 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길에 병든 백성들을 만납니다.
가난한 이들은 약 한 봉지 제대로 쓰지 못하고 병고 속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유의태의 아들은 시험에 늦을까 그들을 외면한 채 길을 재촉합니다.
그러나 허준은 그들을 치료하다 결국 시험을 보지 못합니다.

훗날 유의태는 급제한 아들에게 말합니다.

“의사가 환자를 외면한다면 과거에 급제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너는 허준에게 졌다.”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심의(心醫)는
병만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사람의 아픔을 먼저 품을 줄 아는 의사였습니다.

드라마 마지막 내레이션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그분은 땅속을 흐르는 물 같은 분이셨어.
태양 아래 이름을 빛내며 사는 것은 쉬운 일이란다.
어려운 것은 아무도 모르게 목마른 사람의 가슴을 적시는 것이지.
그분은 그런 분이셨어.
진심으로, 진정으로 병자를 사랑한 심의(心醫)셨다.”

결국 이 세 이야기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신앙의 이름이 무엇이든,
지식이 얼마나 많든,
높은 자리에 올랐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눈앞의 아픈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인간 안에 심어 주신 하느님의 숨결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은 어쩌면
이름 빛나는 사람보다
누군가의 상처 곁에 조용히 머물러 주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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