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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는 갔지만

작성자한수수|작성시간23.04.16|조회수314 목록 댓글 6



자두는 갔지만

한수수


자두가 떠난지 한달쯤 지났다.

주인이 일주일만에 집에 올때마다 몇집 건너 보이지 않는 마을길에서 나는 주인의 차 엔진 소리를 알아채고 짧고 굵은 다리 위에 얹힌 굵직한 몸통을 굴리듯 움직이며 집앞까지 달려와 차가 멈추길 기다렸다 차가 멈춰서고 문이 열리면 앞발을 차 문턱에 올리고 동동거리며 나대다 주인의 손길을 기다려 쓰다듬거나 다독거리는 손을 핥아주며 집을 늘 혼자 오가는 주인을 반겨주는 살가운 아이였다.

그 전주까지 뒷뜰 구석의 닭장 밖으로 빠져나와 돌아다니는 암탉을 보고 잡을려고 쏜살같이 달려갔었고 그 다음주 주말에 주인이 간 날 전날 저녁밥까지 잘 먹었다는 별채 세입자의 말로 봐서는
그보다 한달쯤 앞서 걸려 서울 집으로 데려가 치료했던 감기 후유증이 도져 어디 가서 죽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됐다.

이웃 무너진 폐가를 몇번이나 들어가보고 마을 골목을 오가며 이름을 부르고 만난 사람들과 유기견보호소에 물어도 자취를 찾지 못했다. 한주가 더 지나 다시 찾다가 혹시나해서 평소에 잘 들어가 지내던 짚 옆 콘테이너 창고 아래 60센치미터쯤 높이의 장작더미와 마른 퇴비가 담긴 자루 등을 보건해온 어두컴컴한 공간을 다시 샅샅히 뒤져보기로했다. 가운데 앞쪽에 놓인 짚더미가 담긴 상자를 꺼내고 맨눈으로는 잘안보이는 어두운 부분들을 돌아가며 후레쉬카메라로 찍다보니 그 몸체만한 검은색 물체가 찍혔다. 분명치 않아 자루가 긴 삽을 넣어 살짝 대보며 빈 비닐봉지가 아닌지 확인하자 조금 탄력이 있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그렇게해서 움직이지 않는 자두를 일주일만에 찾아냈다. 평소에 잘때 엎드리던 자세 그대로였고 몸은 조금도 상한 기색이나 냄새가 없고 탄력이 있었다.

야 이놈아! 그래 아무리 주인 아빠가 나 가난해 널 병원에 입원시켜서까진 치료시켜줄 수 없으니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야한다고 몇번 다짐하긴했지만 이렇게 소리와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갑자기 주인이 다시 오기 전날밤 말없이 가버렸냐? 너 참 대단하다고 중얼거렸다.

이제 그로부터 세 주가 지나 그와 지낸 일들을 돌이켜봤다.
가족들로부터 자주 아빠는 개를 잘 돌보지 못하고 혼자 지내게 하면서 왜 기르느냐는 비난을 듣고있었다.

자두는 먼 강화도 섬까지 가서 한때 챔피언 했었고 출산경력이 있다고 듣고 입양해왔다.
데려와서부터 약 두해가 지나 떠나보내기까지 지냈던 일들을 돌이켜보니 넓고 긴 양화천 제방과 그 동서로 넓게 펼쳐진 인적이 드문 한가한 들길,제방길,야산 숲길을 수도없이 많이 한시간에서 서너시간까지 함께 산책했던 것과 무더웠던 여름날 헉헉대며 따라오다 두어번 주저앉아 멈춰버려 묶어두고 집에 돌아가 차를 가져가 싣고온 일,발정나서 집 마당에 피를 흘리고 다녀 종견을 불러와 교미시킨 것,두어번 닭장 밖으로 탈출한 닭을 물어죽이고 생으로 잡아먹은 것 등이 먼저 생각났다.

그런데 뒤늦게 다른 한 생각이 떠올랐다. 눈에 보이는 그런 일들이 아니면서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일을 자두가 주인에게 해준 것이다.

엇그제 마을 입구쪽에 있는 깔끔하게 수리된 옛 기와집에 사는 부인에게 우리집 앞뜰 꽃밭에서 지난해 여름 잘 자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을 피웠던 칸나와 천사의나팔 한그루씩을 심어 기르시라고 가져다드리며 자매님이 있어서 이 마을에서 생활이 즐겁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그 부인은 두달쯤 전에 이웃집 부인이 김치를 좀 주신다니 가보라고 소개해줘 처음 그집으로 찾아갔다. 내가 혼자 오가며 지낸다는 말을 전해듣고 힘들고 어려우리라 생각됐던지 약 15킬로쯤 되는 큰 통에 가득채운 새 김치와 쌀 한 포대,햄 통조림 대여섯개와 식용유 한병까지 전혀 바라지도 보통때 있을것같지도 않은 큰 선물을 내놓고 기다리다가 내가 보고 저는 이런 큰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씀드리자 이런 일에 무슨 자격이 필요하냐 마을에 오셨으니 그것으로 충분하고 하시고 안겨주셨다.

그 부인을 소개시켜준 우리집 가까운 새집 부인은 마을 들고양이들의 어머니처럼 자기집에 급식소와 쉴곳을 마련해놓고 들고양이들을 친자식들처럼 보살피는 사람인데 자두가 처음 집에 왔을때부터 귀여워하시며 맛있는 먹거리들을 가져다주시며 앞뜰에 자주오셔서 친해졌다. 나중에는 자두뿐만 아니라 자주 자두 주인의 먹거리까지 가져다주셨다.

서울 가족이 사는 집에서 반찬 등 음식들을 간단히 챙겨오긴하지만 늘 한두가지 반찬과 한번에 많이 지어서 냉동시켜둔 밥 한 그릇을 데워 막걸리 한잔과 함께 끼니를 떼우기 일수이다가 따뜻한 국물과 반찬,새로 만들거나 사온 먹거리들을 조금씩 받을때마다 나도모르게 얼굴이 밝게 펴지고 미소지어지며 가슴이 따뜻해진다.

보답을 해야하는데 별로 드릴 것이 없어서 늘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내가 이곳에서 정성껏 심고 기르는 꽃나무들과 재미로 기르는 닭들이 낳은 달걀들을 조금씩 드리고있다.

자두야 고맙다. 하늘나라에서 이땅에서 네가 바랐던 것들을 모두 이루고 기쁘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수있게 하여주시길 하느님께 빌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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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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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쁜 혜야 | 작성시간 23.04.17 강아지를 키우는 반려인으로서
    쓸쓸하게 혼자 별이된 자두를
    생각하니 눈믈이 흐르네요.
    자두야,
    그곳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렴~~
  • 작성자마음속채송 | 작성시간 23.04.18 아휴..가슴아파요..자두야.좋은곳에서 외롭지않게 지내렴 .
    반려견 얘기 나오면 눈물부터 앞서요 ,울애들 8살 두아이 .저는요
    얘들땜에 산답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마음속채송 | 작성시간 23.04.18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왕미나리 | 작성시간 23.04.26 아가들 아프지 말고 천수를 누리다 무지개 다리건너기를~ 자두야 처음 들어본 너의 이름이지만, 무지개너머 세상에선 아프지말고 이땅의 좋은 기억을 추억하고 행복해라~
  • 작성자아몽아콩 | 작성시간 23.07.13 그마음 이해합니다 ... 저희집 강아지도 한달전 무지개다리 건넜어요~ 아직 5살밖에 안되었지만 선천적 심장병으로..
    너무 보고싶고 그립네요 ㅎㅎ
    자두야 우리아콩이랑 만나서 재밋게 놀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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