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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고전읽기

임금 노동과 자본

작성자홍승용|작성시간19.03.31|조회수356 목록 댓글 0

맑스주의 고전 읽기 자료입니다.



첨부파일 m선집1-10.hwp


K. 맑스: 임금 노동과 자본, 최인호 역

 

[1891년 독일어판에 부친 엥겔스의] 서설

 

다음의 노작은 184945일부터 󰡔신 라인 신문󰡕에 일련의 논설들로 게재되었던 것이다. 맑스가 1847년에 브뤼셀 독일 노동자 협회에서 행했던 강연이 이 노작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선집1,535)

 

40년대에 맑스는 정치 경제학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완결짓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50년대 말경에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따라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제1분책(1859) 이전에 나온 그의 저술들은 몇 가지 점에서 1859년 이후에 저술된 것들과 차이가 있고 그 이후의 저술들의 관점에서 보면 빗나가 보이며, 심지어는 부당한 것으로 보이는 표현들과 문장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선집1,535-536)

 

이것은 맑스가 1849년에 썼던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가 1891년에 썼다면 썼을 것과 유사한 소책자이다. () 나의 수정들은 모두 한 가지 점과 관련되어 있다. 원본에 따르면 노동자는 임금을 받고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을 판다; 이번의 텍스트에 따르면 자신의 노동력을 판단다.(선집1,536)

 

고전 정치 경제학은, 공장주는 자신의 노동자들의 노동을 사고서 그 대가를 지불한다는 공장주의 통상적인 관념을 산업상의 실천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이러한 관념은 공장주의 상거래 관습, 부기, 가격 계산을 위해서는 아^주 충분한 것이었다. 그 관념은 정치 경제학으로 소박하게 옮겨지면서 매우 놀랄 만한 오류들과 혼란들을 빚어내게 되었다.(선집1,536-537)

 

경제학은 때로는 위로 때로는 아래로 끊임없이 변동하고 진동하는 상품 가격의 내부에서 이러한 변동들과 진동의 축을 이루는 확고한 중심점을 찾으려 하였다. 한마디로: 경제학은 상품 가격을 규정하는 법칙으로서의 상품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 상품 가격으로부터 출발하였던바, 그 상품 가치로부터 모든 가격 변동들이 설명될 수밖에 없으며 가격 변동들은 결국 모두 다시 상품 가치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선집1,537)

 

고전 경제학은 이제 한 상품의 가치는 그것 속에 들어 있는, 그것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고전 경제학은 이러한 설명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당분간은 여기에 머물 수 있다. 다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나는, 이러한 설명은 오늘날 완전히 불충분한 것으로 되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두도록 하겠다. 맑스는 최초로 노동의 가치 형성적 속성을 근본적으로 연구하였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상품의 생산에 필요하다고 보여지거나 혹은 실제로 필요한 노동이라고 해서 모두 어떠한 상황하에서든지 그것에 지출된 노동량에 상응하는 가치 크기를 이 상품에 덧붙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오늘날 리카도 같은 경제학자와 나란히 한 상품의 가치는 그것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에 의해 규정된다고 간단히 말할 때, 그때 우리는 언제나 맑스가 제시했던 유보조건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선집1,537)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이와 같은, 노동에 의한 가치 규정을 노동이라^는 상품에 적용하자마자 하나의 모순에서 또 다른 모순에 빠져 들어갔다.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규정되는가? 그것 속에 들어 있는 필요 노동에 의하여. 그러면 하루, 한 주, 한 달, 일 년 동안의 노동에는 얼마만큼의 노동이 들어 있는가? 하루의, 한 주의, 한 달의, 일 년의 노동이. 만약 노동이 모든 가치의 척도라면 우리는 노동의 가치도 다름 아니라 노동으로만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한 시간 노동의 가치가 한 시간 노동과 똑같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한 시간 노동의 가치에 대해 전혀 모른 셈이다. 따라서 그것을 가지고는 우리는 목표에 가까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원 안에서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이다.(선집1,537-538)

 

그래서 고전 경제학은 다른 표현 방법으로 그것을 시도하였다; 고전 경제학은 말한다: 하나의 상품의 가치는 그것의 생산비와 똑같다. 그런데 노동의 생산비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자들은 논리에 약간의 무리를 가하지 않을 수 없다.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한 노동 자체의 생산비 대신에 이제 그들은 노동자의 생산비가 무엇인지를 연구한다. 그리고 이것은 확인될 수 있다. 그것은 시기와 사정에 따라 변하기는 하지만 주어진 사회 상태, 주어진 장소, 주어진 생산 분야에 있어서는 그것 또한 주어져 있는데, 적어도 상당히 좁은 한계 내에서는 그렇다. 우리는 오늘날 자본주의적 생산의 지배하에서 살고 있는데 여기서는 거대하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주민 계급은 생산 수단의작업 도구, 기계, 원료, 그리고 생활 수단의소유자를 위해, 임금을 대가로 노동함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생산 양식의 기초 위에서 노동자의 생산비란, 그로 하여금 노동 능력이 있게 만들며 노동 능력이 있도록 유지하는 데에, 그리고 연로, 질병 혹은 죽음으로 인한 그의 퇴직시 그를 새로운 노동자로 바꾸는 데에, 따라서 노동자 계급을 필요한 수만큼 번식시키는 데에 평균적으로 필요한 바로 그만큼의 생활 수단의 총합또는 그 화폐 가격에 그 본질이 놓여 있다.(선집1,538)

 

경제학자들이 노동의생산비라고 생각했던 것은 노동의 생산비가 아니라 살아 있는 노동자 자신의 생산비이다. 그리고 이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판 것은 자신의 노동이 아니었다. 맑스는 그의 노동이 실제로 시작되자마자 노동은 이미 그에게 속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의 노동은 더 이상 그에 의해서 판매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기껏해야 자신의 미래의 노동을 팔 수 있을 뿐인바, 즉 일정산 시간에 일정한 작업 수행을 할 의무를 떠맡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비록 이것이 먼저 수행되어져야만 할지라도)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 동안(일급제일 때) 혹은 일정한 작업 수행을 목적으로(성과급제일 때) 일정한 대가를 받고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의 처분에 맡기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노동력을 임대 내지 판매한다.(선집1,540)

 

그러나 이 노동력은 그의 몸에 붙어 있으며 거기서 떼어낼 수 없다. 따라서 노동력의 생산비는 노동자의 생산비와 일치한다; 경제학자들이 노동의 생산비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노동자의 생산비이고, ^라서 노동력의 생산비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또한 노동력의 생산비로부터 노동력의 가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일정한 질의 노동력을 만들어내는 데에 요구되는 사회적 필요 노동의 양을 결정할 수 있는바, 이는 맑스가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에 관한 장에서 논한 바와 같다.([자본], 1, 4, 3).(선집1,540-541)

 

노동의 가치에서 출발했던 한, 가장 뛰어난 경제학자들조차 부딪혀서 실패했던 난관은 우리가 그 대신 노동력의 가치에서 출발하자마자 사라진다. 오늘날 우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은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이지만, 아주 특수한 상품이다. 즉 그것은 특수한 속성을, 가치의 원천이 되는 가치 창조의 힘을 갖고 있으며, 더욱이 적절히 다루면 그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의 원천이 되는 힘을 갖고 있다. 오늘날의 생산의 수준에서, 인간의 노동력은 하루에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고 자기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할 뿐만 아니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새로운 기술적 발명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하루 생산물 중 자신의 하루 비용을 초과하는 이 잉여분은 더 많아진다. 따라서 노동일 중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하루 임금의 보상을 달성하는 부분은 더 적어지며, 따라서 다른 한편 노동일 중에서 그가 자본가에게 어떠한 지불도 받지 않고 선사해야 하는 부분은 더 늘어난다.(선집1,542)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 전체의 경제 제도는 바로 이것이다: 모든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바로 노동자 계급이다. 왜냐하면 가치란 노동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일 뿐이며, 오늘날 우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정 상품에 들어 있는 사회적 필요 노동량을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에 의해 생산되는 이 가치는 노동자들에게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원료, 기계 및 도구, 그리고 이 소유자들이 노동자 계급의 노동력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선대 수단의 소유자들에게 속한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전체 생산물 덩어리 중에서 일부만을 되돌려 받는다. 그리고^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자본가 계급이 자기 몫으로 챙겨 넣는, 기껏해야 지주 계급하고나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는 다른 부분은 새로운 발견과 발명이 이루어질 때마다 더 커지는 반면에 노동자 계급에게 떨어지는 부분(1인 당으로 계산할 때)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늘어나거나 전혀 늘어나지 않으며, 사정에 따라서는 심지어 더 감소할 수도 있다.(선집1,542-543)

 

그러나 점점 더 급속히 서로를 촉진하는 이와 같은 발명과 발견,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나날이 늘어나는 인간 노동의 생산성은 마침내 충돌을 만들어내며, 그 충돌 속에서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는 붕괴하지 않을 수 없다. 한쪽에는 헤아릴 수 없는 부와, 구매자들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생산물들의 과잉이 존재한다. 다른 한쪽에는 사회의 다수 대중이 프롤레타리아화되고, 임금 노동자로 전화되며,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생산물들의 저 과잉분을 전유할 수 없게 된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한 소수의 계급과 재산 없는 다수의 임금 노동자 계급으로의 사회의 분열은, 이 사회가 그 자신의[생산물의] 과잉 속에서 질식사하는 반면 그 성원의 대다수는 극도의 곤궁으로부터 별로 보호받지 못하거나 혹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한다.(선집1,543)

 

이러한 상태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부조리한 것으로 그리고더욱 더 불필요한 것으로 된다. 이 상태는 제거되어야 하며, 제거될 수 있다. 하나의 새로운 사회 질서가 가능한바, 거기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계급 구별이 사라지고아마도 약간 쪼들리기는 하겠지만 어떻든 도덕적으로 매우 유익한 짧은 이행기를 거친 후에모든 사회 성원이 엄청난 기존 생산력들을 계획적으로 이용하고 확대함으로써, 동등한 노동 의무 속에서 생활 수단, 향락 수단, 모든 육체적 및 정신적 능력의 개발과 발휘를 위한 수단을 동등하게, 또 점점 더 충분하게 가지게 된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이 새로운 사회 질서를 쟁취하려는 결의를 더욱더 다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양의 양쪽에서, 내일로 다가온 51일과 일요일인 53일이 증명해 줄 것이다.(선집1,543)

 

1891430일 프리드리히 엥겔스

 

 

임금노동과 자본

 

매일매일의 역사 속에서 계급투쟁을 추적하는 일, 또 기존의 역사적 재료 및 매일매일 새로 만들어지는 역사적 재료를 가지고서, 2월 및 3[의 혁명]을 일으킨 노동자 계급이 진압됨과 동시에 그들의 적들프랑스의 부르주아 공화파, 유럽 대륙 전체에서 봉건적 절대주의에 맞서 투쟁했던 부르주아 계급 및 농민계급도 패배했다는 사실; 프랑스에서의 점잖은 공화제의 승리는 동시에, 영웅적인 독립 전쟁으로 2월 혁명에 응답했던 국민들의 몰락이었다는 사실; 끝으로 혁명적 노동자들의 패배와 함께 유럽은 그 옛날의 이중 노예제, 즉 영국러시아적 노예제로 도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사실 등을 증명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선집1,545)

 

파리의 6월 투쟁, 빈의 함락, 184811월에 벌어진 베를린의 희비극, 폴란드, 이탈리아 및 헝가리에서의 필사적인 분투, 아일랜드에서의 기근이러한 것들이 유럽에서 벌어진 부르주아지와 노동자 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이 집약되어 있는 주요 계기들이었으며, 이러한 계기들을 갖고서 우리는, 모든 혁명적 봉기는 비록 그 목표가 계급투쟁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혁명적 노동자계급이 승리하기 전에는 좌초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모든 사회 개혁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봉건적 반혁명이 무기를 들고 하나의 세계 대전 속에서 서로 승패를 다투기 전까지는 하나의 공상에 그친다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선집1,545-546)

 

우리는 세 개의 커다란 부분들로 나누어 서술하려고 한다: 1. 임금 노동과 자본의 관계, 노동자의 노예 상태, 자본가의 지배, 2. 현체제하에서는 불가피한, 중간 부르주아 계급들과 소위 시민층의 몰락, 3. 세계 시장의 전제 군주영국에 의한 유럽 여러 민족의 부르주아 계급들의 상업적 예속과 착취.(선집1,546)

 

그들이 제시하는 금액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모두 한 점에서 일치한다: 임금이란 자본가가 일정한 노동 시간 혹은 일정한 노동의 제공에 대하여 지불하는 금액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따라서 마치 자본가가 돈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들은 자본가에게 돈을 받고 자신들의 노동을 판다.(선집1,546-547)

 

그러나 이것은 단지 가상일 뿐이다. 그들이 자본가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것은 자신들의 노동력이다. 자본가는 이 노동력을 하루, 한 주, 한 달 등등의 단위로 산다. 그리고 노동력을 산 뒤에는 그는 계약 기간 동안 노동자들을 노동하게 함으로써 그것을 사용한다. () 노동력은 설탕보다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는 하나의 상품이다.(선집1,547)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상품, 노동력을 자본가의 상품, 화폐와 교환하며 게다가 이 교환은 일정한 비율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일정 시간 동안의 노동력의 사용이 그만큼의 화폐와 교환된다. () 화폐로 평가된 상품의 교환 가치가 바로 상품의 가격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이란 사람들이 통상 노동의 가격이라고 부르는 노동력의 가격을 가리키는, 인간의 살과 피 이외에는 머무를 곳이 없는 이 독특한 상품의 가격을 가리키는 특수한 이름일 뿐이다.(선집1,547)

 

자본가는 그가 아마포로부터 끌어내게 될 돈으로 이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된 돈으로 지불한다. 부르주아로부터 제공받은 직조기와 실이 직조공의 생산물이 아니듯이, 그가 자신의 상품, 자신의 노동력과 교환하여 받는 상품들도 그의 생산물이 아니다. 부르주아는 자신의 아마포의 구매자를 전혀 발견하지 못할 수 있었다. 부르주아는 직조공의 임금에 비해 아주 많은 이득을 남기고 아마포를 팔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직조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자본가는 기존 재산의 일부분, 그의 자본의 일부분으로 직조공의 노동력을 사는바, 이는 그가 자기 재산의 다른 부분으로 원료와 노동도구직조기를 사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마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의 구입을 포함하는 이러한 구입들을 행한 후에 자본가는 그에게 속하는 원료와 노동 도구들을 가지고서 생산한다. 그리하여 물론 우리의 착한 직조공도 후자에 속하는데, 그는 직조기와 마찬가지로 생산물 혹은 생산물의 가격 속에 자기 몫을 가지고 있지 않다.(선집1,548)

 

그러므로 임금은 노동자에 의하여 생산된 상품에서 노동자가 차지하는 몫이 아니다. 임금은 자본가가 일정한 양의 생산적 노동력을 사들이는 데 사용하는 기존 상품의 일부이다. 따라서 노동력은 그 소유자, 즉 임금 노동자가 자본에게 파는 하나의 상품이다. 그는 왜 그것을 파는가? 살기 위해서이다.(선집1,548)

 

그러나 노동력의 실행, 즉 노동은 노동자 자신의 생명 활동이며, 그 자신의 생명의 발현이다. 그리고 그는 필요한 생활 수단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 생명 활동을 제3자에게 판매한다. 따라서 그의 생명 활동은 그에게는 생존할 수 있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는 살기 위해 노동하는 것이다. 그는 노동을 자기 삶으로까지 생각하는 일이 없으며, 오히려 노동은 그의 삶의 희생일 뿐이다. 노동은 그가 제3자에게 넘겨 버린 하나의 상품이다. 따라서 그의 활동의 산물 또한 그의 활동의 목적이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생산하는 것은 그가 짜는 비단도 아니고 그가 광산의 갱도에 캐내는 금도 아니며 그가 짓는 궁전도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생산하는 것은 임금이며, 비단, 궁전, 금 등은 그에게 있어서는 일정량의 생활 수단, 아마도 면 자켓, 동전, 지하실 주택 등으로 격하된다.(선집1,548-549)

 

노동력이 늘 상품이었던 것은 아니다. 노동이 늘 임금 노동, 즉 자유로운 노동이었던 것은 아니다. 황소가 자신의 능력을 농부에게 팔지 않듯이, 노예는 자신의 노동력을 노예 소유자에게 팔지 않았다. 노예는 자신의 노동력과 더불어 통째로 그 소유자에게 영원히 팔려 버린다. 그는 한 소유자의 손에서 다른 소유자의 손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상품이다. 그 자신이 상품이지 노동력이 그의 상품인 것은 아니다. 농노는 자기 노동력의 일부분을 판다. 그가 지주들에게서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주들이 그에게서 공물을 받는다.(선집1,549)

 

노동자는 그가 원하는 즉시 그가 자기 자신을 빌려 주었던 그 자본가를 떠난다. 그리고 자본가는 자신이 노동자로부터 어떠한 이득도 보지 못하거나 의도했던 만큼의 이득을 보지 못하게 되는 즉시, 자기가 좋다고 생각할^ 때면 언제나 노동자를 해고한다. 그러나 노동력의 판매가 유일한 수입원인 노동자는 자신의 생존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구매자 계급 전체, 즉 자본가 계급을 떠날 수 없다. 그는 이 자본가 혹은 저 자본가에게 속하지는 않지만 자본가 계급에게 속한다: 더구나 자신을 주인에게 데려가는 것, 즉 이 자본가 계급 속에서 구매자를 찾는 것이 그의 책무이다.(선집1, 549-550)

 

임금이란 특정 상품, 즉 노동력의 가격이다. 따라서 임금은 다른 모든 상품들의 가격을 결정하는 바로 그 법칙들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상품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라는 물음이 나온다. 한 상품의 가격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구매자들과 판매자들 사이의 경쟁에 의해, 공급에 대한 수요의 관계에 의해, 제공에 대한 욕망의 관계에 의해.(선집1,550)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경쟁은 세 측면을 갖는다. 똑같은 상품이 서로 다른 판매자들에 의하여 공급된다. 똑같은 품질의 상품을 가장 싸게 파는 사람이 나머지 판매자들을 격퇴하고 최대의 판로를 확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판매자들은 판로, 즉 시장에 대한 권리를 서로서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는 팔고자 하고, 가능한 한 많이 팔고자 하며, 될 수만 있다면 나머지 판매자들을 밀어내고 혼자서 팔기를 원한다. 따라서 제각기 다른 사람보다 싸게 판다. 그래서 판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일어나고, 그 경쟁은 그들이 공급하는 상품들의 가격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구매자들 사이에서의 경쟁도 일어나며, 이것은 이것대로 공급되는 상품들의 가격을 상승시킨다.(선집1,550)

 

끝으로 구매자들과 판매자들 사이에서의 경쟁이 일어난다. 전자는 가능한 한 싸게 사려고 하고 후자는 가능한 한 비싸게 팔려고 한다. 구매자들과 판매자들 사이의 이러한 경쟁의 결과는 앞에서 제시된 경쟁의 두 측면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즉 경쟁의 구매자들의 군대에서 더 심한가 혹은 판매자들의 군대에서 더 심한가에 달려 있다. 산업은 두 군대 무리들을 싸움터에서^ 마주서도록 만들며 그들 각각은 자기 부대들까리 자기 대열 속에서 다시 전투를 일으킨다. 난투극이 가장 적은 군대가 상대 군대를 누르고 승리를 획득한다.(선집1,550-551)

 

그러면 무엇이 부르주아에게 이득의 척도로서 봉사하는가? 그의 상품의 생산비이다. 그가 이 상품을 일정한 양의 다른 상품들, 생산하는 데 더 적은 비용이 들어간 상품들과 교환했다면 그는 손해를 본 셈이다. 자기 상품을 일정한 양의 다른 상품들, 생산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 상품들과 교환했다면, 그는 이득을 본 셈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상품의 교환 가치가 영생산비보다 낮은가 높은가 그 등급에 따라 이득의 오르내림을 계산한다.(선집1,552)

 

한 상품의 가격 상승의 결과는 무엇이 되겠는가? 대량의 자본이 번창하는 산업 부문으로 몰릴 것이며, 우대받는 산업 영역으로의 자본들의 이와 같은 이주는 그 산업이 통상적인 이득을 주게 될 때까지 아니 오히려 그 생산물의 가격이 과잉 생산 때문에 생산비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선집1,552)

 

반대로 한 상품의 가격이 그 생산비 이하로 떨어지면, 자본들은 이 상품의 생산에서 손을 뗄 것이다. 한 산업 부문이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아서^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자본들의 이같은 도피는 그 상품의 공급이 수요에 상응하게 될 때까지 따라서 그 가격이 생산비 수준으로 다시 오를 때까지 아니 오히려 그 공급이 수요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즉 그 가격이 다시 생산비 이상으로 올라갈 때까지 그 상품의 생산, 즉 공급을 떨어드릴 것이다.(선집1,552-553)

 

한 상품의 실제 가격이 언제나 생산비보다 높거나 낮긴 하나, 일정한 시기 동안의 산업의 썰물과 밀물을 합산해 보면 오르내림은 서로 상쇄되므로 상품들은 그 생산비에 따라 교환되며, 따라서 그 가격은 그 생산비에 의해 결정되게 된다.(선집1,553)

 

경제학자들은 상품들의 평균 가격이 생산비와 같다고 말한다; 이것은 법칙이라는 것이다. 오름은 내림에 의하여, 또 내림은 오름에 의하여 서로 상쇄되는 이 무정부적인 운동을 그들은 우연으로 여긴다. 다른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듯이, 똑같은 권리로 [가격의] 변동들을 법칙으로 여기고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을 우연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동들, 즉 자세히 살펴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황폐화를 수반하며 마치 지진처럼 부르주아 사회를 그 기초로부터 흔드는 이 변동들만이, 그 경과 속에서 생산비에 의해 가격을 결정한다. 이러한 무질서의 운동 전체가 부르주아 사회의 질서이다.(선집1,553)

 

어떤 상품의 가격은 그 생산^비에 의해 결정되는바, 이 결정은 그 상품의 가격이 생산비 이상으로 오르는 시기가 생산비 이하로 떨어지는 시기에 의하여 상쇄되는 방식으로, 또 그 반대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이것은 주어진 개별적 공산품 하나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 부문 전체에만 해당된다. 따라서 이것은 개별적 산업가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가 계급 전체에만 해당된다.(선집1,553-554)

 

상품들의 가격을 일반적으로 규제하는 바로 그 일반 법칙들이 당연히 임금, 즉 노동의 가격도 규제한다. 임금은 수요와 공급간의 관계에 따라 노동력의 구매자들인 자본가들과 판매자들인 노동자들간의 경쟁이 어떤 모습을 띠는가에 따라 때로는 오르게 되고 때로는 내리게 된다. 임금의 변동들 내에서 노동의 가격은 그 생산비에 의하여, 이 상품, 즉 노동력을 만들어 내는 데 요구되는 노동 시간에 의하여 결정된다.(선집1,554)

 

그런데 노동력의 생산비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를 노동자로서 유지시키고 그를 노동자로서 훈련시키는 데 요구되는 비용이다. 따라서 어떤 노동이 훈련 기간을 짧게 필요로 하면 할수록, 노동자의 생산비도 적어지게 되어서 그의 노동의 삯, 즉 그의 임금도 적어진다. 수습기간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고 단지 노동자의 육체적 존재만으로 충분한 산업 부문들에서는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로 되는 생산비가 거의, 노동자가 노동 능력을 가지고 살도록 하는 데 필요로 되는 상품들에만 국한된다. 그러므로 그의 노동의 가격은 필요한 생활 수단의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선집1,554)

 

자신의 생산비 및 이에 의거하여 생산물의 가격을 계산하는 공장주는 노동 도구들의 마멸을 계산에 넣는다. 예를 들어 어떤 기계가 그에게 1,000마르크를 들이게 했고 또 이 기계는 10년 동안에 걸쳐 마멸된다면, 그는 10년 뒤에 닳아 없어진 기^계를 새로운 기계로 대체할 수 있기 위하여 해마다 100마르크를 상품 가격에 산입시킬 것이다.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단순 노동력의 생산비 속에는 노동자 종족이 번식하고 또 닳아 없어진 노동자들을 새로운 노동자들로 교체할 수 있기 위한 번식 비용이 산입되어져야만 한다. 따라서 기계의 마모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마모 또한 계산에 포함된다.(선집1,554-555)

 

따라서 단순 노동력의 생산비는 노동자의 생존 및 번식 비용에 달한다. 이러한 생존 및 번식 비용이 임금을 형성한다. 이렇게 결정된 임금을 임금의 최소치라고 한다. 생산비에 의한 상품의 가격 결정 일반과 마찬가지로 임금의 이러한 최소치는 개별적 개인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유()에 해당되는 것이다. 개별적 노동자들, 수백만의 노동자들은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전체의 임금은 그 변동 속에서 이러한 최소치에 일치한다.(선집1,555)

 

흑인은 흑인이다. 일정한 관계들 속에서 그는 비로소 노예가 된다. 면방적기는 면방적을 하는 기계이다. 일정한 관계들 속에서만 그것은 자본이 된다. 이러한 관계들로부터 떼어 내어졌을 때 그것은 자본이 아닌데, 이는 마치 금이 그 자체로서는 화폐가 아니거나 혹은 설탕이 설탕 가격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선집1,555)

 

생산 속에서 인간들은 자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서로서로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들은 일정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자신들의 활동들을 서^로 교환하는 속에서만 생산한다. 생산하기 위하여 인간들은 서로 일정한 연관들 및 관계들을 맺으며, 또 이러한 사회적 연관들과 관계들 속에서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작용이, 생산이 존재하는 것이다.(선집1,555-556) 

 

생산자들 서로간에 맺어지는 이러한 사회적 관계들, 즉 생산자들이 자신들의 활동들을 교환하고 생산이라는 공동 행위에 참여하는 조건들은 당연히 생산 수단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화기라는 새로운 전쟁 도구의 발명과 더불어 군대의 내부 조직 전체가 필연적으로 변화하였고, 개인들이 군대를 형성하고 군대로서 작용할 수 있게 되는 관계들이 변화하였으며, 각 군대의 상호 관계도 변하였다.(선집1,556)

 

개인들이 그 속에서 생산을 행하는 사회적 관계들, 즉 사회적 생산 관계들은 따라서 물질적 생산 수단들, 생산력들의 변화 및 발전과 더불어 변화하고 변모한다. 그 전체성 속에 있는 생산 관계들은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들, 사회라고 칭하는 것을 형성하며,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일정한 역사적 발전 단계에 있는 어떤 사회, 특유한,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성질을 갖고 있는 사회를 형성한다. 고대 사회, 봉건 사회, 부르주아 사회는 그러한 생산관계들의 총체들이며, 이 생산관계들 각각은 동시에 인류 역사에서의 특수한 발전 단계를 가리킨다.(선집1,556)

 

자본 또한 하나의 사회적 생산 관계이다. 그것은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 즉 부르주아 사회의 생산 관계이다. 자본을 구성하는 생활 수단들, 노동 도구들, 원료들 이런 것들은 주어진 사회적 조건들 아래에서, 일정한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만들어지고 축적된 것들이 아니겠는가? 그것들은 주어진 사회적 조건들 아래에서 일정한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새로운 생산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바로 이 특정한 사회적 성격이 새로운 생산을 위해 봉사하는 생산물들을 자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선집1,556)

 

자본은 생활 수단들, 노동 도구들 및 원료들로, 즉 물질적 생산물들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교환 가치들로 구성된다. 자본을 구성하는 모든 생산물들은 상품들이다. 따라서 자본은 일정한 양의 물질적 생산물들일 뿐만 아니라, 일정한 양의 상품들,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들, 일정한 양의 사회적 크기들이기도 하다.(선집1,556)

 

자본은 조금치의 변화도 겪지 않고서 자본의 육체는 끊임없이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자본이 일정한 양의 상품들, 즉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들이라고 하더라도 아직은 일정한 양의 상품들 모두가,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들 모두가 자본인 것은 아니다.(선집1,557)

 

생산물들이 교환되는 일정한 비율이 그것들의 교환 가치를 이루며, 그것이 화폐로 표현될 때는 그것들의 가격을 이룬다. 이 생산물들의 양은 상품이라는 혹은 교환 가치를 표현한다는 혹은 일정한 가격을 가진다는 생산물들의 규정을 변화시킬 수 없다.(선집1,557)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일정한 양의 상품들,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들이 자본으로 되는가? 그것이 자립적인 사회적 힘으로서, 즉 사회의 일부가 갖는 힘으로서 자신을 유지하고 또 직접적인 산 노동력과의 교환을 통해서 증식되는 것에 의해서이다. 노동 능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계급의 존재가 자본의 필수적 전제이다.(선집1,557)

 

직접적인 산 노동에 대한 축적된 과거의 대상화된 노동의 지배가 축적된 노동을 비로소 자본으로 만든다. 자본의 본질은 축적된 노동이 새로운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서 산 노동에 봉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본질은 산 노동이 축적된 노동의 교환 가치를 유지하고 증식시키는 수단으로서 축적된 노동에게 봉사하는 데 있는 것이다.(선집1,557)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과 교환하여 생활 수단을 얻는다. 그러나 자본가는 자신의 생활 수단과 교환하여 노동, 즉 노동자의 생산적 활동, 창조적 능력, 즉 노동자가 그가 소비한 것을 보상할 뿐만 아니라 축적된 노동에 그것이 전에 가지고 있었던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을 얻는다. 노동자는 자본가로부터 현존 생활 수단의 일부를 받는다. 이 생활 수단은 노동자의 무엇을 위해 봉사하는가? 직접적 소비를 위해서이다. 그러나 내가 생활 수단을 소비하자마자 나는 이 생활 수단을 돌이킬 수 없는 형태로 상실하게 되는바, 이 수단이 나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시간을 이용하여 새로운 생활 수단을 창조하지 않는 한, 소비 속에서 없어져 버린 가치 대신에 소비하는 동안에 나의 노동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 한 [정말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바로 이 귀중한 재생산의 능력을 [그가] 받은 생활 수단과 교환하여 자본가에에게 양도한다. 따라서 그는 그 자신의 입장으로 보면 이 힘을 상실한 것이다.(선집1,558)

 

자본은 임금 노동을 전제하고, 임금 노동은 자본을 전제한다. 그것들은 서로 조건지으며, 서로를 산출해 낸다. 면방직 공장의 노동자가 면포만을 생산하는가? 아니다. 그는 자본을 생산한다. 자신의 노동을 지휘하고 이를 매개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데 새로이 봉사하는 가치를 생산한다.(선집1,559)

 

자본은 노동력과 교환됨으로써만, 임금 노동을 살려 둠으로써만 증식될 수 있다. 임금 노동자의 노동력은 자본을 증식시킴으로써만, 자신이 노예로 있는 그 힘을 강화시킴으로써만 자본과 교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의 증식은 프롤레타리아트, 즉 노동자 계급의 증식이다.(선집1,559)


노동자는 자본이 그를 고용하지 않으면 파멸하게 된다. 자본은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으면 파멸하게 되며 착취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야만 한다. 생산하기로 예정된 자본, 즉 생산 자본이 급속히 증대될수록, 따라서 산업이 번창할수록, 부르주아지가 부유해질수록, 사업이 잘되면 될수록, 자본가는 더욱 더 노동자를 필요로 하게 되며 노동자는 더욱 더 비싼 값에 팔리게 된다.(선집1,559)

 

따라서 그럭저럭 살 만한 노동자의 처지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은 생산 자본의 가능한 한의 급속한 성장이다. 그런데 생산 자본의 급속한 성장이란 무엇인가? 산 노동 위에 군림하는 축적된 노동의 힘의 성장이다.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지배의 성장이다. 만약 임금 노동이 자신을 지배하는 타인의 부, 자신에 적대적인 힘, 즉 자본을 생산한다면, 임금 노동이 새로운 자본의 일부가 된다는 조건, 임금 노동이 자본을 가속화된 성장 운동 속에 새로이 투입하는 지렛대로 된다는 조건 아래에서 임금 노동의 취업 및 생활 수단이 그 적대적인 힘으로부터 되흘러 온다.(선집1,559)

 

임금 노동자가 임금 노동자인 한, 그의 운명은 자본에 달려 있다. 이것이 그토록 칭송받고 있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관계의 공통성이다.(선집1,559)

 

자본이 성장하면 임금 노동의 양도 그만큼 성장하며, 임금 노동자의 수도 그만큼 성장하는바, 한 마디로: 자본의 지배가 더 많은 개인들의 무리에까지 확장된다. 최상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생산 자본이 성장하면 노동에 대한 수요가 성장한다. 따라서 노동의 가격, 임금이 올라간다.(선집1,560)

 

집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주위의 집들이 한결같이 작다면, 그 집은 주택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작은 집 옆에 궁전이 하나 솟아 있다면, 그 집은 오두막으로 오그라들 것이다. 이제 그 자은 집은 그 임자가 [주택에 대한] 요구를 전혀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혹은 아주 작은 요구만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문명의 행로 속에서 그 작은 집이 아무리 커진다 하더라도, 옆에 있는 그 궁전이 동일한 정도로 혹은 더 큰 정도로 높이 치솟는다면, 상대적으로 작은 집의 거주자는 자신의 사면 울타리 안에서 자신이 더욱 더 불쾌하고, 불만스럽고, 짓눌린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선집1,560)

 

현저한 임금의 증대는 생산 자본의 급속한 성장을 전제한다. 생산 자본의 급속한 성장은 마찬가지로 부, 사치, 사회적 욕구 및 사회적 향유의 급속한 성장을 야기한다. 따라서 비록 노동자의 향유가 증대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주는 사회적 만족은 노동자가 넘볼 수 없는 자본가의 증대된 향유에 비하면, 사회의 발전 상태 일반에 비하면, 감소된 셈이다. 우리의 욕구와 향유는 사회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를 기준으로 그것들을 재는 것이지 그것들의 충족 대상들을 기준으로 재는 것이 아니다. 요구와 향유는 사회적 본성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본성이다.(선집1,560)

 

16세기에 아메리카에서 더 풍부하고 더 쉽게 가공할 수 있는 광산들이 발견된 결과, 유럽에서 통용되는 금과 은이 증가하였다. 그리하여 금과 은의 가치가 나머지 상품들에 비하여 떨어졌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의 대가로 예전과 똑같은 양의 은화를 받았다. 그들의 노동의 화폐 가격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임금은 떨어졌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똑같은 양의 은과 교환하여 보다 적은 양의 다른 상품들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6세기에 자본의 성장, 부르주아지의 대두를 촉진시킨 사정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선집1,560-561)

 

임금은 또한 무엇보다도 자본가의 이득, 즉 이윤과 임금과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비교적상대적 임금. 실질 임금이 노동의 가격을 나머지 상품들의 가격과의 관계 속에서 표현하는 반면에, 상대적 임금은 직접적 노동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가치 중에서 직접적인 노동이 받는 몫을 축적된 노동, 즉 자본이 차지하는 몫과의 관계 속에서 표현한다.(선집1,561)

 

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들의 판매 가격은 자본가 쪽에서 보면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째로 그가 선대한 원료 가격에 대한, 이어서 역시 그가 선대한 도구들, 기계들 및 다른 노동 수단들의 마모분에 대한 보상; 둘째로 그가 선대한 임금에 대한 보상, 그리고 셋째로 이것을 초과하는 잉여분, 즉 자본가의 이윤. 첫째 부분이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가치만을 보상하는 반면에, 임금에 대한 보상이나 자본가의 잉여 이윤은 대체로 노동자의 노동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가치, 원료에 덧붙여진 새로운 가치에서 나오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임금과 이윤을 서로 비교하기 위해 양자 모두를 노동자의 생산물 중의 몫들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선집1,562)

 

실질 임금이 그대로라 할지라도, 심지어 오른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임금은 떨어질 수 있다. () 그러면 임금과 이윤의 상호 연관에서 그것들의 오르내림을 결정하는 일반적 법칙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자본의 몫, 이윤은 노동의 몫, 일당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비율로 올라가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윤은 임금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정도로 올라가며 임금이 올라가는 것과 같은 정도로 떨어진다.(선집1,562)

 

아마 다음과 같은 이론이 제기될 지도 모른다: 자본가는 유리한 조건으로 그의 생산물들을 다른 자본가들과 교환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의 개척으로 말미암은 것일 수도 있고 예전 시장에서의 순간적으로 늘어난 욕구 등등으로 말미암은 것일 수도 있는 그의 상품에 대한 수요의 증대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 따라서 자본가의 이윤은 임금, 즉 노동력의 교환 가치의 오르내림과는 상관없이, 3의 자본가들을 속임으로써 늘어난다는 이론; 혹은 노동 도구들의 개선, 자연력들의 새로운 이용 등등에 의해서도 늘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이론.(선집1,563)

 

임금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윤이 증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윤이 증대했기 때문에 임금이 떨어진 것이다. 자본가는 똑같은 양의 타인의 노동으로 더 많은 양의 교환 가치를 얻었으되, 노동에게 더 많이 지불하지 않고 얻은 것이다; 즉 따라서 노동이 자본가에게 가져다주는 순이익에 비하여 노동은 더 적게 지불받는다.(선집1,563)

 

게다가 상품 가격의 변동들에도 불구하고 개개 상품들의 평균 가격, 즉 각각의 상품들이 다른 상품들과 교환되는 비율은 그 생산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상기하자. 따라서 자본가 계급 내에서 자기들끼리 속이고 속는 것은 필연적으로 상쇄된다. 기계의 개량, 생산을 위한 자연력들의 새로운 이용은 주어진 노동 시간 내에 같은 양의 노동과 자본을 가지고 더 많은 양의 생산물들을 창조할 수 있게 하지만 더 많은 양의 교환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선집1,563)

 

끝으로, 한 나라 안에서든 세계 시장 전체에서든 자본가 계급, 부르주아지가 생산의 순이익을 어떤 비율로 나누든 간에, 이 순이익의 총액은 언제나 대체로 직접적인 노동에 의해 증가된 축적된 노동의 양일 뿐이다. 따라서 이 총액은 노동이 자본을 증가시키는 것과 같은 비율로, 즉 이윤의 임금에^ 비해 높아지는 것과 같은 비율로 늘어난다.(선집1,563-564)

 

자본의 급속한 증대는 이윤의 급속한 증대와 똑같다. 이윤은 노동의 가격, 즉 상대적 임금이 그만큼 급속히 감소할 때에만 급속히 증대될 수 있다. 명목 임금, 즉 노동의 화폐 가치와 더불어 실질 임금이 동시에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실질 임금이 이윤과 같은 비율로 오르지 않는 한, 상대적 임금은 떨어질 수 있다. 예술을 호경기에 임금이 5% 오르고 이에 반해 이윤은 30% 오른다면, 비교적상대적 임금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감소한다. 이처럼 자본의 급속한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의 수입도 늘어나지만, 동시에 노동자와 자본가를 갈라놓는 사회적 심연도 커지며, 또 노동을 지배하는 자본의 힘, 자본에 대한 노동의 예속도 커진다.(선집1,564)

 

노동자가 자본의 급속한 성장과 이해관계를 같이한다는 이야기는 단지 다음과 같은 의미일 뿐이다: 노동자가 타인의 부를 급속히 증대시킬수록 더 큰 빵이 그에게 떨어진다는 것, 그만큼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본에 예속된 노예들의 무리가 더 늘어난다는 것.(선집1,564)

 

노동자 계급에게 가장 좋은 상황, 가능한 한 급속한 자본의 성장조차, 그것이 아무리 노동자의 물질적 삶을 개선시켜 준다 하더라도, 노동자의 이해관계와 부르주아의 이해관계, 자본가의 이해관계 사이의 대립을 폐기하지는 못한다. 이윤과 임금은 예나 지금이나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이다.(선집1,564)

 

만일 자본이 급속히 성장한다면 임금이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이윤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빨리 올라간다. 노동자의 물질적 처지는 개선되었으나 자신의 사회적 처지의 희생 위에서 개선되었다. 그를 자본가로부터 갈라놓는 사회적 심연은 더욱 넓어졌다.(선집1,564)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적대 세력, 자신에게 명령하는 타인의 부를 더욱 더 급속히 증대시키고 증가시킬수록,^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을 묶어 끌고 가는 황금 사실을 자신들 스스로 벼려 내는 것에 만족해하면서 그들은 더 나아진 조건 아래에서, 또 다시 부르주아의 부를 증가시키고 자신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동하도록 허용받는다.(선집1,564-565)

 

부르주아 사회의 생산 자본이 전체적으로 성장하면 더욱 다면적인 노동의 축적이 생기게 된다. 자본들은 그 수효와 규모에 있어 증대한다. 자본의 증가는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을 증가시킨다. 자본 규모의 증대는, 좀 더 거대한 무기를 지닌 좀 더 강력한 노동자 군대를 산업의 싸움터로 끌어내는 수단을 제공한다.(선집1,565)

 

한 자본가는 더 싸게 판매함에 의해서 다른 자본가들을 물리치고 그들의 자본을 약탈할 수 있다. 파산하지 않고 더 싸게 판매할 수 있으려면 더 싸게 생산해야만 한다. 즉 노동의 생산력을 가능한 한 제고해야만 한다. 그러나 노동의 생산력은 무엇보다도 먼저 확대된 분업에 의해, 기계의 전면적인 도입과 지속적 개선에 의해 제고된다. 분업을 수행하는 노동자 군대가 커지면 커질수록, 기계의 도입 규모가 거대해질수록, 생산비는 이에 비례해서 줄어들면 노동은 더욱 더 생산적이게 된다. 따라서 자본가들 사이에서 더 전면적인 다툼, 분업과 기계를 증대시키고 그것들을 가능한 한 대규모로 이용하려는 다툼이 일어난다.(선집1,565)

 

그런데 어떤 자본가가 확대된 분업, 즉 새로운 기계의 이용 및 개선에 의해서 그리고 자연력들의 더 값싸고 더 대규모적인 이용에 의해서 같은 양의 노동 혹은 같은 양의 축적된 노동으로 그의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양의 생산물들, 더 많은 양의 상품들을 창조할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한다면, 예를 들면 그가 그의 경쟁자들이 아마포 반 엘레를 짜는 데 걸리는 시간과 동^일한 노동 시간에 한 엘레의 아마포를 생산할 수 있다면, 이 자본가는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선집1,565-566)

 

그는 계속해서 아마포 반 엘레를 지금까지의 시장 가격대로 팔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적들을 물리치고 자기만의 판로를 확대하는 수단은 못 될 것이다. 그런데 그의 생산이 확장된 것과 같은 정도로 판로에 대한 그의 욕구도 증폭되었다. 그가 살려 놓은 더 강력하고 더 값비싼 생산수단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상품을 더 싸게 팔 수 있도록 해 주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로 하여금 더 많은 상품을 팔고 또 그의 상품을 위하여 훨씬 더 큰 시장을 정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의 자본가는 반 엘레의 아마포를 그의 경쟁자들보다 싸게 팔 것이다.(선집1,566)

 

그는 자기 상품의 가격을 자신의 경쟁자들보다 몇 퍼센트 낮게 정하기만 해도 이루려는 목적을 이루게 된다. 가격을 내려 판매함으로써, 그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거나 적어도 그들의 판로의 일부를 빼앗는다. 그리고 끝으로 한 생산물의 판매가 호경기에 이루어지느냐 불경기에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시가(市價)는 늘 생산비 이상이거나 이하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아마포 한 엘레의 시장 가격이 지금까지의 통례의 생산비보다 낮으냐 높으냐에 따라서 생산력이 더 높은 새 생산 수단을 사용한 자본가가 실제 생산비 이상으로 판매하는 퍼센트도 변동하게 된다.(선집1,566)

 

그러나 우리 자본가의 특권은 오래 가지 못한다; 경쟁하고 있는 다른 자본가들도 똑같은 기계, 똑같은 분업을 도입하며 동일한 규모 또는 더 큰 규모로 도입한다. 그리고 이러한 도입은 아마포 가격의 예전의 생산비 이하로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산비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일반화될 것이다.(선집1,566)

 

따라서 자본가들은 피차 새로운 생산 수단들이 도입되기 전과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이 수단들을 이용하여 똑같은 가격으로 2배의 생산물을 제공할 때, 이제 예전보다 낮은 가격으로 2배의 생산물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분업이 더욱더 진전되고 기계가 늘어나며 분업 및 기계의 이용 규모가 더욱 더 커진다. 그리고 경쟁은 이 결과에 대하여 다시 똑같은 반작용을 가하게 된다.(선집1,566-567)

 

이것이 부르주아적 생산을 낡은 궤도에서 계속 벗어나게 하고 자본으로 하여금 노동의 생산력을 계속 긴장시키지 않을 수 없게 하는왜냐하면 자본이 노동의 생산력을 긴장시켰으므로객관적 법칙이며, 자본에게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으며 다음과 같이 계속 속삭이는 법칙이다: 뛰어가! 뛰어가! 이것은 상업 경기의 변동 내에서 한 상품의 가격을 필연적으로 그 생산비와 일치시키는 법칙 이외에 다른 어떤 법칙도 아니다.(선집1,567)

 

사용되는 생산 수단의 힘이 어떻든 간에 경쟁은 상품 가격을 생산비 수준으로 되돌림으로써, 따라서 얼마나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느냐, 즉 같은 양의 노동으로 얼마나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느냐 하는 정도에 따라 값싼 생산^, 똑같은 가격 액수로의 더욱 더 많은 양의 생산물 공급을 강제 법칙이 되게 함으로써 이 힘이 낳은 황금의 열매들을 자본으로부터 빼앗으려고 한다.(선집1,567-568)

 

따라서 경쟁이 그 생산비의 법칙으로 자본가를 계속해서 추격하고 또 자본가가 자신의 라이벌을 향해서 벼려 놓은 모든 무기들이 그 자신을 향한 무기로서 되돌아오는 반면에, 자본가는 낡은 기계들과 분업들 대신에 비용은 많이 들지만 더 싸게 생산해 내는 새로운 기계들과 분업들을 쉬지 않고 도입하고 경쟁이 새로운 기계들과 분업들을 낡은 것들로 만들 때까지 기다리지 않음으로써 경쟁을 계속 속여 보려 한다.(선집1,568) 

    

분업이 증대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노동은 단순화된다. 노동자의 특수한 숙련은 가치 없는 것이 된다. 그는 육체적 기력이나 정신적 기력을 활용할 필요가 없는 간단하고 단조로운 생산력으로 변화된다. 그의 노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이 된다. 따라서 경쟁자들이 사방으로부터 그에게 육박해 오며, 게다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노동이 단순할수록, 그것을 배우기 쉬울수록 이를 습득하는 데 필요한 생산비는 더욱 적어지며, 임금은 더욱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다른 모든 상품들의 가격과 마찬가지로 임금도 생산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선집1,568)

 

따라서 노동이 불만스럽고 지긋지긋해지는 것과 같은 정도로 경쟁은 커지고 임금은 내려간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식이든 같은 시간에 더 많이 생산하는 식이든 간에 노동자는, 더 많이 일함으로써 자기 임금의 양을 고수하려 한다. 이처럼 그는 가난에 못 이겨 분업의 해로운 효과들을 더욱 증대시킨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그가 많이 일하면 할수록 그는 더 적은 임금을 받게 되는데, 그것도 다음과 같은 간단한 이유, 즉 그는 그만큼 자신의 동료들에게 경쟁을 유발시키고 따라서 그만큼 자신의 동료들을 경쟁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나쁜 조건에 처해 있는 경쟁자로 만들며, 그러므로 결국 그는 자기 스스로 노동자 계급의 일원이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경쟁을 유발시킨다는 이유 때문이다.(선집1,569)

 

기계도 이와 똑같은 효과를 훨씬 대규모로 불러일으키는바, 이는 숙련 노동자를 미숙련 노동자로, 남자를 여자로, 성인을 아이들로 밀어냄으로써 이루어지며, 기계가 새로 도입되는 경우에는 손 노동자들을 무더기로 해고시키고, 기계가 완성되고 개량되고 더 생산성 높은 기계로 대체되는 경우에는 노동자들이 작은 무리로 줄어듦에 의해서 이루어진다.(선집1,569)

 

이 전쟁은 노동자 군대의 징집을 통해서가 아니라 감축을 통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령관인 자본가들은 누가 가장 많은 산업 전사를 내쫗을 수 있는가를 놓고 서로 경쟁한다.(선집1,569)

 

물론 경제학자들은 기계 때문에 남아돌게 된 노동자들이 새로운 취업 부문들을 발견한다고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그들도, 쫓겨난 바로 그 노동자들이 새로운 노동 부문들에 취직한다고 감히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사실들이 외치는 소리는 이러한 거짓말을 너무나도 우렁차게 반박하고 있다. 실제로는 그들은 단지, 노동자 계급의 다른 구성 부분, 예를 들면 몰락한 산업 부문에 들어가려고 대기하고 있던 젊은 세대의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취업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물론 몰락한 노동자들에 대한 큰 보상이다. 자본가 선생들은 착취하기 좋은 싱싱한 살과 피에 부족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고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시체를 파묻게 할 것이다. 이것은 부르주아들이 노동자들에게 주는 위안이라기보다는 부르주아들이 자기 자신에게 주는 위안^이다. 만일 임금 노동자 계급 전체가 기계에 의해 절멸된다면, 그것은 임금 노동 없이는 자본이기를 중지하는 그 자본에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겠는가!(선집1,569-570)

 

우리는 현대 산업이 어떻게 해서 더 복잡하고 더 고차적인 일을 더 간단하고 더 저차적인 일로 계속 바꿔 놓는가를 살펴본 바 있다. 따라서 기계에 의하여 한 산업 부문에서 쫓겨난 노동자 대중이 더 낮은, 더 나쁜 보수를 받지 않고서야 어떻게 다른 산업 부문에서 안식처를 찾을 수 있겠는가?(선집1,570)

 

기계 때문에 해고된 한 명의 남자 대신에 아마 세 명의 아이들과 한 명의 여자가 공장에 취직할 것이다! 그런데 한 명의 남자의 임금은 세 명의 아이들과 한 명의 여자를 먹여 살릴 만큼 충분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저 임금은 종족을 유지시키고 번식시킬 만큼 충분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부르주아들이 선호하는 이 미사여구는 무엇을 증명하는가? 이제는 노동자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전보다 4배나 많은 노동자들의 생활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선집1,570)

 

생산 자본이 성장할수록 분업과 기계 사용은 더욱더 확대된다.^ 분업과 기계의 사용이 확대될수록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 더 확대되며, 그들의 임금은 더욱 더 줄어든다. 게다가 또 노동자 계급은 더 높은 사회 계층으로부터도 충원된다; 즉 소산업가들과 소금리 생활자들의 무리가 노동자 계급으로 전락하는데, 그들에게는 노동자들의 팔과 나란히 자신의 팔을 쳐드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없다. 이리하여 일거리를 요구하며 높이 치켜 올린 팔들의 숲은 점점 더 울창해지지만, 팔들 그 자체는 점점 더 야위어 간다.(선집1,570-571)

 

더욱 더 대규모로 생산하는 것, 즉 다름 아닌 대산업가가 되고 소산업가가 되지 않는 것이 그 제1차적 조건들 중의 하나인 투쟁에서 소산업가가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자본이 성장하고 자본의 양과 수가 늘어나는 만큼 자본의 이자는 줄어든다는 사실, 따라서 소금리 생활자는 더 이상 자신의 금리로 살 수 없게 되므로 산업에 투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즉 소산업가의 대열을 증가시키고 그럼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 후보를 증가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은 정말이지 더 이상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선집1,571)

 

끝으로, 위에서 묘사된 운동 때문에 자본가들은 어쩔 수 없이 거대한 생산 수단을 더욱 더 대규모로 이용하고 또 이런 목적으로 신용의 모든 용수철을 작동시키게 되는데, 그럴수록 그만큼 산업 지진이 지진 속에서 상업 세계는 부의 일부, 생산물들의 일부, 심지어는 생산력들의 일부까지도 지하 세계의 신들에게 제물로 바침으로써만 살아남을 수 있다이 증가한다. 한 마디로 공황이 증가한다. 공황이 더욱 더 빈번해지고 더욱 더 격렬해지는 까닭은, 생산물들의 양이 많아지고 따라서 확대된 시장들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것과 같은 정도로 세계 시장은 축소되어 이용할 여지가 있는 새 시장이 점점 더 적어진다는 바로 그 점에 있다. 그리고 이용할 여지가 있는 새 시장이 그렇게 줄어드는 이유는 앞서 지나간 모든 공황이, 정복되지 않았던 새 시장이나 지금까지 상업에 의해 표면적으로만 착취당했던 시장을 이미 세계 시장에 예속시켰기 때문이다.(선집1,571)

 

184712월 후반의 기록에 의거하여 1849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씌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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