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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엥겔스가 베를린의 리하르트 피셔에게, 최인호 역
(1895년 3월 8일, 런던 북서구 리전츠파크가 41)
친애하는 피셔, 나는 여러분의 어정쩡한 망설임의 요체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중대한 망설임을 최대한 고려했습니다.(주305) 여러분은 절대적인 합법성, 어떤 상황에서도 법률을 준수하는 합법성, 발안자 스스로가 파기한 법률까지도 준수하는 합법성에 스스로 육체와 영혼을 팔아 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오른쪽 뺨을 때린 자에게 왼쪽 뺨을 내놓는 정책에 육체와 영혼을 팔아 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그러한 행동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물론 전진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전에 혁명을 설교할−아마 다음 번에 또 그러겠지만−때만큼이나 정력적으로 혁명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선집6,575)
주305) 엥겔스는 1848년에서 1850년까지의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의 단행본을 위한 「서설」을 가리키고 있다.(선집6,623)
내 생각으로는, 여러분은 무조건적으로 공격을 포기하자고 설교해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한 설교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위법에 대해 손에 무기를 들고 저항할 권리를 포기할 당은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선집6,575)
또한 나로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은, 외국인들−프랑스인, 영국인, 스위스인, 오스트리아인, 이탈리아인 등등−이 나의 글을 읽고^ 있다는 것, 따라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그토록 대폭적인 타협을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선집6,575-576)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하의 예외를 제외하고 여러분의 수정을 승인했습니다: 1. 교정쇄9, 대중들의 경우에 이하를 다음과 같이 고친다: “무엇을 위해서 그들이 발을 들여 놓아야 하는지를 그들 스스로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 2. 그 다음 단락: 공격 개시에 관한 문장 전체를 삭제한다. 여러분의 제안은 사실적으로 틀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공격 개시의 구호는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등등이 매일처럼 사용하는 것이며, 그만큼 진지하지 않은 것입니다. − 3. 교정쇄 10: “현재…로써 생명을 얻고 있는 사회민주주의당의 전복 활동”. 여러분은 이 “현재”라는 말을 지우고 싶다고 말합니다. 요컨대 현재의 전술을 지속적인 전술로, 상대적으로 유효한 전술을 절대적으로 유효한 전술로 바꾸고 싶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나는 큰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대립관계를 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하겠습니다: “바로 지금은 법을 지키는 것이 매우 유리한 사회민주주의당의 전복활동.”(주307)(선집6,576)
왜 여러분이 1866년에 헌법 위반을 범한 비스마르크의 선례를 지적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보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만큼 명백한 논증(argumentum ad nominem: 인신공격성 오류)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분의 뜻을 따르겠습니다.(선집6,576)
그러나 그 이상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언짢은 토론을 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합법성의 의무는 예의 보구슬라브스키(1834~1905)가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주었다시피 법률적 의무일 뿐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는 관점, 그리고 권력을 쥔 자들이 법률을 파기할 때는 그 의무는 완전히 사라진다는 관점, 여러분은 이러한 관점을 지키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혹은 적어도 여러분 중의 이 사람 저 사람은− 적의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약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하지 못하고 오히려 합법성의 의무를 어떤 상황에서도 준수해야 하는 하나의 도덕적인 의무로 인정하는 그러한^ 약점 말입니다: 여러분은 권력을 쥐고 있다, 여러분은 법률을 만든다, 우리가 그것을 위반할 경우에 여러분은 우리를 이 법률에 따라 다룰 수 있으며 우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이다, 우리는 그 이상의 의무가 없으며 여러분도 그 이상의 권리가 없다. 실제로 이렇게 행동한 경우로는 오월 법 하의 카톨릭 교도들, 마이센의 노년 루터파 교도들, 그리고 여러 신문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메노파 병사들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런 관점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그렇고 전복 법안(주236)은 무산될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성문화될 수도 실시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자들은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여러분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여러분을 괴롭힐 것입니다.(선집6,576~577)
주236) 엥겔스는, 1894년 12월 5일에 제국의회에 제출되어 1895년 5월 11일에 부결된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에 대한 새로운 예외법 초안을 지칭하고 있다.
만약 여러분이 정부에 있는 자들에게 우리가 아직 스스로를 도울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군대가 아직 철저히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기다리려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한다면−그렇다면, 친애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왜 매일처럼 신문 지상에서 당의 거대한 진보와 성과에 대해 허풍을 떠는 것입니까? 그 자들은 우리가 힘으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나아간다는 것, 우리가 몇 년 안에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힘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우리 못지않게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목덜미를 누르려 하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그 방법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우리만큼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리고 우리가 권력을 갖게 되면 그 권력을 우리를 위해서 쓰지 결코 그들을 위해서 쓰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고 해서 우리의 견해가 바뀔 필요는 없습니다.(선집6,577)
그러므로 총회에서 일반 토론을 할 때에 여러분이 다음의 것들을 조금 염두에 두었으면 합니다. 보구슬라브스키가 가졌던 것과 같은 저항의 권리를 여러분도 가지고 있다는 것, 여러분의 청중 중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에스파냐, 헝가리, 영국의 노혁명가들도 끼어 있다는 것, 그리고 옛날에 비덴(주146)에서 그랬던 것처럼 ‘합법적’이라는 말을 진짜로 지우게 될 날이 멀지 않아 다시 올 것이라는 것. 선거권이 빨리 획득되지 않으면 가능한 한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실력 행사에 들어가는 오스트리아인들을 보십시오! 또다시 여러^분의 발목을 채우려고 하는 사회주의자법 하에서 여러분 자신이 했던 위법 행위를 생각해 보십시오! 합법성은 우리에게 적합한 한에서만 합법성이며,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획득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문구조차 지불한 필요가 없습니다!(선집6,577-578)
주146) 1880년 8월 20일부터 23일까지 스위스 비덴성에서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의 최초의 비합법 당 대회가, 사회주의자법의 조건 하에서 열렸다. 대회는, 당은 “모든 합법적인 수단으로” 그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라고 정식화한 강령에서 “합법적”이라는 말을 삭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를 통해 합법적 투쟁 형태와 비합법적 투쟁 형태를 결합시킬 필요성이 승인되었다.(선집6,607)
MEW39 424-426
37. 엥겔스가 브레슬라우의 베르너 좀바르트에게, 최인호 역
(1895년 3월 11일, 런던 북서구 리전츠파크가 41)
친애하는 선생께, 지난 달 14일자로 당신께서 보내 주신 편지에 정중히 답장을 드리면서 더불어 맑스에 관한 당신의 노작을 보내 주신 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이미 Dr. H. 브라운이 내게 친절하게 보내 준 잡지의 한 책을 통해서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대학에서도 마침내 자본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당신은 맑스의 서술을 군데군데에서 당신 나름의 표현으로 바꾸어 놓았는데, 물론 나는 그러한 표현들 모두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576면과 577면에서 당신은 가치 개념을 바꾸어 쓰고 있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확대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나라면 첫째 이것에 역사적 경계를 그을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 가치만이 문제였고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경제적 단계−상품교환 내지 상품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 형태−에 엄밀히 한정해서 이것에 역사적 경계를 그을 것입니다. 원시 공산주의는 가치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둘째 그 명제는 개념상 좀더 엄밀한 표현 양식을 취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요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지점에서 확실히 당신은 옳은 것을 말했습니다.(선집6,579)
그런데 당신은 586면에서 직접 내게 호소하였더군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제 가슴에 권총을 겨누는 그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들었으며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반대한다고 확언하지 않을” 것입니다. 맑스는 개념상의 이행을 매개로 개별 자본주의적 기업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가치 m/c=m/(c+v)로부터 일반적이고 균등한 이윤율에 도달했습니다. 이 이행은 개별 자본가의 의식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이 이행이 역사적인 상응물을 갖는 한에서 즉 우리의 머리 바깥에 존재하는 실재성을 갖는 한에서, 이 이행은 예컨대 자본가 A에 의해 이윤율 이상으로 생산되는 잉여가치 부분이 보통은 자신의 손에 들어오는 배당 이하에 머무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자본가 B의 주머니로 이행한다는 것에서 그 상응물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객관적으로, 사물의 차원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얻기까지 얼마만큼의 노고가 들었는가를 이제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 평균 이윤율이 확립되기 위해서 개별 자본가들의 의식적인 협력이 필요했다면, 또 만약 개별 자본가가 자신이 잉여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을 알고, 게다가 그것을 얼마만큼 생산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잉여가치와 이윤의 관계는 애초부터 상당히 명확했을 것이며 페티는 힘들더라도 애덤 스미스 정도면 그것을 명확히 밝혀 놓았을 것입니다.(선집6,579-580)
맑스의 파악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중대한 결말에 관한 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이러한 결말들과 그에 뒤이은 결과들은 원했던 바가 아닙니다. 역사적 인물들이 직접적으로 원했던 것들은 달성된 것들과는 다른 것들이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이 달성된 것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또 다른 결과들을 낳았습니다. 경제에 적용해 봅시다. 개별 자본가들은 누구든지 간에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합니다. 각 개인에 의한 이러한 더 많은 이윤의 추구는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균등한 이윤율, 누구에게도 대략 균등한 이윤율을 낳는다는 것을 부르주아 경제학은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자본가들도 부르주아 경제학자들도 알지 못했던 것은, 이러한^ 추구의 실제적 도달점이 총잉여가치를 균등하게 백분율로 총자본에 분배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선집6,580-581)
그런데 현실에서 이러한 균등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사항입니다만, 맑스 자신은 이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맑스의 전체 견해는 공리공론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것은 완성되어 있는 교의가 아니라 계속적 연구를 위한 발판, 요컨대 그러한 연구를 위한 방법을 제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최초의 초안에서 맑스 자신이 아직 손을 대지 않은 한 가지 일을 여기서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제3권, 제1분책, 153-156면의 진술(주308)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가치 개념을 당신의 표현으로 바꾸는 문제에 대해서도 중요하며, 가치 개념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실재성을 가지고 있거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교환이 시작되고 생산물이 점차 상품으로 전화되었을 즈음에 교환은 점차 가치에 비례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두 대상에 지출된 노동이 두 대상을 양적으로 비교하는 유일한 기준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시에 가치는 직접적인 실재적 존재였습니다. 이와 같은, 교환에 의한 가치의 직접적 실현이 중단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저 직접적 실재적 가치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형태의 가치−이것은 철저히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경제학자들은 안심하고 이것의 존재를 부인할 수 있습니다−에 이르기까지의 중간항을 대체적으로나마 보여 주는 것은 당신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이 과정을 실제로 역사적으로 서술하려면 물론 철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충분한 성과가 약속되어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자본에 대한 매우 가치 있는 보충이 될 것입니다.(선집6,581)
마지막으로 나는 당신이 제게 품고 있는 호의에 대해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내가 제3권을 지금의 모습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밝히셨더군요. 그러나 나 자신은 거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나는 맑스의 저작을 맑스의 말로 출판함으로써 나의 의무를 다 했다고 믿습니다. 설령 독자에게 좀더 스스로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위험을 한게 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선집6,581-582)
MEW39 427-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