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 고전읽기 자료입니다.
유물변증법 시간에 다룬 요약본 그대로 다시 활용합니다.
S. 스탈린: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정성균 역, 두레 1989.
변증법적 유물론은 맑스-레닌주의 당의 세계관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자연현상에 대한 접근법, 그것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방법이 변증법적이면서 자연현상에 대한 해석, 그 현상에 대한 개념과 이론이 유물론적이기 때문이다.(변유29)
사적 유물론은 사회생활의 연구에 변증법적 유물론 원리를 확장한 것이며, 사회생활의 현상과 사회와 역사의 연구에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변유30)
맑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적 방법들을 설명할 경우, 일반적으로 변증법의 주요한 특징을 정식화시킨 철학자로서 헤겔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것은 맑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이 헤겔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맑스와 엥겔스는 헤겔의 변증법으로부터 관념론적 껍데기를 버리고 오직 ‘합리적 핵심’만을 이어받았으며, 현대과학의 형태를 부여하고자 변증법을 더욱 발전시켰다.(변유30)
자신들의 유물론을 설명할 때 맑스와 엥겔스는 일^반적으로 유물론의 위치를 올바르게 되돌려 놓은 철학자로서 포이어바흐를 언급한다. 그러나 이것이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이 포이어바흐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맑스와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으로부터 ‘내부의 핵심’만을 이어받았고, 그것을 과학적⋅철학적 유물론으로 발전시켰으며, 거기에 남아 있던 관념적⋅종교적⋅윤리적인 장애물을 버렸다.(변유30-31)
변증법은 ‘담화하다’ 혹은 ‘논쟁하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dialego에서 유래되었다. 고대에서 변증법이란, 상대방의 주장 속에서 모순들을 밝혀내어, 이 모순들을 극복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기술이었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사유에서의 모순의 폭로와, 대립적 견해들의 충돌이 진리에 도달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사유에 대한 이러한 변증법적 방법은 후에 자연현상에까지 확장되었으며, 자연을 이해하는 변증법적 방법으로 발전되었다. 이 방법^은 자연현상을 끊임없는 운동과 끊임없는 변화를 겪는 것으로, 또는 자연의 발전을 자연의 모순들이 발전한 결과로, 즉 자연의 대립적 동력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간주한다.(변유31-32)
본질적으로 변증법은 형이상학에 직접 대립한다.(변유32)
형이상학은 자연을 서로 연관되어 있지 않으며 고립되고 독립된 사물과 현상들의 우연한 집합체로 보지만, 변증법은 그것을 서로 연관되고 통합된 전체로서 간주한다. 그리하여 사물과 현상들은 유기적으로 연관되고, 의존하며, 상호 규정된다.(변유32)
그러므로 주변조건과 연관되어 있지 않고 분리된 자연에서라면 어떤 영역의 어떤 현상이라 할지라도 무의미하기 때문에, 자연에서 어떤 현상이 발생하여 주변 현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변증법적 방법은 주장한다. 반대로 변증법적 방법은, 어떤^ 현상도 주변 현상으로부터 조건지워진 것으로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 속에서 고려될 때, 우리가 비로소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변유32-33)
형이상학과는 반대로, 변증법은 자연이 정지되고 고정된, 즉 침체되고 변하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운동과 변화, 즉 끊임없는 재생과 발전의 상태에 있으며, 여기서 무엇인가 항상 생성⋅발전하며, 또 무엇인가 항상 붕괴⋅소멸한다고 주장한다.(변유33)
그러므로 변증법적 방법에서는 현상을 상호연관과 상호의존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운동⋅변화⋅발전 그리고 생성과 소멸이라는 관점에서도 고찰하고 있다. 변증법적 방법에서는 오직 생성되고 발전하는 것만을 고려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일정 순간에는 영속적이지 않아 보여도 생성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시한다.(변유33)
형이상학과는 반대로, 변증법은 발전과정을 양적 변화가 바로 질적 변화를 초래하지 않는 단순한 성장과정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증법은 하찮고 감지할 수 없는 양적 변화가 근본적으로 질적 변화로 전화하는 발전과정으로서 파악한다. 즉 발전이란 질적인 변화가 점진적으로가 아니라 급격하고 돌발적으로 나타나며, 하나의 상태에서 또 다른 상태로 비약의 형태를 띤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우연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감지할 수 없으며 점진적인 양적 변화가 축적되어 그 자연스런 결과로서 나타난다.(변유34)
그러므로 변증법은 발전의 과정이 순환운동이거나 단순한 반복이 아닌,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는 운동으로서, 낡은 질적 상태에서 새로운 질적 상태로의 이행으로서,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의, 그리고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의 발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변유34-35)
형이상학과 반대로, 변증법은 내적 모순이 모든^ 사물과 자연현상들에 고유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가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 그리고 과거와 미래, 소멸과 발전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증법은 이들 대립물 사이의 투쟁, 즉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투쟁, 죽어가는 것과 태어나는 것 사이의 투쟁, 소멸하는 것과 발전하는 것 사이의 투쟁은 발전과정의 내용, 즉 양질전화의 내용이 된다고 주장한다.(변유37-38)
그러므로 변증법은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의 발전과정이 현상의 조화로운 전개 때문이 아니라, 사물과 현상에 내재한 모순의 발현, 즉 이들 모순의 근저에 작용하는 대립적 경향들의 ‘투쟁’으로 인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변유38)
이 세계에 고립된 현상이 없다면, 그리고 모든 현상이 상호 연관되고 상호 의존한다면, 역사가들이 가끔씩 그러하듯이, 역사 속의 모든 사회체계와 모든 사회운동은 ‘영원불멸의 정의’라는 관점이라든가, 어떤 다른 선입견적 관점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체계나 사회운동을 발생시키고, 또 그것들이 관련된 조건들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변유39)
모든 것은 조건들, 즉 시간과 공간에 의존한다. 사회현상들에 대한 그러한 역사적 접근 없이, 역사과학의 존재와 발전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오직 그러한 접근만이 우연들의 뒤범벅이 되거나, 얼토당토 않은 오류 덩어리로부터 역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변유40)
더욱이 세계가 끊임없는 운동과 발전의 상태 속에 있다면, 낡은 것의 소멸과 새로운 것의 성장이 발전의 법칙이라면, ‘불변’의 사회제도, 그리고 사유재산과 착취라는 ‘영원불변의 원리들’, 지주에 대한 농민의 종속, 또 자본가에 대한 노동자의 종속이라는 ‘영원불멸의 관념들’도 존재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변유40)
그러므로 일찍이 봉건제가 자본주의제도에 의해 대체되었듯이 자본주의제도도 사회주의제도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지배적 세력을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사회계층이 아닌, 비록 현재에는 지배적 세력을 이루고 있지 못하더라도, 발전하고 있으며 그들 앞에 미래가 있는 그러한 계층을 토대로 우리의 방침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변유40)
맑스주의자들과 나로드니키들 사이의 투쟁기였던 이미 지난 세기의 80년대에,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인구 중 하잘 것 없는 소수에 불과했으며, 반면 단일 농민이 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하나의 계급으로 발전한 반면, 계급으로서 농민은 붕괴되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하나의 계급으로 발전했기에, 맑스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근거로 그들의 방침을 결정했다. 그래서 그들은 실수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후에 프롤레타리아트는 하잘 것 없는 집단에서 최고의 역사적⋅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변유40-41)
그러므로 정책에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누구나 뒤가 아닌 앞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 느린 양적 변화가 급격하고 비약적인 질적 변화로 전화하는 것이 발전의 법칙이라면, 피압박계급들에 의해 만들어진 혁명들은 매우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임은 분명하다.(변유41)
그러므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 그리고 자본주의의 멍에로부터 노동계급의 해방은 느린 변화, 즉 개혁에 의해서는 성취될 수 없으며, 오로지 질적인 변화, 즉 혁명에 의해서만 성취 가능하다. 따라서 정책에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개량주의자가 아닌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변유41)
더 나아가, 발전이 내적 모순의 표출이라는 방식, 즉 이^ 모순에 근거한 대립적 힘들의 충돌이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면, 이 모순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 역시 매우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임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주의체제의 모순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 역시 매우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주의체제의 모순들을 덮어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폭로시켜 해결해야만 한다. 그리고 계급투쟁을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최종적 해결로 이끌어가야 한다.(변유41-42)
따라서 정책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비타협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정책을 추구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조화시키려는 개량주의 정책이나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성장’이라는 타협주의자의 정책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이상과 같은 것이 맑스주의의 변증법적 방법을 사회생활과 사회역사에 적용한 것이다.(변유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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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절대이념’이나 ‘보편정신’ 혹은 ‘의식’의 구현으로서 간주하는 관념론과는 반대로, 맑스의 철학적 유물론은, 세계가 본질적으로 물질적이며, 세계의 다양한 현상들은 운동하는 질료의 여러 형식들을 구성하고 있고, 또한 변증법적 방법에 의해 확립된 현상들의 상호연관과 상호의존은 운동하는 질료의 발전법칙이며, 세계는 질료가 운동하는 법칙에 따라 발전하고, 어떠한 ‘보편정신’의 도움 없이도 성립한다고 주장한다.(변유43)
엥겔스: “유물론적 세계관이란, 어떤 유보조건도 없이 단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사고하는 것일 뿐이다.”(변유43)
단지 우리의 의식만이 실제로 존재하며, 물질적 세계⋅존재⋅자연 등은 우리 의식과 감각⋅관념⋅지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단언하는 관념론과는 반대로, 맑스주의의 철학적 유물론은 물질⋅자연⋅존재가 우리 의식의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는 사실, 물질은 감각⋅관념⋅의식의 원천이므로 1차적이고, 물질과 존재를 반영한 의식은 2차적이며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사고는 물질 자신의 발전과정에서 높은 성숙의 단계, 즉 두뇌의 단계에 도달한 물질의 산물이며, 따라서 두뇌는 사고하는 기관이므로, 누구든지 물질로부터 사고를 분리시키는 것은 중대한 오류라고 주장한다.(변유44)
레닌: “일반적으로 유물론은 객관적 실재(물질)가 의식⋅감각⋅경험에서 독립된 것으로 인식한다…의식은 오직 존재의 반영, 기껏해야 대략적인 진실된(적절하고 관념적으로 정확한) 반영이다.”(변유46)
관념론은 세계와 그 법칙들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고, 지식의 신빙성을 부인, 객관적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계란 과학에 의해서도 결코 알 수 없는 ‘물 자체’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반대로 맑스주의 철학적 유물론은 세계와 그 법칙들에 대해 완전하게 알 수 있고, 실험과 실천에 의해 검증되는 자연법칙들에 대한 지식은 타당성 있^는 객관적 진실성을 지닌 믿을 만한 지식이며, 단지 이제까지는 밝혀지지 않은 것과 과학과 실천을 통해 알려지게 될 것 외에는 세계 속에서 알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변유46-47)
레닌: “현대의 신앙주의는 결코 과학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들이 거부하는 모든 것은 과학의 ‘과장된 주장들’, 즉 객관적 진리에 대한 그것의 주장이다. (유물론자가 생^각하듯이) 객관적 사실이 존재한다면, 외부세계를 인간 ‘경험’에 반영하는 자연과학만이 오직 우리에게 객관적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해주며, 그때 비로소 모든 신앙주의는 철저히 논박된다.”(변유48-49)
자연현상들 사이의 연관과 상호의존이 자연발전의 법칙들이라면, 또한 당연히 사회생활의 현상들 사이의 연관과 상호의존은 사회발전의 법칙들이며, 우연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회생활, 즉 사회역사는 ‘우연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규칙적인 법칙들에 따른 사회발전의 역사이며, 이에 대한 연구는 하나의 과학이기 때문이다.(변유49)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실천적 활동은 ‘뛰어난 개인들’의 훌륭하신 바램이나, ‘이성’과 ‘보편적 도덕’의 명령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 발전법칙과 이 법칙^들에 대한 연구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변유49-50)
더 나아가, 세계는 알 수 있는 것이며, 자연 발전법칙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객관적 진리에 대한 타당성을 지닌 신빙성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사회생활⋅사회발전 역시 알 수 있는 것이고, 사회 발전법칙들을 고찰한 과학적 자료도 신빙성 있는 것이며, 객관적 사실들에 대한 타당성을 지닌 것이다.(변유50)
그러므로 사회생활의 모든 복잡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사회역사에 대한 과학은 이른바 생물학처럼 정밀한 하나의 과학이 될 수 있으며, 실천적 목표를 위해 사회발전 법칙들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우연한 동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발전 법칙들에 의해서, 그리고 이 법칙들로부터의 실천적 추론에 의해서 실천적 활동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사회주의는 인류를 위한 보다 나은 미래라는 하나의 꿈이 아닌 하나의 과학으로 전화된다.(변유50)
그러므로 과학과 실천활동, 즉 이론과 실천 사이의 결합, 그리고 통일이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길잡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나아가, 자연⋅존재 혹은 물질적 세계가 1차적이고, 의식이나 사고가 2차적이고 파생적이라면, 그리고 물질적^ 세계가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이며, 반면 의식이 그러한 객관적 실재의 반영이라면, 당연히 사회의 물질적 생활이나 그 존재 역시 1차적이며, 그 정신적 생활은 2차적이고 파생적이다. 또한 사회의 물질적 생활이 인간의지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이며, 반면 사회의 정신적 생활은 이 객관적 실재의 반영이자 존재의 반영이다.(변유50-51)
그러므로 사회의 정신적 생활이 형성되는 원천, 즉 사회관념과 사회이론⋅정치적 견해⋅정치제도의 원천은 관념과 이론⋅견해⋅정치제도 그 자체가 아닌 사회의 물질적 생활조건, 즉 사회적 존재에서 구해져야 하며 관념⋅이론⋅견해는 그 반영이다.(변유51)
그러므로 사회역사의 다양한 시대마다 다양한 사회적 관념과 이론⋅견해⋅정치제도가 관찰된다. 즉 노예제에서는 어떠어떠한 사회관념과 이론⋅견해⋅정치제도와 마주치게 되며, 또 봉건제에서는 그와 다른 것들과 마주치게 되고, 또한 자본주의에서는 또 다른 것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관념⋅이론⋅견해⋅정치제도의 ‘본질’이나 ‘속성’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사회발전의 서로 다른 시대에서 나타나는 사회의 물질적 생활조건이 서로 다르다는 것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변유51)
사회의 존재가 어떠한가, 사회의 물질적 생활조건이 어^떠한가 하는 그것들이 바로 그 사회의 관념과 이론⋅정치적 견해⋅정치제도이다. 이러한 관계에 대해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변유51-52)
그러므로 정책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또 게으른 몽상가의 처지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그들의 활동을 추상적인 ‘인간이성의 원리’가 아니라, 사회발전을 규정하는 동력인 사회의 물질적 생활이라는 구체적 조건에 기초해야 한다. 즉 ‘위대한 인간’의 훌륭한 바램이 아니라, 사회의 물질적 생활의 발전에 대한 실제적 요구에 기초해서 그들의 활동을 수행해나가야 한다.(변유52)
나로드니키나 아나키스트, 그리고 사회혁명당원들(SR)을 포함한 공상적 사회개량주의자들의 몰락은, 무엇보다도 사회의 물질적 생활조건들이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차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였다는 점, 그리고 관념론에 빠지면서 사회의 물질적 생활의 발전에 대한 요구에 자신들의 실천활동의 근거를 두지 못한 채, 오히려 이러한 필요에 아랑곳없이 독자적으로 사회의 실제생활과는 분리된 ‘이상적 계획’, 혹은 ‘모든 것을 다 잡으려는 계획’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변유52-53)
맑스-레닌주의의 힘과 생명력은 자신의 실천활동을 사회의 물질적 생활발전에 기초하고 있으며, 결코 사회의 실제생활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변유53)
그러나 맑스의 견해를, 사회관념⋅이론⋅정치적 견해⋅정치제도는 사회생활에서 어떤 의미도 없으며, 이들이 사회적 존재, 즉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들이 발전하는 것에 상호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타당치 않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관념과 견해, 정치제도의 기원, 또 그것들이 발생하는 경로, 그리고 사회의 정신적 생활은 물질적 생활조건의 반영이라는 사실에 대해 언급해 왔다. 사회적 관념⋅이론⋅견해⋅정치제도가 지니는 의의, 즉 역사에서 그러한 것의 역할에 대해서, 사적 유물론은 부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생활과 그 역사에서 그러한 요소가 지닌 중요한 역할과 의의를 강조한다.(변유53)
사회적 관념과 이론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자신들의 시대를 뛰어넘어 오래 존속하면서, 사회에서 소멸해가는 세력들의 이해에 봉사하는 낡은 관념과 이론이 존재한다. 이것들은 사회발전이나 진보를 방해한다. 반면 사회에서 진보적 세력이 지닌 이해에 봉사하는 새롭고 진보적인 관념과 이론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발전이나 진보를 촉진한^다. 따라서 이들이 지니는 의의는 사회의 물질적 생활의 발전에 대한 요구를 더 정확히 반영하면 할수록 더욱 증대한다.(변유53-54)
새로운 사회적 관념과 이론은 단지 사회의 물질적 생활발전이 사회에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 이후에야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은 나타나자마자, 사회의 물질적 생활의 발전에 의해 제시된 새로운 과제의 수행을 촉진하는 가장 강력한 힘, 즉 사회의 진보를 촉진하는 힘이 된다. 바로 이때, 새로운 관념과 이론⋅정치적 견해⋅정치제도의 엄청난 조직력⋅동원력⋅변혁력이 입증된다. 새로운 사회관념과 이론은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조직하고 동원하고 변형시키는 작용 없이는 사회의 물질적 생활발전이라는 절박한 관계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활에 의해 제시된 새로운 과제로부터 새로운 사회적 관념과 이론이 발생하자마자, 이것들은 자신의 길을 헤치고 나아가 대중들의 소유가 되고, 소멸해가는 사회세력들에 대항하여 대중들을 동원⋅조직하며, 그에 따라 사회의 물질적 생활의 발전을 방해하는 세력의 타도를 촉진한다.(변유54)
그래서 사회의 물질적 생활의 발전, 즉 사회적 존재의 발전이라는 절박한 임무를 토대로 발생했던 사회관념⋅이론⋅정치제도는 사회적 존재, 즉 물질적 생활에 대해 반^작용을 일으켜 사회의 물질적 생활의 절박한 임무를 완전하게 수행하기 위한, 또 가능한 한 더 나은 발전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창조한다.(변유54-55)
그러므로 사회의 물질적 생활조건에 영향을 미치고, 그 발전과 진보를 가속시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사회의 물질적 생활의 발전에 대한 요구를 올바르게 반영한 사회적 이론과 관념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으로써 광범한 대중들을 움직일 수 있고, 동원할 수 있으며, 또한 반동적 세력들을 분쇄하고 진보적 세력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분명히 하고자 준비된 프롤레타리아트 당이라는 거대한 군대로 조직될 수 있다.(변유55)
‘경제주의자들’과 멘셰비키의 몰락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이 진보적 이론과 사상이 지니는 동원⋅조직⋅변혁의 역할을 깨닫지 못했으며, 속류 유물론에 빠져 이러한 요소들의 역할을 무위로 돌려버렸고, 당을 수동적이고 공허한 것으로 운명지워 버렸기 때문이었다.(변유55)
맑스-레닌주의의 힘과 생명력은 사회의 물질적 생활의 발전에 대한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진보적 이론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이를 적정수준까지 향상시켜, 이 이론의 동원⋅조직⋅변혁력을 활용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긴다는 사실로부터 나온다.(변유56)
‘사회의 물질적 생활조건’이라는 개념이 무엇보다도 사회를 에워싸고 있는 자연과, 필수불가결하고 항구적인 사회의 물질적 생활조건중 하나이자 물론 사회발전에도 영향을 끼치는 지리적 환경을 포함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리적 환경이 사회발전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가? 지리적 환경은 사회의 외관이나 사회체제의 성격, 하나의 세계로부터 다른 체제로의 이행을 결정하는 주요한 동인인가?^ 사적 유물론은 이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해답을 내리고 있다.(변유56-57)
300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유럽에서는 3개의 서로 다른 사회체제가 잇달아 교체되었다. 즉, 원시공산제⋅노예제⋅봉건제가 바로 그것이다. 유럽의 동부지역, 즉 소련에서는 심지어 4개의 사회체제들이 교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동안에 유럽에서의 지리적 환경들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거나, 지리학이 기록하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변화했다. 그것은 매우 당연하다. 지리적 환경에서 어떤 중요한 변화는 수백만 년이 필요하지만, 인간사회의 체제가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데는 몇 백 년 혹은 2,3천년이면 충분하다.(변유57)
이 때문에 지리적 환경은 사회발전에 주요한 동인이거나, 결정적인 동일이 될 수 없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수만 년 동안이나 거의 변화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 수백 년 동안에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 것의 발전에 대해 주요한 동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변유57)
더 나아가, ‘사회의 물질적 생활조건’이라는 개념이 또한 인구의 성장, 즉 이런저런 정도의 인구밀도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사회의 물질적 생활고건의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며, 일정한 최소한의 인구가 없이는 사회의 물질적 생활조건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구의 성장은 사회체제의 성격을 결정하는 주요한 동력인가 아닌가? 사적 유물론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부정적으로 대답하고 있다.(변유58)
그렇다면 사회의 외관이나 사회의 성격, 혹은 한 체제로부터 다른 체제로의 발전을 결정하는 사회의 복잡다단한 물질적 생활조건 중에서 중요한 동력은 무엇인가? 사적 유물론이 주장하는 바, 이 힘은 인간이 존재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을 획득하는 방법, 즉 사회생활이나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음식⋅의복⋅신발⋅주거⋅연료⋅생산수단 등−물질적 가치의 생산양식이다.(변유59)
물질적 가치를 생산해 내는 생산수단, 생산수단을 작동하고 생산경험과 노동기술의 도움으로 물질적 가치의 생산을 계속하는 인간,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하여 사회의 생산력을 구성한다.(변유60)
그러나 생산력은 단지 생산의 한 측면, 즉 생산양식의 한 측면이며, 물질적 가치의 생산을 위해 이용하는 객체들과 자연력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표출하는 한 측면이다. 생산의 다른 측면, 즉 생산양식의 다른 측면은 생산과정 속에 있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 즉 인간의 생산관계이다. 인간은 서로가 고립되지 않고 개체로 분리되지 않은 채, 공동으로, 집단적으로 사회 속에서 자연에 대해 투쟁하고, 이를 물질적 가치생산에 이용한다. 그러므로 생산은 언제든지, 어떤 경우에라도 사회적 생산이다. 물질적 가치생산에서 인간은 이런저런 종류의 상호관계, 즉 이런저런 종류의 생산관계를 맺는다. 이것은 착취로부터 자유로운 인간들 사이의 협동관계나 상호지원관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배와 종속의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산관계의 성격이 어떠하든, 항상 모든 체제에서 이들은 단지 사회의 생산력만큼이나 본질적인 생산요소가 된다.(변유60)
따라서 생산, 즉 생산양식은 사회의 생산력과 인간의 생산관계 양자를 포괄하며, 물질적 가치생산과정에서의 이들의 통일체이다.(변유61)
생산의 첫 번째 특징은, 장기간에 걸쳐 한 순간이라도 멍추지 않으며, 항상 변화와 발전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생산양식의 변화는 불가피하게 모든 사회제도와 사회관념⋅정치적 견해⋅정치제도에서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즉 생산양식의 변화는 전체 사회와 정치 질서의 개조를 불러일으킨다. 특정 발전단계에서 인간은 특정 생산양식을 사용하고, 혹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생활양식을 만들어낸다. 원시공산제에 이런 생산양식이 있다면, 노예제에서는 저러한, 봉건제에서는 또 다른 생산양식이 존재한다. 이에 조응하여, 인간의^ 정신적 생활⋅견해⋅정치제도들 또한 다양해지는 것이다.(변유61-62)
사회의 생산양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대체로 그것은 사회 그 자체, 그 관념들과 이론들, 그 정치견해들과 제도들도 조응한다. 혹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생활양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인간의 사고방식도 그에 조응하게 된다. 이것은 사회발전의 역사가 무엇보다 생산발전의 역사이며, 수세기동안 바뀌면서 계승된 생산양식의 역사이자, 생산력과 인간의 생산관계가 발전해 온 역사임을 말해주고 있다.(변유62)
그러므로 사회발전의 역사는 동시에 물질적 가치 그 자체를 생산하는 자의 역사, 즉 노동대중의 역사이다. 이때 노동대중은 생산과정에서 주된 동력이자, 사회가 존재하는 데 필수적인 물질적 가치의 생산을 수행한다.(변유62)
따라서 역사과학이 진정한 과학이 되려면, 사회발전의 역사를 더 이상 왕이나 장군들의 행위, 즉 국가의 정복자나 지배자들의 행위로 격하시켜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도 물질적 가치의 생산자들의 역사로, 즉 노동대중의 역사, 인민의 역사로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정신, 즉 사회에 대한 견해나 관념들에서 사회의 역사법칙에 대한 연구의 실마리를 찾아서는 안 되^며, 어떤 역사적 시기에 사회가 갖고 있는 생산양식, 즉 사회의 경제적 생활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변유62-63)
그러므로 역사학의 기본적 임무는 생산의 법칙,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 발전의 법칙, 사회의 경제적 발전법칙을 연구하고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 당이 진정한 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생산발전에 대한 지식, 즉 사회의 경제적 발전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만 한다. 따라서 정책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그 강령의 입안과 실천활동을 기본적으로 생산의 발전법칙, 즉 사회의 경제적 발전법칙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변유63)
생산의 두 번째 특징은 그 변화와 발전이 항상 생산력의 변화와 발전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중에서도 일차적으로 생산수단의 변화와 발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력은 가장 유동적이고 혁명적인 생산요소이다. 처음에는 사회의 생산력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그런 다음 이 변화에 의존하여, 그에 따라 인간의 생산관계, 즉 그들의 경제적 관계가 변화한다.(변유63)
그러나 이것이 곧 생산관계가 생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거나, 후자가 전자에 의존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생산이 생산력의 발전에 의존하는 반면,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발^전을 가속화시키거나 지체시키거나 하면서 그것에 반작용을 한다. 이러한 연관에 의해,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격, 즉 생산력의 상태에 조응하고 그 발전을 위한 충분한 영역을 허용할 때만 생산력이 완전히 발전하므로, 생산관계가 매우 오랫동안 생산력 성장에 뒤처지거나, 그와 모순 상태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체로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에 뒤처진다 하더라도 머지않아 생산력의 발전수준 및 생산력의 성격에 조응해야만 하며, 실제로 조응하게 된다−그렇지 않으면 생산체계 내에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일이 근본적으로 파괴될 것이며, 전체적으로 생산의 혼란, 혹은 생산의 위기, 혹은 생산의 파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변유63-64)
자본주의 국가에서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격에 조응하지 않고 그와 투쟁하는 경우, 그것은 경제적 위기이며, 생산수단에 대한 개인의 자본주의적 소유는 생산과정의 사회적 성격, 생산력의 성격과 명백한 부조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는 경제적 위기를 낳고, 생산력의 파괴로 치닫는다. 더 나아가, 이 부조화 그 자체는 사회혁명의 경제적 토대가 되며, 이 사회혁명의 목적은 기존의 생산관계를 파괴하고, 생산력의 성격에 조응하는 새로운 생산관계를 창조하는 것이다.(변유64)
따라서 생산력은 생산에서 가장 유동적이고 혁명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생산발전에서 결정적 요소가 된다. 생산력이 어떠한가에 따라 생산관계는 그것에 반드시 조응한다. 생산력의 상태가 이 문제−인간은 어떤 생산도구를 가지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질적 가치를 생산해 내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반면, 생산관계의 상태는 또 다른 문제−누가 생산수단(토지⋅산림⋅바다⋅광물자원⋅원료⋅생산수단⋅생산도구⋅교통⋅통신수단 등)을 소유하고 있는가, 즉 사회 전체이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혹은 또 다른 개인⋅집단⋅계급을 착취하기 위해 생산수단을 사용하는 계급이든, 누가 생산수단을 지배하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변유65)
생산수단의 발전과 향상이 생산과 연관된 인간에 의해 초래됐으며, 인간의 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생산수단의 변화와 발전은 생산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인간의 변화와 발전, 즉 생산수단을 취급하는 그들의 생산경험, 노동기술, 능력의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역사과정에서 사회의 생산력 변화와 발전에 조응하여 인간의 생산관계, 즉 인간의 경제적 관계 또한 변화⋅발전했다.(변유66)
역사적으로 생산관계의 5가지 주요한 유형이 알려져 있다. 즉 원시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바로 그것이다.(변유66)
원시공산제에서 생산관계의 토대는 생산수단이 사회적으로 소유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그 시기 생산력의^ 성격에 조응한다. 석기와 그 이후의 활과 화살로는 자연의 힘과 맹수의 공격에 대항하여 홀로 싸울 수 없었다. 인간이 아사하거나 맹수나 이웃집단에 희생되기를 바라지 않는 한, 숲의 과일을 모으고, 고기를 잡고, 일정한 거주지를 만들고자 공동으로 작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공동노동은 생산의 성과물과 더불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한다. 동시에 맹수에 대한 방어수단이 되는 생산도구의 개인적 소유를 제외하고는, 여기서 아직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대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착취도 없었고, 어떠한 계급도 존재하지 않았다.(변유66-67)
노예제 사회에서 생산관계의 기초는 노예 소유주의 생산수단 소유에 있다. 또한 노예소유주는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 즉 노예를 소유했는데, 동물처럼 팔고 사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한 생산관계는 주로 당시 생산력의 상태에 조응한다. 석기 대신에 인간은 이제 금속기를 자유로이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목축이나 경작을 모르던 사냥꾼의 초라하고 원시적인 농업 대신에, 이제 목축⋅경작⋅수공업이 출현하고, 이러한 생산 부문 사이에 분업이 이루어졌다. 개인과 사회집단들 사이에서 생산물이 교화될 수 있고, 소수의 손에 부의 축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나고, 또한 소수에 대한 다수의 종^속과 다수의 노예로의 전환 가능성이 나타났다. 여기에서는 생산과정에서 사회 모든 성원의 공동적이고 자유로운 노동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다−여기에서는 강제적인 노예노동이 대부분이었으며, 그들은 어떠한 노동도 하지 않는 노예 소유주에 의해 착취당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생산수단이나 생산 성과물에 대한 어떠한 공동소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적 소유로 대체되었다. 여기에서 노예소유주는 그 모든 의미에서 최고의, 그리고 주요한 부의 소유자로 등장한다.(변유68)
봉건적 생산관계의 토대는 봉건영주가 생산수단만 소유하되,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 즉 농노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봉건영주는 농노를 더 이상 죽일 수는 없었으나, 사거나 팔 수는 있었다. 봉건적 소유와 동시에 자신의 생산도구에 대한 농민이나 수공업자의 사적 소유가 존재하며, 그들의 개인적인 사업은 개인노동에 기초한다. 그러한 생산관계는 주로 그 시기 생산력의 상태에 조응한다. 철을 제련하고 다루는 기술의 향상, 철 쟁기와 직기의 확산, 농업⋅원예⋅양모업⋅낙농업의 발전, 그리고 수공업작업장들과 함께 매뉴팩처들의 발흥−이러한^ 것은 그 당시 생산력 상태의 특징적인 면이다.(변유68-69)
새로운 생산력은 노동자가 생산에 대한 어떤 종류의 자발성, 일에 대한 열의, 즉 일에 대한 흥미를 나타내기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봉건영주는 일에 대해 어떤 이해도 없고 전혀 자발성도 없는 노동자로서의 노예를 포기하고, 자신의 농사를 짓고 생산도구를 소유하며 토지를 경작하여 봉건영주에게 수확의 한 부분을 바치는 것과 같은, 노동 속에서 본질적인 특정 이해를 갖는 농노를 상대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변유69)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기초는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되,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 즉 임금노동자를 소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본가는 임금노동자가 개인적으로는 자유롭기 때문에 죽이거나 팔 수 없었다. 그러나 임금노동자는 생산수단을 빼앗겼으며, 죽거나 굶주리지 않기 위해 자본가에게 그들의 노동력을 팔고 착취의 멍에를 견디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적 부와 동시에, 처음으로 대규모적인 농민과 수공업자의 개인적 부가 발생했다. 이들 농민과 수공업자들은 더 이상^ 농노가 아니며, 그들의 개인적 부는 개인적 노동에 의존한다. 수공업 작업장이나 매뉴팩처 대신에 기계설비를 갖춘 거대한 작업장과 공장이 나타난다. 농민 개인의 원시적 생산도구에 의해 경작되던 장원의 토지 대신에, 이제 과학적으로 경지정리가 되고 농업기계기가 있는 대규모 자본주의적 농장(farms)이 나타난다.(변유69-70)
새로운 생산력은,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억압받고 무지한 농민들보다 더 많이 교육받고 더 지적일 것을, 즉 그들이 기계를 이해하고 적절히 작동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임금노동자를 상대하기를 더욱 선호하는데, 이들이 농노제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기계를 적절히 작동할 수 있을 만큼 교육받았기 때문이다.(변유70)
그러나 엄청나게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자본주의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상품을 더욱 더 많이 생산하게 되고, 그 결과 가격이 떨어지게 됨으로써, 자본주의는 경쟁의 정도를 더하게 되었고, 규모가 작고 중간적인 개인 소유자를 파멸케 하여 프롤레타리아트로 전화시키고, 그들의 구매력이 떨어지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 생산된 상품의 처분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 생산이 확장되고, 거대한 작업장이나 공장에 수억의 사람들이 집중됨으로써, 자본주의는 생산과정에 사회적 성격을 부여하게 되고, 따라서 생산과정의 사회적 성격이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요구하게 됨으로써, 자본주의는 자신의 토대를 침식당하게 된다. 그러나 생산수단은 여전히 개인의 자본주의적 소유로 남게 되는데, 이것은 생산과정의 사회적 성격과 모순된다.(변유70-71)
생산력의 성격과 생산관계 사이의 이러한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은, 과잉생산에 의한 주기적 공황을 초래하고, 뒤따르는 대중의 파멸로 인해 자신들의 상품에 대한 어떠한 유효수효도 발견할 수 없으므로, 자본가들은 생산물을 불태우거나, 제조된 상품을 파괴하고, 생산을 정체시키며, 일시에 생산력을 파괴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수억의 인민들은 상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상품의 과잉생산 때문에 실업과 기아로 고생할 수밖에 없다.(변유71)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사회의 생산력 상태와 조응할 수 없으며, 그것들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혁명을 내포하고 있으며, 혁명의 임무는 기존의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를 사회주의적 소유로 대체하는 것임을 뜻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체제의 주요한 특징이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가장 첨예한 계급투쟁임을 의미한다.(변유71)
지금까지 소련에서만 건설되어 있는 사회주의 체제 하의 생산관계의 기초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없다. 생산된 상품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수행된 노동에 의해 분배된다. 즉,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여기서는 생산과정에서의 인민 상호간의 관계가 착취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자들 간의 동지적 협동과 사회주의적 상호협조로 특징지어진다. 이리하여 생산관계는 완전히 생산력의 상태에 조응한다. 왜냐하면 생산과정의 사회적 성격이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강화시켜주기 때문이다.(변유71-72)
이러한 이유 때문에, 소련에서의 사회주의적 생산은 과잉생산에 의한 주기적 공황이나 그에 수반되는 불합리를 모른다. 따라서 생산력은 가속도로 발전한다. 왜냐하면 그에 상응하는 생산관계가 그러한 발전의 여지를 충분히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변유72)
이상의 서술은 사회의 생산력 발전−그것은 기본적으로 생산수단의 발전−에 생산관계의 발전이 종속된다는 사실, 즉 생산력의 변화와 발전은 조만간 그에 조응하는 생산관계의 변화와 발전을 주도한다는 것을 뜻한다.(변유72)
생산의 세 번째 특징은, 새로운 생산력과 그에 조응하는 새로운 생산관계가 낡은 제도로부터 분리되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즉 낡은 제도의 소멸 이후가 아니라, 낡은 제도의 내부에서 발생하며, 그것은 인간의 계획적이고 의식적인 행위의 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독립되어 발생한다.(변유75)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자연발생적이며 인간의 의지로부터 독립되어 발생한다. 첫째, 인간은 이런 생산양식, 혹은 저런 생산양식을 선택하는 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새로운 세대는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그들은 전 세대가 행한 작업의 결과물로 이미 존재하는 생산관계에 부딪히게 된다. 물질적 가치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생산영역에서 이미 만들어진 모든 것을 수용하고, 그것에 적응해 나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변유75)
둘째, 하나의 생산도구, 혹은 또 다른 생산도구, 즉 생산력의 한 요소나 또 다른 요소를 개량할 때, 인간은 이러한 개량이 어떠한 사회적 결과들을 초래할 것인가에 대해 깨닫거나 이해하지 못하며,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들의 일상적 이해, 즉 자신들의 노동을 경감시키고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이익을 얻을 것만을 생각한다.(변유75)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생산관계의 변화들이나 낡은 생산관계에서 새로운 생산관계로의 이행이 투쟁이나 격변 없이 순탄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반면에 이러한 이행은 보통 낡은 생산관계에 대한 혁명적 전복과 새로운 생산관계의 수립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떤 시기까지는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관계의 영역에서의 변화들이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의지로부터 독립되어 진행된다.(변유78)
그러나 이것은 단지 새롭게 발전하는 생산력이 적절한 성숙의 상태에 도달하는 어떤 순간까지일 뿐이다. 새로운 생산력이 성숙된 이후, 기존의 생산관계와 그 옹호자들−지배계급−은 새로운 계급들의 의식적 활동과 이러한 계급들의 강제적인 행동에 의해서, 즉 혁명에 의해서만 제거될 수 있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이다. 여기서 새로운 사회관념들⋅새로운 정치제도들⋅새로운 정치권력의 엄청난 역할이 뚜렷이 도출되는데, 이들의 임무는 무력에 의해 낡은 생산관계를 철폐하는 것이다.(변유78)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의 투쟁으로부터, 사회의 새로운 경제적 요구로부터 새로운 사회관념들은 태어난다. 그래서 이 새로운 관념들은 대중을 조직하고 동원한다. 그에 따라 대중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결집되며, 새로운 혁명적 권력을 창출하고, 또한 생산관계의 낡은 제도를 무력을 통해 철폐하고, 새로운 제도를 확고히 정^착시키는 데 이 사회관념들을 사용한다. 자생적인 발전과정은 인간의 의식적 행동에, 평화적 발전은 맹렬한 격변에, 진화는 혁명에 그 자리를 넘겨준다.(변유78-79)
맑스: “인간이 수행하는 사회적 생산에서, 인간은 불가피하면서도 그들의 의지로부터 독립된 일정한 관계, 즉 물질적 생산력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진정한 토대를 구성하며, 여기서 법적⋅정치적 상부구조가 나타나고, 사회적 의식의 일정한 형태들이 이에 조응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일반적으로 사회적⋅정치적⋅지적 생활과정을 결정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 어떤 발전단계에서,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기존의 생산관계와 혹은 지금까지 그 한계 내에서 노동해왔으나 이제는 법률적 표현에 불과한 소유관계와 투쟁하기 시작한다. 생산력의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질곡으로 전화한다. 이때, 사회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함께, 모든 거대한 상부구조도 다소 급속하게 변혁된다. 이러한 변혁을 고찰해 볼 때 자연과학의 정밀함으로 결정될 수 있는 생산의 경제적 조건에서의 물질적 변혁과, 인간이 이 갈등을 의식하게 되고 그 싸움을 끝장내는(ausfechten) 법적⋅정치적⋅종교적⋅미학적⋅철학적 형태들, 즉 이데올로기적 형태들 사이에는 항상 구분이 있어야 한다. 한 개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그가 자신을 판단하는 바에 근거하지 않듯이, 그러한 이행의 시대를 그 자신의 의식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반면에 이러한 의식은 오히려 물질적 생활의 모순, 즉 기존의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투쟁을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 어떠한 사회질서도 그 내부에 생산력이 발전할 여지가 있는 한,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고도의 생산관계는 그 존재의 물질적 조건이 태내에서 성숙되기 이전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류는 항상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자신에게 부여하는데, 좀 더 자세히 보자면, 그 이유는 해결을 위한 물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거나, 최소한 형성과정에 있을 때에야 과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변유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