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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고전읽기

레닌주의의 기초1

작성자홍승용|작성시간18.01.29|조회수887 목록 댓글 0

맑스주의 고전읽기(1. 29.) 자료입니다.

원래 1회로 계획했으나 내용이 많아 2회로 늘립니다.



첨부파일 s레닌주의의 기초1.hwp





J. 스탈린: [레닌주의의 기초], 윤시인 역, 두레 1990.

 

 

어떤 사람은 레닌주의가 러시아의 상황에서 나타난 특수한 조건에 맑스주의를 적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규정은 진실의 일면이지 결코 진실 전체는 아니다. 레닌은 확실히 맑스주의를 러시아의 조건에 적용했으며, 더욱이 그것을 대가다운 방식으로 적용했다. 그러나 레닌주의가 단지 러시아의 특수한 조건에 맑스주의를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순전히 민족적이고 오로지 민족적인, 즉 순전히 러시아적이고 오로지 러시아적인 현상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레닌주의가 단순히 러시아적인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발전 전반에 정착된 국제적인 현상임을 알고 있다.(기초12)

 

또 어떤 사람들은 레닌주의가 온건하고 비혁명적으로 되었다고 주장되는 후기 맑스주의와는 구별되는 1840년대 맑스주의의 혁명적 요소를 부활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맑스주의의 교의를 두 개의 부분, 즉 혁명적인 부분과 온건한 부분으로 나누는 이 어리석고 속물적인 구분을 논외로 한다면, 전체적으로 보아 불충분하고 불만족스러운 이 규정조차도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점을 시인해야만 할 것이다. 이 일말의 진실이란 사실상 레닌이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은폐되었던 맑스주의의 혁명적 내용을 회복시켰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진실의 일면에 불과하다. 레닌주의에 관한 전반적인 진실은 레닌주의가 맑스주의를 회복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맑스주의를 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새로운 조건 아래에서 한층 발전시켰다는 점에 있다.(기초13)

 

레닌주의는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대의 맑스주의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레닌주의는 일반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과 전술이며, 특수하게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론과 전술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혁명 시기(우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염두에 두고 있다), 즉 발달한 제국주의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때에,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을 준비하던 시기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직 당면한 실천적 필연성을 갖지 않던 시기에 활약했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의 옹호자^인 레닌은, 발달한 제국주의 시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발양기,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이미 일국에서 승리를 거두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타파하여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시대, 소비에트의 시대를 열었던 시기에 활약했다. 이것이 바로 맑스주의에 비해 레닌주의가 더욱 발전했다는 이유이다.(기초13-14)

 

레닌주의가 갖고 있는 유별나게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성격을 지적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는 매우 옳다. 그러나 레닌주의가 갖는 이러한 독특한 특징은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첫째로, 레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부터 출현했으며 그것의 흔적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레닌주의는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와의 격돌 속에서 성장하고 강화되었으며, 그것에 대한 투쟁은 자본주의에 대한 성공적 투쟁을 위해 필수적 준비조건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점이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맑스-엥겔스와 레닌 사이에는 제 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가 완전히 지배하던 한 시기가 가로놓여져 있고, 이 기회주의에 대한 가차 없는 투쟁이야말로 레닌주의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로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기초14)

 

레닌주의의 역사적 근원

 

레닌주의의 제국주의의 제조건 아래서, 즉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점에 다다르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당면한 실천적 문제로 되었을 때, 노동계급이 혁명을 준비하던 구시대가 새로운 시대, 즉 자본주의에 대한 직접적 공격의 시대에 접어들었던 때에 성장하고 구체화되었다.(기초15)

 

레닌은 제국주의를 사멸해가는 자본주의라 불렀다. 왜냐하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 최후의 한계로까지, 혁명이 시작되는 극한까지 이끌어갔기 때문이다. 이 모순 중에서 가장 중요시되어야 할 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1의 모순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산업 국가에서 독점적인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 은행과 금융과두제를 지닌 전지전능의 권력이다. 이 전지전능한 권력에 대한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지닌 일상적 방식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의회정당과 의회투쟁으로는 아주 불충분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자본의 처분에 자신을 맡기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생활을 계속하면서 밑바닥으로 영락해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무기를 채택할 것인가이것이 제국주의가 거대한 프롤레타리아트 대중 앞에 제기한 양자택일이다. 제국주의는 노동계급을 혁명으로 이끌어간다.(기초15)

 

2의 모순은 원료산지와 타국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금융세력들과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원료산지에 대한 자본의 수출이며, 원료산지의 독점적 소유를 위한 광적인 투쟁이자 이미 분할된 세계의 재분할을 위한 투쟁이며, 장악한 것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는 구금융세력들과 열강에 대항하여 태양이 뜨는 대지를 노리는 신세력들과 열강에 의해 더욱 광폭하게 수행되는 투쟁이다. 자본가들의 여러 다양한 세력들 사이의 이러한 광폭한 투쟁은 제국주의 전쟁, 즉 타국의 영토를 강탈하기 위한 전쟁을 불가피한 요소로서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러한 상황은 제국주의 상호간을 약화시키고 자본주의의 위치를 전반적으로 약화시키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도래를 가속화시키는 동시에 이 혁명이 실천적 필연성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기초16)

 

3의 모순은 한줌의 지배 문명민족과 수억에 달하는 세계의 식민지 및 종속국 인민 사이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방대한 식민지 및 종속국에 살고 있는 수억의 인민에 대한 가장 파렴치한 착취이자 가장 비인간적인 압제이다. 이러한 착취와 입제의 목적은 초과이윤을 수탈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를 착취하면서 제국주의는 그곳에 철도와 공장, 제재소, 그리고 공업과 상업 중심지들을 건설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출현, 토착 인텔리겐챠의 등장, 민족의식의 각성, 해방운동의 성장이러한 것들은 정책의 필연적 결과이다. 모든 식민지와 종속^국에서 혁명운동의 성장은 예외 없이 이같은 사실을 분명히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식민지와 종속국들을 제국주의의 예비군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예비군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므로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기초16-17)

 

10년 전에 발발했던 제국주의전쟁의 의의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전쟁이 모든 모순을 한 덩어리로 모아 그것을 저울 위에 내던졌으며 그럼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전투를 가속화하고 촉진시켰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서, 제국주의는 혁명이 실천적 필연성을 갖게 하는 데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요새에 대한 직접적 공격을 위해 호조건을 창출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었다. 이것이 레닌주의를 탄생시켰던 국제적 상황이었다.(기초17)

 

많은 나라 가운데 왜 러시아가 레닌주의의 모국이 되었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과 전술의 탄생지가 되었는가? 왜냐하면 러시아는 제국주의가 갖는 이 모든 모순들의 집합점이었기 때문이다.(기초17)

 

먼저, 차르 러시아는 가장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형태로 가해지던 모든 종류의 억압자본주의적식민지적군국주의적의 본고장이었다. 러시아에서 자본이 가진 전지전능한 권력은 차리즘의 전제와 결합되었고, 러시아 민족주의의 공격성은 비러시아계 인민에 대한 사형집행자로서 차리즘의 역할과 결합되었고, 또 취약한 지역들터어키페르시아중국에 대한 착취는 차리즘에 의한 이들 지역의 강탈이나 정복전쟁과 결합되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레닌이 차리즘을 군사적-봉건적 제국주의였다고 말한 것은 정당했다. 차리즘은 제국주의의 가장 사악한 특징의 집약이었으며 그것을 고도로 끌어올렸다.(기초18)

 

나아가, 차르 러시아는, 연료와 야금산업과 같은 러시아 민족경제의 기본분야를 지배하고 있었던 그런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참여를 허용했다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수백만의 군인들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도 서구 제국주의의 중요한 예비군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자본가들의 엄청난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제국주의전선에서 피를 흘렸던 1,400만의 러시아군대를 기억해 보라더 나아가, 차리즘은 유럽 동부에서 제국주의의 파수견이었을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파리와 런던베를린과 브뤼^셀에서 제공된 차관에 대한 이자를 수억의 주민들에게서 갈취하려는 서구 제국주의의 대리인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차리즘은 터어키페르시아중국 등을 분할할 때 서구 제국주의의 가장 충실한 동맹자였다.(기초18-19)

 

서구 제국주의가 차리즘을 방어하고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에서의 혁명에 대해 생사의 투쟁을 벌이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고서, 낡고 전제적이며 부르주아적인 러시아라는 동방의 강력한 예비대와 인력 및 자원의 풍부한 저장고의 손실을 체념할 수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그러나 방금 말한 것으로부터, 차리즘을 공격하고자 했던 누구라도 반드시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손을 치켜들었고, 차리즘에 대항하여 일어섰던 그 누구라도 동시에 제국주의에 반항하여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차리즘을 타도하는 데 전념했던 누구든지 간에 만약 그가 진정으로 차리즘을 패퇴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일소하려고 했다면, 제국주의 역시 타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리즘에 대한 혁명은 제국주의에 대한 혁명,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에 가까웠으며 그것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기초19)

 

한편으로, 러시아에서 거대한 인민혁명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지도되었으며, 그들은 러시아의 혁명적 농민층과 같은 중요한 동맹군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혁명이 중도에 멈춰질 수 없었다는 것, 그것이 성공했을 때 더욱 더 나아가야 했으며 제국주의에 대항해 반기를 들어야 했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는가?(기초20)

 

요컨대 이들 모순이 특히 역겨워 견디기 어려운 특징으로 인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곳이 바로 러시아였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또 러시아가 서구 금융자본을 동방의 식민지들과 연결시켜주는 서구 제국주의의 매우 중요한 후원자였기 때문일 뿐 아니라, 러시아가 제국주의의 모순을 혁명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세력이 실재했던 유일한 국가였다는 이유에서도 러시아는 제국주의의 모순의 집합점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기초20)

 

그러나 이로부터 러시아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 시초부터 그것은 국제적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 그러므로 그것은 세계 제국주의의 바로 그 기초를 흔들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도출된다.(기초20)

 

이러한 상황 아래서,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활동을 러시아혁명이라는 좁은 민족적 테두리 안에 가둬둘 수 있었겠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반대로, 국내적이고(심각한 혁명적 위기) 국외적인(전쟁) 상황 전체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활동에서 이러한 테두리를 뛰어넘게 만들었^, 투쟁을 국제적 영역으로 이전하게 만들었으며, 제국주의의 병폐를 폭로하고 자본주의의 붕괴가 필연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사회배외주의와 사회평화주의를 타파하고, 마침내 그들 자신이 그 나라에서 자본주의를 타파케 만들었으며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본주의 타도의 과업을 용이하게 해주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새로운 투쟁무기프롤레타리아트의 이론과 전술를 만들어내도록 하였다.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달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오직 이 길만이 부르주아적 질서의 부활로부터 러시아를 수호할 수 있는 국제적 상황의 확실한 변화를 가져올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러시아는 레닌주의의 모국이 되었으며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지도자 레닌은 그것의 창시자가 되었다.(기초21)

 

2. 방법

 

형식적으로는, 2인터내셔널은 충성스러운맑스주의자들과 정통파카우츠키 등에 의해 지도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제2인터내셔널의 주요 활동은 기회주의 노선을 추종했다. 기회주의자들은 그들의 순응적인 프티부르주아적 속성 때문에 스스로 부르주아지에 순응했다. ‘정통파는 또한 당내 평화를 위하고 기회주의자들과 연합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에게 순응했다. 따라서 부르주아지의 정책과 정통의 정책 간의 연계는 긴밀해졌고 그 결과로 기회주의는 유례없이 위세를 떨쳤다.(기초24)

 

완전한 혁명이론 대신에 모순된 가설과 단편적 이론이 있었고, 그것은 대중들의 실제적 혁명투쟁으로부터 유리되어 진부한 도그마로 변질되었다. 물론 체면치례로 맑스의 이론이 언급되었지만, 그것은 맑스의 이론으로부터 그것의 생생한 혁명적 정신을 박탈한 것이었을 뿐이다. 혁명적 정책 대신에, 무기력한 속물근성과 정치적 타협, 의회주의적 외교술과 의회주의적 음모가 있었다. 물론 체면치례로 혁명적결의안과 슬로건이 채택되었으나 서류함에 처박혀 묵살되어 버렸을 뿐이다. 당이 자신의 오류를 논거로 하여 정확한 혁명적 전술을 훈련받고 교육받는 대신에, 그럴싸하게 꾸며지거나 베일에 가려져 있던 난처한 문제들을 고의적으로 회피하고 있었다. 물론 외관상 논쟁중인 문제를 토론하는 것에 대한 반대는 없었지만 그것은 일종의 유연한결의로 매듭짓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것이 제2인터내셔널의 외형이자, 그것의 사업방식, 그것의 병기고였다.(기초25)

 

한편, 제국주의전쟁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식적 전투의 새로운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낡은 투쟁방식들은 금융자본의 전지전능한 권력 앞에서 부적합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이 명백하게 입증되고 있었다. 2인터내셔널의 활동 전체, 사업방식 전반을 철저히 조사하고 모든 속물근성, 편협성, 정치적 음모, 변절, 사회 배외주의와 사회평화주의를 축출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기초25-26)

 

이러한 방법의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2인터내셔널의 이론적 도그마를 대중들의 혁명적 투쟁과 생생한 실천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검증하는 것말하자면 이론과 실천 간의 손상된 통일을 회복시키는 것과 그것들 사이의 균열을 해소시키는 것, 왜냐하면 오직 이러한 방법으로써만 혁명이론으로 무장된 프롤레타리아당이 건설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2인터내셔널 정당들의 정책을 [신뢰할 수 없는] 슬로건과 결의 아니라 그들의 행위, 그들의 활동에^ 의해 검증하는 것. 왜냐하면 오직 이 방법으로써만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신뢰가 획득되고 신뢰를 받을 만한 자격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로, 혁명투쟁을 위해 대중을 훈련시키고 준비시키기 위해 모든 당사업을 새로운 혁명노선에 따라 재조직하는 것. 왜냐하면 오직 이 방법으로써만 대중이 혁명투쟁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로, 프롤레타리아 당 내부의 자기비판, 당 자신의 오류를 기초로 한 교육과 훈련. 왜냐하면 오직 이 방법으로써만 당의 정예 간부와 지도자가 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기초26-27)

 

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은 그들이 항상 출발점으로 삼는 많은 이론적인 도그마들을 갖고 있다. 이 중 몇 개를 살펴보자. 첫 번째 도그마: 프롤레타리아트 권력획득조건과 관련하여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국가 내에서 다수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권력을 잡을 수 없고 또 잡아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터무니없는 명제는 이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므로 아무런 증거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치고,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신사양반들에게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그런데 주민의 소수를 차지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근로대중의 광범한 다수를 자신의 주위에 결집시키는 기회를 갖게 되는 역사적^ 상황이 발생한다(전쟁농업공황)고 가정해 보자. 그 경우에 왜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아서는 안 되는가? 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의 정면을 돌파하고 종말을 앞당기기 위해 국내외적인 유리한 상황을 활용해서는 안 되는가?(기초27-28)

 

두 번째 도그마: 만일 국가 행정을 조직할 수 있는 적절한 수의 훈련된 문화적 행정적 간부가 부족하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장악할 수 없고, 먼저 자본주의 조건 아래에서 훈련을 받아야 하며, 그 후에만 권력을 잡을 수 있다. 레닌은 응수한다: 그런데 왜 순서를 바꾸면 안 되는^. 즉 먼저 권력을 잡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창출하고 그런 연후에 7리그의 걸음걸이로 나아가 근로대중의 문화적 수준을 향상시키고 노동자들 가운데에서 지도자와 행정가와 같은 수많은 간부를 훈련시키면 안 되는가? 러시아의 경험은 노동자층으로부터 뽑힌 지도간부들이 자본의 지배 아래에서보다 프롤레타리아의 지배 아래에서 백배 더 신속하게 또한 효과적으로 계발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분명히 대중들의 혁명투쟁의 실제적 경험은 기회주의자들의 이러한 이론적 도그마 또한 가치 없이 타파하고 있지 않은가?(기초28-29)

 

세 번째 도그마: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적 총파업이라는 방법을 택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론적으로 불건전하고(엥겔스의 비판을 보라) 실천적으로 위험하며(그것은 국가의 정상적인 경제생활과정을 교란시킬지도 모르고, 노동조합의 재원을 고갈시킬지도 모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의 주요형태인 의회주의적 투쟁형태의 대안으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좋다. 레닌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그런데 첫째로, 엥겔스는 모든 류의 총파업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는 오직 총파업의 특정 종류, 즉 무정부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투쟁 대신에 주장하던 경^제적 총파업을 비판했다. 이것이 정치적 총파업 방식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둘째로, 의회투쟁의 형태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요한 투쟁형태라는 것은 어디서, 누구에 의해 증명된 적이라도 있었던가? 혁명운동사도 의회투쟁이 단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회외적인 투쟁을 조직화하기 위한 학교이자 보조수단이며, 자본주의하에서 노동계급운동의 근본문제는 힘에 의해,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직접적 투쟁과 총파업, 그들의 봉기에 의해서 해결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셋째로, 정치적 총파업 방식이 의회투쟁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누가 제안했던가? 언제 어디서 정치적 총파업의 지지자들이 의회적 형태를 의회외적 투쟁형태로 대체하려고 했던가? 넷째, 러시아의 혁명은 정치적 총파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극히 중요한 학교이자 자본주의의 아성을 공격하는 전야에 프롤레타리아트의 광범위한 대중을 동원하고 조직하는 불가결한 수단이라는 점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속물들은 정상적 경제생활과정의 교란이나 노동조합재원에 대해 비탄해마지 않는가? 분명히 혁명투쟁의 실제적 경험은 기회주의자들의 이러한 도그마마저 박살내고 있지 않은가?(기초30)

 

기회주의적 정치가들의 지독한 천박성과 레닌주의의 방법이 지닌 완벽한 위대성을 이해하려면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화시킨 레닌주의 정책을 전쟁기간 동안의 2인터내셔널이 취한 변절적 정책과 대조해 보기만 해도 된다.(기초32)

 

어떤 사람은 당이 자신의 오류를 드러내고 자기비판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당에 대항하는 적에 의해 이용될지^도 모르므로 당에 위험하다고 말한다. 레닌은 그런 주장은 사소하고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당이 아직 유약하고 소규모였던 1904년 이미 레닌은 그의 팜플렛 일보전진, 이보후퇴에서 이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 물론 그들은 우리 당의 약점과 결점을 다룬 나의 팜플렛으로부터, 고립된 구절들을 뽑아내어 이를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고 애쓸 것이다.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 성가신 것들에 동요되지 않을 만큼, 그리고 그런 것들에 아랑곳없이 자기비판작업과 또 노동계급운동이 성장함에 따라 의심의 여지없이 필연적으로 극복되어질 그들 자신의 결점에 대해 가차 없는 폭로작업을 계속할 만큼 이미 전투 속에서 충분히 단련되어 있다.”(기초33-34)

 

레닌의 방법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맑스 자신에 따르자면 본질적으로 비판적이고 혁명적인 맑스의 교의에 이미 주요한 점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레닌의 방법에 시종일관 가득 차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비판적이고 혁명적인 정신이다. 그러나 레닌의 방법이 단순히 맑스의 방법의 복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실 레닌의 방법은 단지 복원일 뿐 아니라 맑스의 비판적이고 혁명적인 방법, 즉 유물변증법의 구체화이자 가일층의 발전이기도 하다.(기초33-34)

 

3. 이론

 

1) 이론의 중요성

 

어떤 사람은 레닌주의의 중요한 요지가 맑스주의의 명제를 행동으로, 그것을 실행으로 옮긴 것이라는 의미에서 레닌주의가 이론보다 실천을 우위에 둔다고 생각한다. 이론에 관한 한, 레닌주의는 다소 그것에 무관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플레하노프가 이론, 특히 철학에 관해 레닌이 무관심하다고 여러 번 비웃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의 많은 레닌주의적인 실천적 노동자들이, 특히 상황이 그들에게 부과하는 막대한 양의 실천적 작업 때문에 이론에 커다란 호의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나는 레닌과 레닌주의에 대한 이러한 매우 기묘한 의견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고 진실에 대해 전혀 어떤 관계도 없다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다.(기초36)

 

물론 실천의 길이 혁명이론에 의해 조명되지 않았을 경우 실천이 어둠 속을 헤매게 되듯이, 이론이 혁명적 실천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면 이론은 목적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이론이 혁명적 실천과 불가분의 연관 위에서 단련된다면 그것은 노동계급운동에서 거대한 힘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론, 그리고 이론만이 운동에 확신을, 방침을 결정할 힘을, 그리고 주위의 사건의 내적 연관에 대한 이해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론, 단지 이론만이 실천을 도와 현재 제계급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뿐만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그들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를 역력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기초37)

 

그는 일찍이 1902년에 우리 당의 이러한 특수한 역할을 예견하면서^ 다음을 지적하는 것이 그 당시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장 선진적인 이론에 의해 지도되는 당만이 전위투사의 역할을 완수할 수 있다.”(기초37-38)

 

레닌이 이론에 부여했던 커다란 중요성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내 주는 것은 아마도 레닌 외에는 어떤 사람도 맑스주의자들 사이의 반유물론적 경향에 대해 포괄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뿐 아니라 엥겔스의 시대로부터 그 자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가장 중요한 성과를 유물론적 철학을 기초로 하여 일반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과제를 떠맡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기초38)

 

2) 자생성의 이론에 대한 비판. 또는 운동에서 전위의 역할

 

자생성의 이론은 기회주의 이론이자 노동운동의 자생성을 숭배하는 이론이며 노동계급 전위, 노동계급의 당의 지도적 역할을 실질적으로 거부하는 이론이다. 자생성을 숭배하는 이론은 노동계급 운동의 혁명적 성격에 결정적으로 대립된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토대에 대항하는 투쟁 노선을 추구하는 운동과는 상반되며, 오로지 자본주의에서 허용될 수 있는요구, ‘실현가능한요구의 노선을 따라 진행되는 운동에 지지를 보낸다. 그것은 최소저항 노선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자생성의 이론은 노동조합주의 이데올로기이다.(기초39)

 

자생성을 숭배하는 이론은 자생적인 운동에 정치적으로 의식적 계획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에 결정적으로 반대한다. 그것은 당이 노동계급의 선두에 서서 나아가는 것에, 당이 대중들을 정치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에, 당이 운동을 지도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것은 운동이 그 자신의 경로를 취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운동이 지니는 정치의식적인 요소에 찬성을 보낸다. 그것은 당이 다만 자생적 운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의 꽁무니를 질질 끌려 다니는 것에 찬성한다. 자생성의 이론은 운동에서 의식적 요소가 갖는 역할을 경시하는 이론이자 추수주의’(대중)사상이며 모든 기회주의의 논리적 토대이다.(기초39)

 

실제로 러시아1차혁명 이전에 이미 무대에 등장했던 이 이론은 소위 경제주의자라 불리워진 그 이론의 신봉자들로 하여금 러시아에서 독립적인 노동자당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차르의 타도를 위한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에 반대하고, 운동에 있어서 순전히 노동조합주의적인 정책을 설교하고, 또 일반적으로 노동운동을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에 내맡겨 버리도록 이끌었다.(기초40)

 

나는 2인터내셔널의 지도자들에 의해 변조된 소위 생산력이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그것은 만사를 정당화시키고 모든 사람을 회유하며, 사람들이 신물이 나서 싫증을 내게 된 후에야 사실을 기록하거나 설명하고, 그것들을 기록하고 나서는 만족해 버린다. 맑스는 유물론은 세계를 설명하는 것에 머무를 수 없으며 세계를 변^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우츠키 일파는 이것에 유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맑스의 정식 첫 부분에 만족한 채 있고 싶어 한다.(기초40-41)

 

잘못생산력에 있다. 이것이 카우츠키씨의 생산력 이론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정확한 설명이다. 그리고 그 이론을 믿지 않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맑스주의자가 아니게 된다. 당의 역할은? 운동에 있어^ 그것들의 중요성은? 그렇다면 생산력의 수준과 같은 결정적 요소 앞에서 당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기초41-42)

 

3)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레닌의 이론은 세 가지 기본명제로부터 생겨난다. 첫째 명제. 발달한 자본주의국가에서의 금융자본의 지배, 금융자본의 주요한 기능 중의 하나로서 주식과 사채의 발행, 제국주의의 토대 가운데 하나인 원료산지로의 자본 수출, 금융자본의 지배의 결과인 금융과두제의 전지전능한 권력이 모든 것은 독점자본주의의 엄청난 기생성을 폭로해주며 자본주의적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의 멍에를 백배나 더 무겁게 만들며, 자본주의의 토대에 대한 노동계급의 분노를 격화시키며 나아가 대중들을 자신의 유일한 구원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인도하고 있다.(기초42)

 

이 사실로부터 첫 번째 결론이 나온다: 자본주의국가 내부에서는 혁명적 위기의 격화 그리고 ‘(식민지) 본국에서는 국내의 프롤레타리아전선에서 폭발 요소의 성장.(기초43)

 

두 번째 명제. 식민지와 종속국에 대한 자본수출의 증가, 그들이 전 지구를 장악하기까지 세력권과 식민지 소유의 팽창, 한줌의 선진국가에 의한 세계인구의 광범한 다수의 금융적 예속과 식민지적 억압이라는 세계체제로 자본주의의 전이이 모든 것은 한편으로는 분리된 민족경제와 민족영토를 세계경제라는 단일한 사슬 내의 고리로 변환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 지구의 전주민을 두 개의 진영광대한 식민지와 종속국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한줌의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제국주의의 멍에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식민지와 종속국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다수으로 분열시켰다.(기초43)

 

이 사실로부터 두 번째 결론이 나온다. 식민지국가에서 혁명적 위기의 격화와 국외의 식민지전선에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반란적 요소의 증대.(기초43)

 

세 번째 명제. ‘세력권과 식민지의 독점적 소유, 이미 영토를 강탈한 국가와 자신의 을 요구하는 국가 사이에 세계의 재분할을 위한 광적인 투쟁을 야기시키는 자본주의국가의 불균등 발전, 깨어진 균형을 회복하려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제국주의전쟁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내부 전선인 제3의 전선에서 투쟁을 격화시킨다. 이 전선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앞의 두 전선, 즉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전선과 식민지해방전선의 결합을 촉진시킨다.(기초43-44)

 

이 사실로부터 세 번째 결론이 나온다. 제국주의하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으며, 제국주의 세계전선에 대항하는 통일된 세계혁명전선에서 유럽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동방의 식민지혁명 사이의 결합은 필연적이다.(기초44)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제조건에 대한 분석이 대개 개별 국가의 경제상태라는 관점에서 접근되었다. 이제 이러한 접근은 더 이상 적합하지 못하다. 이제 문제는 모든, 혹은 대다수 국가가 갖는 경제상태라는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상태라는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기초44)

 

이제 우리는 하나의 완전한 전체로서 세계 제국주의경제의 전체계 속에서 혁명의 객관적 조건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만약 하나의 전체 체제라면,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하나의 전체 체제가 이미 혁명을 위해 성숙되어 있기 때문에, 이 체제 내부에 산업적으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몇몇 국가의 존재가 혁명에 대해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될 수는 없다.(기초45)

 

이제 우리는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본의 고립적인 일국전선은 제국주의의 세계전선이라는 하나의 단일한 사슬 내의 고리로 되었으며,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의 공동전선은 이것에 대항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오직 해당 국가의 내적 발전의 결과로만 여겨졌다. 이제 이러한 관점은 더 이상 적합하지 못하다. 이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일차적으로 제국주의 세계체제 내부에 있는 제모순의 발전의 결과로, 이런저런 국가에서 세계 제국주의전선의 사슬이 파괴되는 것의 결과로 여겨져야 한다.(기초45)

 

혁명은 어디에서 시작될 것인가?() 레닌주의 혁명이론은 반드시 산업이 더욱 발달되어 있는 곳들만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세계 제국주의전선의 사슬의 가장 약한 곳에서 돌파될 것이다. 그리고 혁명을 시작하여 자본의 전선을 돌파할 나라는 다른, 더욱 발전되어 있지만 여전히 자본주의의 체제 내에 남아 있는 나라들보다 자본주의적으로 덜 발전된 나라가 될 지도 모른다.(기초46)

 

비록 러시아가 이를테면 프랑스나 독일, 영국과 미국보다 자본주의적으로 덜 발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슬은^ 러시아에서 한층 약한 것으로 입증되었다.(기초46-47)

 

가까운 미래에 사슬은 어디에서 파괴될 것인가? 역시 가장 약한 곳에서. 사실이 이를테면 인도에서 끊어질지 모른다는 점이 배제될 수는 없다.() 사슬이 독일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점 또한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 ? 예를 들어 인도에서 작용하고 있는 요소들이 역시 독일에서도 작용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기초47)

 

간단히 말하면 제국주의전선이라는 사슬은 일반적으로 고리가 더 약한 곳에서 끊어질 수밖에 없으며 좌우간 반드시 자본주의가 더욱 발달된 곳, 이런저런 비율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이런저런 비율의 농민이 존재하는 곳들에서만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해당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인구의 비율에 관한 통계학적 평가는 제국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더욱이 혁명을 전염병처럼 무서워하는 제2인터내셔널 교조주의자들이 그토록 중요시하고 싶어했던 그 예외적 중요성을 상실해 버리게 된다.(기초48)

 

2인터내셔널의 주역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이에는 얼마간 오랜 걸리는 시간적 간격으로 인해 상호 분리된 금이나 만리장성이 존재하며, 그동안 부르주아지는 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에 대한 결정적 투쟁을 위해 힘을 축적하고 대비한다고 주장했다(또한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 간격은 대개 짧아도 수십년은 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 만리장성 이론은 제국주의의 조건 아래서는 과학적 의미를 완전히 결여하고 있으며, 단지 부르주아의 반혁명적 열망을 은폐하고 위장하려는 수단이라는 것은 논증할 필요가 거의 없다.(기초48)

 

충돌과 전쟁으로 가득 찬 제국주의의 조건 아래서, ‘번영하는^본주의가 사멸하는자본주의로 되고(레닌)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혁명운동이 성장하고 있는 사회주의혁명의 전야라는 조건 아래서, 제국주의 자신이 차리즘과 농노제까지 포함하는 모든 반동세력들과 예외 없이 동맹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서구 프롤레타리아 운동에서부터 동방의 민족해방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혁명세력의 연합이 절박한 것으로 되고 있는 시기, 봉건농노제적 유제의 제거가 제국주의에 대한 혁명적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게 된 시기 이런 조건 아래서 다소 발달된 나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은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전자는 후자로 전화해야 한다는 것은 논증할 필요가 거의 없다.(기초48-49)

 

왜 레닌은 영구(영속)혁명사상을 상대로 싸웠는가? 왜냐하면, 레닌은 농민의 혁명적 역량은 소모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들의 혁명적 에너지는 차리즘을 완전히 청산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전화하는 데 최대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면, ‘영구혁명의 신봉자들은 러시아 혁명에서 농민이 지닌 중대한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고, 농민이 가진 혁명적 에너지의 힘을 과소평가했으며 농민을 지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힘과 능력을 과소평가함으로써, 농민을 부르주아지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들을 프롤레타리아트 주위에 결집시켜내는 작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기초53)

 

또한, 레닌은 혁명이 프롤레타리아트로의 권력의 이전으로 최종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면에 영구혁명의 신봉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수립에 즉시 착수하기를 갈망했으며, 그렇게 함에 있어서 그들이 농노제의 유제와 같은 사소한 세부사항에 눈을 감고 있으며 러시아 농민층과 같은 중요한 세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는데 그러한 정책은 농민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지체시킬 뿐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기초53-54)

 

결국, 레닌이 연속성의 문제로 영구혁명의 신봉자들과 싸웠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레닌 스스로 연속혁명의 관점을 견지했지만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거대한 예비군인 농민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기초54)

 

a) 맑스는우리 러시아 영구론자들의 계획과는 반대로1840년대 독일혁명이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즉각적인 수립에 착수할 것을 결코 제안하지 않았다. b) 맑스는 오직, 혁명은 부르주아지의 부분을 권력의 결정으로부터 하나씩 서서히 쓰러뜨림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 권력을 획득한 후 모든 나라에서 혁명의 불을 지르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 국가권력의 확립으로 완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한 레닌이 제국주의의 조건 아래에서 혁명이론을 추구하면서 혁명과정에서 가르치고 수행했던 모든 것은 이 명제와 완전히 일치해 있었다.(기초55)

 

그러므로 우리의 러시아 영구론자들은 러시아 혁명에서의 농민의 역할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개념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영구혁명에 관한 맑^스의 사상을 (한층 나쁘게) 변경시켰고 이를 실제적으로 이용하는 데 부적합하게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이유로 레닌은 우리의 영구론자들의 이론을 독창적이고 훌륭한것이라 부르면서, ‘왜 십년 내내 세상이 이 훌륭한 이론을 못본 체하고 지나쳤는지 생각하기를거부하고 있다고 그들을 비난하며 이 이론을 비웃었다.(기초55-56)

 

이전에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모든 선진 국가, 또는 최소한 대다수 선진국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행동이 필요하다는 가정 하에서 일국에서 혁명의 승리는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제 이러한 관점은 더 이상 사실에 부합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승리의 가능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조건하에서 각각의 자본주의국가들이 지^닌 발전의 불균등성과 발작성, 필연적으로 전쟁을 초래하는 제국주의 내부의 종말적 모순의 격화,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의 성장이 모든 것이 개개 국가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의 가능성뿐 아니라 그 필연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부르주아지의 타도는 어떤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조건이 존재할 때만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있으며, 이것이 결여되어 있는 곳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장악이라는 문제는 있을 수조차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기초57)

 

그러나 일국에서 부르주아 권력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수립은 결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 이것을 위해서는 적어도 여러 국가에서의 혁명의 승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들의 혁명을 진전시키고 지원하는 것은 승리한 혁명의 필수적 과제이다. 그러므로 일국에서 승리를 거둔 혁명은 스스로를 자급자족하는 실체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앞당기는 지원세력이나, 수단^으로 간주해야 한다.(기초58)

 

4. 프롤레타리아독재

 

1)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도구로서 프롤레타리아독재

 

프롤레타리아 혁명, 그것의 운동, 그것의 진로와 성과는 오직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통해서만 피와 살을 얻는다. () 이는 첫째로 타도된 착취자들의 반항을 분쇄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과물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둘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완성해내고 혁명을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로 이끌기 위해 만들어졌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없다 하더라도 부르주아지를 패퇴시킬 수 있고 그 권력을 타도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이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자신의 주요한 대들보로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형태로 특별한 기관을 창출하지 않는다면, 혁명은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분쇄할 수 없으며, 그 승리를 유지하고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로까지 밀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기초60-61)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일국에서 타도된 부르주아지는 장기간, 이를 타도한 프롤레타리아보다 여전히 강력하다. 그러므로 전반적인 목표는 권력을 획득하여 강화하고 이를 정복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기초61)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승리한 직후에프롤레타리아독재가 직면하게 되는 적어도 세 가지 주요과제를 실행할 필요가 있다. a) 혁명으로 타도되어 재산을 몰수당한 지주와 자본가들의 저항을 분쇄하고, 그들의 일부에서 자본의 권력을 회복하려는 모든 시도를 일소하는 것. b) 프롤레타리아트 주위에 모든 근로인민을 결집하는 방법으로 건설을 조직하고, 이러한 사업을 계급의 폐지, 소멸에 대비하는 노선을 따라 실행하는 것. c) 국외의 적에 대한 투쟁,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해 혁명을 무장시키고 혁명군대를 조직하는 것.(기초61)

 

타도당한 부르주아지의 힘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 “국제적인 자본의 힘에, 부르주아지의 국제적 연결이 갖는 힘과 그 지속성에.” 둘째, “혁명 이후에도 오랫동안 착취자들은 필연적으로 많은 거대한 실제적 이점을 갖고 있는 바, 여전히 돈(화폐를 한꺼번에 모두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과 약간의종종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동산을 갖고 있고, 여전히 다양한 연고관계, 조직과 관리의 기질, 관리의 모든 비법(관습, 방법, 수단 및 가능성)에 관한 지식, 고등교육, (부르주아처럼 생활하고 사고하는) 고급 전문인과의 밀접한 관계, 전쟁기술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경험(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등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셋째, “관습의 힘, 소생산이 갖는 힘에. 왜냐하면, 불행하게도 소생산은 여전히 세계에 매우, 매우 광범하게 퍼져있으며, 소생산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를 계속해서, 매일, 매시간, 자생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발생시키기 때문에왜냐하면 계급의 폐지는 지주와 자본가를 축출하는 것우리가 비교적 쉽게 성취했던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소상품생산자를 근절시키는 것을 뜻하며 그들은 축출될 수도 분쇄될 수도 없으므로 우리는 그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하고,^ 그들은 오직 매우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이고 신중한 조직사업을 통해서만 개조되고 재교육될 수 있기(또한 되어야 하기)” 때문에.(기초63-64)

 

이런 이유로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더 강력한 적, 자신이 타도됨으로써 열배로 저항을 증대시키는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새로운 계급이 수행하는 가장 결정적이고 가장 무자비한 전쟁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구 사회의 세력과 전통에 대한 유혈이든 무혈이든, 격렬하든 평화적이든,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교육적이든 행정적이든완강한 투쟁이다.”(기초64)

 

거의 논증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과제들을 단시간에 실행하고 수년 내로 이 모든 것을 성취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독재, 즉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초혁명적행동과 법률로 이루어지는 덧없는 시기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며, 내전과 외환, 지속적인 조직사업과 경제 건설, 진보와 후퇴, 승리와 패배로 점철된 하나의 완전한 역사적 시기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시기에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한 경제적 문화적 선결조건들을 창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첫째, 자신을 교육하여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세력으로 단련되는 것, 둘째,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화를 보장하는 노선을 따라 부르주아층을 재교육시키고 개조하는 것이 요구된다.(기초64-65)

 

2)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로서 프롤레타리아독재

 

멘셰비키와 모든 나라의 기회주의자들은 독재를 마치 불처럼 무서워하고 깜짝 놀라서 독재라는 개념을 권력장악이란 개념으로 대체하고, 대개 이 권력장악내각으로 교체, 즉 샤이데만과 노스케, 맥도날드와 헨더슨 같은 사람들로 구성되었던 새 내각의 권력획득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자본이 허상의 도움 없이 대중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불편하고 무익하고 곤란하다는 것을 깨닫고서, 자본은 허상과 같은 정부를 필요로 한다.(기초66)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정부의 교체가 아니라 중앙과 지방 모두에 새로운 권력기관을 갖는 새로운 국가이다. 그것은 낡은 국가, 즉 부르주아지의 국가의 붕괴 위에 세워진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가인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부르주아적 질서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 질서의 파괴 과정에서, 부르주아지를 타도한 이후 지주와 자본가의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주요한 생산도구와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과정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한 무력행사를 바탕으로 한 혁명권력이다.(기초67)

 

국가는 지배계급의 수중에 있는, 계급의 적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기구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어떤 다른 계급의 독재와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국가는 부르주아지를 억압하기 위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계급국가는 다수 피착취자에 대한 착취하는 소수의 독재였던 반면에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착취하는 소수에 대한 다수 피착취자의 독재라는 사실에 있다.(기초67)

 

첫째 결론.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완전한민주주의와, 가난한 자뿐만 아니라 부유한 자까지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새로운 방식으로 민주주의적이며(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비유산자를 위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부르주아지에 대해) 독재적인 국가여야 한다.” 보편적인 평등, ‘순수한민주주의, ‘완전한민주주의와 같은 것들에 대한 카우츠키 일파의 이야기는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에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부르주아적 위장이다. ‘순수민주주의 이론은 제국주의 강도들에 의해 길들여져 있고 부양되고 있는 노동계급 상층의 이론이다.(기초68)

 

자본주의 하에서 민주주의는 자본가의 민주주의이며, 피착취자 다수의 권리제한에 기반을 두고 이 다수에게 반하며 착취하는 소수의 민주주의이다. 오직 프롤레타리아독재 하에서만 피착취자를 위한 진정한 자유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국가통치에의 진정한 참여가 가능하다. 프롤레타리아독재 아래서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주의, 착취하는 소수에 대한 권리제한에 기반을 두고 이 소수에 대항하는 피착취 다수의 민주주의이다.(기초69)

 

두 번째 결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사회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평화로운 발전의 결과로써 생성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부르주아 국가기구, 부르주아 군대, 부르주아 관료기구, 부르주아 경찰을 타도한 결과로써 생성될 수 있다.(기초69)

 

폭력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법칙, 그러한 선행조건이기도 한 부르주아 국가기관을 분쇄하는 법칙은 세계 제국주의 국가들 내의 혁명운동의 필연적인 법칙이다. 물론 먼 미래에 만약 프롤레타리아트가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또 만약 현재의 자본주의의 포위가 사회주의의 포위로 뒤바뀐다면 평화적인발전의 길은 특정한 자본주의국가에서 확실히 가능하며, 이들 국가의 자본가들은 불리한국제정세로 인해 자진하여프롤레타리아트에게 실제적으로 양보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가정할만한 그 어떤 근거도 없다.(기초71)

 

3) 프롤레타리아독재의 국가형태로서 소비에트 권력

 

조직의 낡은 형태들과 비교하여 소비에트의 힘은 어디에 있는가? 소비에트만이 모든 노동자들을 예외 없이 포용하므로 소비에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포괄적인 대중조직이라는 점에. 소비에트는 모든 피억압피압박노동자와 농민, 병사와 수병을 결합시키는 유일한 대중조직이며, 이러한 이유로 대중들의 전위,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안에서 대중투쟁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지도력을 가장 쉽게 가장 완전하게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 소비에트는 대중들의 혁명투쟁, 대중들의 정치적 행동, 대중봉기의 가장 강력한 기관금융자본의 전능과 그 정치적 부속물을 파괴할 수 있는 기관이라는 점에. 소비에트는 대중들 자신의 직접적 조직이라는 점, 즉 그것은 새로운 국가의 건설작업과 국가행정에 대중의 참여를 최대한 촉진하고 구질서의 파괴를 위한 투쟁과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적 질서를 위한 투쟁에서 대중들의 혁명적 에너지와 진취적창조적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하게 하는 가장 민주주의적이고 따라서 가장 신뢰할 만한 대중조직이라는 점에.(기초72-73)

 

소비에트 권력은 지방소비에트들을 하나의 공동의 국가조직으로, 즉 피압박피착취대중의 전위이자 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가조직으로 연합하여 수립한 것소비에트공화국연방이다. 소비에트권력의 본질은 정확하게 말해서 자본가와 지주에 의해 착취받은 바로 그러한 계급들의 이러한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혁명적인 대중조직이 현재 국가의 전()권력과 전 국가장치의 영속적이고 유일한 기초라는 사실, “심지어 가장 민주적인 부르주아 공화국에서조차법 앞에서 평등함에도 실제로는 수천가지의 음모와 책략에 의해 정치생활에 참여하고 민주주의적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지 못했던 바로 그러한 대중들이 이제는 확실히 국가의 민주적 행정에 지속적이고 더욱이 결정적으로 참여하게 된^는 사실에 있다.(기초73-74)

 

소비에트 권력의 특징은 어디에 있는가? 소비에트 권력은 계급이 존속하는 한 있을 수 있는 모든 국가조직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민주적인 국가조직이라는 점에. 왜냐하면 착취자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노동자와 피착취농민 사이에 연대와 협력의 장이 존재하고 또 자신의 사업에서 스스로 이러한 연대와 협력에 기초하고 있는 바, 소비에트는 따라서 소수에 대한 다수의 권력, 다수의 국가이며, 다수의 독재를 표방한 것이기 때문에.(기초74)

 

소비에트 권력은 계급사회에서 존재하는 모든 국가조직 중에서 가장 국제주의적이라는 점에. 왜냐하면 모든 종류의 민족적 억압을 소멸시키고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 근^로대중들 간의 협력에 의거함으로써 소비에트는 이들 대중들의 연대를 단일의 국가연합으로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권력은 바로 그 자체의 구조를 통해서 이들 대중의 전위소비에트 내의 가장 단결되고 정치적으로 가장 의식적인 핵심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피압박피착취대중을 지도하는 임무를 촉진시킨다는 점에.(기초74-75)

 

소비에트 권력은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을 단일한 국가조직으로 결합시키고 지역적 선거구를 산업 단위, 공장과 제작소로 대체함으로써 전반적으로 노동자와 근로대중을 국가 행정기구와 직접 연결시키고 그들에게 국가를 통치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점에. 소비에트 권력만이 군대를 부르주아지의 지휘권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으며, 부르주아 질서 하에 있는 인민의 억압기구를 국내외 부르주아지의 지배로부터 인민의 해방을 위한 기구로 전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소비에트 국가조직만이 낡은, 즉 부르주아적 관료기구와 사법기구를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분쇄하고 최종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는 점에.(기초75)

 

소비에트 국가형태만이 고통스럽게 일하는 사람들과 피착취자의 대중조직을 국가행정에 지속적이고 무제한적으로 참여시킴으로써 미래의 국가 없는 공산주의사회의 근본요소 중의 하나인 국가의 소멸을 위한 토대를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기초76)

 

그러므로 소비에트공화국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적 해방과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완수할 수 있는 구조 중에서 오래 동안 탐색되어 최종적으로 발전된 정치형태이다. 파리 코뮌은 이 형태의 맹아였으며 소비에트 권력은 그것의 발전이자 완결이다.(기초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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