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유물변증법

유물변증법

작성자홍승용|작성시간16.12.06|조회수446 목록 댓글 0

첫 세미나에서는 참가자들이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자료는 준비하는 것이 좋을 듯해 몇자 씁니다.


유물변증법

 

1

 

유물변증법은 유물론과 변증법을 결합하는 개념이다. 유물론과 변증법은 이미 오래 전부터 따로 있어왔다. 양자를 결합함으로써 질적 변화를 이루어낸 공로는 물론 맑스와 엥겔스의 몫이다. 유물론과 변증법을 묶어놓는 조어법은 흔히 아는 바와 같이 두 가지가 있다. 유물변증법과 변증법적 유물론이 그것이다. 유사한 의미를 지니지만, 양자의 무게중심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유물변증법은 관념변증법과 대조된다. 헤겔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 관념론을 비판하되 그의 변증법을 받아들이는 맥락에서는 유물변증법이라는 개념이 적합하다. 반면에 변증법적 유물론은 포이어바흐를 통해 견실하게 뿌리 내린 유물론의 비변증법적 성격을 비판하고 그 유물론적 요소를 수용하는 취지에 적합한 면이 있다.

 

어느 쪽이든 엄정한 현실인식에 근거하며, 현재의 지배질서를 고정불변이라고 보지 않는 점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명칭이 발산하는 동구 관변철학의 분위기를 걷어내고 보면 양자의 구분은 본질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본 세미나에서는 유물변증법이나 변증법적 유물론을 근거로 삼는 주요 텍스트들을 개별적으로 검토하고 그 의의와 문제점들을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2

 

현재의 지배질서가 영구불변의 법칙이나 숙명이 아니라 주체들의 노력에 의해 근본적으로 변혁될 수 있다는 유물변증법의 기본 관점은 지배자들보다 피지배자들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 없이 현 지배질서를 숙명으로 받아들인다면 지배질서의 변화를 위한 피지배자들의 적극적 노력은 불가능할 테고, 이는 지배자들이 바라 마지않는 바이기도 하다.

 

유물론이 본래부터 피지배자들과 결합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국의 경우 유물론은 출발단계에서 귀족적 성격을 띤 것으로서 지배층에 봉사할 수 있었다. “홉스와 함께 그것은 왕의 전능함의 옹호자로서 무대에 등장했으며, 절대군주에게 저 튼튼하긴 하지만 심술궂은 녀석들, 즉 인민들을 억압하라고 호소했다.”(유토422) 그러나 프랑스에 전파된 유물론은 백과전서파를 통해 대중화되고 더구나 대혁명 동안에는, 영국의 왕당파들이 세상에 내놓은 이 학설이 프랑스의 공화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에게 이론적 깃발을 제공했으며 인권선언의 대본을 제공했을 정도였다.”(유토423) 그럼에도 유물론은 포이어바흐에 이르기까지 기계론과 형이상학적 사고방식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반면에 헤겔의 변증법은 비록 관념론이지만 뒤집혀진 유물론으로서 이미 변혁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다. 엥겔스가 평가하는 바에 따르면 헤겔의 체계에 이르러서 처음으로그리고 이것은 그의 위대한 공적이다자연적, 역사적, 정신적 세계 전체가 하나의 과정으로서, 즉 끊임없는 운동, 변화, 변형, 발전 속에 있는 것으로서 파악되어 서술되었고, 이 운동과 발전의 내적 연관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유토450-451) 이런 평가에 근거해 엥겔스는 헤겔의 관념론과 더불어 변증법까지 내버린 포이어바흐를 비판하고 유물론과 변증법의 혁명적 결합을 꾀하며, 이는 그의 주요 저술들을 통해 구현된다. [자본론]을 비롯한 맑스의 경제학적 정치적 저술들 역시 유물변증법적 사유방법을 떠나서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3

 

맑스와 엥겔스의 저술들이 인간해방운동에 끼친 지대한 영향과 관련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의 운동과 이론은 그들을 통해 완성된 것이 아니며, 현실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포함하고 이를 넘어서는 장구한 노정에 들어서 있다. 즉 맑스와 엥겔스 이후에도 유물변증법은 운동의 전개과정에 따라 좀 더 세분화되고 재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논의가 한 걸음 진전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론이 처한 역사적 정치적 지형에 따라 다시 형이상학이나 관념론으로 후퇴하거나 현실의 풍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단순화될 수도 있었다. 레닌이나 스탈린 혹은 마오쩌둥, 트로츠키와 루카치, 코르쉬와 사르트르, 아도르노와 마르쿠제 혹은 벤야민 등이 남긴 유물변증법적 텍스트들은 해방운동의 새로운 국면들을 반영하지만, 그것이 꼭 이론적 진전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해방논리로서의 유물변증법은 해방운동과 함께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아직도 성장 중에 있는 유물변증법을 의식한다면, 유물변증법의 전통적인 테두리를 허물거나 그로부터 한 발 벗어나 있는 이론들로부터도 생산적인 자극을 받는 데에 인색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데리다나 라캉 혹은 지젝처럼 헤겔에 다가서 있는 이론가들만 아니라, 알튀세르나 들뢰즈 등의 주요 반-헤겔주의 이론가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살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이론들과의 대결은 유물변증법의 활력을 높이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리라고 기대된다. 이 경우 외견상 불필요한 혼선과 에너지의 비효율적 소비를 감수해야 하리라고 예상된다. 그러나 각각의 이론들로부터 결코 생략하기 어려운 특유의 통찰들을 얻어내리라고 함께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4

 

유물변증법은 인간해방이라는 목적지로 항해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장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유물변증법의 주요 성능 가운데에는, 아도르노의 논법을 끌어들이자면, 장비 자체를 수시로 점검하는 메커니즘도 포함되어 있다. 이미 유물변증법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맑스나 엥겔스의 텍스트들에 근거해 현대의 이론들을 점검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현대사회에 와서 가능해진 문제의식에 비추어 맑스와 엥겔스의 저술들을 다시 읽을 필요도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특정 인식들을 일반화하여 그것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논의의 안정성에 비례해 유물변증법 본연의 역동성과 다면성은 위축될 것이다. 이런 위험을 피하자면 특권적 일반화는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아도르노는 사태에 대한 충실성을 유물변증법의 최소조건으로 내세우며, 모순과 내재비판, 그리고 진리는 전체다를 대체하는 짜임관계 정도를 그 보완물로 삼는다. 그의 경우 유물론과 관념론의 엄격한 구분이나 부정의 부정, 양질전환, 혹은 정반합 등의 공식들조차 그다지 확고한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 이로써 현실사회주의 국가철학의 위신은 손상되겠지만 유물변증법의 현실대응력은 한 차원 확대된다. 그러나 유물변증법의 최소조건에는 해방의 욕구를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해방의 욕구에 기초한 사태와의 정면대결이라는 불빛에 비춰 주요 텍스트들을 한 구절씩 뜯어본다면, 분명 유물변증법의 성장과정에 보탬이 될 만큼은 새로운 단면들이 드러날 것이다.

 

일단 맑스와 엥겔스의 텍스트에서 시작하자. 충실히 학습하는 데에 머물지 말고 논쟁을 통해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 보자. 먼길 가기도 그렇게 시작하는 것 아닌가.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