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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하고 강직한 정치인의 전범(典範)이었던 예춘호(芮春浩) 선생의 목촌문고(牧村文庫)

작성자여해(예용희)|작성시간26.06.17|조회수1 목록 댓글 0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68) 청렴하고 강직한 정치인의 전범(典範)이었던 예춘호(芮春浩) 선생의 목촌문고(牧村文庫) - 청도신문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이서면 대전리 의흥예씨 대종회관에 자리 잡고 있는 목촌문고(牧村文庫)를 찾았다. 

2011년에 설립된 이 문고는 의흥예씨 대종회 초대 회장(1994년)을 역임한 목촌 예춘호(牧村 芮春浩, 1927〜2020)선생이 문중에 기증한 만여 권의 도서로 설립했다.

문중 도서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목촌문고의 장서를 보면 역사, 철학 및 사상, 현대소설, 세계문화, 민속문화, 인문학 등 다양한 부문의 전문 서적이다.


의흥예씨 대구 종친회장 종만(鍾萬)은 ‘목촌문고기’에서 “이 문고는 현대사의 자료를 얻을 수 있고 각종 문헌을 통하여 학문의 심도를 높일 수 있다. 
또 문헌을 통하여 자료 수집, 자료 보존, 자료 열람이라는 도서관 고유의 목적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광해 전 대종회장은 “앞으로 이곳에 종원들이 소장하거나 편찬한 도서들도 확충하여 명실상부한 문중 문고가 되었으면 한다.” 고 했다.


이 문고가 설립된 의흥예씨 대종회관은 2001년도에 옛 대전초등학교 건물을 의흥예씨 대종회가 매입하였으며 대지 2370평에 건평이 279평이다. 이곳은 선대들을 위한 위선(爲先)사업, 종친들의 회의 및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목촌공은 의흥예씨 중시조인 고려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부계군(缶溪君) 낙전(樂全)의 23세손이다. 세조 때 대사간(大司諫)의 직책으로 국정의 전면 개혁을 촉구하는 상소를 올렸던 승석(承錫)이 16대조, 경주부윤(慶州府尹) 재임시 에밀레종을 복원하고 연산군의 채홍준사(採紅駿使)를 거부했던 충년(忠年)이 15대조, 임진왜란 때 창의한 의병장 몽진(夢辰)이 10대조이다.


공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63년 부산 영도에서 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공화당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이어서 7대 때는 국회 상공위원장을 맡던 중 대통령 3선 개헌 반대로 공화당에서 제명되었다. 

그 뒤 복당하였으나 유신체제(維新體制)를 강행하자 반대선언을 한 뒤 곧바로 재야(在野)에 뛰어들어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그 뒤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신군부가 내란 음모죄로 기소하는 통에 국회의원직이 삭탈되었으며 2년여 옥고를 치렀다. 1982년 가출옥 한 뒤에도 적극적으로 민주화 투쟁에 몰두하였고 수 백명 교수, 재야지도자, 학생 청년 운동가들이 참여한 한겨례 사회연구소 이사장을 맡았으며 김대중, 김영삼 양 김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촉구 국민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았다. 


한겨레 민주당을 창당 상임공동대표를 지냈으며 1991년 사단법인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이사장, 2008년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사업회 고문, 2009년 대한민국 국민 원로회의 위원을 역임했다.


전 국무총리이며 서울대학교 총장이었던 정운찬(鄭雲燦)은 ‘예춘호 선생 기적 비명’에 “한국의 혼탁한 정치사에서 선생처럼 나설 때와 물러 설 때를 분명히 하여 처신한 정치인을 달리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선생을 통해 분단 시대에 고뇌하는 인간상을 보았고 굳센 의지와 청렴하고 강직한 소신으로 삶을 일관한 정치인의 전범(典範)을 실감한다.” 고 했다.


이날 일족인 재호(載浩, 의흥 예씨 족보편찬위원장), 병순(秉珣, 전 청도향교 전교), 광해(光海, 현 청도향교 전교, 전 의흥예씨 대종회 회장), 성해(性海, 의흥예씨 대종회 전 재무 위원장), 재두(載斗, 전 의흥예씨 대종회장), 우해(友海, 전 교장, 의흥예씨 대종회관 관리위원장), 윤희(潤熙, 의흥 예씨 대종회 전 사무총장)씨가 여러 자료를 기반으로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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