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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환율 1501의 밤 누가 신뢰를 죽였는가

작성자이름다리이슬|작성시간26.06.08|조회수24 목록 댓글 0

※ 이 내용은 현실의 외교·경제·선거 사안에서 착안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등장인물, 대화, 사건 전개는 모두 창작이며 실제 인물 및 기관과 무관한 추리소설입니다.

 


시체는 숫자였다.
모니터 위에 선명하게 찍힌 1,501.30.
원·달러 환율. 살아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이미 무언가가 죽고 난 뒤에 남는 숫자였다. 베테랑 경제부 기자 노재원은 화면 앞에 서서 오래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십삼 년 경력 동안 그는 숫자 하나로 사람의 삶이 바뀌는 것을 숱하게 봐왔다. 그러나 이 숫자는 달랐다.
이건 사고가 아니야. 누군가 이 나라의 신뢰를 조각조각 잘라낸 거야.
그는 수첩을 꺼내 첫 줄에 썼다.
피해자: 대한민국의 신뢰.
용의자: 미정.
동기: 수사 중.


국가안보연구원 수석연구위원 한이준은 탐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라가 무너지는 냄새를 맡는 데는 어떤 탐정보다 예민했다. 그는 오십사 세였고, 외교부에서 이십 년, 연구원에서 십 년을 보냈다. 세 번의 정권 교체를 겪었고, 두 번의 외환위기를 지켜봤으며, 중동 협상 테이블에 다섯 번 앉아봤다.
기자 노재원이 그를 찾아온 것은 6월 4일 오후였다.
"선생님, 이번 사태 —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죠?"
한이준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경제 문제인 사건은 없어요. 경제는 언제나 결과입니다. 원인은 따로 있어요."
"그 원인이 뭔지 추적하려고 합니다."
"좋아요." 한이준이 의자를 당겼다. "그럼 처음부터 시작합시다. 용의자 목록부터."


한이준은 메모지를 꺼냈다.
"장관님, 작년 십일월 워싱턴에서 하신 말씀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같은 편입니다.' 올해 삼월 테헤란에서는 '우리는 어느 편도 아닙니다.' 넉 달 사이에 입장이 바뀐 이유가 무엇입니까?"
강민준은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
"외교는 유연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함과 불일관성은 다릅니다." 한이준이 끊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올해 상반기에만 코스피에서 순매도한 금액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침묵.
"이십이조 원입니다. 그들이 이유를 묻는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뭔지 아십니까?"
강민준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Unpredictable.' 예측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한이준은 메모지에 적었다.
강민준 — 알리바이 불충분. 동기 있음. 그러나 단독범은 아님.


노재원이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체육관 바닥에는 아직 사람들이 기다리다 남긴 흔적들이 있었다. 물병, 접이식 의자, 누군가 흘린 커피 자국.
선관위 직원 정다희 — 스물아홉 살, 임시직 — 는 구석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노재원이 다가가 말을 건넸다.
"용지가 왜 모자랐습니까?"
정다희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저도 모릅니다. 수치를 보고했는데, 윗선에서 수량 조정이 있었대요. 저는 그냥 배정받은 대로—."
"윗선이 어디입니까?"
"그건… 저는 모릅니다."
노재원은 메모했다.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결정하지 않은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결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는 한이준에게 전화했다.
"선생님, 이건 단순 행정 실수가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군가 결정했거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결정한 겁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한이준이 말했다.
"두 번째가 더 무서운 거예요."


한이준이 공단 투자위원회 자문위원 류상진 을 만난 것은 비공개 자리였다.
"환 헤지 물량을 시장에 풀기로 한 결정, 누가 최종 승인했습니까?"
류상진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기재부 요청이 있었고, 이사회가—."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판단했습니까, 아니면 요청을 수용했습니까?"
긴 침묵.
"…요청의 강도가 강했습니다."
한이준은 펜을 내려놓았다.
"류 위원님, 국민연금은 누구의 돈입니까?"
"국민의—."
"그렇습니다. 그 돈을 외환시장 방파제로 쓰는 결정을 국민은 알고 있었습니까?"
류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긴급 입수 자료: 주이스라엘 한국 대사관 내부 전문, 6월 1일자.
노재원이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문서를 받은 것은 밤 열한 시였다.
원본은 아니었다. 누군가 손으로 옮겨 쓴 것이었다. 그러나 내용은 명확했다.
"이스라엘 측 카운터파트, 한국의 이중 메시지에 대해 공식 항의 의사 표명. 한국이 이란 측에 별도 채널로 다른 입장을 전달한 정황 포착. 신뢰 파트너십 재검토 가능성 시사."
노재원은 그것을 한이준에게 보냈다.
한이준의 답장은 두 줄이었다.
"예상했습니다. 이게 빠진 퍼즐 조각입니다. 외교의 이중성이 확인되는 순간, 시장은 반응했고, 투표소는 흔들렸고, 연금은 동원되었습니다. 모두 한 몸입니다."



강민준 장관이 다시 증인석에 앉았다.
질문은 야당 의원 김수안이 맡았다. 그녀는 변호사 출신이었다. 질문이 아니라 해부였다.
"장관님, 2025년 9월 뉴욕 유엔총회에서 중동 관련 발언과, 2026년 2월 이란 외무장관과의 면담 내용이 상충합니다. 어느 쪽이 대한민국의 공식 입장입니까?"
"상황에 따른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전략적이라면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김수안이 서류를 들었다. "이쪽에서는 A를 말하고, 저쪽에서는 B를 말하는 것은 전략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또는 무능입니다. 어느 쪽입니까?"
방청석이 술렁였다.
강민준은 잠시 눈을 감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이준은 방청석 뒷줄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는 수첩에 적었다.
단독범 없음. 공범 구조 확인. 주범은 사람이 아니라 — 시스템.


그날 저녁, 한이준과 노재원은 마포의 작은 술집에 앉았다.
소주잔이 두 개 놓였다. 한이준이 먼저 말했다.
"범인 찾았어요?"
노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습니다. 그런데 체포할 수가 없어요."
"왜요?"
"얼굴이 없으니까요."
한이준이 잔을 들었다.
"맞아요. 이번 사건의 진범은 특정 인물이 아닙니다. 진범은 습관이에요. 외교에서 오늘 한 말을 내일 뒤집는 습관. 책임질 사람이 없도록 구조를 만드는 습관. 위기가 오면 가장 약한 곳 — 국민의 연금, 국민의 한 표 — 을 먼저 동원하는 습관."
노재원이 조용히 물었다.
"그 습관은 어디서 시작됩니까?"
"꼭대기에서요." 한이준이 잔을 내려놓았다. "외교는 왔다갔다가 아니라 일관된 신뢰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꼭대기에 있을 때, 그 아래 모든 것이 범죄 현장이 됩니다. 의도 없이."
"의도 없는 범죄."
"가장 잔인한 종류의 범죄예요."
두 사람은 말없이 잔을 부딪혔다.
창밖으로 한강이 흘렀다. 물은 몰랐다. 강물은 언제나 흘렀고, 그 위에 어떤 나라가 서 있든 상관하지 않았다.


사건 번호: 미정.
피해자: 대한민국 국민의 신뢰.
피의자: 시스템, 습관, 그리고 무책임.
판결: 계류 중.

노재원의 기사는 6월 8일 새벽에 출고되었다. 제목은 길었다.
〈누가 1501을 만들었는가 — 외교의 이중성, 선거의 균열, 연금의 동원: 하나의 사건, 세 개의 현장〉
기사는 포털 메인에 여섯 시간 동안 머물렀다.
댓글은 사천 개가 넘었다.
그 중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은 단 열두 글자였다.
"범인은 잡혔는데 감옥이 없네요."
한이준은 그 댓글을 보고 수첩을 덮었다.
감옥을 만드는 것. 그게 다음 사건이겠지.
그는 새 수첩을 꺼내 첫 장을 폈다.

수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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