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내용은 허구입니다. 등장인물·기관·사건은 모두 창작이며
실존 인물·단체와 무관한 추리소설입니다.
강민준이 외환위기대응반 임시사무소의 문을 밀고 들어선 건 새벽 여섯 시 직전이었다. 창밖으로 참새 울음이 들렸다. 도시가 아직 잠든 시간에도 새들은 늘 먼저 깨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오늘 아침 배달된 조간신문이 펼쳐져 있었다. 1면 하단의 기사 제목이 눈에 박혔다.
「원화, 인도네시아 루피아 아래로 추락 — 아시아 최약체 불명예」
그는 외투를 벗지도 않고 앉아 파일을 열었다. 의뢰인은 기획재정부였다. 정확하게는, 기획재정부 내 누군가였다.
'단순한 시장 논리가 아닙니다. 누군가 개입하고 있어요.'
의뢰 메모에는 그 한 줄뿐이었다. 보낸 이는 익명이었다.
수사 파일 #001 — 초기 단서
원화 가치, 3주 연속 이례적 하락세
정부 공식 입장: "일시적 현상, 시장 안정적"
익명 제보자 — 기재부 내부 인사 추정
대통령 외교 발언 직후 외환시장 급변동 포착
첫 번째 참고인은 외환정책과 서기관 한도현이었다. 마흔둘의 나이에 비해 눈빛이 지나치게 피곤해 보였다. 그는 강민준이 앉기도 전에 말을 시작했다.
"환율은 결국 신뢰입니다. 외교가 흔들리면 시장이 먼저 반응해요. 투자자들은 말보다 빠릅니다."
"대통령 발언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스라엘 관련 건."
"공식 석상에서 특정 국가를 전범으로 지목하다니." 한도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리 수출 바이어 중 그쪽 연계 기업이 몇 곳인지 아십니까. 그날 오후부터 문의가 뚝 끊겼어요."
강민준은 수첩에 짧게 적었다. 외교 발언 → 시장 반응 — 우연인가, 설계인가.
두 번째 참고인을 만난 곳은 여의도의 한 커피숍이었다. 전직 청와대 경제보좌관 임수진. 퇴임 후 민간 연구소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여전히 정부 안쪽을 향해 있었다.
"내수 살린다며 세금 풀겠다는 거, 아시죠?" 그녀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단기 처방이에요. 곳간에서 씨앗 꺼내 먹는 거죠. 근본을 못 건드려요."
"그렇다면 근본은 뭡니까?"
"한미 외교 일관성. 수출길." 임수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동맹에게조차 예측 불가능한 나라가 되고 있어요.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다른 나라와 누가 장기 계약을 맺겠어요."
강민준은 창밖의 한강을 바라봤다. 강물은 유유했다. 그 위에 무언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수사 파일 #002 — 용의 구도
외교 불일관 → 동맹국 신뢰 붕괴 → 수출 계약 이탈
무분별한 재정 살포 → 장기 재정 체력 소진
핵심 질문: 고의적 설계인가, 단순 무능인가
익명 제보자는 왜 외부 탐정을 불렀는가
사흘째 밤, 강민준은 혼자 사무소에 앉아 있었다. 전등 하나만 켜둔 채 서류들을 펼쳐놓았다. 까마귀 한 마리가 건물 처마 어딘가에서 울었다. 길고 낮은 울음이었다.
그는 천천히 종이 한 장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범인은 한 명이 아니다. 구조가 범인이다. 경솔한 언어를 감정으로 내뱉는 지도자, 단기 처방으로 환심을 사려는 관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괜찮다'고 보고하는 시스템. 원화는 그 구조의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 가라앉고 있었다.
그가 쓴 마지막 줄은 수사 결론이 아니었다. 오히려 질문이었다.
"이 나라의 앞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새벽빛이 스며들 무렵, 참새들이 다시 울기 시작했다. 강민준은 외투를 집어 들었다.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