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각색한 추리소설입니다.
형사 지훈은 담배 연기 너머로 대구 중구 선거관리위원회 청사를 바라보았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관공서였지만, 그 이면은 이미 곪을 대로 곪아 터지기 직전이었다.
불과 이틀 전, 총선 사전투표 현장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졌다. 특정 투표소의 투표지가 통째로 사라지거나 부족해져 유권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다 돌아가는 '투표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선거의 공정성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닙니다, 선배님."
후배인 연우 경장이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화면에는 한 누리꾼이 제보한 짧은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사태가 터진 당일 오후 3시, 청사 3층에서 촬영된 영상입니다."
렌즈의 초점이 흐릿하게 잡히더니, 이내 한 남자의 실루엣이 선명해졌다. 남자는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투명한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결재 서류가 아니었다. 매끄럽게 뻗어 나간 아이언 골프채. 남자는 경쾌한 스윙을 날린 뒤, 만족스러운 듯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근무 시간에, 그것도 전 국민이 투표지 분실로 분노하고 있던 그 시각에 골프 연습이라니……." 지훈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이 자가 누구지?"
"선관위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핵심 관계자, 박 과장입니다."
지훈과 연우는 여론조사 기관을 운영하는 데이터 분석가 수현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녀는 이번 사태의 배후에 단순한 '기강 해이' 이상의 거대한 음모가 숨겨져 있다고 믿고 있었다.
"형사님, 이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닙니다. 이 영상이 공개된 후, 국민들의 여론은 단순한 비난을 넘어 '제도의 파괴'를 향하고 있어요."
수현이 화이트보드에 전국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적어 내려갔다.
**[사건 관련 여론조사 데이터]**
* **선관위 해체 찬성:** **70.4%** (지역, 연령 불문 압도적 다수)
* **사전투표제 폐지 찬성:** **53.3%** (4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 과반)
"보이시나요?" 수현이 펜으로 70.4%라는 숫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선관위 해체 찬성이 70%를 넘었습니다. 특히 여성과 고령층, 특정 정당 지지층에서 이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나요. 그리고 사전투표제 폐지 여론이 과반을 넘겼죠."
지훈은 팔짱을 끼고 숫자를 노려보았다. "마치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흘러가는군."
"맞습니다." 수현이 목소리를 낮췄다. "투표지를 고의로 누락시켜 혼란을 야기하고, 그 타이밍에 고위 공직자의 골프 영상을 터뜨린다……. 이로 인해 이득을 보는 건 누구일까요? 국민의 분노를 이용해 민주주의의 가장 근간이 되는 '선거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누군가의 정교한 설계입니다."
지훈은 곧장 선관위 3층으로 향했다. 박 과장의 집무실 문을 열자, 영상 속 그 유리창이 눈에 들어왔다. 창밖으로는 풀밭에서 평화롭게 뛰노는 고양이와 참새들이 보였다. 잔인할 정도의 대조였다.
"형사님, 전 그저 가벼운 스트레칭을 했을 뿐입니다." 박 과장은 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투표지 부족 사태는 제 소관이 아닙니다! 시스템 오류였을 뿐이라고요."
지훈은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구석에 놓인 골프백,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문서 더미를 발견했다. 문서의 맨 위 장에는 이번 투표지 배포 계획서가 수기로 작성되어 있었다.
"스트레칭이라……." 지훈이 골프채 하나를 뽑아 들었다. "박 과장님, 당신이 나이스 샷을 날리던 그 시각,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생명줄이 끊어지는 절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절망은 정확히 '선관위 해체'와 '사전투표 폐지'라는 거대한 여론의 폭풍으로 이어졌지."
지훈은 수기 계획서를 박 과장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이 계획서에 적힌 배부 수량, 당신이 직접 수정했지? 시스템 오류가 아니라, 당신이 고의로 투표지를 누락시킨 거야. 그리고 일부러 창가에서 골프를 치며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지. 제도 자체를 붕괴시키려는 배후 세력의 지시를 받고."
박 과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민주주의는 단단한 제도 위에 서 있는 게 아니라, 국민의 신뢰 위에 서 있는 법입니다." 지훈이 수갑을 꺼내며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부순 건 선관위의 유리가 아니라, 이 나라 국민들의 신뢰야. 내려가서 당신에게 스윙을 지시한 진짜 '몸통'이 누구인지 얘기해 주실까."
유리창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진짜 추적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