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보도된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된 추리소설입니다.
강민준이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창틀에는 참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낯선 일이 아니었다. 종로 3가 뒷골목, 삼층짜리 건물의 꼭대기 방. 비둘기는 가끔 왔고, 참새는 자주 왔다. 민준은 새들이 자기보다 이 동네 사정을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참새 옆에 비둘기까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 다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있다는 신호였다.
민준은 코트를 걸고 책상에 앉았다. 아직 아침 여섯 시였다. 신문이 문 아래로 밀려 들어와 있었다. 그는 집지 않았다. 신문은 나중에 읽어도 된다. 신문이 전하는 사실은 이미 어제의 것이니까.
초인종이 울렸다.
의뢰인은 오십 대 중반의 여자였다. 회색 코트, 정돈된 머리카락, 그러나 눈가에는 사흘쯤 잠을 못 잔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그녀는 명함을 내밀지 않았다. 그 대신 신문 기사 스크랩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원·달러 환율 1,502원대 고착. 한미 외환 당국 긴밀 소통.
"이게 사건입니까?" 민준이 물었다.
"이건 증거입니다." 여자가 말했다.
여자의 이름은 최병숙이었다. 환전업을 한다고 했다.
"저는 탐정을 고용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며칠째 이상한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환율이 1,500원 아래로 내려가지 않아요. 당국은 '소통'을 했다고 하는데, 숫자는 꿈쩍도 안 합니다. 대통령은 바티칸에서 평화를 이야기했고요. 그런데……"
그녀가 잠시 멈췄다.
"그런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요. 딸아이는 캐나다에 있어요. 매달 돈을 보내줘야 해요. 환율이 100원 오를 때마다 저는 더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요. 당국은 소통했다 하고, 대통령은 성경 구절을 읽고, 언론은 '긴밀'하다는 말만 씁니다."
민준은 기사 스크랩을 들여다보았다. 그 옆에 그녀가 또 다른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대통령 바티칸 연설 발췌본이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탐정님." 최병숙이 말했다. "말이 현실을 숨기는 데 쓰일 때, 그건 범죄 아닌가요?"
민준은 대답하지 않고 창밖의 두 새를 잠시 바라보았다.
"수임하겠습니다."
민준의 첫 번째 행선지는 외환 당국이 아니었다.
그는 종로의 낡은 환전소 골목을 걸었다. 월요일 아침, 전광판의 숫자는 깜빡이고 있었다. 1,498. 1,502. 1,499. 숫자는 움직이는 척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제자리였다. 무능한 개가 짖는 것처럼—시끄럽지만 아무것도 쫓아내지 못하는.
그는 수첩을 꺼냈다.
용의자 목록.
첫 번째: 외환 당국. '긴밀한 소통'이라는 알리바이. 그러나 소통의 결과가 없다면, 소통은 행위가 아니라 퍼포먼스다.
두 번째: 대통령의 언어. 바티칸의 성경 구절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민준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말이 범죄를 덮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습을 만들려면 진짜 대장간이 필요하다. 연설문은 대장간이 아니다.
세 번째: 북쪽의 침묵. 통로는 닫혀 있었다. 이쪽에서 아무리 외쳐도 소리는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그 벽 너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목줄을 쥔 자가 있다는 정보는 있었다. 그러나 그 자가 언제, 어떻게, 어떤 조건으로 목줄을 사용할 것인가—그것은 현재로선 불명이었다.
네 번째: 시간. 범죄가 아니라 공범. 시간은 언제나 현상 유지의 편이다.
민준은 수첩을 닫았다.
그때 등 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뒷골목의 묶인 개였다. 요란하게 짖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무능한 개는 짖는다. 현명한 자는 말을 아낀다.
그 속담을 떠올리며 민준은 발걸음을 돌렸다.
오후, 민준은 전직 외교부 국장 출신의 소식통을 만났다. 을지로의 낡은 중국집 2층. 자장면 두 그릇이 나왔다.
"강 탐정, 이번엔 뭘 캐려고?"
"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조사 중입니다."
소식통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건 탐정 일이 아니야. 그건 역사학자 일이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남자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빌딩 사이로 좁은 하늘이 보였다.
"바티칸 연설 말이지. 나도 읽었어. 좋은 말이었어. 진심이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진심과 현실은 다른 트랙에서 달린다는 게 문제야. 6·15 선언도 진심이었을 거야. 그때도 아름다운 말이 있었어. 그런데 말이 현실을 당기려면 힘이 필요해. 힘 없는 말은……"
"허상입니까?"
"아니. 씨앗이야. 근데 씨앗이 자라려면 땅이 있어야 해. 지금 땅이 문제야."
민준은 수첩에 적었다. 씨앗 — 땅 없음.
"북쪽 상황은요?"
소식통이 자장면을 한 입 먹었다.
"목줄 이야기는 들었을 거야. 미국이 쥐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런데 목줄은 언제 당기느냐가 관건이지, 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힘이 되는 건 아니야. 쥐고만 있으면 장식이야."
장식. 민준은 그 단어를 두 번 썼다.
저녁, 사무실로 돌아온 민준은 코르크 보드 앞에 섰다.
환율 기록. 연설문 발췌. 북측 동향 메모. 외환 당국 회의록 요약. 붉은 실이 이것들을 모두 연결하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보드를 바라보았다.
진범은 누구인가.
외환 당국? 아니다. 그들은 무능하지만 악하지 않다. 무능은 범죄가 아니다—도덕적으로는 죄가 될 수 있어도.
대통령의 언어? 절반만 그렇다. 말은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말로 책임을 대신하려 할 때, 말은 공범이 된다.
북쪽의 벽? 그것은 피의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하다. 민준은 이 사건에서 북쪽을 단순히 악당으로 규정하는 것을 경계했다. 단순한 사건에 단순한 진범은 없다.
그렇다면.
민준은 수첩에 천천히 적었다.
진범: 행동 없는 말을 현실로 오인하는 집단적 착각. 그리고 그 착각을 방치하는 구조.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공범: 힘 없는 평화를 평화라 부르는 모든 언어.
창밖에 어둠이 내렸다. 참새와 비둘기는 이미 오래전에 날아갔다.
다음 날 아침, 민준은 최병숙을 다시 만났다.
"범인을 찾았습니까?" 그녀가 물었다.
"찾았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런데 체포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가 눈썹을 올렸다.
"진범은 사람이 아닙니다. 말이 현실 위에 군림하도록 내버려둔 구조입니다. 외환 당국은 소통했다고 했지만, 소통의 증거는 숫자가 아니라 보도자료뿐이었습니다. 대통령은 평화를 이야기했지만, 평화의 조건—힘, 전략, 실질적 압박—에 대해선 침묵했습니다. 북쪽의 문이 닫힌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문을 열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누가 그것을 언제 사용할 것인지는 여전히 수사 중입니다."
최병숙이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민준이 일어서며 말했다.
"계속 환율을 보십시오. 숫자가 움직이는 날이 옵니다. 말이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가 바뀌는 날. 그 날이 오면—그때 비로소 이 사건은 해결됩니다."
그가 사무실 문을 나서는데, 창틀 위의 참새가 작게 울었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환율 전광판은 오늘도 깜빡이고 있을 것이다.
1,500. 1,501. 1,499.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언제나 말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