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내용은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각색된 추리소설입니다.
강민준 탐정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대구 수성구의 낡은 사무실 소파에서 눈을 떴다. 간밤에 자료를 들여다보다 그대로 잠든 것이었다. 빈 커피잔이 탁자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창밖으로 플라타너스 가지에 앉은 참새 한 마리가 보였다. 녀석은 잎 조각 하나를 부리에 물고 가지 위를 총총 뛰어다녔다.
전화를 받았다.
"강 탐정님이시죠?"
여자 목소리였다. 낮고 조급했다.
"그렇소."
"저는 JT방송 법무팀 박서연이라고 합니다. 지금 당장 뵙고 싶습니다. 우리 방송국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닐 수 있어요."
강민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슨 뜻이오?"
"누군가 처음부터 이걸 설계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오전 아홉 시. JT방송 본사 로비.
강민준은 로비에 들어서면서 분위기를 읽었다. 직원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다 누군가 지나가면 입을 다물었다. 회사가 법정관리 신청을 공식 발표한 지 채 열두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박서연은 삼십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눈 밑에 피로가 역력했지만 시선은 또렷했다.
"말씀하신 대로 왔소. 설명해 보시오."
박서연은 두꺼운 서류 파일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표면적으로는 재무 위기입니다. 206억 원 차입금 미상환, 836억 원의 단기 차입 부담, 신용등급 D 예정. 숫자만 보면 경영 실패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들이 만들어진 과정이 이상합니다." 그녀는 파일을 펼쳤다. "3년 전부터 주요 광고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일반적인 시청률 하락으로 설명되지 않는 속도로요. 그리고 태블릿PC 사건 이후, 우리 방송국 내부에서 핵심 제보 자료들이 사라졌습니다."
강민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사라졌다?"
"없어졌습니다. 서버에서, 금고에서, 담당 기자의 개인 하드에서까지."
강민준은 사흘을 자료 속에 파묻혔다.
JT방송이 수년 전 터뜨렸던 태블릿PC 보도. 그것은 방송국을 한순간에 스타로 만들었다. 시청률이 치솟았고, 방송국은 영향력의 정점에 올랐다. 그러나 그 직후부터 역설적으로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강민준은 연표를 작성했다.
X년 10월 — 태블릿PC 보도 방영
X년 11월 — 태블릿PC 진위 의혹 제기 시작
X+1년 3월 — 첫 광고주 이탈
X+2년 1월 — 핵심 탐사보도팀 해체
X+3년 6월 — 내부 서버 자료 삭제 정황
X+4년 현재 — 기업회생절차 신청
그는 연표를 벽에 붙이고 뒤로 물러섰다.
너무 일정했다. 우연치고는 간격이 너무 정확했다.
누군가 이 방송국을 안에서부터 갉아먹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전화를 들어 오래된 동료 최도준 기자에게 걸었다. 최도준은 현재 독립 미디어에서 일하는, 이 업계에서 몇 안 되는 신뢰할 수 있는 눈이었다.
"도준 씨, JT방송 태블릿PC 사건 당시 내부 제보자가 있었소?"
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있었죠. 그런데 그 사람, 보도 직후에 종적을 감췄습니다."
강민준의 수사는 자연스럽게 MBC로 향했다.
JT방송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언론계 전반에 걸쳐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특정 정당에 유리한 프레임을 반복적으로 형성하는 보도 행태. 일각에서는 "보도 테러"라는 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공영방송의 편파성을 비판했다.
강민준은 두 방송국의 보도 패턴을 분석한 자료를 입수했다.
수백 건의 뉴스 클립. 선택된 단어들. 인터뷰이의 편향. 생략된 사실들.
그는 밤새 자료를 들여다보다 새벽에 펜을 내려놓았다.
언론은 총을 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언론은 총을 쏘는 손을 고르는 일을 한다.
문제는 그것이 누구의 지시였느냐였다.
강민준은 JT방송 전직 보도국장 황인철을 찾아가기로 했다.
황인철은 은퇴 후 경기도 외곽의 작은 전원주택에 살고 있었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강민준이 찾아오자 그는 놀라지 않았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을 열었다.
"올 줄 알았소."
마당에는 새 모이통이 놓여 있었다. 참새 몇 마리가 모이를 쪼고 있었다.
둘은 마루에 앉았다. 황인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태블릿PC 보도 때, 나는 반대했소."
강민준은 조용히 들었다.
"확인이 덜 됐다고 했소.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했소. 그런데 위에서 밀어붙였어. 시청률이 죽어가고 있었거든. 그리고 그 보도 하나로 방송국이 살아났지. 일시적으로는."
"누가 지시했소?"
황인철은 잠시 마당의 참새들을 바라봤다.
"지시라고 할 것도 없었소. 그냥… 분위기였어. 특정 결론을 향해 모든 것이 수렴하는 분위기.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그쪽으로 움직이는. 그게 더 무섭지."
"내부에서 자료를 삭제한 것도 그 분위기 때문이오?"
황인철의 눈이 흔들렸다.
"…그건 내가 관여한 일이 아니오. 하지만." 그는 낮게 말했다. "나중에 들었소. 태블릿PC의 진위를 뒤집을 수 있는 내부 검토 보고서가 있었다고. 그게 없어졌다고."
"누가?"
"그걸 알면 내가 탐정 일을 하고 있겠소?"
강민준은 JT방송 전 IT팀장 임수혁을 추적했다.
임수혁은 회생절차 신청 직후 돌연 휴가를 낸 인물이었다. 강민준은 사흘을 쫓아다닌 끝에 부산의 한 모텔에서 그를 찾아냈다.
임수혁은 강민준을 보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한테 왜 왔습니까."
"서버 삭제 건 때문이오."
임수혁은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강민준은 문 앞에 섰다.
"X+3년 6월. 본사 내부 서버에서 대용량 파일이 삭제됐소. 보안 로그에는 관리자 권한 접속 기록이 남아 있는데, 담당자 계정이 당신 것이오."
임수혁은 고개를 떨궜다.
"…시켰습니다."
"누가?"
"당시 경영본부장 오재민."
강민준은 수첩에 이름을 적었다.
"오재민은 어떤 사람이오?"
임수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에 피로와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방송국 사람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에요.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몰랐어요. 그냥 어느 날 경영본부장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오재민.
강민준은 그 이름을 파고들었다.
경력이 이상했다. 방송계, 금융계, 정치 컨설팅 사이를 종횡무진 오간 흔적. 어느 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않았고, 떠날 때는 항상 그가 거쳐간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든 흔들렸다.
강민준은 오래된 신문 아카이브에서 오재민의 이름을 발견했다. 10년 전 기사였다.
《미디어 컨설팅 업체 MM파트너스 대표 오재민, 여야 정치 자금 연루 의혹으로 조사》
기사는 거기서 끊겨 있었다. 후속 보도가 없었다.
사건이 묻혔거나, 누군가 묻은 것이다.
강민준은 박서연에게 전화했다.
"오재민 현재 어디 있소?"
"…모릅니다. 회생절차 신청 이틀 전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연락이 안 됩니다."
강민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저녁 하늘이 어둡게 물들고 있었다.
사라졌다. 정확한 타이밍에.
강민준은 사무실 벽에 붙인 연표 앞에 오래 섰다.
모든 단서가 하나의 구조를 가리키고 있었다.
JT방송은 단순히 경영을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렸다. 태블릿PC라는 불확실한 카드를 집어들었을 때, 그것이 결국 자신을 겨누는 무기가 될 것을 몰랐다. 혹은 알면서도 단기적 이익을 택했다.
그리고 그 틈새로, 오재민 같은 인물이 들어왔다. 이미 기울어진 방송국을 더 기울도록, 결정적인 증거들을 지우도록.
그러나 강민준은 여기서 멈췄다.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오재민은 도구였다. 도구를 움직인 손이 있었다. 그러나 그 손을 찾아내는 것은, 어쩌면 탐정 한 명의 영역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것은 언론의 일이었고, 사법의 일이었고, 결국 국민의 일이었다.
강민준은 수첩을 덮었다.
그는 박서연에게 최종 보고서를 넘기기로 했다. 그것을 어떻게 쓸지는 그녀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언론이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는, 언론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강민준은 사무실 창가에 섰다. 커피가 식어가고 있었다.
플라타너스 가지 위에 참새 한 마리가 돌아와 있었다. 어제와 같은 자리, 같은 시간. 작은 잎 조각을 물고 가지 사이를 바삐 뛰어다니며 자신의 일을 했다.
강민준은 생각했다.
저 작은 것은 프레임을 만들지 않는다. 시청률을 걱정하지 않는다. 신용등급 같은 것도 없다. 그냥 오늘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먹이를 찾고. 둥지를 지키고. 정직하게.
그는 수첩을 펼쳐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범인은 특정 개인이 아니다.
진실을 외면하기로 선택한 순간들의 총합이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반드시 숫자로 돌아온다.
206억. 836억. D등급.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강민준은 커피잔을 들었다. 창밖의 참새가 훌쩍 날아올랐다. 회색 새벽 하늘로, 흔들림 없이.
탐정은 오늘도 다음 사건을 기다렸다.
진실은 언제나, 어딘가에서 묻혀 있었으니까.
"자업자득이란 천벌이 아니다.
스스로 쌓은 선택들이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인과응보다."
강민준 탐정 수첩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