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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강민준 수사록 수요일의 디폴트

작성자이름다리이슬|작성시간26.06.17|조회수28 목록 댓글 0

- 이 내용은 보도된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한 추리소설입니다.

 

 


수요일 오전 9시 17분.
강민준 탐정의 사무실 전화가 울린 것은 그가 두 번째 커피를 내리던 참이었다.
창밖 광장에서는 참새 떼가 소란스럽게 지저귀고 있었고, 비둘기 한 마리가 느긋하게 보도 위를 걷고 있었다. 강민준은 그 평화로운 광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강민준 탐정 사무소입니다."
"탐정님." 목소리는 낮고 떨렸다. "저는 중앙미디어그룹 채권자 모임의 간사 박성재입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206억 원짜리 사건입니다."
강민준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말씀하십시오."

강민준이 중앙미디어그룹 본사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였다.
그는 가장 먼저 자료실을 찾았다. 탐정의 오랜 습관이었다. 사람보다 숫자가 먼저 거짓말을 고백한다.
사업보고서를 펼쳤다.
그의 눈이 멈춘 것은 두 줄이었다.

결손금: 7,033억 원

자본총계: 190억 원

강민준은 수첩에 천천히 받아 적었다. 그리고 볼펜 끝으로 두 숫자 사이에 줄을 그었다.
이것은 단순한 자금난이 아니다. 그는 생각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준비된 붕괴다.
자본총계 190억 원. 결손금 7,033억 원. 두 숫자의 간극은 너무 컸다. 마치 1층짜리 기둥 위에 100층짜리 건물을 올린 격이었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언제부터 기울고 있었는가.
강민준은 자료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그의 머릿속에서 첫 번째 용의자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범인은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오랫동안 외면당한 숫자들인지도 몰랐다.

오후 1시. 강민준은 피해자 진술을 듣기 위해 채권자 모임 사무실을 찾았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것은 예순 중반의 여성이었다. 이름은 최순자. 전직 초등학교 교사였다.
"설명회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최순자는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안전하다고 했어요. 대한민국 대표 미디어 그룹이라고, 우량 기업이라고. 위험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어요."
"서류에 위험 고지 항목은 있었습니까?"
"있긴 했는데……" 그녀가 잠시 멈췄다. "글씨가 너무 작아서 돋보기 없이는 읽을 수가 없었어요. 담당자가 그냥 넘어갔고요."
강민준은 수첩에 적었다.
고지는 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게.
그는 투자설명서 사본을 꺼내 들었다. 최순자의 말대로였다. 위험 고지 문항은 페이지 하단, 9포인트 크기의 회색 글씨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 위에는 화려한 그래프와 굵은 글씨의 수익 전망이 두 페이지에 걸쳐 펼쳐져 있었다.
숨기지는 않았다. 다만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강민준은 그 차이가 법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두 번째 용의자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불완전판매.

오후 3시. 강민준은 그룹 재무 구조 분석 보고서를 펼쳤다.
206억 원의 디폴트는 방아쇠였다. 하지만 총에는 이미 훨씬 많은 탄환이 장전되어 있었다.

그룹 전체 차입 규모: 2조 8천억 원

강민준은 그 숫자를 소리 없이 읽었다.
2조 8천억. 206억은 그것의 137분의 1에 불과했다. 시장이 두려워한 것은 JTBC의 디폴트가 아니었다. 그 뒤에 숨어 있던 2조 8천억의 거대한 그림자였다.
그는 계열사 목록을 훑었다.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중앙홀딩스. 중앙피앤아이.
마치 도미노처럼 이름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들 옆에는 하나같이 같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기업회생절차 신청.
강민준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단순한 유동성 위기가 아니었다. 이것은 구조 자체의 문제였다. 한 곳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같은 기반 위에 서 있었다. 모래 위에, 함께.
그렇다면 이것을 설계한 자는 누구인가.

오후 5시. 강민준은 전 재무팀장 이정우와 마주 앉았다.
이정우는 지쳐 보였다. 눈 밑에 그림자가 짙었고, 커피잔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보고서를 올린 적이 있습니까. 재무 건전성에 관한."
이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민준은 기다렸다.
"……올렸습니다." 이정우가 낮게 말했다. "3년 전입니다. 결손금 추이와 자본 잠식 위험을 정리해서 올렸습니다."
"결과는요?"
"서랍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강민준은 펜을 멈추지 않았다.
"채권 발행 당시 위험 고지 수준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이정우의 턱 근육이 움직였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진행했습니까?"
긴 침묵이었다.
"위에서 확인한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그렇게 말했다. "저는 그 말을 핑계 삼았습니다. 그게 제 잘못입니다."
강민준은 수첩을 덮었다. 증인은 이미 스스로 공범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강요된 침묵과 용인된 불투명함. 그 두 가지가 어떻게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 내는지,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강민준은 그날 저녁 광장 벤치에 혼자 앉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참새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비둘기 한 마리만이 광장 가운데 서성이고 있었다. 저 너머로 중앙미디어그룹의 유리 건물이 노을빛을 받아 붉게 물들었다.
강민준은 수첩을 폈다.
용의자는 셋이었다.
첫째, 7,033억 원의 결손금과 190억 원의 자본총계.

오래전부터 누적된 무리한 확장의 결과. 이것은 방치된 경고였다.
둘째, 불완전판매.

위험을 숨기지는 않았으나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이것은 설계된 기만이었다.
셋째, 2조 8천억 원의 그룹 차입 구조.

206억의 디폴트는 방아쇠에 불과했다. 총은 이미 오래전에 장전되어 있었다.
강민준은 볼펜 끝으로 세 항목을 천천히 이었다.
범인은 한 명이 아니다.
무리한 투자를 승인한 경영진. 보고서를 서랍에 넣은 윗선. 위험 고지를 눈에 띄지 않게 만든 실무자. 알면서도 침묵한 팀장. 그 모든 선택들이 한 줄로 이어져 오늘의 206억 원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었다.
이것은 공모였다.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완벽하게 조율된.
강민준은 수첩을 덮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은 틀렸어. 자업타득(自業他得)이 더 정확하지. 그들이 한 일의 대가를 엉뚱한 사람들이 치르고 있으니까."
비둘기가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날아올랐다.

회생절차가 시작되었다.
홍정도 부회장은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 계획이 법원에 제출되었다. 언론은 연일 그룹의 해체 가능성을 보도했다.
강민준은 의뢰인 박성재를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범인은 잡혔습니다. 다만 법정에서 처리할 부분과 시장이 처리할 부분이 따로 있습니다."
"불완전판매 소송은 가능합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박성재가 눈을 들었다.
"최순자 씨 같은 분들의 돈을 실질적으로 돌려받는 것." 강민준이 말했다. "서류상의 승소보다 그것이 진짜 해결입니다. 그리고 그건 제가 아니라, 법원과 채권단이 싸워야 할 싸움입니다."
강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집어 들었다.
창밖으로 광장이 보였다. 아침에 보았던 그 참새들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 빵 부스러기 하나를 두고 세 마리가 다투다가, 이내 하늘로 흩어졌다.
저 새들은 오늘도 빈손이지만, 내일도 저렇게 날 것이다. 강민준은 생각했다. 신뢰가 없어서가 아니라, 잃을 신뢰 자체를 처음부터 남에게 맡기지 않았으니까.
그는 사무실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수요일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진짜 사건, 즉 무너진 신뢰를 어떻게 재건하느냐는 아직 미제(未濟)로 남아 있었다.
강민준은 광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그의 뒤로, 중앙그룹의 그림자가 길게 뻗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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