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내용은 보도된 내용과 칼럼을 바탕으로 각색된 추리소설입니다.
강민준의 사무실은 여의도 뒷골목, 낡은 5층 건물 3층에 있었다. 창문 너머로 방송사 건물들이 늘어선 풍경이 보였는데, 그는 가끔 그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저 건물들 안에서 만들어지는 게 뉴스인지, 날씨인지.
문을 두드린 사람은 초로의 여성이었다. 명함에는 "전(前) 논설위원"이라는 직함이 박혀 있었다.
"제 이름은 윤서경입니다. 5년 전, 한 방송사의 보도 자료 조작 사건을 취재하다가 회사에서 밀려났어요."
강민준은 커피를 내리며 물었다.
"5년이나 지난 일을 지금 다시 들고 오신 이유가 있겠죠."
"최근에 그 사건 자료 일부가 다시 발견됐어요. 그런데 이상한 게, 그 자료를 가장 먼저 손에 넣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죽었다고요?"
"네. 어제,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됐어요. 경찰은 단순 실족사로 결론 내릴 분위기고요."
강민준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이름이 뭡니까, 그 사람."
"김도현. 프리랜서 기자였어요."
김도현의 원룸은 이미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책상은 너무 깨끗했다. 일하던 사람의 책상이 이렇게 깨끗할 리 없었다.
"노트북이 없네요." 강민준이 중얼거렸다.
윤서경이 서랍 깊은 곳에서 메모리카드 하나를 찾아냈다. 침대 다리 밑, 마룻바닥 틈에 끼워져 있었다.
"이건 놓친 모양이군요."
사무실로 돌아와 카드를 열어보니, 음성 파일 하나와 문서 파일들이 들어 있었다. 문서는 5년 전 사건—증거 조작 의혹—에 관한 취재 노트였다. 그리고 음성 파일에는 낯익은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현재 한 거대 보수 신문사의 편집국장이었다.
음성 속 남자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쪽을 밀어줄 때야. 여론이 그렇게 흐르고 있으니까. 근데 만약 그 자료가 다시 터지면, 우리도 입장 바꿔야 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강민준은 음성을 세 번 반복해 들었다.
"이게 살해 동기네요."
다음 날, 강민준은 그 신문사 편집국장과 마주 앉았다. 명함을 건네자 국장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김도현 기자 사건 때문에 오신 거라면, 저는 그 사람을 만난 적 없습니다."
"음성 파일이 있습니다. 국장님 목소리로요."
국장의 얼굴빛이 변했다. 그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다른 방향으로 화제를 돌렸다.
"요즘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거 아시죠? 모그룹이 회생절차 들어가면서, 저희도 광고 수입이 반토막 났어요. 다들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겁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하고."
"그게 살인의 이유가 됩니까?"
"저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국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누가 그랬는지는 알 것 같군요."
국장이 지목한 인물은 놀라운 사람이었다. 정치권에서 최근 화제가 된 한 보좌관. 송영길계와 이준석계의 연대를 실무적으로 조율하고 있다는 인물이었다.
강민준이 찾아가자, 보좌관은 의외로 순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죽이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 자료가 세상에 나오길 바란 건 맞습니다."
"왜죠?"
"지금 언론은 한 사람을 거의 신처럼 떠받들고 있어요. 그 벽을 흔들 방법은 정치적 연대가 아니라, 언론 스스로 입장을 바꿀 명분을 주는 겁니다. 그 조작 사건 자료가 바로 그 명분이었어요."
"그래서 김도현에게 그 자료를 넘기라고 압박했습니까?"
"부탁한 겁니다. 압박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죽기 전날, 그가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누군가 자길 따라다닌다고."
"누구요?"
보좌관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건 모릅니다. 하지만 그 편집국장 말고도, 그 자료가 세상에 나오면 안 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
강민준은 김도현의 과거 취재 기록을 다시 뒤졌다. 5년 전 사건의 핵심 인물 중, 지금까지 살아 있고 여전히 영향력을 가진 단 한 사람—당시 그 조작 사건의 실무를 담당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이제 한 정당의 전략기획 라인에서 일하고 있었다.
강민준이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짐을 싸고 있었다.
"어디 가십니까?"
"…해외로요. 이제 더는 못 버티겠어서."
"김도현을 죽였습니까?"
남자는 가방 손잡이를 쥔 손을 떨었다.
"저는 그냥… 그 자료가 영원히 묻히길 바랐을 뿐입니다. 사람을 시켜 따라다니게 한 건 맞아요. 하지만 죽이라고는 안 했습니다. 그쪽에서 과했던 거예요."
"그쪽이 누굽니까?"
남자는 끝내 이름 하나를 말했다. 강민준이 예상했던, 그러나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을 때, 강민준은 윤서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도현을 죽인 건 어느 한 사람의 결정이 아니었어요. 자료가 새어 나가면 입장이 곤란해질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압박을 가한 결과였죠. 누구도 직접 죽이라고 명령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모두가 그가 사라지길 바랐어요."
윤서경이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언론이, 정치가."
강민준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의도의 방송사 건물들 위로, 까치 떼가 어지럽게 날고 있었다.
"바람은 또 방향을 바꿀 겁니다. 오늘 신처럼 떠받들리는 사람도, 내일은 버려질 수 있어요.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누군가 죽음으로 증명할 때까지 묻혀 있겠죠."
윤서경은 더는 묻지 않았다.
사무실 창밖, 까치들은 여전히 시끄럽게 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