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상주에는 조선 중기에 걸출한 인재가 있었는데
바로 愚伏 鄭經世<1563-1633>이다.
그는 서애 류성룡의 수제자로서 官이 이조판서, 대제학에
이르렀고 특히 禮學에 밝았다.
한편 충청도 논산에는 沙溪 金長生<1548-1631>이란 분이
우뚝했는데, 그의 본관은 光山이고, 예학은 송익필, 성리학은 율곡 이이
로 부터 배웠고, 나중에 우계 성혼의 문하에 속하기도 하였으며
해동 18현의 한 사람이고, 후손이 連삼대 대제학을 하였으니 조선의
최고 명문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어른은 거의 동시대를 살았지만, 우복은 남인이고, 사계는 서인,
그 중에서도 노론 이었다.
이렇게 정반대의 사상과 대치되는 극과 극인 사람이 소통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우복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십여세의 막내딸이 있었는데, 같은 당(남인)에선 그 배필을 찾기가 어려워
사계한테 도움을 청하였다.
이에 사계에게 낙점된 이는 대전에 사는 東春堂 宋 浚吉 이다.
그리하여 역사적인(?) 남인과 노론의 혼인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사색당쟁이 피를 부르던 시절 엄청난 사건이였다.
어느 분야든, 집단이던 우두머리가 되면 서로 통하는 무엇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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