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목적
현재 내 삶에 목적이나 목표라는 것이 있을까? 남아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문득 지나온 평생이 뇌리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성공한 삶이었을까, 실패한 인생이었을까. 덧없는 질문 끝에 이르면, 결국 '목적'과 '목표'라는 오랜 화두 앞에 멈춰 서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두 단어를 흔히 헷갈리고 자주 뒤섞어 쓴다. 그러나 얼핏 보면 같은 말 같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인 것 같다.
목적(目的)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이자 방향이다. 한자로 '눈 목(目)'에 '과녁 적(的)'을 쓰니, 곧 눈이 과녁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Purpose'라 할 수 있겠다.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의 지향점이기에, 이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장기적인 개념이다.
반면 목표(目標)는 '눈 목(目)'에 '표식 표(標)'를 쓴다. 영어의 'Target'이나 'Goal'에 가깝다. 목적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둔 구체적인 이정표나 정거장인 셈이다. 이는 시간이나 수치로 측정이 가능하다.
가령, 한 사람의 인생 목적이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자선'이라면 부자가 되는 것이 그 과정의 '목표'가 된다. '건강한 삶'이 목적이라면 하루에 만 보씩 걷는 것이 그것을 위한 하나의 '목표'다. 타인에게 '존경받는 삶'이 목적이라면 일류 대학에 가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도 하나의 '목표'이다.
나는 젊어서 내 인생의 목적이라고 뚜렷이 설정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목표도 뚜렷하지 않았다. 장년이 되어서도 나에겐 목적과 목표가 희미하였고, 그것은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과 쟁취해야 한다는 의지가 박약하였음에 기인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실패도 무수히 겪었다. 원했던 대학교 입시에선 낙방하였고, 시인이 되고자 했던 순수한 희망도 가난이라는 현실의 턱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직장에서는 소위 출세하질 못했고, 정말 갖고 싶었던 돈도 내겐 신기루처럼 다가가면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럴 때마다 허무가 엄습했다. 그것 봐, 나는 안 되는 사람이었어. 하는 좌절감으로 인생의 실패를 스스로 규정해 버렸다. 그렇게 목적도 목표도 희미해지기만 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그렇게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가로늦게 지켜보면 과연 목적과 목표의 달성이 인생의 행복을 보증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오히려 목적과 목표의 달성과 현재의 행복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쩌면 목표란 허황한 것일 수도 있고, 그것을 쟁취하면 행복을 거머쥘 것 같지만, 결국, 잠시의 기쁨이 있을 뿐 곧 허무의 벽에 마주칠 가능성도 크다.
이제 황혼의 인생에 접어들면 소위 ‘왕년(往年)의 훈장’은 어디에서고 빛이 바래버린다. 옛날에 도취했던 지위나 명성이란 지금 나의 삶의 질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 허무감은 성취감과 상관없이 건강의 상실에서 올 수도 있고, 인간관계의 파탄에서 비롯할 수도 있고, 성공의 의미에 대한 짙은 회의에서 올 수도 있다. 마침내 허무가 다가오고 이제 뭘 하지? 하고 정신의 황량한 벌판에 혼자 서 있게 될 것이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지나고 보면 성공해도 실패해도 허무한 건 마찬가지다. 차라리 목적이 없었더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평생을 매달린다.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 속에서 누군가는 목표를 거머쥐고 목적을 성취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문턱에서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그것을 '달성했는가'가 아니라, 그 목적과 목표가 과연 바람직했으며, 지금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아주 돈이 많은 영감의 이야기를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밑바닥 노동자로 출발한 그는 돈이 인생의 목표였다. 판잣집에서 살면서 시장바닥에 버려진 음식 등을 주워다가 국을 끓여 먹고 살았다. 그는 압구정동 일대의 몇만 평을 소유하는 땅 부자가 됐다. 천문학적 액수의 주식과 현찰도 가지게 됐다.
부자인 그는 돈을 쓰지 않았다. 은행지점장이 명절에 선물하는 조기를 받고 좋아하고 증권사에서 보내는 사과 상자를 반겼다.
정주영 회장을 보면 그는 괴로웠다고 했다. 더 큰 부자를 보고 그의 욕망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옆자리 손님이 남긴 술이 들어있는 병을 슬쩍 들고 와 마시곤 했다. 갑자기 저승사자가 다가와 그의 뒷머리 채를 잡았다. 폐섬유증이라는 진단이 그에게 내려진 것이다. 갑자기 목표가 없어진 그는 짙은 허무 그 자체였다. 그가 이런 말을 내뱉었다.
“내가 번 돈들을 다 쌓아놓고 불을 지르고 싶어. 아니면 바다에 던져버리던가. 나는 속았어.”
그의 공허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절실한 말이었다. 그는 많은 돈을 다급하게 인간의 바다에 던져버리고 죽음 저쪽으로 건너갔다. 그에게 부자가 되려는 목적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보다 행복하지 않았을까.
수단이 목적을 압도하고, 목표가 목적을 배신할 때 인간은 이처럼 길을 잃는다. 며칠 전 치과에 갔을 때의 일이다. 병원 입구에 커다랗게 붙은 그의 모교인 서울대학교의 로고를 보았다. "나는 명문대 출신이니 남보다 치료를 더 잘한다"라는 무언의 광고였을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간판과 눈앞의 환자를 치료하는 본연의 업무 사이에 과연 무슨 본질적인 상관관계가 있을까. 간판이라는 '목표'의 흔적이 의사로서의 진정한 '목적'을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얄팍한 상술이 가소롭게만 여겨졌다.
세상엔 여러 고귀한 목적과 높은 목표가 많다.
사법고시. 의사시험 등을 통과하여 법관과 의사가 되었다 하자, 수천억 원의 재물을 갖게 된 부자도 있을 것이고, 모두 존경하는 학자나 종교인이 된 분도 있다.
그들이 노인이 되어 그들의 과거가 행복한 현재를 보장해 줄까?
가치 있는 목적을 품고, 그것에 부합하는 상식적인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삶.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달성했을 때 진정한 보람을 느끼는 삶은 아름답다. 그런 이에게 세상은 훌륭하다는 찬사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가만히 돌아보면, 남들의 그 대단한 찬사나 목적과 목표를 달성했다는 내 마음속 작은 자랑거리조차 과연 무슨 대수인가 싶다.
또, 이 나이에 무슨 목적을 꿈꾸고 목표를 설정할 것인가? 일모도원(日暮途遠)해도 다시 새로운 목표에 매달릴 것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요즈음 어떤 목적보다는 남은 삶을 욕망에서 벗어나 제대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욕망은 충족되면 곧 다음 욕망을 낳고 목적으로 자신을 기만한다. 삶이란 어떤 과제를 수행하는 건 아니며,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다시 한번 나를 들여다본다. 여든을 넘기는 지금, 나의 목적은 무엇이며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또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을 거듭한 끝에 마주한 내 마음의 색깔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이제 내 인생의 마지막 목적은 '아름답게, 최소한 추하지 않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한 오늘의 목표는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이다.
세상의 거창한 잣대로 보면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이 또한 평생을 살아낸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깊고 장엄한 목적이자 목표가 아니겠는가. 오늘 가만히 숨 쉬고 바라보는 이 하늘이, 내게는 가장 귀한 정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