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박소윤
지하철 안은 대개 비슷하다. 사람들은 각자의 화면 속으로 고개를 숙인다. 이어폰을 낀 얼굴들은 서로의 존재를 잠시 지운다. 덜컹거림에 몸이 한쪽으로 쏠려도 누구 하나 말을 걸지 않는다. 누군가는 졸고, 누군가는 뉴스를 넘기고, 누군가는 광고 영상에 시선을 둔다. 같은 칸에 타고 있지만 우리는 대체로 서로의 하루를 모른다.
눈을 지그시 감고 아이라인을 그린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작은 거울을 든 젊은 여자는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채 손끝에 집중한다. 아이라인이 금 밖으로 나갈까 조심스러워하지도 않고 단번에 선을 긋는다. 집중하느라 입술이 벌어진 줄도 모른다. 그녀가 지금 내 건너편에서 화장하고 있다.
그런 그녀를 보는 건 나만이 아니다. 맞은편에 앉은 할머니는 그녀를 빤히 바라본다. 휴대전화를 확인하려다 우연히 보게 된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려 애쓴다. 저렇게 대놓고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사람의 눈은 참 희한하다. 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을수록 다시 슬그머니 고개가 들린다. 그녀는 아직도 화장 중이다.
이번에는 눈두덩이다. 나는 눈화장을 먼저 하고 아이라인을 긋는데 그녀는 순서가 다르다. 넷째 손가락에 연갈색 색조를 문지르더니 그대로 눈두덩에 올려 둥글게 펴 바른다. 손놀림은 대수롭지 않은데 결과는 놀랍다. 지하철 조명이 유독 그녀에게만 머무는 것처럼 얼굴이 환하다.
그녀를 두 번이나 힐끗거리며 본다. 그녀가 거울을 꺼내 아무렇지도 않게 화장하는 동안 나는 몇 정거장 남았는지를 계산한다. 손목시계를 보고, 괜히 자세를 고쳐 앉고, 교정기 낀 치아를 흝는다. 그녀와 나는 같은 칸에 앉아 있지만 전혀 다른 곳에 있는 사람 같다.
어쩌면 내가 그녀를 자꾸 바라본 이유는 내 치아에 붙은 교정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교정기를 단 뒤로 나는 입술을 마음 놓고 드러내지 않는다. 웃을 때도 먼저 입매를 의식하고, 마스크는 지갑처럼 소중히 가방에 넣는다. 대화에 집중해야 할 순간에도 혀끝은 자꾸만 입 안의 철사를 더듬는다. 나는 상대의 말을 들으며 내 입속의 어색함을 확인하느라 바쁘다.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조금 낯선 사람이었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도 자기 안으로 깊이 들어가 누가 보는지조차 잊은 사람.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저렇게 나를 잊을 만큼 한 가지에 몰입했던가.
말하지 않고 있을 때도 내 혀는 습관처럼 교정기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처음에는 철사에 스쳐 혀끝이 헐고 피가 났다. 입 안에 낯선 금속을 단 채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성가신 일이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이상하게도 그 감각에 익숙해졌다. 혀에 난 상처와 교정기의 철사가 자물쇠와 열쇠처럼 맞물리는 순간이 은근히 익숙하고도 편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불편함도 오래 함께하면 몸의 일부가 된다.
화장하던 그녀가 잠시 시선을 든다. 그녀의 도도함은 화장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누가 보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입술이 벌어졌는지, 누군가 자신을 힐끗거리는지조차 모르는 얼굴이다. 마치 그 좁은 지하철 한 칸이 자기만의 방이라도 되는 듯, 거울 속 눈매에만 몰두한다.
몰입은 이상하다. 어떤 순간에는 주변을 잊게 만들고, 또 어떤 순간에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가장 가까이 만나게 한다. 어쩌면 내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던 이유도 화장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무엇인가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글들은 대개 그런 몰입에서 태어난다. 탁월하게 잘 쓴 글보다 어떤 대상에 오래 마음을 빼앗긴 사람의 글이 더 오래 남는다. 그 마음은 대개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남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거나 쓸데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마음은 그렇게 오래 머문다.
젊은 날 시작한 작품을 죽기 직전까지 써 내려간 괴테는 『파우스트』를 60여 년에 걸쳐 완성했다. 괴테에게 『파우스트』는 한 권의 작품이라기보다 평생 품고 있던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날 시작한 작품을 노년에 이르러서야 마무리했다는 사실은 어떤 마음이 사람 안에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파우스트』의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구절을 떠올리면 몰입은 순간적인 열정보다 오래 머무는 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서 시작했더라도 계속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은 또 다른 문제다. 우리는 거듭 살핀다. 이 길이 맞는지, 얼마나 왔는지, 다른 선택이 더 낫지는 않은지 살핀다. 그런 확인은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몰입은 계산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몰입이 꼭 대단한 재능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오래 좋아하는 힘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일이라도 자기 안에서는 쉽게 놓치 않는 마음, 그래서 자꾸 그쪽으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이다.
그녀가 화장하는 동안에도 기차는 선로를 벗어나지 않는다. 덜컹거리면서도 제 길을 간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그녀의 손은 망설이지 않는다. 몰입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고요한 순간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자기 선을 그어내는 일.
내릴 역이 가까워질 즈음 그녀는 거울을 접어 가방에 넣는다. 잠시 그녀의 눈을 본다. 얇고 균일하게 그어진 아이라인은 마치 원래부터 그녀의 것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도 저렇게 단번에 그은 선은 몰입할 수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오래 익힌 손끝이 있었기에 그렇게 몰입할 수 있었던 걸까. 몰입은 어쩌면 어디쯤인지를 확인하지 않는 건 아닐까.
기차는 다음 역으로 미끄러진다.
박소윤
2021년《에세이스트》등단.
『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집』『서書를 서序하다』『책 노린책1,2』 공저
데일리 한국 젊은 수필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