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하는 영감탱이)
“요즘에는 모임에도 잘 안 나오고---, 시골 생활의 재미가 솔솔한가 보지. 그래 농촌생활의 소감이라도 한 마디 들어봅시다.”
“소감요? 그럼 딱 한 마디만 할게요. 나처럼 헛바람 들어서 시골로 내려올 생각은 아예 접으세요.”
문학 모임의 회원이 퇴직을 하자마자 시골로 내려갔다. 우리 또래 영감들은 대부분이 청소년기를 시골에서 보냈다. 학교를 따라서, 직장을 따라서 도시로 나온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냈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보냈다. 유년의 향수가 몸에 베여있어 몸은 떠났더라도 어릴 때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았다.
“일 년이 다 되도록 모임에 나오지 않은 걸 보면 재미에 푹 빠진 거 아니요?”
“풀을 뽑고 돌아서면 풀이 또 자욱하고, 하루만 게으름을 피우면 작물이 시들시들해지고, 그 뿐이면 다행이게, 터줏대감들의 눈살도 곱지 않고. 재미는 무슨 빌어먹을 재미. 시간이 없어서 못 나온거지.”
“왜, 6시 내 고향이라는 프로가 있잖아. 텔레비젼에서 보여주는 시골 풍경은 마을 앞의 정자에서 장기를 두고, 싱싱하게 익은 수박을 먹고, 또 뭐더라, 아 그래, 할머니들이 고스톱을 치면서 소일하던데.”
다른 회원이 거들었다. 영감탱이가 되어 시골로 내려가서 사는 사람은 도시로 나와서 돈을 많이 벌었거나. 월급쟁이를 해도 높은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라야 꿈 꿀 수 있다면서, ‘호강에겨워 배부른 소리 그만 작작해라.’며 입을 막아버렸다. 농촌 사람이 들으면 눈에 쌍심지 돋을 일이라는 거다. 그들은 평생을 풀 뽑고, 밭 메고 했는데, 라며 면박을 줬다. 그래서 휴양지처럼 생각하고 귀향하는 도시민을 바라보는 시골사람의 눈길이 고울 리 없다고 했다.
문득 초등학교 동기가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하러 고향을 떠났다. 젊어서 중동에 가서 아주 높은 자리까지 올랐다. 성공한 친구라고 했다. 중년을 훨씬 넘었을 때 고향친구들이 버스를 대절하여 서울의 여의도에 관광여행을 갔다. 나에게도 연락을 하면서, 그 친구에게도 연락을 해두었으니까 서울에서 식사자리라도 만들어주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 뒷 소식은 씁쓸했다. 그 친구가 나오긴 했는데, 만나서 악수만 나누었고, 바쁘다면서 식사도 함께 하지 않았다. ‘촌놈이라고 얕본다.’ 라든지, ‘도시로 나가서 성공만 하면 다냐. 인간이 되어야지.’ 라든지. 듣기 민망한 말들이 많이 들려왔다. 나중에 들을 이야기이지만 이 친구는 은퇴를 하고 고향으로 내려오지 않고 호주로 이민을 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군에서 아주 높은 계급을 달고 제대를 한 고향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그를 불러서 술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술이 거나해지자 한 친구가 불쑥 ‘야 이**야. 계급이 높으면 다냐.’며 대들었다. 억지로 말렸다. 훈련병 시절에 하도 고되어서 장교로 복무하는 그를 친구랍시고 찾아갔더니 못 본 척 푸대접을 하더라는 것이 이유였다.
유년시절의 시골 생활을 되돌아보면 너나, 나나 여름이면 보리밥을 먹었고, 개울에서 첨벙거리면 보냈다. 좀 더 잘 산다면서 뻐기는 일도 없었다. 있었다면 어쩌다 장날에 사온 운동화를 신었을 때다. 다음 장날에는 나도 졸라서 사 달라고 해야지. 평등했다고 믿었던 그때를 우리는 기억 속에 행복했던 삶으로 저장해 두었다.
박정희 시대가 되자 살기가 힘들어서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4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자 그들은 말끔하게 차려입고 마을에 나타났다. 성공했다는 소문도 바람타고 들려왔다. 객지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마을 사람의 화두는 농촌 생활의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사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삶의 목표도 화평했던 농촌의 삶에서 도시의 성공한 삶으로 바뀌었다.
성공을 찾아서 도시로 나온 나는 시골에서 살았던 때의 조용한 삶을 그리워했다. 도시생활은 경쟁을 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군인으로 성공한 동기생에게 대든 친구는 성공 뒤에는 삶의 비정함이 있는 줄을 몰랐을 것이다. 시골에서처럼 가까이 대해주지 못한 것은 계급의 사다리를 경쟁하면서 올라가야 하는 삶 때문이었다고 변명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귀향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침에는 꽃향기 실은 솔바람이 불어오고, 낮에는 노인네가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는 곳이 아니다. 6시 내고향은 텔레비전의 상자 안에 갇혀 있는 전설일 뿐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는 강을 만들었다. 성공한 도시사람을 부러워하는 고향 사람과, 화평하게 살았던 유년의 시간을 잊지 못하는 도시 사람의 사이로 그 강물이 흘렀다. 산은 아무리 높아도 강을 넘을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삶을 사느라 강 건너의 산이 되어 있었다. 같은 세월을 살았던 같은 나이라고 하여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다른 것은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