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이여 안녕
김 상 립
자고 나면 눈이 핑핑 돌아가는 요즈음 같은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게 내겐 참 고단하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난해한 뉴스를 듣고 긴가민가하며 사는 일도 불편하거니와 소위 높은 사람들이 마이크 앞에만 서면 내놓는 그를듯한 말의 진정 성이 더 의심스러워 답답하기만 하다. 또 가는 곳마다 안하무인 격인 인간들이 하도 설치는 바람에 슬슬 피하는 짓도 이젠 지겹고, 늙은 이도 범죄의 대상에서 전혀 관용되지 않는 사회로 변해버린 현실이 더럽게 기분 나쁘다.
나는 이런 세상을 살며 속 마음만 안달이지 실제로는 너무 무기력하다. 큰 세력도, 많은 돈도 가지지 못한 내가 달리 나서서 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는 구차한 변명 뒤에 숨어서 가만히 숨죽이고 있는 내 자신도 싫다. 그러다가 궁여지책으로, 나 혼자 멀리 도망가서 마음 편히 지낼만한 곳이 어디 없을까 하는 생각을 골똘히 하곤 했다. 요즘 내가 티브이에서 자주 방영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를 눈 여겨 보는 것도, 혹여 한 수 배울까 싶어서이다.
산 속에 혼자 사는 그들은 표정이나 말하는 품이 하나같이 밝고 건강해 보인다. 자연에서 제게 필요한 만큼만 채취해 먹고, 해지면 잠자고 해 뜨면 일어나 부지런히 산을 오르는 사람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욕심 없이 사는 모양이 인생을 달관한 것 같기도 하다. 오늘 낮에도 ‘자연인’ 방송을 보고 있는데, 돌연 내 몸이 빠른 속도로 하늘로 날아오른다.
어느새 왔는지, 주변이 울창한 숲으로 둘러 쌓인 어떤 강가에서, 짐승 털로 아랫도리만 가린 채, 끝이 뾰족한 긴 막대기를 들고 혼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햇빛은 찬란하고 바람은 상쾌하다. 물 속을 향해 막대기를 힘껏 내지르자, 물고기의 몸부림이 손 끝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온다. 아, 짜릿하다. 얼마 후 장면이 바뀌어 빠르게 달리는 노루를 향해 마구 돌을 던지며 뒤쫓는다. 속도를 내어 막 산 모퉁이를 돌아가는 데 갑자기 시꺼먼 괴물이 나를 덮친다. 그 놈을 밀쳐내려고 아무리 바둥대도 전혀 힘을 쓸 수가 없다. 길고 날카로운 이빨로 내 목을 물려는 찰라 으악!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한 바탕 꿈이었다. 온몸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었고, 놀란 가슴은 좀체 진정되지 않았다.
아직도 티브이에서는 자연인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는 산속 생활이 진정 즐겁고 행복하다 했다. 지병을 다 고쳤다고 자랑도 했고, 그럴싸한 인생관도 몇 마디 피력한다. 도시에 도로 나가 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라고 잘라 말한다. 옆에 있던 출연자가 크게 감동이라도 받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토해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 눈은 계속 티브이화면을 보고 있는데, 생각은 조금 전에 꾼 꿈에 박혀 있다. 왜 이런 꿈이 꾸였을까? 내 생각은 원시시대에서 현대까지를 바쁘게 오갔고, 점점 머리 속은 복잡해졌다.
사실, 그 동안 나는 생각만으로 그친 게 아니고 수년 전부터, 내 이만큼 살아왔으니 이젠 세상사 뒤에 두고 산다 해서 무슨 미련이 남겠나 싶기도 하여, 틈만 나면 슬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간의 비상금도 마련하고, 가족 몰래 고향인 통영 바닷가 외진 곳에도 몇 차례 가보았다. 그를듯하다는 산도 뒤져보고, 외지다는 물가를 홀로 답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은 행동으로 옮길 용기도 자신도 없어 머뭇거리고 있었다. 또 실제로 내가 깊은 산속이나 물가, 어디 오지로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산다면 과연 행복해질까에 대한 분명한 답도 구하지 못했다. 이런 참에 찾아온 괴상한 꿈은 사정없이 나를 흔들어 댔다.
내가 즐겨보는 자연인!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정상적인 생활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은둔자가 아닌가 싶다.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써가 아니고, 자연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일 터이다. 비록 그들의 삶을 동경할 사람들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삶은 아닐 터이다. 따라서 그들 나름의 일상에 무턱대고 이의를 달 수는 없어도, 보통 사람들의 삶과 수평적으로 비교해서 행복, 불행을 논해서는 안 될 성싶다. 하기야 어느 시대, 어떤 세상을 살더라도 나름의 애로사항은 있을 터이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도 늘 생기기 마련일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나일 것이라는 판단이 점점 명확해 진다.
비록 현 시대가 이런 성정의 나에게는 벅찰 수 밖에 없다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랴! 공교롭게도 내가 이쯤의 시대에 태어났고, 그 간의 많은 변화와 모진 풍상을 겪으면서도 그런대로 잘 버텨왔다. 그렇다면 망설일 게 뭐가 있겠나, 그런 꿈은 아예 접어야겠다. 아직은 내가 이승에서 거쳐야 할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겪는 고초라 믿으며 살아가야겠다. 나 같은 보통사람이 감히 세상과 전혀 무관하게 살 수야 있을까 만은, 세상을 함께 살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그리 살기는 시도해 봄직할 성싶다. 가령 내가 끼지 않아도 될 자리에는 얼굴 내밀기를 삼가 하고, 비록 손해가 된다 해도 꼭 있어야 할 자리에는 피하지 말고 견디는 일로 시작 해야겠다. 이제 작별을 고하자, 자연인이여 안녕.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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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야웅(서정은) 작성시간 18.09.04 꿈을 접고 자연인이여 안녕이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 당당하여 정말 눈이 부십니다...
선생님 같으신 분은 우리 사회에 계셔야 합니다. 태극검으로...
심신을 단련하시고 수필로서 정신을 가다듬어며 항상 건강하게 함께해 주십시오... ^^*... -
답댓글 작성자남평(김상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09.07 서시인님 남 읽으면 웃겠습니다.
우짜든 건강하세요. -
작성자방종현 작성시간 18.09.04 건강하게 오래남아 계셔 죽비도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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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남평(김상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09.07 낭만거사님 마음이 고마봐서
😅😥 하겄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