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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성장통을 겪는다.(10) - 아버지와 아들

작성자이동민|작성시간20.04.14|조회수486 목록 댓글 0

아버지와 아들

 

  부자관계는 남자 대 남자 간의 미묘한 권력관계, 힘의 관계가 역학적으로 얽혀 있다. 잘난 아버지는 잘난 아버지대로, 못난 아버지는 못난 아버지대로 아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버지는 대개 잘난 아들만 진정한 아들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못난 아들을 차별 대우하면서도 크게 미안해하지 않는 편파성을 가진 아버지가 많다. 반항하거나 기대에 어긋나는 아들을 향해 호적에서 파버린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아버지가 까다로울수록, 학식과 사회적 위상이 높을수록 , 즉 배운 아버지일수록 아들에 대한 요구가 많아진다   

    특히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상이자 존경할 만한 대상이기는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와 같아지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은 존재다. 너무 멀리 보이므로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다.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혼자서 겪고 헤쳐 온 그 자신감과 고집스러움, 오만함은 아들로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 소유욕과 권력욕이 강한 아버지는 아들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아들이 하는 행동은 다 못마땅하고 눈에 안 찬다. 이면에는 아들의 성장은 자신의 후퇴를 의미하기 때문에 성장을 방해하고 기를 꺾으려는 심리도 존재한다고 하였다. 수시로 아들을 비하하고 평가절하해서 자신감이 없는 아들로 만들어 버린다. 칭찬받을 행동을 해도 뭐 그 정도 가지고 잘했다고식으로 말해 버린다. 아들의 성장이 즐거운 일이 아니고 나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경쟁의 심리가 작용한다고 했다. 이런 심리는 특히 권력자에게 많다. 아들에게는 비극이다 

     부자 사이에서 중재자로서 어머니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중재하는 사람이 어머니이고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의 폭력에 맞서 주는 사람이 어머니다. 사도세자의 비극은 어머니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사도세자의 생모가 살아 있었다면 자식을 죽이는 불행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막강한 아버지는 아들과의 권력싸움에서 이겨도 문제, 져도 문제다. 욕망이 강한 아버지는 끝까지 권리와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한다. 자식에게 돈도 안 주고 의견을 주장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그걸 감내해야 하는 아들의 선택은 아버지의 곁을 떠나거나 아버지를 제거하거나 하는 두 가지이다.      자신에게 하루빨리 모든 것이 이양되길 원하지만 아버지가 그럴 의향이 없는 상황에서 기다리지 못하면 비극이 발생한다.

  아버지가 가진 것이 많은 재벌가에서 흔하지만, 평범한 가정에서도 일어난다고 한다. 오래전 사건이지만 유학까지 다녀와 교수가 된 아들이 인색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재산을 나누어 주려 하지 않는 부친을 살해한 패륜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는 주려 하지 않았고 아들은 기다릴 줄 몰랐던 것이 비극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준 영화로는 공공의 적이 있다.    지금까지는 능력 있고 강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다 능력 있는 것은 아니다. 실패하고 좌절당한 나약한 아버지가 더 많다. 나약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좋을까? 불행히 이 경우에도 부자관계가 대부분 좋지 않다. 나약한 아버지가 된 데에는 불운한 성장과정 탓이 큰데, 이런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하는 아들은 많지 않다. 그들은 아들에게 나약하고 무책임하고 초라한 존재 그 자체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자존심만 내세운다. 아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나를 무시하는 거냐며 추궁하고 술에 빠져 살기 십상이다. 아들은 초라한 아버지를 비난하며 얕잡아보고 함부로 대하게 된다.   

     부자간 갈등은 뿌리 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존재해 왔다. 부자간 갈등을 해결하고 좋은 관계로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입 맞추고 보듬어주던 시절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세월이, 그리고 각자의 욕망이 관계를 나쁘게 만들어버렸다면 다시 따뜻한 봄날의 초심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아버지는 언제나 나보다 강한 존재이고, 아버지에게 아들은 언제나 나보다 약하고, 귀여운 아이였다. 그때로 돌아가면, 심리적으로라도 그때로 돌아가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훨씬 부드러워진다.  

     우선 아버지가 잘해야 한다. 아버지는 아들보다 세상을 많이 살아봤고 사리분별도 할 줄 안다. 아버지는 자신의 욕망과 소유욕 그리고 무리한 기대를 최대한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아들의 고유한 욕망, 소망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들은 최대한 기다리면서 준비해야 한다. 자신의 때, 자신의 역량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시기를 말이다. 아버지를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 아버지를 향한 승부욕과 패배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누가 이기고 지는 관계가 아니다. 아버지는 시간이 흐르면 죽어서 사라지므로 자연적으로 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속담이 생겨난 것이다.

      아들아! 아버지를 넘어서라. 우리는 아버지만 동일시하여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려면 큰 꿈을 품고 아버지가 아닌 다른 어른들을 본보기로 삼는 것도 괜찮다. 세상에는 아버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웃집 아저씨, 또 업적을 쌓고도 겸손한 어른, 의로운 행동을 한 어른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을 보고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아들 앞에서 뽐내고 으스대며 함부로 대하는 아버지는 사실 그리 잘난 것이 없고 오히려 비굴한 사람이다.

  실재의 인생에서 아버지를 하늘처럼 우러러보던 나약한 아들은 성장하면서 힘이 세고 건실한 청년이 된다. 아버지는 노쇠를 거듭하여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는 것은 시간이 주는 섭리이다.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아버지의 금지로 기죽어 살던 아들이 어느 순간에 아버지의 말이 모두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세월 속에 바뀌어 버린 사회가치도 한 몫을 한다. 노쇠한 아버지보다 자신이 더 강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더더군다나 돈을 벌므로 이제는 아버지의 보호도 필요가 없어진다. 아들은 아버지를 무시한다. 뿐만 아니라 거역한다. 이것을 신화에서는 아버지의 살해라고 하였다. 인생의 단계에서 아들이 독립하여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음을 의미함으로 나쁘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살해당하는 아버지로서는 반가우면서도 슬픈 일이고, 우울한 일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 갈등은 극에 달한다. 이 갈등이 언제 회복될까? 인간사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 이 갈등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

  영국의 한 주간지가 서로 충돌하는 늙은 세대와 젊은 세대의 글을 연속하여 실은 일이 있었다. 어른 세대들은 청년세대들을 게을러터져서 쓸모가 없다고 비난하자. 젊은 세대는 이런 글을 올렸다. ‘당신의 눈에는 게을러터져 보이지만 우리는 학업을 열심히 닦고 있으며, 당신네들이 어질러놓은 난장판 때문에 걱정이 많다.’라고 응수했다.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된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다른 어른이 된다. 이 때문에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우리와 다른 어른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어른으로 자라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지만, 그 갈등은 우리로부터 한 걸음 더 발전으로 나가는 길이다. 미래의 주인은 우리와 다르게 어른이 되는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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