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좀 내버려두자
김 상 립
바닷가에서 자란 나는 유별나게 섬을 좋아한다. 지금 나는 고향 바닷가 높은 언덕에 올라 멀리 남해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섬들이 그림처럼 겹겹이 떠있다. 어떤 것은 누워있고, 어떤 것은 가부좌를 틀었다. 서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쪼그려 앉은 것도 있다. 가슴을 펴고 하늘을 쳐다보는 섬도 있고 바다를 향해 웅크린 섬도 있다. 비록 지어내고 있는 모양은 제각기 달라도 정연한 질서가 있다는 느낌이다. 모두가 꼭 있어야 할 곳에 알맞은 크기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별이 하늘에서 태어나 정해진 자리에 떠있는 것처럼, 섬도 바다에서 태어나 숙명처럼 그렇게 제 자리에 떠있다.
만일 이런 망망대해에 섬이 하나도 없다면 어때 보일까? 아마 조망도 단조롭고, 바라보기가 지루하기까지 할 터이다. 그런 바다에 섬을 배치하고 나면 맛이 확 달라지고 만다. 바다는 섬 때문에 금새 아름답고 환상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섬에는 모래와 바위가 젖은 몸을 말리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핀다. 새도 날고 몸집 작은 짐승마저 제 세상처럼 뛰어 논다. 세월이 흐르면 재미있는 설화(說話)가 만들어져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하여 누가 뭐래도 나는 섬이 육지의 일부가 아니라 바다의 분신이라 생각한다. 바다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섬을 쉬지 않고 보호하고 가꾸어 나간다. 섬 주위를 물고기들의 서식지로 만들어 사람과의 인연을 더욱 깊게 꾸며가는 일도 바다의 몫이다. 이렇게 바다는 숱한 생명체가 섬을 안식처로 삼을 수 있도록 늘 배려하고 보살핀다. 그래서 사람들이 섬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다.
그러나 인구가 팽창하고 사람의 욕심도 함께 늘어나 지구를 뒤덮기 시작하자, 섬들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 늘 사방의 조망도 확 터였고 물길의 흐름도 자유로웠던 섬은 이제는 인공 양식장이나 고기 잡이 그물에 둘러 쌓여 답답하기만 하다. 어떻게 알았는지 거의 매일같이 낚시배가 섬으로 드나들고, 약초 꾼도 섬에 오르니 조용할 날이 없다. 모모한 TV에서는 낚시의 명소니, 코리아헌터니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들까지 찾아내어 광고함으로써, 청정한 섬이 되려 엉뚱한 고생을 하게 생겼다. 어쩌다 이런 섬에는 갑자기 주인이 생기기도하고, 웃돈을 받고 팔아 넘기는 일도 벌어진단다. 만일에 제 자신이 아무 이유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일면식도 없던 사람의 소유가 된다면 그 심사가 어떻겠는가?
그뿐이 아니다. 깊은 산 속에 홀로 사는 자연인처럼, 무인도에도 혼자 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 섬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한다. 산이나 바다, 섬을 불문하고 모두가 자신의 생명력을 가졌을 텐데, 아무리 인구가 불어나더라도 자연이 편안하게 숨쉴 곳은 비워두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제 한 몸 행복하자고 다른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만 일부러 찾아 다니며 ‘홀로 왕국’을 건설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난다는 것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래 전에 사람들이 진출하여 자리를 잡아 도시화가 된 섬은 어쩔 수 없을 터이다. 그런 섬은 벌써 육지에 입적(入籍)되어 있으니 섬이지만 섬이 아니다. 섬은 육지에서 떨어져 혼자 바다에 떠 있어야 한다. 섬이란 외로우니까 섬이 되는 것이다. 외로움을 가까이서 파고들면 원천적인 허무만 남겠지만, 외로움을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아름다운 법이다. 세상사고, 인생사고 간에 현미경을 들여대고 좁쌀에 홈파듯 하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비록 죄지은 사람이라 해도 그의 뒤를 몽땅 파 헤치지 말고 좀 덮어주고 눌러 두는 여유가 있어야 그가 새로 살아갈 희망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남이 채갈까 불안하여 곁에 두고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야만 안심이 된다면, 아마 상대방은 질식할 지경이 될 게다. 섬도 그렇다. 일부러 찾아가 꼭 섬 정수리를 밟고 올라서서 정복자 같은 기분으로 먼 바다를 바라봐야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 오는가? 설령 섬에 귀한 식물이 있으면 마음껏 자생하게 좀 버려두면 어디 탈이라도 나는지, 꼭 끝을 보려 안달이다. 대개 사람들은 맞서 다투던 자에게 승기를 잡으면 아예 밥줄마저 끊어버리려 달려든다. 이런 끝 모를 이기심이 자연을 대하면서도 그대로 나타나니 이런 결과가 벌어지는 것일 게다. 진정 그 섬이 보고 싶으면 배를 타고 한 바퀴 쓱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원래 섬은 좀 떨어진 곳에서 바라봐야 제 맛을 알게 된다. 그래야 섬의 숨소리도, 얘기도 들을 수가 있을 터인데, 아예 그런 시도를 하지 않으니 알 길이 없는 게다.
바다는 작고 여린 자식들이 안타까워 자신의 키를 조금씩 높여 섬을 품 안에 숨기려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해수면(海水面)이 계속 상승하면 섬뿐이 아니고 육지의 상당부분이 바다에 잠길 지경인데도, 모두가 그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마구 날뛴다. 언제나 자연은 제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살도록 그냥 내버려 두기를 갈망하지만, 사람들은 참지를 못한다. 섬이 우리보고 밥을 달래나, 술을 달래나, 돈을 달래나? 존재해서 아름다우면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정보도 많고, 기술력도 좋고, 능력도 뛰어나서 이제 우주로 진출한다는 현대인들이 왜 가까이 있는 섬 하나도 제대로 모르고 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생각이 좀 편해질 줄 알았는데, 어찌된 세상인지 갈수록 이해 하지 못할 일 투성이다. 세상사가 고달프니 생각조차 고단하다. 진정 좋아하고 아끼고 싶으면 그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제발 가만히 좀 내버려두자. (2020)
추신; 이 작품은 2016년에 '섬을 모른다'란 제목으로 단(短) 수필로 쓰여져 카페에 올린 것인데, 고향에서 청탁이 있어 다시 쓴 작품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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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야웅(서정은) 작성시간 20.12.31 자연을 제발 그대로 내버려 둡시다. 여러분...
선생님! 경자년 한 해도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신축년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날마다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 -
답댓글 작성자남평(김상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1.02 감사합니다. 서시인님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고
나날이 행복하기 바랍니다. 지금의 세상은
자연뿐 아니고 사람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힘만 있으면 못살게
하지요.
제발 좀 가만들 계세요.
제 삶이나 깊이 살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