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중 수필 읽기
우리 주변에는 묵묵히 수필만 쓰다가 어느덧 원로가 되신 수필가님들이 많다. 더러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요즘 나는, 우리가 수필가들을 어떤 기준으로 평하여 기려주기도 하고, 아예 무시(?)해버리기도 하는지에 회의를 느낀다. 우리 수필 문단이 조용히 글만 쓰시는 수필가를 너무 야박하게 대하는 것은 아닐까. 문학 권력에는 눈을 감고 글만 쓰시는 원로분의 수필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강찬중 님은 1937년에 안동 선비골(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서 태어나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30대에 교감이 될만큼 성실하게 살으셨다. 그러나 교사로보다는 교육청 등에서 교육 행정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섯 권의 수필집을 냈다. (내가 선 자리 1997. 여백에 그린 그림 1999. 하얀 바다의 명상 2000. 행복이라는 선물(1) 2011. 행복이라는 선물(2) 2018) 대부분의 수필가들이 그렇듯이 조금 늦은 나이에 첫 수필집을 냈다. 대체로 수필쓰기는 늦은 나이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성품이 너무 조용하여 모임에서 바로 내 옆에 앉아계셔도 참석 여부를 모를 정도이다. 그때의 수필을 읽어보면 물결 하나 일렁이지 않는 조용한 호숫가를 거니는 느낌이다. 그의 수필의 많은 분량이 노년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수필을 쓰는 시기와 맞물리다보니 노년 이야기가 많은 것은 당연하리라. 그래서 대구의 수필가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데 등한하였지 않나 싶다.
그는 노후의 삶에 대하여 말하기를 ‘무욕의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했다. 너무 상투적인 말이다. 그러나 그의 수필을 읽어보면 이 말이 자신의 삶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평탄한 삶이라도 오랜 세월을 지나가면 인생의 굽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의 수필에서 두 아이의 엄마였던 딸이 먼저 세상을 떠나간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만큼 가슴이 아팠다는 것이리라.
또 하나는 고향 이야기, 착한 삶의 이야기 등이 많다. 사회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평의 눈으로 바라본 글은 만나기 어렵다. 이 년배의 작가들이 쓴 수필을 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아닌가 싶다. 이 년배들이 살아온 세월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원로 수필가님들의 글에서 항상 지적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자기 이야기를 서정성을 짙게 담아서 수필을 쓴다. 내가 ‘대구의 수필가’라는 책에서 그를 소개한 수필도 고향을 다녀오면서 느낀 이야기이다. 이 글을 소개하면서 그의 수필을 읽어보기로 하자.
“빈 자 리 ''
고향에 다녀오려고 열차 왕복승차권을 예매하였다. 고속열차가 아니더라도 기차여행은 공간이 넓고 자유로워서 그런대로 매력이 있다. 고향을 찾은 게 퍽 오랜만이다. 차창으로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과 낯익은 풍경들에 눈길이 머문다. 근년에 발전이 되었다지만 농촌은 아직도 옛날 그대로가 더 많아 낯설지 않다.
‘국수와 메밀묵을 해놓고 아들을 기다리던 머리가 허옇던 어머니! 이때쯤 골목에서 서성거리실텐데…’오늘따라 그 환영이 눈에 선하다. 모처럼 고향을 찾아도 어머니도 안계시고 고향을 지키는 친구도 한 사람도 없으니 시간이 나도 낯선 곳처럼 갈 곳도 마땅치 않다.
이것저것 고향내만 묻히고 아침에 내려오는 기차를 탔다. 무궁화 2호차 32호석, 지정좌석이다. 자리에 갔더니 어디서 타고 왔는지는 알 수 없어도 한 아주머니가 두 자리를 차지하고 길게 누워서 자고 있지 아니한가. 어찌할까? 잠든 사람을 깨워서‘이 자리는 내 자리요’하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마침 입구에 빈자리가 있어서 거기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정거장 안내를 한다. 여기는 시 지역이어서 많은 사람이 탈 텐데…. 한 분이 올라와 ‘내 자리요’한다. 일어나 지정좌석으로 눈길을 돌리니 역시 자고 있었다. 또 빈자리를 찾았다. 다음 역에서도 또 주인에게 내주어야 했다. 사람들의 눈길이 쏠리며 뒤통수가 화끈거린다.‘저 사람은 승차권도 안 샀나?’하고 핀잔을 주는 것만 같아 참으로 혼란스럽다. 다음에 또 비켜주더라도 빈자리를 찾아 휴대한 포켓북을 펼쳤다. 김상용의‘외로움의 지류를 건너다.’의 편지글을 모은 책이다.‘잉카의 악사들’에 눈이 멎었다.
‘지하철 환승역인 합정역에서 남미 망토를 걸친 볼리비아에서 온 6인조 메스티조 악사들이 민속음악을 연주하면서 CD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아침 9시에 연주를 시작하고 12시에 멈추고 한 20여 분 뒤에 다시 연주를 시작한다. 며칠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다큐멘터리 작가가 리더에게 12시에 휴식시간을 갖지 말고 관객이 많은 그 시간에 연주를 계속하면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하였다. 며칠을 지켜보아도 그대로다. 그날도 12시에 연주가 멈춰졌다.
-그때 머리를 예쁘게 땋은 20대 초반의 한 아가씨가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로 연신 바닥을 두드리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여학생이 리더를 찾았다.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며, 늘 12시에 합정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단다. 이 연주가 시작되고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 돌아가다가 여러 번 낭패를 당했다고 했다. 리더는 그 여학생이 지하철 연계구역으로 들어서면 연주를 멈추기로 결정하였고 다른 악사들도 당연히 받아들였다.’
참 따뜻하다.
한 시간쯤 지났나 보다. 벌써 열차는 종착역을 알린다. 지정좌석에서 누워 자던 아주머니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머리를 매만지며 내릴 채비를 하고 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여기가 내 자리요”하고 한마디의 말도 못하고 바보처럼 빈자리만 찾아서 헤매다가 벌써 목적지에 온 것이다. 그래도 빈자리가 있어서 다행이었고, 따스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긴 여정을 돌아다본다. 나로 인하여 빈자리를 찾아 서성거렸던 사람은 없었을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는 거들먹거리지는 아니 했을까?
칼릴 지브란의 시구가 떠오른다.
“그대들은 누구에게나 잘못을 저지른다. 또한 그대 자신에게도…”
오늘은 ‘행동으로 사랑하라’는 말이 크게 들리는 날이었다.”
이 수필은 그의 따뜻한 심성을 잘 보여준다. 그의 글은 앞에서 말했듯이 호수처럼 잔잔하다. 사용하는 언어들도 쉬운 단어들을 선택하여 이해가 빠르다. 이 글처럼 쉽게 읽혀지는 것이 그의 수필의 특징이기도 하다. 또 ‘국수와 메밀묵을 해놓고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이야기도 고향과 어머니를 담아 우리의 감성을 울리는 내용이다. 강찬중의 초기 수필 들은 이런 내용이 많다. 딸의 이야기는 아픈 이야기이지만 아주 감성적이다.
지금부터는 2018년에 펴낸 수필집 ‘행복이라는 선물’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이 수필집은 80대를 살고 있는 노인의 삶을 잘 보여준다. 삶만이 아니고 사유세계까지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보여준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세월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굳을대로 굳어져 있는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특히 젊은이들의 눈에는 고목의 옹이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노인의 특성이 아닌가.
첫 글이 지금까지 모아둔 책을 상자에 담아 폐지를 모우는 할머니께 전해주러 가는 이야기이다. 내 생을 정리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느껴진다. 그러면서 노인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가를 말한다. 앞 부분의 글은 노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여러가지 불행한 일들도, 노인이란 조건을 앞에 달면 흔히 겪는 일상사로 순치가 된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결론 지었다.
수필집의 소제목을 따라 한 편, 한 편을 읽으면서 노인의 실수담을 마음으로 경험했다. 실수담이기는 하지만 웃을 수만 없는 이야기들이다. 노인에게는 실수 이전에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답을 주는 말이 ‘그래도 감사합니다.’이다.
강찬중은 카톨릭 신자이고, 신심이 아주 짙은 분이다. 카톨릭 신자로서 살아가면서 겪는 이야기들이 아주 많다. 따라서 교훈적인 언어들이 수필집의 전편을 흐르고 있다. 그의 수필집 중에서 이 수필집을 잘 썼다고 추천하기로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노인의 생활과 노인의 사유세계를 잘 보여주는 좋은 책이라 하겠다.
노인에게 남은 가장 큰 명제는 ‘떠나기’이다. 우리는 흔히 노인의 수필에서 넉두리이거나, 세상을 걱정하는 내용을 많이 읽는다. 이제 그의 글 한 편을 읽어보자. 수필을 재미있게 읽었다가 아니고, 생각을 하면서 읽어보기로 하자.
“ 덤으로 받은 축복
밤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한두 번 잠에서 깬다. 나이 탓일까? 다시 뒤척이다가 보면 서너 시가 된다. 가끔 두 번째 잠에서 꿈을 꿀 때가 있다. 오늘은 ‘과일을 깎아서 덤으로 주는 꿈’이었다. 어떤 의미를 주려 함일까?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가 ‘덤’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덤’은 제 값어치의 물건 외에 더 얹어 주고 받는 일‘로 풀이하였다.
수년 전에 집사람이 흉추를 다쳐 시술을 받고 서너 달 고생을 했었는데 잘 극복했다. 이번에도 허리를 삐끗했다더니 MRI와 CT검사 결과 요추 몇 개가 또 내려앉았단다. 그러다가 낫겠지 했는데 통증이 심해서 전문 병원에 입원해서 시술을 받았다. 그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전신이 마비되는 증세로 회복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노인네 둘 만 살아서 집 안팎의 일은 내가 내 몫일 수밖에 없다. 가사에는 손끝 하나 건드린 일이 없는터라 집안 일에는 그저 잘하건 못하건 여자의 몫이려니 했다.
팔순을 넘긴 동기들 모임에서 한 친구가 설거지를 한다고 푸념한다. 그냥 들으면서 옷음만 짓다가 혼잣소리를 한다. “------친구야, 그건 약과여, 누구나 하는 일마다 잔소리를 들어가며 밥을 짓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것뿐이 아닐세, 집사람은 입막음을 하혀는지 살아온 자잘한 얘기를 꺼낸다네, ’옛날에 월급이 모자라 쌀이 떨어질 때도 있었고, 자식의 등록금이 없어서 빌리러 다니기도 하고, 젖먹이의 우유 살 돈이 없어 헤맬 때도 있었고, 그런데도 남편이란 사람은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고------, 섭섭할 때마다 이런 걸 들고 나와 햇볕에 툭툭 던져 놓는다네.” 어쩌면 부엌 일을 해도 당연하다는 투다. 그래도 설거지를 하면서 신체 조건이 아담해서 별로 보기 싫지 않을 거라고 웃어넘긴다. 자식들은 도우미를 쓰라지만 이젠 할 일도 별로 없는 터라 쉬엄쉬엄 할테니 놔두라고 이른다. 사실 집사람과 나는 덤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행히 초기에 암을 발견하고 수술을 했고, 항암 치료도 했지만 벌써 20여 년을 훌쩍 넘겼으니 그것만도 행운이 아니랴. 구약에서 읽은 구절이다. “그분은 ------ 물 없이 매마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너희를 위하여 차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분이시다. ------ 그것은 너희를 낮추고 시험하셔서 뒷날에 너희가 잘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신명기 8.14~16. 약속의 땅에서 받게 될 유혹) 참으로 위안을 주는 말이 아닐까.
정년 퇴임 후에 호스티스 봉사활동을 할 때다. 어느 날 병실에서 환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옆 병상의 환자가 지나는 말로 ‘얼마나 살기 어려우묜 머리가 허연 노인이 중환자실을 찾아다니면서 이런 짓을 하느냐?’ 못 들은 척 했다. 사실은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50대의 간암 환자와 나눈 얘기다. ‘어려운 수술을 잘 해 주셔서 감사하고, 퇴원해서 무공해 채소를 가꾸어 가족의 건강도 챙기고 ---.’ 하면서 퇴원했는데 서너 달 뒤 초췌한 모습으로 재입원하였다. ‘간장이 좀 낳이진 듯하여 무리를 한 것 같다.’ 병자 성사를 받은 이틀 뒤 하늘나라로 떠났다. 장례미사에서 남편이 눈을 감지 않는다고 울먹인다. ‘사랑하는 아내와 대학생인 딸, 그리고 고등학생인 아들을 두고 어찌 쉽게 눈을 감겠나-----.’고 사별가족에게 위로를 드린 기억이 있다.
이제 죽음을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 할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글에서 이다. ‘할머니는 1년 전부터 말기암으로 고통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에도 고통이 없는 것처럼 웃음을 잃지 않아 늘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잠을 좀 자겠다며 자리에 누웠다. 할아버지는 그 틈을 타 외출을 한 사이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할아버지는 ’이제 쉴 때가 되었구먼! 하시고는 심한 가슴앓이를 하셨다. 그 후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추억이 서린 곳을 여러 날 여행하시고-----.‘
아마도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원한다 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덤으로 받는 축복이 아닐까.‘ 한다. 현대의 불치병인 암의 가장 좋은 치료약은 ’감사‘하는 일이며 ’ 그 하루는 축복의 하루이다. ‘라고 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 나이에 그래도 자기 손으로 먹을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고, 그리고 집사람이 투병 중이긴 하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축복이 아닐까 싶다. 거실을 청소하면서 감사의 나무에서 덤으로 받은 축복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희망을 가져본다. ”
강찬중이 노년에 쓴 수필집을 읽으면서 받은 인상은 한 마디로 ’글이 담담하다‘ 이다. 나도 ’아주 담담하다.‘라고 하였다가 ’아주‘라는 말이 오히려 글의 분위기를 해치는 듯이 느껴져서 그냥 ’담담하다‘라고 했다. 강찬중은 나의 생활, 나의 생각, 나의 느낌을 남의 것을 이야기하듯이 서술하였다. 수필의 속성상 감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지만 글의 표현에서 감정을 최대한으로 제거하였다. 이와 같은 표현기법이 수필집의 전 글에서 흐른다. 그래서 그의 글은 자신이 소비한 전 인생을 남의 인생을 바라보듯이 조용히 관조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닐까.
노인들은 관용의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잘못된 말은 아니지만, 노인이 쓴 수필을 읽어보면 이외로 자신의 가치관에 매몰되어서 관용보다는 배타적인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장 흔한 표현은 ’요즘의 젊은이들은‘이라든지, ’우리는 어떠하였는데‘ 라면서 자신들의 젊었을 적 생활을 본 받아라는 투의 글이 많다. 주장이 너무 완고하면 글이 거칠게 느껴진다. 노인의 고정된 가치관은 노인의 특성이기 때문에 강찬중의 글에서도 없을 수는 없지만, 상당히 완화된 표현을 함으로 부드럽게 느껴진다.
‘참 행복한 사람들’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런 면에서는 나도 강선생님과 다를 바 없다. 내가 겪은 바로는 우리보다 년세가 높으신 분들이, 더욱이 안동 지방 출신의 어르신들이 노래 부르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더 심한 것 같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지역의 선비 문화의 영향이 아닐까 싶지만, 어쨌거나 그가 말한 ‘행복은 버리고 내려놓고, 포기함으로서 얻어진단다.’에서 그 답을 생각해 보았다. 이 말에서 자신이 노래를 기피하면서도 노래공연장의 청중들이 신나 하는 것을 부러워한다. 그렇게 분위기에도 참여할 수 없는 것을 두고 부러움조차도 포기해야만이 행복을 얻는다.고 한 말로 읽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부부만 남아서 노년 생활을 할 때, 어느 한 쪽의 몸이 온전치 못하면 느껴지는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노년의 불편함을 ‘덤’이라는 생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덤’이라는 말에는 포기의 뜻이 있다. 포기의 철학이라고 할까. 더 나아가서 바로 앞에 다가와 있는 죽음 이야기도 ‘덤으로 받는 축복’에서 담담하게 표현한다. 나보다 일찍 죽었고, 또 나보다 불행하게 살았던 사람과 비교하면 내 삶은 덤이고, 축복이다, 라는 것이다. 자신의 종교를 강조하다 보면 타 종교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강찬중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강찬중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교의 가르침을 자신의 생활에 가져와서 ‘덤’이라는 인생철학을 만들었다.
요즘의 수필가가 자신의 과거사나 생활사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글을 많이 본다.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여 독자가 자기의 글에 빠져들게 한다. 이런 글을 잘 쓴 수필로 평하는 비평가의 글도 많이 읽었다. 이런 추세 때문에 우리 문단의 원로 수필가님이 감정을 억제하고 쓴 글이 홀대를 받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강찬중님의 글을 읽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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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치자꽃 이선영 작성시간 21.09.29 강찬중 수필가님의 삶이 묻어나온 작품을 대할 때마다 정중동의 여유로움과 예의 바른 성실한 삶을 느끼게 한다.
가까이 성당에서의 만남과 독서모임 등을 통해서도 위에서 말씀 하신데로 담담하면서도 조용한 비움과 도움을 아는 선비로 느끼게 한다.
사모님 임수산나씨를 요양원에서 만났을때 부부가 서로 이렇게 지극한 분들은 드물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매사에 성실한 삶이 녹아진 글 속에 안동사범 3년 선배님의 언행일치의 삶을 알아서 그런가 과장 없는 그의 글을 읽을 때에 담담하게 피력함을 나역시 긍정적으로 느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