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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분과 방

그림 이야기(69) - 밀러의 비너스

작성자이동민|작성시간23.12.26|조회수47 목록 댓글 1
밀러의 비너스

 

밀러의 비너스

 

 유명한 밀러의 비너스이다.

 1820년에 발굴하였다. 기원전 150년 경의 작품이라고 한다.

 

 헬레니즘 시기가 되면 조각 작품은 사실적이 되고, 표현주의적이 된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조각상은 창의력에 의한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내었다기 보다는 고전적인 여러 모티브를 배합하고 발전시켜서 만들었다. 고대의 미에서 미의 전통을 구하여 모방하고, 발전시키는 예는 미술사에서 무수히 많다. 우리는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가들이 미의 전형을 앞선 시대인 고전기의 그리스에서 구했음을 알 수 있다.

 

 밀러의 비너스는 발굴 당시부터(1820년) 대중들에게 “미의 상징”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 비너스 상은 다른 비너스와 비교하여 훨씬 더 풍만하고, 건장하다. 그래서 어떤 미술사학자들은 밀러의 비너스를 “밀밭 속의 느티나무”라고 표현하였음도 고전적인 미에다 새로운 헬레니즘 양식을 더해서 만든 절충주의 양식임을 표현한 말이다.

 그리스 미술에서 비너스 상은 단정하고, 우아함이 고전기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헬레니즘 시대가 되어서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여체가 욕망의 대상이라는 사상도 침투해들어와서 그리스인의 이성관에 변화를 일으켜 준다.(여체는 성적욕구의 대상이라는)

 

 서양미술에서 여체는 욕망의 표현이다. 이것을 저속하지 않고, 천상의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 유럽 예술의 목표이기도 하였다. 서양의 예술가들은 욕망과 정숙함을 결합하여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심하였다. 그 결과가 “밀러의 비너스”라고 하였다.

 

 그들은 인체를 (인체 비례율 등) 있는데로 표현하지 않고 이상화하기 위해서 왜곡하여 표현하였다. 일반적으로 유방은 더 부풀리고, 한 쪽 엉덩이는 둥글게 부풀리고, 허리는 유연하게 곡선화하므로 길고 부드럽게 구비치도록 하였다. 이러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체를 S-곡선으로 만들었다. 체중은 한쪽 다리에 싣고, 다른 쪽 다리는 약간 구부린 듯이 하였다.

 

 실제의 우리가 이런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실험을 한 번 해 보세요.

 

 다른 한 편에는 비너스는 원래 숭배의 여신이므로 아름다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의식적인 사고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러나 헬레니즘 시대가 되면 무역이 활발해지고, 부의 축적이 일어나면서 부르주아지 계급이 등장한다. 이들의 취향은 종교적이기 보다는 장식적이고, 쾌락적이고, 아름다움의 추구를 더 좋아한다. 따라서 전통적인 양식에 새로운 양식을 받아들이는 절충주의 양식이 생겨났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프락시텔레스와 리십포스 양식에다 헬레니즘 시대의 관능적인 새로운 양식을 보탰다. 한쪽을 꿈꾸는 듯이 바라보는 자세는 프락시텔레스 기법이다. 인체 비례는 고전기 양식이지만 다리를 벌리고 , 무릎을 앞으로 내민 것은 헬레니즘 양식이다. 옷을 흘러내리게 하여 에로틱하게 표현한 것은 헬레니즘 양식이다. 관능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몸을 S-곡선으로 취하는 것은 지금의 모델도 흔히 취하는 자세이다.

 

 ==> 그리스 조각가들은 이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수 백 년 동안 탐색의 여행을 하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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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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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심후섭 | 작성시간 23.12.28
    연전 유럽 여행 때에
    로마인들이 부수었던 고대 그리스 조각품들이
    르네상스 이후
    복원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설명을 얼핏 들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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