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를 찾아 가는 길
불교를 처음 받아들였을 초기에는 왕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왕실의 원찰로 절을 지었다. 평지에 절집을 지은 평지 가람이 기본이었다. 신라 말기가 되면서 선종이 유행하면서 절집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산지 가람이 되었다. 흔히 산사(山寺)라고 부른다. 산사를 찾아가는 길은 단순히 산길이 아니고 불교의 우주관을 나타내었다. 동화사를 찾아가면서 불교의 우주관을 살펴보자.
조선시대에는 동화사를 찾아 가려면 새벽같이 밥을 지어 먹고 사립문을 나서야 한다. 절에 닿으려면 바위를 안고 도는 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한 골짜기를 따라 한참이나 깊숙하게 들어가야 한다. 아무래도 지금의 백안 쯤을 지나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도 끝이 난다. 속세를 사는 사람이 마을을 이루고 살 수 있는 곳은 백안까지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속인들이 동화사를 찾아가는 길은 결코 수월하지 않다.
산골의 여기저기서 흐르는 물을 모아서 제법 큰 개울을 만들면서 절 앞으로 흘러가는 것이 우리나라 절집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절의 입구에는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놓는다. 중생들이 살고 있는 속세는 평평한 평교가 일반적이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곳에 놓는 다리는 홍교이다. 우리가 무지개 다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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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의 주차장(예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장에 발을 딛으면 바로 앞이 절벽이다. 절벽에는 인자하게 생기신 마애불이 아래로 내려다보고 계신다. 삼배를 드리고 나면 마음이 평정을 찾는다. 절로 향해 걸음을 돌리면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 현판은 ‘팔공산 동화사 봉황문(八公山桐華寺鳳凰門)으로 되어 있다.
절이 있는 곳을 흔히 수미산 정상이라고 말한다. 수미산은 우리 중생이 살고 있는 사바세계를 하늘과 이어주는 산이다. 우주산이라고 말한다. 절은 수미산 정상에 있다. 여기서부터 하늘나라이다.
절을 찾아가는 길은 수미산을 오르는 길이다. 수미산을 오른다는 것은 불법을 깨우치러 한 걸음, 한 걸음씩 정진한다는 의미이다. 산을 오르는 길이 힘이 드는 것은 그만큼 해탈의 길이 어렵다는 뜻이다. 산에 있는 절을 찾아가는 일이 결코 수월한 길이 아닌 이유이다.
수미산 자락에 있는 일주문을 지날 때는 해탈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일심으로 마음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봉황문을 넘어 설 때는 속세의 인연을 끊고 부처님을 찾아가는 일념으로 모아야 한다. 속세의 수많은 번뇌를 떨치고 오로지 부처님을 찾아가는 한 마음으로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주(一柱)의 뜻은 일심(一心)을 뜻한다.
일주문인 봉황문을 넘어서면 제법 넓은 오르막 길이 나온다. 완만한 산길이지만 절까지 닿으려면 거리가 만만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소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스치는 바람 소리가 맑고, 뜀박질하면서 굴러 내리는 계곡의 물소리가 청아하기 그지없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 발, 한 발 내딛노라면 속세의 번뇌는 하나씩 하나씩 소멸된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폭포골이라 부르는 계곡에서 쏟아지는 물이 합친다. 나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폭포골 입구에 솟아있는 바위 벼랑을 눈여겨 본다. 전에는 바위 밑이나 틈새에 촛불을 켠 흔적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산불 때문에 금지한 탓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이곳이 우리 토속 신앙터가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추측일 뿐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물가에 높이 솟은 바위를 좋은 기도처로 삼았지 않는가?
절집을 오르는 길 바로 옆에 돌을 깎아 만든 계단이 하늘 높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 동화사가 있는 팔공산을 약사신앙의 성지로 조성하였다. 이 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약사불이 계신다. 이 계단은 방금 조성한 약사불을 뵈우러 갈 때 오르는 계단이다. 오늘은 옛 기도처만 찾아가기로 하고 여기 계시는 약사여래는 지나치기로 하자.
약사불을 조성한 바로 맞은 편에 금강원이 있다. 금강원 앞에는 비석을 세워 둔 비림이 있다. 비석은 이 동화사에 주석하면서 중생들을 계도한 스님들의 비이다. 이들의 비 중에는 인악대사의 비가 유명하다.
비림 뒤에 있는 금강원에는 스님들이 수도를 하는 도장이므로 속세의 중생들은 들어 갈 수가 없다. 나는 동화사를 올 때 마다 굳게 닫혀 있는 금강원의 문 앞에서 실망을 되씹는다. 금강원에는 신라시대의 삼층 석탑이 두 기 있다. 쌍탑 양식이다. 극락전과 수마제전도 있다. 수마제전의 축담이 신라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중요한 유적 자료이다. 나는 담 너머로 바라다 보다가 아쉬움을 안고 돌아서곤 하였다. 이 자리가 신라시대에 심지대사가 창건한 원래의 절터라고 한다.
금강원과 동화사 사이에는 제법 많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개울 위로는 대구의 모 부자가 공양한 다리가 놓여 있다. 이 다리를 건너야 동화사에 들어 갈 수 있다. 다리는 무지개 다리 형식으로 된 홍교이다. 절 앞을 흐르는 계울물은 이승과 저승을 가로막는 경계이다. 극락의 땅에 가려면 이 개울을 건너야 함으로 평교가 아닌 무지개 다리를 놓는다. 그래서 무지개 다리를 넘어서서 닿는 곳이 피안이다. 저쪽 물가라는 뜻이지만 단지 공간적 위치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피안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을 말한다. 저쪽 언덕! 그것은 우리가 갈 수 없어서 꿈만 꾸는 이상향이다. 바로 극락 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홍교에 올라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개울 바닥에는 반짝이는 동전들이 널려있다. 홍교를 건널 때 사람들이 행운을 빌면서 던진 동전들이다. 물속에 동전을 던져 넣는 것은 불교적인 의식이 아니다. 토속 신앙의 의식이라고 하였다. 물에 던져 넣는 동전은 성결합을 상징하는 의식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문화의 뿌리는 무의식 속에서 살아남아 있다고 말한다.
홍교를 지나면 하늘나라이다. 계단을 오르면 수미산 중턱이다. 사천왕이 주처를 정하고 머무는 곳이다. 사천왕이 머무는 곳을 사천왕천이라고도 한다. 사천왕은 사방 세계의 나쁜 악귀가 하늘나라에는 얼씬도 못하도록 막는 일을 한다. 사천왕이 머물면서 뷸국토를 지키는 곳을 사천왕문, 또는 천왕문이라고 한다. 동화사에는 옹호문이라고 하였다. 불법을 옹호하는 일을 함으로 이름이 맞다 싶다. 불교적인 해석으로는 온갖 악귀는 속세의 인간이 떨쳐버리지 못하는 온갖 번뇌라고 하였다. 사천왕문을 넘어서면 우리는 사천왕의 힘을 빌려서라도 번뇌를 떨쳐야 한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나온다. 마당 너머에 봉서루가 있다. 봉서루 아래로 법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이다. 봉서루가 바로 불이문이다. 불이문을 지나면 절 마당이 나오고 마주 바라보이는 전각이 그 절에서 모시는 부처님이 계시는 주불전이다. 불이문 너머에는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므로 바로 극락이고, 정토이다.
불이문은 이 세상의 진리는 둘이 아니다, 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인가? 하나라고 하지 않고 불이라고 한 것은 하나도 아니기 때문이라 하였다. 불교의 묘미는 바로 불이에 있다 하겠다.
그렇다면 불이문을 왜 봉서루라고 하였을까? 말 그대로 동화사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곳이 오동나무가 많았다고 하였다. 오동나무에는 봉이 날아드는 상서로운 곳이므로 동서루라 이름 붙였다. 오동나무와 봉은 불교적인 것이 아니다. 동화사의 일주문을 봉황문이라고 한 것도 이와 같은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동화사를 오르는 길은 수월한 길은 아니다. 그러나 산사를 오르는 길은 그냥 길이 아니다. 해탈을 하는 수행의 과정이다. 극락정토에 가기 위해 속세의 중생이 몸을 닦고, 마음을 닦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극락을 정토라고도 하고 불굴토라고도 말한다. 부처님이 사시는 땅이 바로 극락이고, 불국토이다. 불이문을 넘어서면 탑이 나오고 주불전이 나온다. 탑이 있는 절 마당이 바로 극락정토이다.
오늘은 일주문을 지나서 산길을 힘들여 오르지 않는다. 산 마루를 넘어서서 절의 옆구리로 들어가도록 길을 닦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오기 쉽게 하련다지만 수행과 해탈이라는 본래의 뜻을 버리고 손님을 많이 유치하려는 장사 속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