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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민 수필 - 불한당 계보

작성자이동민|작성시간26.06.22|조회수31 목록 댓글 0

        불한당 계보

                        이동민

 

 조선을 건국한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전쟁터를 돌아다닌 군인이다 보니 불한당의 기질이 많이 보인다. 그를 따르는 사람도 주먹을 쓰는 건달의 모습이 많다. 선죽교에서 일어난 피의 축제를 보면 그들의 성향이 불한당이었음을 말해준다.

 옛날에는 밥을 먹으려면 농사일 밖에 없었다. 농사를 짓거나. 농사군이 되기 싫으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선량한 사람의 등이나 처먹는 두 부류 밖에 없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히면 권력의 공백기에는 무리를 지어서 돌아다니는 폭력 집단이 유행했다. 이들은 운이 좋으면 권세를 손에 쥐고 나라를 세우기도 했다.

 유협(遊俠)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협객이라는 뜻이다. 유비, 관우, 장비가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하다. 이들은 서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만큼 신의를 지켰다는 전설을 남긴 사람들이다. 불한당의 역사는 유협이라고 불리면서 긍정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에 빌붙어서 이익을 쫓았다. 권력과 이익을 탐하는 사람이 사실상의 불한당 계보를 시작했다.

 방원이 정도전을 치면서 불한당의 계보를 이었다. 수양대군이 김종서와 황보인을 참살하면서 새로운 계보가 만들어 졌다. 정인지, 신숙주, 최항처럼 권력에 빌붙어 이익을 쫓는 사람이 계보를 잇기 시작한 것이다. 한명회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한명회는 양반 자제이면서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해 시중의 밑바닥을 돌아다니는 건달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룸펜이었다. 오늘의 깡패이고, 양아치이고, 조폭이다. 이들은 진정한 불한당들이다.

 

 한명회와 신숙주에 이르면 불한당 계보에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이시애가 두만강이 흐르는 변방에서 상사인 김종서의 원수를 갚겠다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어쨌거나 협객의 면모를 보이기는 한다. 이를 진압한 사람이 아직 20대인 남이 장군이다 .출세 길이 훤하게 뚫려졌고, 그 길로 달려갔다. 불한당 계보에 속하는 사람의 속성으로는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칼을 휘두르던 지금까지의 불한당과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남이 장군이 두만강 너머 끝없이 펼쳐져 있는 만주벌을 보고 시를 지었다. “백두산 물에 칼을 갈고, 두만강 물을 말에게 먹여, (男兒二十未平國)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편안하게 못 하였으니 훗날 누가 나를 사나이라 하겠는가?” 한명회와 신숙주와 유자광이 머리를 맛대고 ‘平’자를 물고 늘어졌다. 역적질을 했다고 몰아세웟다. 남이 쓴 글귀를 가지고 제 멋대로 해석하여 올가미를 만들었다. 불한당 계보를 추적하면서 내가 부끄러웠다.

 글자를 가지고 장난을 친 더 부끄러운 사건도 있었다. 나무 잎에 꿀로 글자를 써서 조광조를 몰아낸 사건은 곤쟁이 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불한당으로서도 수치스럽다는 뜻이리라. 한명회가 남이를 제거하는데 성공함으로 불한당 역사에 꼼수가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후로 이런 종류의 불한당 쇼는 계속되었다.

연산군 때는 김종직이라는 선비가 ‘조의제문’이라는 글을 지었다. 항우가 어린 의제를 뱃놀이를 핑계로 물에 빠뜨려 죽인 사건이 있었다. 의제가 억울하게 죽어서 불쌍하다는 내용이었다. 공을 세워 요직을 차지하려는 불한당 패거리들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단종을 빗대어서 세조 대왕을 욕 보인 일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들은 성공했고, 공신이 되어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

 

조선 초기에 칼을 뻬들고 상대를 제거하는 일은 그래도 협객이라 부를 만한 소지는 있었다. 이후로 글귀를 가지고 제 멋대로 해석하여 상대를 제거하는 일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좀생이 일이지 협객이랄 수는 없다. 이처럼 불한당의 계보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서정주와 유치환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라고 배웠다. 왜정시대 때 쓴 글이 빌미가 되어서 친일작가로 내몰리고 있다. 불한당식으로 말하자면 제거당하고 있다. 글을 빌미로 쫓아내려는 사람이 불한당인지, 쫓겨나는 사람이 불한당인지 헷갈린다. 이제는 불한당 계보를 만들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

해방이 되고 남과 북 사이에 전쟁을 치루었다. 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북으로 쫓겨 갔는가. 그러나 1980년 대가 되니 이들을 해금문인이라면서 풀어주었다. 그렇다면 전쟁 중에 글을 이유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이 불한당 계보에 속해야 한다.

 

 이회창과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를 치룰 때에 신종 불한당이 나타났다. 이회창의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은 일에 자신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김대업이라는 사람이다. 선거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선거 뒤에 거짓으로 판명되어 감옥에 갔다. 사적인 이익을 얻은 것도 아니다. 한명회처럼 벼슬을 얻어서 부귀영화를 눈린 것도 아니다. 왜 불한당 짓을 했는지를 알 수 없다. 불한당은 틀림없는데 어느 계보로 해야 할 지는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불한당이다. 불한당들도 끊임없이 변신을 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텔레비전 앞에 나와서 토론을 했다.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물었다. 허위 사실로 댓글을 달아서 비방하는 것이 양념입니까? 댓글은 양념공장입니까?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불한당의 역사를 쓰다보면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새로운 수법도 꾸준히 나타났다. 그렇더라도 분명한 것은 이익 추구였다. 대통령 선거가 아니고, 별 볼 일 없는 작은 단체의 선거에도 댓글은 얼굴을 내밀면서 새로운 불한당 계보를 만든다.

 불한당의 계보를 찾아나서 보니 끝없이 변신했다. 불한당의 절대 조건으로 믿었던 사적 이익 추구도 이제는 불분명하다. 양념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종 불한당의 탄생을 눈 앞에서 보고 있다.

                  2017.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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