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감히~~
수필가 이강촌
아파트 울을 치고 있는 측백나무 냄새가 향긋하다.
나는 한강이 멀찌기 내려다보이는 언덕바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침 해가 용문 산줄기를 타고 솟아
올라 아침 햇살이 한강물을 반짝거리게 만들 시간이면 우리 아파트 동쪽으로 울을 치고 있는 측백나무들의 아기자기한 초록 이파리들 사이로도 분홍빛 아침 햇살이 반짝 거린다. 나는 사시사철 푸른 그들의 아침햇살 품은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침마다 아파트 둘레를 몇 바퀴 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날 산책길에 올려다 본 측백나무 한그루가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깜짝 놀란 마음으로 곁으로 다가가 보았더니 칡덩굴이 측백나무를 휘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나...어찌 이럴 수가...
감히 네가 너의 분수를 모르고 청청 푸른 잎과 튼실한 줄기로 하늘만 바라보고 고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측백나무의 목줄을 죄어 허옇게 말라가게 만들고 있다니, 너는 여기 있을 곳이 아니잖아. 너는 귀한 약초로 쓰이기는 하지만 분수를 모르고 아무 곳에서나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뽑아 올리면 그건 하찮은 잡초에 지나지 않는단다. 푸르다고 모두 정원수로 뽑혀 올 수는 없는 일.
세상 모든 생명에는 분명 자기가 살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붙잡고 매달려 올라가도 되는 자리가 있고 오르면 절대로 안 되는 못 오를 나무가 있고 자리가 있으며 환경이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너는 천박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아파트 정원에서 활개를 치고 있었더냐.
나는 잠시도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없어 부엌가위를 들고 칡넝쿨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유심히 살펴보니 아파트 담장 언덕 아래에서 자리를 잡고 올라온 칡넝쿨이었다. 아기 손목만큼이나 굵어진 줄기 밑동을 찾느라 노쇠하고 어둔한 몸으로 언덕을 오르다가 미끄러져 다리와 팔에 시퍼런 멍을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의 근원을 찾아냈고 나는 그의 줄기를 자르느라 손가락에 물집을 만들어가면서 드뎌 싹둑 잘라 버릴 수 있었다. 그는 강한 생명력으로 다시 올라 오겠지만 쉽게 측백나무를 덮치지는 못하리라.
나는 측백나무를 향한 찐한 그리움을 품고 있다. 따라서 가슴 아픈 사연도 함께 안고 있다. 아버지의 냄새를 닮은 측백나무의 향기, 그리우나 그리워지지만은 않는, 보고 싶다고 언제나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존재를, 아버지처럼 나의 손이 닫지 못하도록 높이 솟아 있던 측백나무를 안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보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에는 솟을대문을 열고 큰 마당에 들어서면 바로 아버지께서 거처하시던 사랑채가 있었다. 사랑채 앞의 꽃밭에는 매화와 목련이 봄이 오는 것을 알려 주었고 뒤따라 앵두꽃이 하얗게 피었으며 나리, 모란, 원추리 등 온갖 꽃들이 일 년 내 내 피고 지기를 계속했는데, 그 꽃밭의 가장자리에는 측백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측백나무는 곁가지를 잘라 가면서 곧게 키웠기 때문에 아이들이 쉽게 올라갈 수도 없었으며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어린 나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 키가 크고 두 팔로 감아 안아 볼 수 없는 오래 묵은 나무였다. 여름이면 아버지의 사랑방과 사랑 대청에 짙은 그늘을 만들어 주어 아버지는 그늘이 드리워진 사랑대청에서 돗자리를 깔아놓고 글을 읽곤 하셨으며 또 겨울에는 측백나무의 짙은 숲이 사랑채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지금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일제시대에 향리에서 으뜸가게 신학과 한학을 고루 공부하셨는데, 아버지는 나라를 빼앗긴 아픔에 사무쳐 일본 정부의 부름을 마다하고 풍류의 삶을 사셨다.
아버지께서 사랑방에 불을 밝히고 글을 읽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나는 안마당과 바깥마당을 번잡스럽게 드나들거나 사랑방에서 가장 가까운 꽃밭에 나가 측백나무 주위를 뱅뱅 돌았다. 길게 늘어졌다가 짧아졌다가 높았다가 낮아졌다가 하는 아버지의 글 읽는 소리는, 어찌 들으면 자장가 같기도 했고 또 어찌 들으면 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막내딸인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글 읽는 소리는 언제나 그리움이었다.
아버지가 사랑채를 지키고 계실 때면 사랑방에서는 아버지의 냄새인 묵향이 흘러나왔다. 그 먹의 향기는 측백나무의 풋풋한 향내와 어울려 집안을 향기롭고 생기 넘치게 만들어 주었으며, 그런 날이면 부엌에서는 도마소리가 잦아지고 고공들은 큰 마당에서 더욱 부지런하게 거름을 뒤적였다.
아버지의 아버지인 할아버지, 나는 뵙지 못했지만 할아버지는 어떻게 그 당시 구하기 귀했을 측백나무를 사랑채 앞에 심으셨을까. 성지(聖枝)인 측백나무,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는 종려나무대신 성당에서 성지로 사용하는 측백나무를 사랑채 앞에 우뚝 솟도록 기르셨을까,
낙동강 변에 사정없이 몰아치는 일본인들의 모진 압력과 눈비바람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는 깊은 사랑이셨을까. 잘 자라 풋풋한 향기와 계절마다 다른 바람소리를 모아 할아버지보다 더 고매한 선비의 기가 길러지길 바라셨을까. 사시사철 푸르게 곧게 선 측백나무처럼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도 굴하지 말고 바르고 굳은 선비의 자세로 나라의 근본을 지키라는 할아버지의 소망을 품어 심은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오늘 아침도 낙동강 물을 닮은 한강의 큰 물줄기의 기와 양평의 맑고 푸른 공기가 푹 배어있는 측백나무의 숲길을 걷는다. 측백나무엔 할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를 향한 안타까움과 또 못 다한 그리움과 존경심이 품어져 나를 자주 울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