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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어산에 흐른 불심(2부) / 김성문

작성자김성문|작성시간26.09.01|조회수47 목록 댓글 0

신어산에 흐른 불심(2) / 김성문

 

<1부에서 계속>

동림사를 뒤로하고 1.5km쯤 더 오르면 신어산 정상 가까이에 자리한 영구암에 닿는다. 암자로 향하는 마지막 300m 남짓은 제법 가파르다. 돌계단과 흙길이 번갈아 이어지고, 길가에는 기암괴석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숨을 고르며 뒤돌아보니 굽이진 산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오르막을 지나온 몸에는 고단함이 남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영구암에는 신령한 물고기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샘이 있다. 주변에는 오래된 석축과 석탑의 흔적도 남아 있어 이곳에 켜켜이 쌓인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신라 흥덕왕 때 축조되었다고 전하는 석벽 역시 오랜 세월 산중의 한자리를 지켜왔다.

 

영구암에는 두 점의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가 있다. 하나는 김해 영구암 삼층석탑이고, 다른 하나는 영구암 칠성탱이다.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 등 많은 부재가 사라졌지만, 기단 일부와 세 층의 옥개석, 노반과 복발 등이 남아 있어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온전하지 않기에 오히려 세월의 흔적이 더 또렷했다. 비어 있는 부분까지도 탑의 역사처럼 느껴졌다.

 

칠성탱은 20세기 초 화승 완호낙현이 그린 불화다. 북두칠성을 비롯한 여러 성군이 화면 가득 배치되어 있다. 예부터 칠성은 수명과 자손의 안녕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과 불교가 만나 형성된 신앙의 대상이었다. 칠성탱 앞에 서자 문득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해가 저물고 마당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어머니는 장독대로 나가곤 했다. 장독 뚜껑 위로 희미한 별빛이 내려앉고, 어머니는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어린 나는 얼마쯤 떨어진 곳에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원을 그토록 오래 빌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 기도의 대부분은 자식들의 무사와 앞날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소망보다 자식의 이름을 더 오래 가슴에 품고 살았다. 칠성탱 앞에서 두 손을 모으니 오래전 장독대 위에 서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별빛 속에서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기도의 깊이가 이제야 조금씩 마음에 닿았다. 어머니의 기도는 어느 종교의 이름보다 먼저 내 삶을 지켜온 사랑이었다. 내가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밝혀준 하나의 등불이었다.

 

문득 예전에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서 바라보았던 신어산이 떠올랐다. 멀리서 본 산의 형상은 거대한 거북이가 바다를 향해 기어 나가는 듯했다. 그 기억을 떠올리니 영구암의 이름에 들어 있는 두 글자도 새삼 의미 있게 다가왔다.

 

영구암은 한때 수행처로 이름을 떨쳤고 지금도 고요를 찾아 산을 오르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는 기도를 위해, 누군가는 참선을 위해, 또 누군가는 단지 산길을 걷기 위해 이곳을 찾을 것이다. 목적은 달라도 산은 묻지 않고 사람들을 품어준다.

 

은하사와 동림사, 영구암을 돌아 내려오는 동안 오래된 현판과 석탑, 불화와 스님의 이야기, 그리고 어머니의 기도가 한 줄로 이어졌다. 신어산에 흐르는 불심은 천 년 전의 이야기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오랜 세월 누군가는 절을 세우고, 누군가는 무너진 절을 다시 일으켰으며, 누군가는 별을 바라보며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그렇게 이어져 온 마음들이 산 곳곳에 보이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산을 내려오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신어산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고 나뭇잎이 흔들렸다. 산속에서 들었던 이야기들도 차츰 멀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별을 향해 모았던 두 손만은 오래도록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산은 침묵하고 있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들리는 듯했다.

사람은 떠나도, 간절히 빌었던 마음은 오래 남는다는 것을.

 

신어산 영구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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