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세된 장애 딸 50년 돌본 "101살 엄마" 누워 있는 딸의 손을 주물러 주고 있다.<사진> * * * "불쌍한 딸을 위해서도 오래 살아야지, 내가 세상을 뜨면 혼자서 어떻게 살겠나." 101세의 박옥랑(朴玉郞. 광주시 북구 우산동 주공아파트) 할머니-. 자손들의 극진한 봉양을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몸이 불편한 68세 된 딸을 돌보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다. 딸 조의순(趙義淳)씨가 전신마비 상태로 누워 있기 때문이다. 이들 모녀는 현재 광주시내 13평짜리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서로 거울삼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朴씨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1939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朴씨가 출근한 사이 가정부가 업고 있던 네살배기 딸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쳤다. 朴씨는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딸을 들쳐 업고 용하다는 병원, 한의원, 침술원 등을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다. 그 뒤로부터 딸은 방에 누워서 천정을 보며 살아왔다. * * *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집을 나가버렸다. 朴씨는 딸을 언니집에 맡기고 학교에 계속 나갔다.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1953년 전남 나주시 영산포 여중에서 30년의 교사생활을 마감했다. "딸의 상태가 악화된데다 생업이라는 핑계로 아픈 딸을 혼자 방에 방치했다는 생각이 퍼뜩 든 거죠." 교직을 그만 둔 뒤 朴씨는 딸에게 글 공부를 시켰다. 종이에 글을 써 보이며 한글은 물론이고 한자까지 가르쳤다. 학교 교과서와 문학서 등도 읽어줬다. 딸은 금방 글을 깨우쳐 갔다. 때로는 시도 읊조렸다. 몸을 움직이지 못할 뿐 머리는 영리했다고 朴씨는 기억한다. 딸의 손발 노릇을 하느라 늙을 틈도, 아플 여유조차 없었던 朴씨도 얼마 전부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기억력도 크게 떨어졌다. * * * 朴씨는 "딸은 나한테 몸을 기대고, 나는 점차 흩어지고 있는 정신을 딸에게 맡기고 사는 셈이죠"라며 웃스면서도 슬품이 가득하다 그녀는 자신이 저 세상으로 간 뒤 딸이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면 아득하다고 했다. 어미로서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지만 내가 세상을 등질 때 딸애도 함께 갔으면 하는 바램이지요. 국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朴씨는 정부에서 매달 나오는 얼마 되지 않는 돈도 아끼고 아껴 한 달에 몇 만원씩 이라도 꼭 저축을 한다. 자신이 죽은 뒤 딸 혼자 살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이토록 끈질긴 모정의 실타래가 얼키고 설킨 기나긴 100년의 삶의 언덕을 기대는 어머니, 곱디고운 중등 여선생님,청춘을 불살라 여기까지 온 긴세월.. 반세기를 딸 위해 보낸 세월 전신마비의 딸을 위해 간호하다 늙지 못했다는 어머니.. 어머니의 청춘은 그 누가 보상하리요. * * * 네살배기 딸아이 장애가 되어 이제 68세 되었고 어머니의 연세 101세,아픔의 강물, 한 맺힌 세월의 바다 눈물로 얼룩진 모녀사랑 자식 위해 늙지 못하고, 자식 때문에 차마 저 하늘로 떠나지 못하고 눈 감지 못함이여. 당신의 삶이여, 아픔이여..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모정의 영혼..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어머니의 사랑.. 길러주신 부모님은 우리들의 은인이십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부모님한테 살아계실적 정성을 다하여 효도 하십시요. 세상을 떠난후 후회하면서 반성 해본들 소용 없습니다.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모정을 돌려 주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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