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나드의 방문
지정애
누가, 내게 메나드의 옷을 입혀 주는가
백야 끝난 사흘 새벽
창문 앞, 푸른 상자
- 이 상자 여는 자, 밤의 메나드가 되리라
붉은 소인을 찢는 순간
어디선가 팡파르가 울린다
바다 건너 온 고깔모자, 녹색 드레스, 바쿠스의 지팡이
나는 녹색 빛을 흔들며
불 꺼진 창문을 깨우고
거리는 소리 없는 질주로 내 숨결을 따라온다
창문의 테두리를 핥는 나의 목소리
차가운 금속이 내 숨결을 조금씩 먹어치운다
밤의 숨이 더 깊은 밤을 파헤치고
흘러간다, 내 뇌수까지
나는 붉음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붉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바다의 검은 물결을 찢고
숲의 뼈들을 흔들며
메나드의 광기를 걸치고
메나드처럼 달린다, 나는
밤의 가슴이 재가 될 때까지
단풍나무 깃발의 눈동자
검붉게 식어갈 때까지
바닥의 바닥인 나는 이제
지팡이의 목을 움켜쥐고
내 그림자,
날개 푸른 새로 막 솟아오르려 하고
포도나무 울타리 거쳐
수평선 턱에 걸터앉는 발목
물결에 휘감기고
엉뚱한 길 가리키는
바쿠스의 지팡이,
언덕 너머 안개 더미에 던진다
한때 밤새워 경배했지만
젖은 속눈썹 무거워지고,
하늘로 치솟은 머리카락
지팡이의 새 꽁지와 바닥의 글자가 엉키기 전
메나드의 옷을 벗어야겠다, 나는
메나드처럼 달리고 싶지 않다
바닥의 글자는
최소한
나를 태워버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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