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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2026년 4 - 6월호/메나드의 방문/지정애

작성자지정애|작성시간26.06.13|조회수20 목록 댓글 0

메나드의 방문

 

지정애

 

 

누가, 내게 메나드의 옷을 입혀 주는가

 

백야 끝난 사흘 새벽

창문 앞, 푸른 상자

 

- 이 상자 여는 자, 밤의 메나드가 되리라

 

붉은 소인을 찢는 순간

어디선가 팡파르가 울린다

바다 건너 온 고깔모자, 녹색 드레스, 바쿠스의 지팡이

 

나는 녹색 빛을 흔들며

불 꺼진 창문을 깨우고

거리는 소리 없는 질주로 내 숨결을 따라온다

 

창문의 테두리를 핥는 나의 목소리

차가운 금속이 내 숨결을 조금씩 먹어치운다

밤의 숨이 더 깊은 밤을 파헤치고

흘러간다, 내 뇌수까지

 

나는 붉음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붉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바다의 검은 물결을 찢고

숲의 뼈들을 흔들며

 

메나드의 광기를 걸치고

메나드처럼 달린다, 나는

 

밤의 가슴이 재가 될 때까지

단풍나무 깃발의 눈동자

검붉게 식어갈 때까지

 

바닥의 바닥인 나는 이제

지팡이의 목을 움켜쥐고

내 그림자,

날개 푸른 새로 막 솟아오르려 하고

 

포도나무 울타리 거쳐

수평선 턱에 걸터앉는 발목

물결에 휘감기고

 

엉뚱한 길 가리키는

바쿠스의 지팡이,

언덕 너머 안개 더미에 던진다

한때 밤새워 경배했지만

 

젖은 속눈썹 무거워지고,

하늘로 치솟은 머리카락

지팡이의 새 꽁지와 바닥의 글자가 엉키기 전

 

메나드의 옷을 벗어야겠다, 나는

메나드처럼 달리고 싶지 않다

 

바닥의 글자는

최소한

나를 태워버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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