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Le Jardin / 자크 프레베르
수천년 수만년도
모자라
그것을 말하기에는
영원의 그 소중한 순간을
네가 내게 입맞추고
내가 네게 입맞추던 순간
겨울 햇빛 속의 어느 아침에
빠리의 몽쑤리공원에서
빠리의
지구 위의
우주의 별 지구에서 (함정숙 역)
천년 또 천년이 걸릴지라도
내가 네게 입맞춤하고
네가 내게 입맞춤한
그 영원의 한 순간은 말 다 못하네
겨울 햇살이 비친 어느 아침
파리 몽수리 공원에서의 일이었다네
파리는 지구의 위
지구는 우주의 한 점 별 (譯詩를 다시 풀어씀)
[斷想]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 1900~1977)는 프랑스의 국민시인이다. 극작가이자 배우이며 화가다. 그의 시에는 일상적인 언어의 마법으로 한낮의 슬픔과 유머와 사랑이 있다. 「아름다운 계절」(“허기진 채 길을 잃고 얼어붙은 몸으로/ 혼자 한푼도 없는/ 열여섯 살 소녀/ 꼼짝않고 서 있네// 꽁꼬르드 광장/ 팔월 십오일 정오”)에서 인간의 계절이 슬프고 아름다운 것은 팔월 십오일 성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하는 날, 지상의 마을에 길을 잃은 열여섯 살 소녀가 허기에 지쳐 얼어붙은 몸으로 서 있음이다. 천상의 은총과 지상의 중력 사이엔 무엇이 있는가? “이제 다시는 이 새들처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닐 수 없는” (「절망이 벤치 위에 앉아 있다」) 인간의 삶과 조건은 얼마나 비극적인가, 아니 비극적인 황홀인가. 시인에겐 꿈꿀 권리가 있다.
파리 몽수리 공원을 배경으로 한 이 시에서 자크의 시선은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한 남녀에게로 모아져 있다. 연인의 입맞춤, 그것은 한 점(點)이다. 기하학에서 점 (點, point )은 크기가 없고 위치만 있는 도형이다. 0차원으로서 공간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선, 면 등을 구성한다. 이 시에서 점은 시간과 영원을 잇는 순간의 정점이다. 그 점은 다시 〈몽수리 공원 -> 파리 -> 지구 -> 우주〉의 의미 구조로 확장된다. 상상력의 공간 확대는 윤동주의 「서시」에서 보게 되면 ‘하늘’에서 ‘잎새’로 수렴되어 축소의 양태를 지닌다. 점의 순간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지워지지 않으며, 그 비밀을 다 드러낼 수 없다. 꽃과 새와 나무가 있는 공원은 문득 낯선 것들로 차고 넘쳐 있다. ‘고독과 연대의 동시적 공간’으로 공원은 도시라는 거대한 기계와 소음에서 나를 찾고 변화를 사색하기에 가장 알맞은 치유와 관조, 성찰의 공간이다. 그런 장소에 머문다는 것은 이 땅에 시인으로 거주한다는 것. 이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머무는 것을 넘어 세계의 미적 진리를 언어로 밝히고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껴안는 태도를 의미한다. 딴은, ‘근원적 고향과의 교감’이며 ‘시적 순간의 발견’이다.
겨울 아침의 햇살이 눈부시다. 공원에서 나는 생각한다. 사랑은, 사랑의 진리는 파리가 지구의 하나, 지구가 우주의 별의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데 있다. 몽수리 공원은 프레베르가 생전 마지막으로 머물던 집 근처에 있어 그가 자주 거닐었을 터. 쉼을 얻은 이 마음의 빈터에는 일상의 아름다움과 신비가 있다. 「밤의 빠리」(“어둠 속에서 성냥개비 세 개를 하나씩 켠다/ 첫 번째 것은 네 얼굴을 또렷이 보기 위해/ 두 번째 것은 네 두 눈을 보기 위해/ 그 다음 완전한 어둠은 이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내 두 팔 안에 너를 꼭 껴안으며.”)와 「주기도문」(“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곳에 그대로 계시옵소서/ 그리고 저희는 이 땅 위에 이대로 있겠습니다/ 이곳은 때로 이렇듯 아름다우니/ 뉴욕의 신비와/ 빠리의 신비가 있고/ 그것들은 실로 삼위일체의 신비와도 견줄 만합니다” (도입부)이 바로 그것.
몽수리 공원이 파리의 신비라면, 공원 벤치의 연인은 하나의 이콘(icon)이다. 그것은 신적인 동시에 인간적인 형상이며, 그 이콘 속 인간의 모습은 더욱 순결하고 인간의 원형에 부합한다.(비르질 게오르규, 『25시에서 영원으로』) 침묵의 언어이자 원(原)현상으로서 입맞춤은 나와 너 사이에 있다. 우주의 한 점 별로서 지구, 지구의 파리, 파리의 몽수리 공원. 공원이 영화의 배경이라면, 연인은 영화의 전경이자 하나의 푼크툼. 다음은 자크 프레베르 연출의 또다른 영화 속 한 장면이다.
누군가 열어놓은 문
누군가 닫아버린 문
누군가 앉았던 의자
누군가 쓰다듬은 고양이
누군가 깨물어버린 과일
누군가 읽고 난 편지
누군가 넘어뜨려 놓은 의자
누군가 열어놓은 문
누군가 아직도 달리는 길
누군가 헤쳐나가는 수풀
누군가 몸을 던지는 강
누군가 죽은 병원
-「메시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