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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본 이어쓰기

제 10 장 레지오 사도직(96, 1 ~ 102, 30)

작성자박선희루치아|작성시간26.06.13|조회수76 목록 댓글 0

1. 사도직의 존엄성

 

  레지오 마리애가 단원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사도직의 존엄성과 그 사도직이 교회에 대하여 지니는 중요성을 설명하는데는 다음과같은 권위 있는 선언보다 더 힘찬 말씀은 없다.

  "평신도의 사도직 수행에 따르는 권리와 의무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의 일치로부터 솟아난다. 평신도는 세례성사로써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가 되고 견진성사로써 성령의 힘을 받아 굳건해지므로, 그들에게 사도직 사명을 내리시는 분은 주님 자신이시다. 평신도가 거룩한 백성, 왕의 사제(1 베드 2, 4-10 참조)로 축성됨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영적 제물로 봉헌하고 세상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성사, 특히 성체성사는 사도직을 수행하는 모든 영혼 안에 사랑을 심고 자라게 한다."(평신도 교령 3)

  "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자들은, 더 정확히 말해서 평신도들은, 자신들이 교회 생활의 일선에 서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인간 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그들이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으뜸인 교황과 교황을 따르는 주교들의 인도를 받는 지상의 신자 공동체이다. 즉, 평신도와 주교와 교황, 이 모든 요소가 바로 교회이다.'"(평신도 그리스도인 9)

 

  "성모님은 인류에게 도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신다. 우리가 그분의 영향력을 보다 바르게 헤아리려면 자연 질서 안에서의 물체와 그 구성 부분을 이어주는 인력, 친화력, 응집력과 비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 우리는 성모님께서 우리들을 통하여 사회 생활과 그 사회의 참된 문명을 만들어내는 모든 위대한 운동에 참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페치탈로 / Petialot)

 

2. 가톨릭 공동체와 평신도 사도직

 

  가톨릭 공동체는 사도직 정신을 실천하는 평신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건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제와 같은 안목을 지니고 사람들을 사제에게로 이끌어 들이며 그들을 가까이에서 지도할 수 있는 평신도들이 많을수록 건전하다는 것이다. 사제와 신자들 사이에 이와 같은 온전한 일치가 이루어질 때 가톨릭 공동체는 더욱 튼튼해진다.

  사도직의 근본 정신은 교회의 복지와 교회가 펴는 사업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심은 참여 의식이 없이는 마음속에서 우러나기가 어렵다. 따라서 사도직 단체는 사도들을 만들어 내는 거푸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동체 안에 사도직 정신을 꾸준히 길러 놓지 않으면 교회에 대한 모든 관심과 책임감이 점점 부족하게 되어 다음 세대에 가서는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다. 그러한 성숙치 못한 가톨릭 정신으로부터 무슨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상이 평온하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몰라도, 그와 같이 어린 가톨릭 정신으로는 교회를 안전하게 지키기도 힘들 것이다. 역사를 보면 가톨릭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은 무기력한 무리들은 사나운 이리떼가 쳐들어와 그들의 목자들이 짓밟혀도 꽁무니를 빼거나, 아니면 그들 자신이 쉽게 이리떼의 밥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뉴만 추기경(Cardinal Newman)은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가톨릭 정신의 잣대는 평신도였다."라고 그 원리를 밝힌 바 있다.

 

  "레지오 마리애의 위대한 기능은 평신도의 성소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우리 평신도들이 교회를 성직자나 수도자와 동일시하여 하느님께서 그들에게만 성소를 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이다. 평신도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한낱 이름없는 군중으로 여겨 최소한의 규정된 의무를 지키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주님께서 당신의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데리고 나가신 것(요한 10, 3)을 잊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처럼 주님께서 수난당하신 갈바리아의 현장에 있지 않았던 바오로 성인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갈라 2, 20)라고 한 말을 잊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예수님처럼 동네 목수이거나 아니면 주님의 어머니처럼 검소한 주부로서 모두 성소를 받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께 사랑과 봉사를 드리고 어떤 일을 맡아 하도록 개별적으로 '부르심'을 받고 있다. 이렇게 각자에게 맡겨진 일은 설사 남이 더 훌륭히 해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남이 대신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나의 마음을 하느님께 드릴 수가 없고, 나의 일을 대신할 수가 없다. 이것은 신앙에 대한 매우 소중한 개인적 자각이며, 레지오는 단원들에게 바로 이러한 올바른 신앙관을 심어 준다. 따라서 각 단원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기계적인 자세에 머무러서는 안 된다. 각자는 하느님을 위한 존재가 되어 무엇인가 해야 한다. 아무리 평범한 인생이라 하더라도 이제 신앙은 옆으로 미루어 놓을 문제가 아니라 그의 삶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각자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이 서게 되면, 사도직 정신으로 채워지고, 그리스도의 사업을 도우려는 열망으로 스스로가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어 그분의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들 안에서 주님을 뵈옵고 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지오는 수도 단체에 갈음하는 평신도 단체로서, 평신도 생활 속에 완덕을 향한 그리스도교적 이상을 불어넣어 오늘날 세속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 왕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몬시뇰 알프레드 오래힐리 / Msgr. Alfred O'Rahilly)

 

3. 레지오 평신도 사도직

 

  다른 여러 원리와 마찬가지로 사도직도 그 자체로서는 다소 냉정하고 추상적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직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평신도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거룩한 사명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여, 심한 경우에는 사도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위험성마저 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펴고 있는 싸움에서 평신도가 반드시 맡아야 할 고유한 역할을 포기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분으로서 아프리카 주재 교황 사절이었고 그 후 중국에서 교황 대사를 지낸 리베리 추기경(Cardinal Riberi)의 말씀을 들어 본다.

  "레지오 마리애는 참으로 매력적인 형태의 사도직 활동이다. 레지오는 활기에 찬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교황 비오 11세가 정하신 방법, 즉 하느님의 동정 성모께 온전히 의지하는 방법으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레지오는 단원의 질적인면을 중시하여 이를 밑바탕으로 삼으며, 단원 수를 늘리는 데에도 요긴하게 이 방법을 활용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많은 기도와 자기 희생, 정밀한 조직 체계, 그리고 사제와의 온전한 협력을 통하여 튼튼해진다. 레지오 마리애야말로 현 시대의 하나의 기적이다."

  레지오는 정해진 규율에 따라 사제에게 존경과 순명을 드리지만, 단순히 그 정도로 그치지는 않는다. 이는 레지오 사도직이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와 성사를 가장 중요한 은총의 수로로 삼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레지오의 모든 노력과 활동의 방법은 병들고 굶주린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의 양식을 가져다주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레지오 활동의 근본원리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사제를 모셔다 드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 물론, 항상 사제를 직접 모셔 가기는 사실상 힘들고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레지오가 할 일은 사제의 영향력이 어느 곳에나 미치도록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사제가 하는 일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레지오 사도직의 기본 사상이다. 레지오는 평신도를 그 단원으로 삼아 사제들과 일치하고 사제들의 지도를 받아 사제들과 전적으로 똑같은 관심을 지니고 활동하게 한다. 레지오는 사제들의 노력을 보완하고 사람들의 삶 속에 사제가 차지하는 자리를 넓혀, 사람들이 사제를 받아들임으로써 마침내 이들을 보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도록 온갖 열성을 다 바치는 것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가 보내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 들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본을 받아들인다."( 요한 13, 20)

 

4. 사제와 레지오

 

  일손을 돕고자 모여든 열심한 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제의 모습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보여 주신 모습이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회개시키려고 준비하실 때 당신이 뽑은 사람들을 주위에 불러 모아 가르치시고 당신의 정신을 넣어 주셨다. 

  이와 같이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은 그 가르침을 배운 대로 실천에 옮겨, 그들을 도와서 영혼을 구하는 일에 나설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비싸르도 추기경(Cardinal Pizzardo)이 지적한 바와 같이, 가장 먼저 로마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로마가 어머니 교회로 자리 잡도록 씨를 뿌린 사람들은 아마도 성령께서 내려오시던 날 사도들의 강론을 들은 '로마에서 온 나그네들'(사도 2, 10)이었을 것이다. 그 뒤 베드로와 바오로 두 분 성인이 로마에 가서 정식으로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이다.

  "만일 열두 사도들이 '우리는 하늘의 보화를 간직하고 있소. 이 보화를 두루 전파하는 일을 도와 주시오.'라고 말하면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 않았더라면, 사도들만으로는 이 드넓은 세상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교황 비오 11세 / Pius XI)

  온 세상을 회두시키는 일에 주님과 사도들이 보여 주신 모범을 모든 사제들이 그들의 작은 세계, 이를테면 본당, 교구 또는 특수 사목 활동 등을 통해서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다른 교황님의 일화를 들어 강조하고자 한다.

  "어느 날 추기경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성 비오 10세 교황께서는 '지금 이 세상을 구원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라고 물으셨다. 추기경 한 분이 '가톨릭 학교를 세우는 일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다른 추기경이 '아닙니다. 성당을 배로 늘리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세 번째 추기경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제 양성을 위해서 신학생 모집 인원을 늘리는 일입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교황은 '아니오, 그렇지 않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각 본당에 덕망 있고 명석하고 결단력과 참다운 사도직 정신을 지닌 평신도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오.'라고 말씀하셨다.

  이 교황은 그의 말년에 이르러, 열심한 평신도들을 훈련하여 말과 행동으로 좋은 표양을 보이게 하며 사도직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분은 교황이 되기 이전에 여러 교구에서 사목하는 동안, 본당 신자 교적부보다는 사도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신자 명단을 더욱 중요시하였다. 이분은 어느 계층에서든지 이런 선택된 평신도들을 모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사제들을 평가할 때 그들이 이 점에 쏟은 열성과 노력으로 얻은 성과를 기준으로 삼았었다."( 쇼타르 / Chautard : 사도직의 정신)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신비체를 이 세상에 남겨 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셨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주님의 사업은 갈바리아에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주님의 수난은 인류에게 구원을 얻어 줄 수 있는 가치를 지녔지만, 막상 십자가로부터 생명을 가져다줄 교회가 없었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하늘나라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특별한 방식을 당신을 사제와 일치시키신다. 사제는 영혼들 안에 초자연적 생명의 피를 퍼올려 주는 보조 심장과 같다. 사제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각 지체들을 영신적으로 서로 연결시켜 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부분이다. 만일 사제가 실수하게 되면 그 연결 체계가 막히게 되어, 사제에게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려는 생명을 받지 못하게 된다. 사제와 신자들과의 관계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와 같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와 같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또다른 모습이며, 결코 단순한 고용인이나 추종자나 문하생이나 후원자가 아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활동을 거들어 드린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해야 한다. 사제들은 가능한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해야 한다. 사제들은 가능한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당신을 위해 신비체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기셨으므로 사제도 이와 똑같이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제 역시 자신을 위해 하나로 일치하고 있는 신자들이 있어야 한다. 자신과 일치를 이루고 있는 살아 있는 신자들이 없는 사제는 활동이 보잘것없게 되고, 고립되어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눈이 손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고, 머리가 발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1 고린토 12, 21)

  그러므로 만일 주님께서 그리스도 신비체를 영혼들에게 이르는 당신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원리로 삼으셨다면, 이와 동일한 질서가 새로운 그리스도인 사제를 통하여 정확히 작용하게 될 것이다. 만일 어느 사제가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4,12 참조)에서처럼 그리스도 신비체를 완전히 세우는 일에 맡으바 열성을 쏟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영혼들 안에 들어가 결실을 맺는 일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사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게 되고 만다. 머리가 하는 일은 몸에 생명을 주는 일이지만 머리는 몸의 생명 때문에 살아 있으므로, 결국 머리의 생명은 몸의 생명이 커지면 더불어 커지고, 몸이 시들면 더불어 쇠퇴하여 아무런 힘을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제 직분의 이런 원리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제는 평생 그의 능력의 일부밖에는 쓰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부여받은 참된 사명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땅 끝까지 헤쳐 나가는 일이 아니던가."( 뤼플리 신부 / Fr. R. J. Rip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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