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교본 이어쓰기

제 12 장 레지오의 외적 목표(115, 1 ~ 126, 12)

작성자박선희루치아|작성시간26.06.16|조회수69 목록 댓글 0

1. 실제 다루어야 할 일

 

  레지오는 어떤 특별한 일을 하는 데 목표를 두지 않고 단원들을 성화시키는 일을 그 으뜸가는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레지오는 무엇보다도 먼저 단원들이 레지오의 여러 회합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레지오의 회합은 기도와 신심이라는 두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동시에 드러나도록 잘 짜여져 있다. 레지오는 단원들을 성화시키기 위하여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 즉, 단원 각자의 신심이 활동을 통해 얻게 되는 사도적 열성과 결합되어 더욱 뜨거워져서, 각자의 내면으로부터 그 거룩함을 스스로 발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말은 레지오가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미 쌓아 올린 신앙의 힘을 단순히 이용하려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신앙의 열정은 발산하면 할수록 - 일종의 상승 작용에 의해서 - 더욱 커진다. 이 원리에 따라 레지오는 단원들이 스스로 성화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도직 정신은 사도직 활동을 통하여 가장 뚜렷하게 향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레지오는 쁘레시디움이 배당하는 주간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한 의무로 부과하고 있다. 활동은 순명하는 몸가짐에서부터 비롯된다. 쁘레시디움은, 뒤에 설명하게 될 예외적인 경우를 빼놓고는,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이면 무엇이든 해당 단원이 주간 활동 의무를 채운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레지오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을 주간 활동으로 배당하기를 바란다. 단원들을 열성적으로 활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활동의 대상도 그 열성에 알맞게 선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탐탁지 않은 활동은 달갑지 않은 반응을 일으킨다. 그렇게 되면,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노력과 희생으로 보답하려던 단원들의 마음은 얼마 가지 않아서 움츠러들고 미지근하게 되고 말것이다.

 

  "내가 다시 태어날 때에는 처음 태어날 때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를 단 한마디 말씀으로 만드실 수 있었다. 그러나 나를 다시 만드실 때에는 말씀도 여러 차례 하셨고, 기적도 여러 번 보여 주셨고, 숱한 어려움마저 겪으셔야 했다."(성 베르나르도 / St. Bernard)

 

2. 더 멀고 큰 목표 - 지역 사회의 누룩이 되는 일

 

  단원들이 수행하는 주간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레지오는 그 의무의 완수만으로 단원들이 펴는 사도직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이루어졌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한 활동을 위해서 레지오 단원들은 대체로 한 주간에 두세 시간 또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지오는 단원들이 활동에 바치는 이러한 시간적 제약을 넘어서서 한 주간의 모든 시간을 레지오의 벽난로에서 타오르고 있는 사도직 불꽃으로 밝혀 주기를 희망한다. 영혼들에게 사도직의 불꽃을 나누어 주는 레지오는 이 세상 방방곡곡에 막강한 군단을 투입해 놓고 있다. 사도직 정신은 우리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어 우리들의 생각과 말과 행실을 모두 다스리며,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그 불꽃을 밖으로 드러내 보인다. 사도직 정신이 타오르면, 남을 감화시키는 능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이라도 그 능력을 얻게 되므로, 비록 그가 의식적으로 사도직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죄와 냉담이 사도직 열성이라는 더 큰 힘에 눌려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장군이 중요한 전투 거점을 장악한 후 만족해 하듯이. 레지오는 가정, 가게, 공장, 학교, 사무실 그리고 그 밖의 일터와 유흥 장소에 까지도 참된 레지오 단원이 적재적소에 배치되는 것을 보며 흐뭇해 한다. 타락과 불신앙이 최악의 상태로 뿌리 박고 있는 지역이라도, 이른바 또 하나의 '다윗의 탑'이 버티고 있는 한, 죄악은 더 이상 뻗어 나가지 못하며 패배하여 소멸되고 만다. 사도직 정신은 부패가 자라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부패를 보면 슬퍼하고 기도하며, 단호하고 줄기찬 싸움을 벌임으로써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레지오는 우선 단원들을 회합에 한데 모아, 모후이신 성모님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를 바치면서 꾸준히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그런 다음 죄악과 슬픔에 찬 곳으로 단원들을 파견하여 좋은 일을 하게 하며, 이렇게 활동하는 동안 사도직 열정에 불이 붙어 더욱더 큰일을 하도록 만든다. 마침내 레지오는 더욱 영광스러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목표로 일상 생활의 크고 작은 길들을 모두 살핀다. 레지오는 한정된 인원으로 이미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더욱이 레지오 대열에 동참할 만한 인재들이 앞으로도 수없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레지오는 알고 있으므로, 만일 교회의 사목자들이 레지오를 활발히 이용하기만 한다면, 레지오는 죄로 물든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 신기할 정도록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레지오는 단원의 수를 여러 배로 늘려서 군단이라는 그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단원의 수가 끝없이 불어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들의 지역 사회는 대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는 이들과 보조적으로 봉사하는 이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의 대상자로서 남아 있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중 신앙 생활이 나태하거나 타성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모두 끌어올려 열심한 신자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마을이나 도시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까 생각해 보라. 이 변화의 힘은 단지 교회 안에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고장 전체를 이끄는 강력한 힘이 되며, 직접적으로나 또는 성인들의 통공을 통하여 그 충격을 땅 끝까지 보낼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주민들을 조직화한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적인가! 그런데 이 일은 단순히 이상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 이상은 우리가 눈을 들어 한동안 하늘을 보며 마음을 모아 두 팔을 벌린다면 현실 세계에서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일이 될 것이다.

 

  "평신도는 진정으로 '선택된 백성, 거룩한 사제'이며, 아울러 '땅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 되도록 불리었습니다.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명확한 성소와 사명은 그들의 삶을 통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그들이 살아가며 일하고 있는 세상의 현실 속에 복음의 누룩을 집어 넣는 것입니다. 정치, 언론, 과학, 기술, 문화, 교육, 산업이나 직장 등 세상을 이루는 큰 세력들이야말로 바로 오늘날의 평신도들이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기에 알맞는 활동 영역입니다. 이러한 세력들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이며, 동시에 세속 해당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는 평신도들에 의하여 인도된다면, 세상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구속 은총 안에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교화 요한 바오로 2세, 1979년 10월 아일랜드 리메릭에서 행한 연설 중에서)

 

3. 모든 이를 하나로 만드는 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마태 6, 33 ) 우리 모두가 영혼들을 위하여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이 주님의 말씀은 레지오의 사명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뿐만아니라, 레지오는 그 외의 다른 역할도 함께 해 오고 있는데, 레지오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가치가 그 한 예이다. 이 가치는 국가적으로는 자산이 되며,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정신적인 혜택을 가져다준다.

  사회라는 기계가 성공적으로 작동되려면, 일반 기계들이 그렇듯이, 모든 구성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며 협동해야 한다. 따라서 기계의 각 부분처럼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시민들과의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자신이 맡은 일을 정확히 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불필요한 힘의 낭비가 생겨 균형이 깨어지고 기계의 모든 톱니바퀴들이 서로 어긋나게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고장의 원인이나 상태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므로 수리가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들게 된다. 더욱이 이렇게 얽힌 문제들을 시정하려다 보면, 순수하게 봉사하려는 마음이나 자발적인 협동 정신에 상처를 주게 되어 점점 더 잘못되어 가는 일도 생긴다. 공동체는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령 구성원의 절반이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계속 기능을 발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공동체는 엄청난 빈곤과 좌절감, 그리고 불행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또한  힘의 원천이어야 할 구성원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되므로 그러한 공동체를 제대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돈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게다가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많은 문제거리나 혼란 또는 위기만 가득하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 질서가 가장 잘 잡혀 있다고 하는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기주의가 개인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고, 증오심은 많은 사람들을 무서운 세력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이에 새로운 나날을 맞이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말이 생생한 진리로 떠오른다. "하느님을 부인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사람이며,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사람들과 만물, 즉 땅 위와 천상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브라이언 오히긴스 / Brian O'Higgins)

  국가란 개인의 삶을 합해 놓은 집합체일 따름이다. 따라서 각 개인의 삶이 그렇게 잘못되어 있다면, 그런 개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나라가 어찌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위기의 공동체 안에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이웃 사랑이라는 이상을 실천하는 한 무리의 새로운 힘이 일어난다고 생각해보라. 이 새로운 정신과 이상이 마치 공기처럼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게 된다면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염증은 치유되고 삶은 차원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한 나라가 발전하여 삶의 질이 높아지고, 국민들이 신앙을 생활화하여 모든 문제를 신앙 안에서 해결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러한 나라는 틀림없이 세상을 비추는 찬란한 빛이 될 것이며, 세상은 그 나라를 본받으려고 몰려올 것이다.

  레지오가 평신도에게 신앙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렬한 이상을 전파하는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레지오는 그들이 접촉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속의 분열과 차별이나 상호 반목을 벗어나 오직 인류를 위하여 일하고 사랑하려는 열망으로 활기를 띠게 한다. 이러한 열망은 신앙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므로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으며, 모든 일을 봉사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도록 만들고 위대한 희생 정신을 이끌어 내며, 영웅적인 경지에까지 이르게 한다. 이 이상은 어느 순간 갑자기 증발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럴까? 레지오는 단원들의 활동에 확실한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모든 힘은 반드시 그 원천이 있다. 그리고 레지오는 사회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강력한 동기를 지니고 있다. 이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일찍이 나자렛 마을의 주민이셨다는 사실로부터 유래한다. 이 두 분은 깊은 신앙심으로 자신들의 마을과 나라를 사랑하셨다. 유다민족에게 신앙과 조국은 신비롭게도 오직 하나로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그 고장의 평범한 주님으로서 모든 면에서 어긋남이 없는 생활을 하셨다. 두 분은 고장 사람들과 풍물 하나하나를 모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하셨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어느 것 하나 무관심하셨거나 등한히 하셨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바로 이 두 분의 나라이며, 어느 곳이나 두 분이 사셨던 나자렛 마을이다. 더욱이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서는 이 두 분과 주민들과의 관계가 혈육의 관계보다도 더욱 밀접하게 맺어진다. 다만 이제는 이 두 분의 사랑이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 신비체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신비체의 지체들인 우리가 자신의 고장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정신을 드러내기만하면,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도 우리 고장에 오시어 영혼들뿐만 아니라 모든 주위 환경에 풍성한 은총을 내려 주신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눈에 띄게 향상되고 문제는 줄어든다. 이러한 진정한 개선 효과는 예수님과 성모님이 아닌 다른 어느 누구로부터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지역 사회 안에서 믿는 이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마음가짐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더욱 튼튼하게 만든다. 이 조국이라는 낱말은 지도에 나타나 있지 않은 영토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참된 애국심이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 세상에는 애국심을 나타내는 지도나 모델이 없다. 애국심과 비슷한 것이라면 전쟁중에 드러나는 충성과 자기 희생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사랑보다는 미움으로부터 출발하여 파괴를 일삼고 있다고 말함이 타당하다. 따라서 순수한 애국심의 올바른 유형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레지오가 '조국에 대한 참된 충성'이라는 제목으로 단원들에게 강조하는 바는 사회 공동체를 위하여 바치는 영성적인 봉사이다. 이러한 봉사는 신앙이 동기가 되어 우러나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봉사와 봉사를 통한 모든 접촉 기회를 신앙심을 높이는 데 이용해야 한다. 물질적인 면에 치중하는 봉사 활동은 '조국에 대한 참된 충성'의 전체 취지를 그르치게 한다. 그러기에 뉴만 추기경은 이 충성의 근본 취지를 말하면서,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물질적 진보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위험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따라서 양자는 반드시 균형을 유지하며 발전해야만 한다. 이 주제에 관한 소책자는 꼰칠리움에서 구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여, 보라! 레지오야말로 하느님의 숭고한 사업을 위해 모든 사람을 하나 되게 하는 신비의 기사단이 아닌가? 레지오는 이 기사단을 언제라도 부릴 수 있게 준비해 두고 있지 않은가? 시인 테니슨은 아더 왕의 무용담에 나오는 기사들의 봉사 정신을 가리켜 "각기 다른 세상의 곳곳에서 기사들을 불러들여, 원탁의 기사로 함께 모았네. 영광의 무리, 사나이들의 꽃, 세상을 가꾸는 무리들의 모범이며, 한 시대를 여는 보람찬 출발이여!"라고 아름답게 읊었다.

 

  "교회는 '볼 수 있는 영적 공동체'로서 전 인류와 함께 같은 길을 걸으며 세상과 운명을 함께 한다. 교회는 누룩이 되고자 하며, 언제나 그랬듯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느님의 가족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인류 사회의 영혼이다.

  본 공의회는 크리스천들이 하늘나라와 이 땅의 백성으로서 복음 정신에 따라 그들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간곡히 권고한다. 우리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나라를 가지지 못했으며, 장차 올 나라를 기다리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현세의 임무를 등한시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신앙은 각자가 부여받은 사명에 따라 지상에서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목 헌장 40,43 )

  "공의회 교령에서 강조하는 이러한 필요성과 의무에 대한 실제적인 대답은 1960년에 시작된 '조국에 대한 참된 충성'으로 알려져 있는 레지오 운동에서 볼 수 있다. 이 운동은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고,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레지오가 현세에 제공하는 것은 특수한 지식이나 뛰어난 기술이 아니고, 일꾼의 숫자가 많은 것도 아니며, 오직 영성적인 활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것이 레지오를 세계적인 단체로 이끌었고, 어떤 분야에서 일하는 하느님 백성이라 해도 그들이 레지오를 올바로 이해하는 안목과 양식을 지니고만 있다면, 그들이 명성을 높이는 데 레지오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모든 것은 반드시 레지오에서 정한 규율과 규칙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레지오는 세속적인 것을 부추기는 일은 모두 멀리하지만, 위에 언급한 공의회 교령의 가르침에 비추어, 세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늘 마음을 써야 한다. 사람은 물질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구원도 물질 세계와 큰 관련을 맺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토마스 오프린 신부 / Fr. Thomas P. O'Flynn 꼰칠리움 전 영적 지도자 )

 

4. 하느님을 위한 고귀한 사업

 

  오늘날처럼 신앙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는 기사도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세속의 물질주의와 무종교적 세력들이 거대한 힘을 가진 선전 매체의 도움으로 온 세상을 휩쓸고 삼켜 버릴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엄청난 세력에 비한다면 레지오는 얼마나 온순한 작은 양떼에 불과한가! 그러나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레지오는 지극히 큰 능력을 지니신 동정녀와 결합하고 있는 단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레지오는 훌륭한 원리 위에 세워져 있으며, 그 원리를 효과적으로 응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레지오 안에서 레지오를 통하여 큰일을 이루고자 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레지오 마리애가 목표로 하는 것은 '오직 한 분이신 지배자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유다 1, 4)를 부인하는 다른 무리들이 목표로 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레지오의 목적이 하느님과 신앙을 모든 영혼들에게 가져다주는 일임에 반하여, 다른 세력들은 그와는 정반대의 일을 성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레지오가 그러한 불신앙의 제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보다는 훨씬 단순한 동기로 시작되었다.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성모상 둘레에 모여 앉아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하고 기도드렸다. 성모님과 일치된 그들은 도시의 어느 큰 병원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그 곳에서 그들은 질병으로 신음하고 인생의 파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성모님이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만났다. 그들은 또한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 안에도 주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 안에 계시는 아드님을 위하여 성모님이 하시는 어머니 역할에 함께 나서기로 하였다. 그들은 처음에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성모님과 손잡고 소박한 봉사 활동을 펴기 시작하였는데, 어느덧 군단을 이룰 정도로 크게 성장하였다. 이제 레지오는 온 세상에 뻗어 나가 모든 이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한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소박한 활동을 펴고 있다. 이 사랑의 실천은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로잡는 힘을 드러내고 있다.

  세속주의자들도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위하여 봉사한다고 선언하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그들은 겉만 번듯한 형제적 사랑이라는 거짓 복음을 퍼뜨리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믿고 있으며, 오히려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올바른 신앙을 무력하다고 생각하여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이렇게 다른 길로 빠져 나간 수많은 사람들을 다시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고 또다른 많은 영혼들을 구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큰 원리를 적용해 보면 이러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아루스의 성자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St.John M. Vianney)은 "세상을 가장 사랑하고 그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이 세상을 차지한다."고 말하였다. 세상은 이제, 인류를 위해 보여 주신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을 통해 자라난 참된 신앙을 보며,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을 가장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신시켜라. 그러면 그들은 모든 것을 물리치고 참된 신앙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참된 신앙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게 될 것이다.

  평범한 사랑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처럼 사로잡지는 못한다. 미지근한 신앙 생활로 자기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신자 역시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한다.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어떠한 계층의 사람들을 보더라도 그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뵙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 대한 이러한 지극한 사랑의 실천은,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단지 몇 사람의 훌륭한 가톨릭 신자가 보여주는 일시적인 선행 정도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그 선행이 진정한 가톨릭 교회의 특성이라고 인정할 수 있게 될 만큼 적극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신자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드러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교회가 신자들을 온통 충천하는 정신으로 불붙게 하는 일은 가능성이 없는 일인가? 과연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많은 장애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고, 세속에 젖은 무리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강심장을 지닌 용기 있는 사람이라도 좌절하고 말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모님은 레지오의 심장이시며, 이 심장에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믿음과 사랑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레지오가 성모님을 생각하면서 세상을 바라다보면, 곧 희망이 솟구친다. 세상은 세상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차지한다. 레지오는 처음부터 항상 그렇게 해 왔듯이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하며 위대하신 모후께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레지오는 세속주의와 무종교주의라는 적대 세력과 서로 대결하고 있다. 이 적대 세력은 신문, 텔레비전, 비디오 등을 통한 끊임없는 선전과 광고 활동으로, 낙태나 이혼, 임신 중절이나 마약 등 온갖 유해하고 잔인한 내용을 각 가정 깊숙히 내보내고 있다. 그 결과로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아이들이 이러한 파괴적인 영향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해로운 영향력을 막기 위해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모두 나서는 길밖에 없다. 레지오 마리애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완벽한 조직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충분한 추진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조직 자체만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레지오의 추진력은 성령과 그 배필이신 복되신 동정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을 깊이 깨닫고 의지하며 생명의 떡인 성체로 양육되는 레지오의 영성으로부터 나온다.

  이 두 세력이 대결하게 되면 레지오의 정신이 승리할 것이다. 단원들이 매일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오늘날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는 무사안일주의와 타협주의 그리고 우유부단과 효과적인 싸움을 벌여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이든 맥그레드 신부 / Fr. Aedan McGrath, S.S.C)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