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산다는 생각
손 원
해마다 김장을 앞두고 시골 5일장을 찾아 건고추를 구입하곤 했다. 지난 해에도 늦가을 찬바람이 날 때쯤 시골 장을 들렀다. 아주머니 한 분이 직접 농사지어 말린 고추라며 커다란 마댓자루에 담긴 건고추를 팔고 있었다. 태양초라며 빛깔도 좋아 10근을 달라고 했다. 큰 비닐 봉지에 넣어 전자저울에 올려 10근을 담고 덤이라며 한 움큼을 더 넣어 주었다. 실제로 11근은 되었다. 시골장의 푸근한 인심에 기분이 좋았다.
어릴 때 부모님은 쌀 포대를 들고 오일장을 보러 가시곤 했다. 어린 나에게 끝을 벌린 포대자루를 잡게하고 되로 세어가며 담으셨다. 포대를 가득 채운 후 반대쯤 더 넣곤 하셨다. 되로 정확한 분량을 담았지만 매매시 재차 되를 사용하면 마지막 한 되가 부족할까 봐 덤을 넣는다고 하셨다. 혹시나 모자랄까 봐 보충 한 것이 그대로 남는 경우가 많아 매입한 사람에게 덤으로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요즘은 무게단위로 포장을 한 쌀 포대가 마트에 진열되어 있다. 10kg으로 표시 된 사과 한 박스를 사와서 전자저울에 올려보면 11kg이 된다. 박스의 무게를 감안 한 것 같다. 그렇더라도 조금은 덤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특히 일용하는 식품일 경우 표시 된 무게 보다 조금 더 나가면 맛있게 많이 먹도록 배려한 따뜻한 인심이 느껴진다.
몇 해 전 버스를 대절내서 금산 인삼시장을 들른 적이 있었다. 조그마한 강당에 모이게 한 다음 인삼제품 홍보를 했다. 당초 두 달치 30만원을 정가라 해 놓고 덤을 준다면서 나중에는 같은 가격에 석달치를 주기에 덤에 흥미를 갖고 너도나도 구매를 했다. 어떤 이는 당초에 구매하고픈 마음이 없었는데 덤에 끌려 구매했다는 뒷이야기가 더러 있었다.
물론 상술에 이끌렸겠지만 덤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술이기도 하다.
살아가는데 덤은 산소와 같은 것이다.
누군가의 후덕함이 자신의 삶에 밑거름이 되어 왔을 수도 있다.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 친구의 우정, 아내의 헌신을 덤으로 받았기에 더 나은 삶이었을 것이다. 받은 덤이 지극해서 덤으로 돌려주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주고받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되풀이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살만큼 오래 살았고 누릴 것 충분히 누렸다면서 여생을 덤이라고 하기도 한다. 여생을 덤이라고 함은 서글픈 생각이 든다. 덤을 주고 받아 삶이 윤택해지는 것은 좋지만 멀쩡한 자신의 삶을 덤으로 연장했다는 것이 궁색해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살고, 이웃의 정을 덤으로 받아 보다 윤택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자.
은퇴를 하고 난 남은 여생은 덤이 아니다. 100세 시대에 수 십 년의 여생이 있기 때문이다. 하는 일 없이 연금만 바라고 사는 것이 평범한 삶이라면 여기에 덤을 보태도록 하자. 누구나 은퇴 후 나름대로 할 일을 찾고 있다. 세월이 흐른 후 그 일에 보람이있었다면 덤을 가져 온 삶이었다고 할 것이다.
얼마 전 주택가 샛골목 이발소에 들렀다.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사뭇달랐다. 옛 시골 이발관 같이 인테리어도 어슬프고 비품도 오래되어 꾀죄죄한 분위기여서 되돌아 나갈까 싶었다. 망설이던 중 안 쪽에서 밀창을 열고 주인인 듯한 노인이 이발하겠느냐고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이발기구로 노인의 거친손이 닿을 때 껄끄러웠지만 어릴 때 향수가 있기도 해서 애써 참으며 이발을 했다. 도중에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연로하신데 쉬셔야지요?" 했더니 "내나이 80이 다되가요. 이 나이에 덤으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데요."라고 해서 짧은 생각을 했던 것이 다소 쑥스럽기까지 했다. 이발비를 계산할려고 하니 반 값 정도로 저렴했다. "협정 가격이 있을텐데 반값이면 손해나지 않나요?"라고 했더니 "아파 누운 친구도 있는데 덤으로 하는 일 즐기면 그만이지"라고 하셨다. 은퇴 하기 전에 겪은 일이지만 그때 그분의 태도가 잊혀지지 않는다. 은퇴 후 나는 어떻게 보람 된 삶을 살 것인가를 자주 생각하는 계기가 된 듯 하다.
은퇴 후 틈틈히 글 쓰기를 하고 있다. 경력이 일천하기에 배우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다. 글을 쓰면 유익한 생각을 많이 하기 마련이다. 글은 누군가와 공감을 하기도 한다. 생각이 같으면 친구가 된다. 글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하고 많을 수록 행복도 더 해진다. 요즘은 SNS상에 글을 올리면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많은 독자를 확보하기도 한다. 양 방향 소통으로 평가를 받는 것도 가능하다. 작가는 문학활동으로 좋은 생각을 전하고, 철학자나 종교인은 참된 진리를 설파하고, 기업가는 자신의 사업과 생산품을 홍보하고, 정치인은 정견을 전하여 지지를 호소하기도 한다. 목적은 다르지만 상대방의 공감과 지지를 얻고자 함은 같다. 나는 글 쓰기로 공감을 얻고 그것이 괜찮다면 평가와 함께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면 더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덤으로 사는 삶을 일궈보도록 하자. 무엇보다도 친구를 갖는 것이 덤이다. 코로나 시국으로 집에만 있으니 친구와는 멀어지는 것 같고, 새 친구를 사귈기회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요즘은 대면하지 않고도 친구와 소통을 하고 새 친구를 사귈수가 있다. SNS를 통한 소통이다. 하지만 친구와는 만나서 밥 한 끼 하는 재미인데 그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적극적이고 배풀기를 많이 한다면 덤으로 기쁨도 따른다.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한다면 보람이 덤으로 온다. 배우고 터득을 하면 성취란 덤이 따른다. (2022.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