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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헛기침.

작성자수선화2|작성시간26.06.09|조회수43 목록 댓글 0

 비 오는 이른 아침, 부부가 맨발 걷기를 다녀와 가뿐한 마음으로 거실장의 기념품을 보았다.  거실장 안에는 여행지에 들려 구입해 온 작은 기념품들이 올망졸망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나하나에 깃든 시간과 간 곳을 떠올리며 먼지를 닦다 보니 여행지마다의 추억을 손에 쥐고 온 듯한 기분이 들어 처음엔 좋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다녀온 곳이 많아지다 보니 하나 둘 늘어난 기념품들은 어느새 먼지를 닦아야 할 일이 되었고  정리하기 버거운 존재가 되어 귀찮아지기도 했다. 남편은 여행을  가는 곳 마다 작은 것 하나라도 꼭 사 들고 와 지나온 시간의 추억을 불러오는 기념품이라고 하며 장식장 안에 가져다 놓고는 거들떠보지 않으니 먼지 닦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그 장식장 속에는 유난히 특별한 웃음이 하나 있다.

 오래 전의 일이었다. 딸이 외손자 둘을 데리고 친정에 왔다. 여섯 살, 네 살짜리 외손자는  장식장 안의 기념품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만져보고 싶어 손을 살며시 내밀다가도 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에  만지지 않는 것이 참으로 신통했다. 

큰 외손자는 차분한 성격에 너무도 순하고 착해 말썽 부릴 일이 없고 의젓하다. 둘째 외 손자와 두 살 터울인데 형 노릇을 잘도 하며 동생에게 양보하고 돌봐 주는 모습이 기특 기만 하다.  둘째가 세 돌을 갓 지났을 때의 일이다.  둘째 외손자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거실장 안의 기념품들을 만져보고 싶어 몰래 손을 내밀었다. 그걸 본  남편이 만지지 말라는 뜻으로 일부러 

 “어흠, 어흠!” 헛기침을 크게 했다.  외손자는 깜짝 놀라 뻗은 손을 얼른 내리면서 무안한 표정에 놀란 목소리로 “아이고, 깜   짝이야. 할아버지, 어흠! 좀 하지 마세요.” 어린애의 신통한 말에 순간 모두 한바탕 웃고 말았다. 호기심으로 몰래 만지려다 들킨 민망함과 놀람이 뒤섞인  말에 모두가  한바탕 웃고 있는데 외손자는 그만 울음을 터 틀렸다.. 울고 있는 모습조차 귀엽다며 딸은 아빠의 헛기침에 놀란 애를 달래면서 그 말이 신기한 듯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우리도 웃음을  그칠 줄 몰랐다. 

그로 인해 그때의 일이 우리 가족에게는  웃음거리로 남아 할아버지의 헛기침과 함께  “어흠, 어흠!”  “아이고, 깜짝이야. 할아버지, 어흠! 좀 하지 마세요.” 지금도 유행어로 남아있다. 세월이 잘도 흘러간다. 아이들이 훌쩍 자랐다. 큰 외손자는 군복무 중이고 둘째는 벌써 고3, 이제는 자신의 길을 고민하는 별말이 없는 청년이 되었다.  더 이상 장식장 앞에서 호기심으로 망설이는 아이도 없다. 하지만 그날의 상황과 웃음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서 재미있는 웃음거리에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어흠, 어흠!” 1인 2역으로 “아이고, 깜짝이야. 할아버지, 어흠! 좀 하지 마세요.” 남편은 가끔 심심풀이 땅콩 까먹듯  그 말을 꺼내 혼자 말하며  웃어본다. 그때가 생각나서 나도 따라 웃는다. 어쩌다 다 큰 외손자에게 일부러 그 말을 흉내 내 웃겨도 본다. 생각해 보면  무심히 흘려보냈던 말 한마디, 함께 웃던 순간이 오래 남아 마음을 달래준다.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다시 거실장 유리문을 열어본다. 손 때 묻은 기념품들을 보면서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마음에 웃음을 던진다. 애들이 자라는 걸 보니 세월이 잘도 흘러간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어흠, 어흠!” 할아버지의 헛기침에 외손자의 놀라고 무안한 말  “아이고, 깜짝이야. 할아버지, 어흠! 좀 하지 마세요.”

 지금도 가끔 남편은 애들이 보고프면 독백처럼 그 말을 하면서 혼자 웃곤 한다. 외손자의 얼굴이 떠 오른다. 어린 시절 그 모습에서 웃음이 묻어나고 생각할수록 활력이 넘쳐난다.  어린 외손자들이 자라며 웃고 울고 보채던 그 시절이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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