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깃든 꽃 (2026. 6. 1)
이미환
두견새의 피눈물이 떨어진 곳에서 피어났다는 두견화, 시인 김소월이 이별의 슬픔을 담아낸 시 진달래꽃, 철쭉은 먹을 수 없는데 비해 진달래는 먹을 수 있다 하여 참꽃이라 불리기도 하는 꽃!
참꽃은 나를 키운 꽃이다. 어릴적 내가 자란 마을은 물 좋고 공기 맑은 두메 산골이다. 봄에 참꽃이 피기 시작하면 앞뒤산 여기저기가 붉게 물들어갔다. 또래 아이들이 모이면 더 탐스런 참꽃 송이 꺾기 내기가 벌어졌다. 따뜻한 언덕에 모여 앉아, 참꽃의 암술을 따로 떼내어 서로 고리로 걸어 당기면, 끊어지지 않고 버티는 쪽이 이기는 암술 싸움 놀이도 기억난다. 놀이가 무르 익어 갈 때면 모여 앉은 어린 계집아이들의 볼도 참꽃 따라 발그레 졌다. 참꽃을 편편한 돌 위에 놓고 찧어서 상차림을 흉내내며 소꿉놀이로도 이어졌다. 참꽃을 입안에 넣고 앞니로 씹으면 옅은 신맛과 함께 참꽃 특유의 향기가 올라왔다. 마을의 또래 계집아이들은 다채로운 참꽃 놀이의 풍성함으로 한뼘 봄길이만큼 자라났다.
강아지 풀꽃은 내 아이들을 키운 꽃이다. 강아지 풀꽃은 여느 꽃과 다르게 풀빛이라 사람의 눈길을 별로 끌지 못한다. 손가락 만한 길이 몸통에 포실포실 털로 둘러싸인 모습이 흡사 강아지 꼬리를 닮았다. 7월부터 10월까지 길거리 주변 풀밭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꽃이다. 쉽게 채집을 할 수 있어 언제든지 놀이 도구로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기요노 사치코의 ‘간질간질 강아지풀’이란 유아 그림책이 있다. 강아지풀이 바람에 흔들려 고양이 아치를 간질이는 장면, 고양이 아치가 강아지풀로 돼지를 간질이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집 두 아이들이 유아기에 들면 이 그림책을 보여주며 고양이 아치 처럼 즐겨한 놀이이다. 강아지 꼬리를 닮은 풀꽃으로 우린 서로의 이마를, 뺨을, 코를, 발바닥을, 목덜미를 ‘간질간질’ 속삭임과 함께 간질여 깨우고, 간질이고 달아나며 깔깔거렸다.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뒤에도 강아지 풀꽃이 보일 때면 몇송이 훔쳐와 식탁에 꽂아두고 본다. 볼수록 앙징맞고 귀엽고 재미있는 꽃이다.
프리지아는 3월 한주 동안 교실에서 우리 반 아이들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주던 꽃이다.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3월이면 프리지아를 준비하곤 했다. 3월은 새학년, 새교실, 새로운 아이들과 선생님을 만나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달이다. 프리지아의 꽃말도‘새로운 시작’이라 한다. 특히 내가 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짙은 향기 때문이다. 교실 화병에 꽃아둔 프리지아는 공간을 향기로 가득 채운다. 아침에 교실 문을 열면 밤새 갇혀 있던 짙은 향기가 코를 밀고 들어온다. 후각을 자극하여 굳은 얼굴 표정까지 향기로 어루만져 풀어준다. 그 예쁜 프리지아의 노란 빛과 꽃송이에 코를 가져다 대면 절로 눈이 감기고 마음이 열린다.
라일락은 눈을 감아야 그 아름다움이 보이는 꽃이라 좋다. 꽃의 모양과 색깔은 시야에 들어와야만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꽃이 가진 향기는 자신의 자태를 보여주지 않고 그 존재를 알려줄 수 있다. 향이 짙은 꽃일수록 멀리 서도 그 존재를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모양과 빛깔을 자랑하는 꽃보다도 짙은 향을 가진 라일락을 특별히 좋아한다. 라일락은 봄이면 그 향기로 나를 골목길로 불러 내곤 하는 꽃이다. 봄바람이 살랑이는 날, 어디선가 날아오는 거부할 수 없는 향을 따라 가노라면 라일락 나무가 있다. 혼자서 조용한 골목길을 자신의 향기만 따르며 산책하라고 속삭인다. 침묵과 어울리는 꽃이다. 어두운 밤에 더 드러나는 꽃이다. 시끄럽고 부산스럽게 다가가면 그 향기를 거두어 버릴 듯한 태세다.
바깥 뜰에 미처 봄이 오기 전에 내게 먼저 봄을 안겨주는 꽃들이 있다.
2월이면 우리 아파트 내 수목들을 전지한 나뭇가지들이 쓰레기장 옆에 그득이 쌓인다. 마음 내키는 대로 몇 개 가지를 꺾어 화분에 물꽂이를 한다. 따뜻한 방안 창가에 두고 지켜 본다. 물을 갈아주며 종류가 다른 각각의 가지마다 어떤 모습들을 드러낼까? 짐작하며 상상해 본다. 궁금중이 해소될 날을 기다리던 끝에 드디어 그 모습이 나타났을때, 반가움에 무심코 터져나오는 감탄사로 봄을 맞는다. 물꽂이 해둔 각종 나뭇가지 끝에서 어느날 눈이 올라오고, 노란 산수유가 폭죽을 터트린 것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또 다른 나뭇가지에선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연두 빛 손을 뾰족히 내밀며 말을 걸어 온다. 분홍색 꽃잎이 세상을 향해 사방으로 펼쳐져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은 방안 공기를 바꾸어 놓는다. 꺾여 버려진 가지이기에 마음 조마하며 지켜보고, 생명을 길어 올릴 수 있길 기원하며 기다렸기에 잎만 돋아나도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 되어 내 마음을 봄으로 물들인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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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푸른숲 작성시간 26.06.05 `좋아하는 꽃이 많군요. 사람들은 대부분 꽃을 좋아합니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은 우리를 늘 기쁘게 합니다.
지금 대구 꽃 축제 기간입니다. 한번 가보세요. 내일 가보려합니다. -
작성자황보0락 작성시간 26.06.06 우리도 참꽃 가장 튼튼한 암꽃 수술을 가지고 잡아당기기 놀이를 했어요. 누구나 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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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희 작성시간 26.06.07 선생님 글을 읽으니 어렸을적 시골에 갔을때
감기를 심하게 했다고 참꽃으로 효소를 담아 주신것 같아요. 솥뚜껑 위에 화전도 꾸워 주셨던 기억도 나요.
제일 예쁜 참꽃으로 봄을 물들이는 글 잘읽었어요 -
작성자박춘희 작성시간 26.06.07 계절마다 우리 주변에서 피어나는 예쁜 꽃들과 향기를 글을 통해 다시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