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인동꽃
황보영락
똑딱똑딱 밤하늘을 두드리는 다듬이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진다. 어릴 적 고향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무거운 다듬잇돌 위에다가 면직물로 만든 옷을 올려놓고 주름을 펴기 위해 두드리는 소리였다. 하루를 정리하는 평화의 소리이기도 하고, 고단한 하루를 보낸 어머니들의 분노의 방망이질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방망이 모양을 한 작은 꽃이 있다. 인동꽃이다. 아카시아 꽃이 질 무렵, 그 다듬이 방망이 끝이 터지면서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그 속살에서는 기다란 다섯 개의 수술이 나비의 더듬이처럼 터져 나오면서 온 세상에 향기를 터트린다. 그 향기는 두세 살 아이가 엄마 품을 생각하게 하는 향기이고, 나를 업어 키운 누나를 생각하게 하는 사랑의 냄새이다. 며칠이 지나면 이 꽃은 다시 황금색으로 변한다. 그 황금색 꽃은 절정을 지나면 제풀에 지쳐 그냥 땅바닥에 목련꽃처럼 뚝뚝 떨어져 버린다. 어떤 이들은 이 꽃을 금은화라고 부르기도 했다. 가을이 되면 그 꽃이 떨어진 곳에는 조그만 검은 진주열매가 열린다. 흰색, 아이보리색, 황금색의 꽃과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변해가는 잎, 까만색의 흑진주를 닮은 귀여운 열매를 계절의 변화와 맞추어서 보여준다. 사계절을 지내면서 계절의 맞는 삶의 기준을 제시하는 신념의 꽃이다.
야생에서 인동꽃은 항상 무리 지어 함께 핀다. 오솔길 옆이거나 작은 개울 가장자리에서 찔레나무와 어울려 피기도 한다. 땅을 기어가다가 위로 자라는 나무를 만나면 친구를 만난 것처럼 함께 위로 올라간다.
칡넝쿨이나 등나무처럼 다른 나무에 무작정 기어올라서 성장을 방해하거나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인동꽃은 등나무처럼 오른쪽으로 돌면서 위로 올라간다. 그리 높이 올라가지도 않는다. 손을 뻗으면 닿을 적당한 높이로만 자란다. 우리 주위의 초목류 대부분은 무서리와 눈이 내리는 겨울에는 추위에 항복하고 잎을 떨구고 몸을 낮춘다. 하지만 아무리 눈보라가 몰아쳐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한겨울의 눈보라 속 영하의 날씨에도 푸르름을 유지해서 이름도 인동초(忍冬草)다.
한겨울에 흰 눈이 내릴 때면, 시골 아이들은 산으로 땔감용 나무를 하러 가야만 했다. 오가는 도중에 파란 인동초 덩굴에 매달린 파란 잎들을 만날 때는 반가울 때가 많았다. 땔감을 구하다 보면, 필요한 끈을 가져오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인동초 덩굴이나 댕댕이덩굴, 칡덩굴 같은 자연이 주는 끈을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가 뛰어놀던 유년기의 시골에는 병원보다는 한약방이 더 많았다. 거기에는 우리 주변에서 얻는 한약재를 많이 사고팔았는데 인동꽃도 그중에 하나였다. 고향에는 아직 부모님이 살고 계시고 이런저런 일 때문에 자주 간다. 고향의 들판을 가다가 보면 인동꽃을 따던 곳을 지나가게 된다. 나도 모르게 눈이 그쪽으로 돌아간다. 고향 마을의 헌지골, 솔개, 절골에 가면 인동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나만 아는 것이 아니다. 마을의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꽃이 필 무렵 그곳으로 모여들었었다. 이곳에서 보자기를 접어서 허리에 두르고 꽃을 땄다. 급하게 따느라고 잎이 조금 붙여서 따기도 했다. 집에 와서 큰 잎은 대충 골라내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대발을 걸어놓고 말린다. 인동꽃을 말리는 동안에 온 집안에 인동꽃 향기가 퍼지는 것이 너무 좋았다. 말린 뒤에 모아서 시장에 내다 팔면 제법 쏠쏠한 용돈을 챙길 수 있었다. 우리는 산도라지와 집도라지를 구별할 수 있고, 백출과 둥굴레, 초롱단과 황금 같은 고향의 산과 들에서 나는 한약재가 돈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지난해에는 인동꽃을 따서 말려서 망사에 넣어서 차 안에 방향제로 보관하기도 했다. 천연의 향기가 너무 좋았다. 화학적으로 만든 향기보다 고향의 향기가 훨씬 더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광주 민주화 항쟁 몇 년 뒤에 광주 북구 망월동 묘역을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혹독했던 정치의 겨울 동안 인동초를 잊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 뒤에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인동초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모진 눈보라를 견디는 불굴의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혹독하고 긴 겨울에도 짙푸른 빛을 간직하며 견뎌낸 다음에 찾아올 봄날을 기다려 주는 꽃이었다. 그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국민에게 향기로운 민주주의 시대의 꽃이 되었던 인동초이다.
4년 전에 텃밭을 사서 농업경영체에 등록했다. 이제 지천면 농업협동조합에 소속된 농민이다. 뒷밭주인은 울타리에는 장미꽃을 심어놨고, 아래쪽 밭주인은 접시꽃을 많이 심어놓았다. 나는 화려한 장미나 접시꽃보다는 고향의 향기가 나는 인동꽃이 더 좋다. 그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동심에 젖을 수 있다. 그해 추석에 고향에 가서 인동초 몇 뿌리를 가져와서 울타리에 심었다. 지금은 울타리의 반을 그 꽃이 차지하고 있다. 요즘, 이 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텃밭에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면, 어릴 적 고향에서 보았던 여러 개의 더듬이를 가진 귀여운 금 나비, 은 나비들이 나를 맞이해 주고 있어서 행복하다.
스무 살 내 첫사랑은 너무 쉽게 내 곁을 떠나갔지만, 인동꽃은 변치 않는 사랑으로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올해에도 꽃을 따서 천연 방향제를 만들 것이다. 차 안에 걸어놓고 내 차를 타는 친구들에게 고향의 향기를 맡게 해 줄 것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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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푸른숲 작성시간 26.06.07 꽃을 관찰을 잘 하셨습니다. 특히 인동초에 대한 애정을 깊이 느낍니다. 인동초 별서에 조금 분양해 주세요.
글이 단단해져 갑니다. -
작성자김주희 작성시간 26.06.06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인 것 같아요.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본 인동초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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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희 작성시간 26.06.07 저는 그날 수업시간에 인동꽃을 처음 보았어요.
꽃을 섬세하게도 관찰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
다섯개의 수술이 나비의 더듬이처럼 터져나오면서 온세상에 향기를 터트리며 누나를 생각하게 하는 사랑의 꽃을 좋아하는 회장님의 마음을 알거 같아요. -
작성자박춘희 작성시간 26.06.07 글을 통해 인동초라는 꽃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참으로 보석같은 꽃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