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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를 기다리며

작성자황보0락|작성시간26.06.12|조회수73 목록 댓글 4

장마를 기다리며

 

황보영락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번개와 천둥이 친다. 비가 세차게 내리다가 조금 쉬는 듯하더니 다시 추적추적 내린다. 북쪽의 서늘한 기운과 남쪽의 덥고 습한 기운들이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부딪친다. 한반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한다. 대부분 남쪽의 덥고 습한 공기들이 승리하면서 장마 전쟁이 끝난다. 기세 싸움을 하는 동안 우리 기상청에서는 그 밀당상황과 그로 인한 피해정도를 불쾌지수로 알려주는 시기이다. 이때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난다. 나는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서 후텁지근한 날씨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올라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창문을 닫고 제습기를 가동해 보기도 하지만 높은 불쾌지수를 행복지수로 바꿀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옷장에다 제습제나 넣어두고 버텨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사계절 말고 장마라는 계절도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은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다. 농업이 우리 사회와 삶을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특히 벼는 이 장마와 가장 궁합이 맞는 작물일 것 같다. 유월 말 즈음에 장마가 오면 모내기 이후 사름을 한 벼는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벼뿐만 아니라 산과 들판의 모든 식물이 마치 자신의 전성기가 온 것처럼 성장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폭우가 며칠 동안 계속 내리기도 한다. 비가 그치면 습기를 머금은 두꺼운 안개구름이 온 세상을 덮고 있을 때가 많다. 그때 만들어지는 안개구름이 한 무더기씩 솟아올라 산마루를 향해 천천히 올라가기도 하고, 바람 따라 옆으로 휩쓸려가기도 한다. 이 안개구름은 세상의 먼지와 푹푹 찌는 열기를 한 골짜기씩 통째로 씻어내기도 하고, 다시 만들어내기도 했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서 큰 홍수가 나더라도 아버지께서는 그 비를 맞으면서 논밭으로 나가셨다. 논둑에 물이 넘치거나 무너지지 않았는지 확인을 하고, 비료도 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많은 비가 오면, 산사태가 나고 논둑이 무너진다. 토사가 하천으로 휩쓸려 내려오면 하천의 물이 넘쳐버린다. 장마시기에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장마는 난폭한 폭군 같기도 했다. 누런 황토물이 하천을 가득 채우고 내려갈 때, 물 구경은 가슴 설레는 구경거리기도 했다. 어릴 적 만들어진 하천의 보를 넘어 밀려가는 황토물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 보 옆에 서서 황토물을 거슬러 오르려는 물고기들이 뛰어오르는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방향을 잘못 선택해서 뛰어오르는 바람에 내 발밑에 떨어지는 커다란 붕어 한 마리를 횡재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큰 물이 내려갈 때마다  붕어를 잡았던 보 옆으로 갔다. 그곳에서 방향을 잘못 판단하는 물고기가 튀어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나의 발 밑으로 튀어나와 주는 물고기는 없었다.

 

  장마가 끝난 뒤에 보 위에서 뱀장어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천 리 낙동강 물길을 거슬러 올라왔고, 이 황토물이 쏟아지는 순간에 이 보를 박차고 올라왔을 것이다. 새삼 생명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지금 고향마을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낙동강 하구까지 바로 흘러가지 못한다. 안동댐에서 쉬어가야 한다. 강을 거슬러 올라와야 하는 뱀장어는 낙동강의 여덟 개 보의 어도(魚道)를 통과해도 안동댐 지하 7층에 있는 수력발전기 터빈을 통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물은 쉬어가더라도 언젠가는 아래로 흘러가겠지만 회귀하는 뱀장어는 다시 올라올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식물의 시기인 장마가 끝나면 아이들의 시간이 왔다. 하천 가득 큰 물이 흘러가면서 보 아래에는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고, 굽이치는 물살 가장자리에는 깨끗한 은모래 밭을 만들어 주었다. 그 웅덩이는 동네 아이들이 헤엄치기를 배우던 야외 물놀이장이고, 모래밭은 야구장과 씨름장으로 변신하는 놀이터가 되었다.  그 놀이터와 이어진 자갈밭에서는 꼬마물떼새의 종종걸음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쪽 날개만 펴고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어미새를 잡으러 자갈밭을 맴돌기도 했다.

  밤이 되면 약속하지 않아도 마을의 아이들이 이 모래밭으로 모여든다. 장맛비가 휩쓸고 나서 만들어진 깨끗한 은모래 밭에 누워 하늘을 쳐다본다. 고향마을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엄마가 이야기한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도 이때 즈음이었다. 이따금 꼬리를 달고 유성이 휙 지나가기도 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놀다가 북두칠성 국자 자루가 산 마루 뒤쪽으로 사라질 무렵에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곧 장마가 시작될 것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마전선이 불쾌지수를 높이는 존재가 아니라 생명을 키우는 보약 같은 친구라는 것을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되었다. 장맛비가 논밭을 넉넉하게 적시기 때문에 모든 농작물이 건강하게 자라고, 자연생태계 도 건강하게 유지된다. 장맛비는 댐과 저수지, 보에 물을 가득 채워 농업용수와 공업용수, 생활용수로 사용되고 남은 물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채운다.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생명수의 시작이다.

  기억속의 장맛비는 하천을 휩쓸고 내려가면서 새로운 놀이터를 제공하고, 하천의 생태계를 새롭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가오는 장마도 도움만 주는 보약 같은 장마였으면 좋겠다.

2026.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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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푸른숲 | 작성시간 26.06.13 장마는 피해도 주지만 식물에게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근래는 장마도 짧아지고 기후가 많이 변해 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우리를 멀리 데리고 갑니다.
  • 작성자김대희 | 작성시간 26.06.13 장마가 지나간 뒤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를 만들어주어 은모래 밭에 수많은 별들을 지켜보는 추억을 간직한 선생님이 살짝 부러워지네요.
  • 작성자박춘희 | 작성시간 26.06.14 글을 읽으면서 어린시절 추억속 장마전,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다가올 장마도 피해없이 도움만 주는 비였음 좋겠습니다.
  • 작성자양홍철 | 작성시간 26.06.14 장마에 대해서 이렇게 구체적인 경험의 서사와 자세히 분석하신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샘 마음과 같이 유익한 장마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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