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우산
박춘희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마른장마라고 하지만 비 예보는 없었다.
모임 회원들과 점심을 먹고 작은 빵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스콜성 소나기겠지” “조금 있으면 비가 그칠 거야” 4명 모두 우산을 준비해오지 않아서 한동안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으나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다.
주변에 우산을 살 편의점이나 가게도 없고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까지는 꽤 멀어서 나가면 순식간에 비에 젖을 것 같았다.
그중 한 명이 사장님께 우산을 빌릴 수 있을지 물어보자고 했다.
“사장님! 혹시 손님들이 두고 안 찾아가는 헌 우산이 있으면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내일 꼭 돌려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애절한 눈빛에 난감해하던 여사장님은 창고 안에 보관하던 헌 우산중에서 가장 낡은 우산 두 개를 빌려주면서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했다.
덕분에 우리는 비를 맞지 않고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그날 가져온 낡은 보라색 우산을 보면서 시내 모 우체국에 근무할 당시 발생한 ‘명품 우산 분실 사건’ 기억이 났다.
시내 우체국 중에서도 고객이 많기로 소문난 우체국이라 늘 번잡한 가운데 오후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창구에서 큰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여 창구로 나가 보니 어떤 남자 손님이 “내 우산이 없어졌는데 우체국에서 없어졌으니 책임지고 찾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우선 같이 찾아보자며 출입구 앞에 비치한 우산꽂이에 남아 있는 우산을 확인해보니 그중에는 본인 것이 없다고 했다. 창구에 있는 고객들에게 일일이 우산 주인을 확인하고 나니 남는 것은 낡은 검은색 우산 한 개였다.
누군가 같은 검은색이고 형태가 비슷해서 착각하고 가져갔거나, 알면서도 더 좋은 우산을 가져간 것으로 추측되었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많은 분이 다녀가셔서 우산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체국에 있는 다른 새 우산을 드리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했으나 민원인은 강경했다. “내 우산은 명품이라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도 없으니 꼭 그 우산을 찾아주세요.”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갑자기 내가 난제(難堤)를 맡은 수사관이 된 느낌이었다.
고심 끝에, CCTV를 확인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원인을 앉히고 민원인이 우체국에 들어온 이후 나가는 고객들이 어떤 우산을 들고 나가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한참 확인 후 60대 정도의 남자분이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검은색 우산을 들고 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민원인도 본인의 우산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연락처를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가 또 다른 과제였다.
직원들에게 혹시 아는 고객인지 확인했으나 다 모른다고 했다. 혹시 등기, 소포를 보내거나 금융업무를 보았으면 연락처를 알아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 고객이 들어와서 어떤 업무를 보는지 또다시 CCTV를 돌려보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분은 보통우편물을 부치고 가셔서 연락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명쾌하게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으나 수사는 더 진행할 수 없었다.
한 시간 동안 우산 찾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민원인은 더는 화를 내지 않고 챙겨드린 선물과 정중한 사과를 받고 돌아갔다.
그 사건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우산꽂이는 치우고 우산 포장기를 비치했다.
비가 올 때는 우산을 쓰고 외출했다가 비가 그치면 잊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우체국에도 비가 내리다가 그치면 잊어버리고 안 가지고 가는 우산이 더러 있었으나 주인이 다시 찾으러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관하던 우산은 갑자기 비가 내릴 때 우산 없는 고객들에게 빌려 드렸다.
인간관계도 우산처럼 꼭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 영업대상이 필요할 때 혹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만 연락을 하는 경우이다.
나도 살아가면서 그런 적이 있었고, 누구에겐가 나도 그런 존재였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우산처럼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이 아니라 늘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 다.
(2026. 6.13)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황보0락 작성시간 26.06.13 일어버린 우산 글을 읽으니 담백하다는 느낌입니다. 저도 우산을 많이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도 우산처럼 꼭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표현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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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푸른숲 작성시간 26.06.13 우산은 비 올 때 필요하지만 사람은 늘 필요합니다.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일은 어렵지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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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희 작성시간 26.06.13 민원인을 최선을 다해 응대하셨군요.
물건은 가져간 사람도 문제지만 잃어버린 사람도 책임이 있겠지요.
소중한 물건이면 소중하게 다루는게 맞겠지요.
늘 주변사람들을 챙기는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는 글 잘읽었습니다. -
작성자양홍철 작성시간 26.06.14 '인간관계도 우산처럼 꼭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
'우산처럼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이 아니라 늘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우산에 대한 경험을 기술하시고 이렇게 우산의 의미를 인간관계 속으로 확장하셨군요.
재미있는 경험의 공유였습니다. -
작성자이미환 작성시간 26.06.14 예고 없이 내린 비로 인해 빌린 보랏빛 우산으로 시작한 사고의 흐름이 그옛날 우체국 근무하실때의 민원인 명품 우산 찾기 사건으로 이어졌네요. 비올때만 필요에 의해 도구로 쓰이는 우산과 비교해서 추구하고 싶은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첨가하셨네요. 글의 구성이 매끄러워야 읽기가 쉬우며 글쓴이가 하고 싶은 말이 잘 드러난 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