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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마를 맞이하는 방법

작성자이미환|작성시간26.06.13|조회수67 목록 댓글 5

내가 장마를 맞이하는 방법(2026. 6. 8)

 

               이미환

 

   내 몸은 추위에 아주 민감하다. 추위에 조금 과하게 노출되면 따뜻한 곳으로 피신할 것을 두통으로 신호 보낸다. 겨울철엔 주변 환경을, 또는 나의 활동 범위를 내 몸에 맞게 제어하여 크게 추위에 휘둘리지 않고 지낼 수 있다. 따뜻한 옷, 충분한 난방, 제한된 외출 등으로 추위로부터 내 몸을 보호해 줄 수 있다. 반면에 여름 더위를 잘 건너갈 수 있도록 내게 적당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까다롭다. 에어컨 바람 또한 내 몸이 싫어하고 냉기에 민감한 탓에 조금만 과해지면 또 두통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냉방 공간에 몸을 담아야 할 때면 여분의 옷이나 목도리를 챙겨서 찬 공기에 대비해야 한다. 찬 공기를 싫어하는 탓에 여름철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웬만해서는 에어컨을 잘 틀지 않는다. 그런데 여름 긴 장마철은 달라진다. 장마철 습도를 내 피부가 더위와 함께 이겨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에어컨 온도를 29도로 설정해 두고 공기의 습도와 온도를 제어해 보지만 여름철 장마가 길어질수록 습기에 갇혀 견디는 것이 점점 힘들어 진다.

   흐린 날과 비오는 날이 반복되며 길어질수록 주변의 많은 것들이 습기로 잠식당해 간다. 공기 그득 머금은 물기가 바야흐로 벽은 물론이고 방바닥까지 스며든다. 맨발로 거실과 방을 오가며 걸음을 뗄 때마다 발바닥과 방바닥이 서로 끈적하게 달라 붙었다 떨어지곤 한다. 쩍쩍 소리까지 걸음 따라 들리는 듯하다. 장농 속 겨울 이불은 눅눅함을 견디고 있다. 사계절 옷들 또한 옷걸이에 걸린 채 아래로 축 쳐진 모습이다. 책 페이지 넘기는 소리마저도 음색이 무겁고 낮아진다. 감은 머리는 헤어드라이어의 따뜻한 바람을 쐬어 주지 않으면 역한 냄새를 주변으로 퍼뜨릴 듯하다. 가장 곤란한 것은 널어둔 빨래가 좀처럼 마르지 않을 뿐더러 마르더라도 뽀송뽀송해지지도 않고 퀴퀴한 냄새를 피운다. 화장실에선 곰팡이가 야금야금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 음식도 다른 어느때 보다 곰팡이가 퍼지기 쉬운 철이라 보관에 신경써야 한다.

   지리한 여름 장마에선 크게 위험이 닥칠 것 같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스멀스멀 소리 없이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불온한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별다른 이유를 찾지 못하면서 짜증이 나고, 우울감에 젖어 모든 일이 귀찮아지고, 남편에게 평소 하지 않던 잔소리를 늘어놓고, 함께 자리한 사람들의 말을 성의 없이 대충 듣고 넘기며,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 인물들의 행동에 꼬투리를 잡고 일방적인 태클을 건네며, 평소 자제하던 달콤한 쿠키와 커피의 유혹에 쉽게 무너지고, 꼭 해야 할 무척 중요한 일 중의 하나로 스스로에게 약속해둔 운동을 기어이 빼 먹고 말며, 침대에 드러누워 길게 뭉그적대는 등, 긴 여름 장마는 급기야 내 평온하던 감정을, 내 일상을 야금야금 조금씩 파고 들어와 흔들어 놓는다.

 

   날씨와 감정은 닮은 데가 있다. 날씨와 감정은 둘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 화창하고 맑은 날이 이어지다가도 흐려지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듯 평화롭던 감정 또한 우울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사회정서학습에서는 감정을 날씨로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기쁜 감정을 햇님으로, 화난 감정을 태풍으로, 우울함을 구름낀으로 등등, 다양한 감정과 날씨를 빗대은 표현 활동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읽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하늘에 잔뜩 낀 구름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진다. 비가 온다고 날씨를 보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고 날씨가 달라지지 않는다. 날씨는 통제할 수 없다. 날씨에 따라 우리의 생활 방식을 조절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의 날씨를 받아들이고 지켜보며 비가 그치길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

   장마철엔 우울감. 짜증스러움, 답답함, 지루함, 무기력의 감정이 일어난다. 장마철 날씨로 인해 일어나는 이런 감정들엔 잘못이 없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 또한 우리는 통제할 수 없다. 그나마 사회정서훈련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 뿐이다. 감정들에 휘둘려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일상을 무너 뜨리지 않기 위해, 투덜대지 않기 위해, 유혹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화창한 날과 다름없는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감정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화가 날 때면 화가 올라옴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그 화를 지켜본다. 일어난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감정은 그 종류를 달리해 가며 일어나고 사라져 감을 반복한다.

   장마철이라, 비가 와야 즐길 수 있는 움직임을  찾아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맨발 걷기를 하던 때가 기억난다. 장마철 맨발 걷기는 색다른 감각을 전해 온다. 물 튕김을 조심하며 물이 질퍽하게 고여있는 땅을 밟을 때 전해지는 두다리의 긴장감, 부드러운 젖은 흙 위를 밟을 때의 그 미끌림과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과 발가락에 쏠리는 힘, 장마비가 그치고 땅 속과 표면의 물기 머금 정도의 차이로 걸을 때 마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그 쫀득함, 장마철이 끝나고 매마른 땅을 밟을 때의 푸석거림, 장마철이 있어서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생활을 꾸릴 수도 있다.

 

   내가 올해 장마철은 가뿐하게 지나갈 수 있을까? 침범해 오는 습기를 투덜대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나의 생활 방식을 날씨에 맞게 잘 조절하고, 장마철이기에  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장마철을 지나는 내내 내 감정의 변화를 지켜보며 일상을 잘 지켜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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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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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황보0락 | 작성시간 26.06.13 저는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서 습도가 많고, 온도가 높은 날이면 정말 싫은 날입니다. 에어컨을 틀어야 하고 시원한 물을 먹어야 합니다.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푸른숲 | 작성시간 26.06.13 곧 장마가 온다는 데 감정 조절 준비를 하시어 올여름에는 글을 열심히 쓰시면 잘 지나가리라 생각합니다. 일체유심조 입니다.
  • 작성자김대희 | 작성시간 26.06.13 저도 에어컨을 무척 싫어해요. 약 복용후에는
    많이 나아졌지만
    재직시절에 에어컨틀면 피하고 운동장 나가서 한바퀴 돌고 들어오던 그런 날들을 생각나게 하는글 잘읽었습니다.
  • 작성자박춘희 | 작성시간 26.06.14 저도 에어컨 때문에 비염으로 오래 고생한적이 있습니다. 긴 여름과 장마철 어떻게 잘 보낼지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때가 왔네요. 공감가는글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양홍철 | 작성시간 26.06.14 장마, 일기의 변화가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개인의 경험을 통하여 잘 기술하셨네요. 올 해 장마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유익한 점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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