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청량산
황보영락
쏴아 청량산 800m 높이에 걸린 하늘다리를 지나온 바람이 청량사를 거치고 계곡을 한 바퀴 휘돌아서 어풍대와 금탑봉 계단을 스치고 지나간다. 응진전 앞 벼랑길을 지나가는 등산객들의 땀을 식혀주는 맑고 시원한 바람이다. 청량산에는 고승과 명필, 퇴계 선생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곳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길지 중의 길지로 꼽는다. 열두 개의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둘러싸고 있고 연꽃의 수술 자리에 청량사가 자리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 산에 가보고 싶었다. 고향마을 뒷산에 올라가면 멀리 북동쪽 하늘과 맞닿은 산이 청량산이다. 주봉 장인봉이 앞서고 그 오른쪽으로 탁필봉, 자소봉(보살봉), 경일봉, 금탑봉이 횡대로 늘어선 모습으로 보인다. 남서쪽으로 뒤돌아서서 바라보면 안동지역에서 가장 높은 학가산이 보인다. 고향 마을은 청량산과 학가산을 이어지는 일직선 위에 있는 동네였다.
청량산은 어릴 적 동네의 상여가 나갈 때와 무덤을 만들 때 메기는 선소리에 반드시 등장했고, 풍수지리 이야기를 할 때도 근처의 일월산과 함께 꼭 등장했다. 어릴 때부터 비범한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던 산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나와 우리 친구들의 인생 목표 1호는 청량산을 올라보는 것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여름방학 어느 날이었다. 고향 친구 두 명과 함께 청량산을 갔었다. A자형 작은 텐트를 구하고 자취방에서 사용하는 밍크 담요를 말아서 어깨에 메고 아침에 출발했다. 현재의 신예안 서부리 이주단지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청량산 가는 버스가 없었다. 우리는 마을 뒷산에서 보이는 산이니까 그냥 걸어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점심 무렵에 출발하여 네다섯 시간 정도를 걸어서 청량사 아래에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에 도착하니 날이 거의 저물고 있었다. 급하게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청량사 뒤쪽에 있는 봉우리를 오르기로 했다. 지금의 유리보전 왼쪽 하늘 다리 쪽으로 올라갔다. 백 미터 즈음 올라가니 중간에 길이 끊어져 있고, 2~3m 높이의 절벽과 마주했다. 그 절벽에는 누군가 가져다 놓은 굵은 나무 기둥이 있었다. 그 기둥을 타고 올라간 뒤 탁필봉을 오른 뒤에 바로 다음에 있는 자소봉을 올라갔다. 아슬아슬 난간길을 걸어서 9부 지점까지 에 다다르니 각도가 30도 정도, 높이가 2~3m 정도 되는 바위 벽이 있었다. 우리는 양다리와 엉덩이를 바위양쪽에 붙이고, 양팔을 버텨가면서 올라갔다. 위험한 만큼 짜릿한 긴장감이 동반되는 정상 등반이었다. 올라가자마자 파노라마처럼 겹쳐지는 능선 속에서 고향마을 뒷산을 찾았지만 정확하게 찾을 수가 없었다.
청량산 봉우리들은 자갈이 박힌 퇴적암이어서 울퉁불퉁하고 위험한 길이 많았다. 최고봉이 장인봉이어서 지금의 하늘다리를 건너가야 정상이 나오지만, 그 당시에는 자소봉이 청량산의 최고봉인 줄 알았다.
내려오는 길은 곤혹스러웠다. 경사가 심했고, 열아홉 개의 암자가 있었다는 기록을 증명하듯이 깨어진 기와조각이 널브러져 있였다.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신발 속에는 흙이 쌓여 그 흙을 털어가면서 내려왔다. 왜 고산등반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산을 오르는지 알 것 같았다. 짜릿한 절벽의 공포와 정상에서의 희열이 뒤섞이는 순간이 행복했다.
몇 해가 지난 뒤에 고향 친구들과 다시 찾았다. 그때는 청량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었다. 자소봉의 위험한 절벽 위 길을 걸은 뒤에 바위 절벽에 등을 대고 오르는 짜릿한 암벽등반 생각하고 갔었는데 그 난간 길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해발 800m 지점에 자소봉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도 아쉬워서 자소봉 오르는 비탈길을 찾다가 포기했다. 행정당국이 사고 위험이 있는 등반로를 의도적으로 폐쇄해 버린 것 같았다. 등반의 짜릿한 묘미보다는 안전이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올라갈 수 없는 자소봉 정상에 올라 시원한 청량사 진풍경을 가슴속에 담았던 몇 안 되는 등반자 중의 한 명이라고 기분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청량산 오르는 길 중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가 입석에서 응진전을 지나 청량사로 가는 길이다. 이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건너편의 공민왕 산성이 보이고 커다란 굴참나무가 등산객의 발길을 잡는다. 뒤이어 응진전(외청량사)에 도착한다. 이 암자는 바위 절벽이 앞으로 쓰러질 듯이 서 있고 그 좁은 틈새에 기막히게 자리 잡은 암자이다. 금탑봉 봉우리는 산 자체가 3층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탑처럼 생겼다. 그 1층 계단 위에 응진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서 청량사로 가려면 1~2m 정도 너비의 벼랑길을 지나가야 한다. 그 길은 원효 스님과 최치원, 김생, 퇴계 선생님이 걸었던 길이다. 그냥 걷다 보면 이 길이 천 길 낭떠러지 위의 길이라는 것을 잘 모른 채 지나간다. 이곳을 지나 청량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김생이 글공부를 했다는 김생 굴을 지나서 조금 내려오면 청량사에 도착한다.
도립공원이 되면서 접근성이 좋아졌지만, 개발 이전에는 오로지 걷거나 말을 타야만 접근할 수 있는 은둔의 장소였다. 퇴계 선생님은 을사사화로 형님을 잃고 당파싸움만 하는 한양의 정치판이 싫었을 것이다. 벼슬을 마다하고 돌아온 선생님은 이곳 청량산과 도산서원을 왕래하면서 복잡하게 얽힌 정치판을 생각하셨을 것이다. 성리학의 4단 7정을 생각하고, 마음속 이(理)와 기(氣)의 작동원리를 고민하셨을 것이다. 활인심방 기체조를 하고 있는 순간에 낙동강을 스치고, 주변의 봉우리를 휘돌아온 청량한 산바람이 선생님의 머리카락을 흔들었을 것이다.
요즘의 청량산은 마음공부를 하기에는 너무 개방된 느낌이다. 고시생들이 공부를 하러 찾아들고, 삶에 지친 중생들이 답을 얻기 위해 찾아들던 곳이었다. 앞으로도 청량산에는 청량한 바람이 연꽃잎은 헤집고 돌아나가는 귀한 인연이 깃든 곳이 되어 사랑과 행복을 채워주고, 마음을 치유하는 청량산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여름휴가에 그 기운을 받으러 청량산을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
2026. 6. 19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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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홍철 작성시간 26.06.20 본인의 체험이 잘 녹아져 있는 청량산 기행문입니다.
청량산의 산세와 정기가 마치 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입니다.
더불어 청량산에 관련된 역사까지 공부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박승숙 작성시간 26.06.20 청량산에 대한 공부가 녹아있는 글입니다. 정확한 글쓰기의 본보기가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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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춘희 작성시간 26.06.20 청량산의 역사와 개인적인 체험을 잘 표현해 주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언젠가 가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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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희 작성시간 26.06.21 new
청량산에 몇번 가보았지만 이 글속에서 청량산을 다시한번 새겨보게 합니다.
응징전으로 가는 스님도 그려지고 청량산 앞마당에 겁없이 용감하게 텐트친 모습도
생생하게 그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