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요일 점심, 김이 오르는 만둣국 앞에 앉으면 나는 문득 아버지의 지난 삶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게 된다. 배고픔으로 얼룩졌던 세월, 배우지 못한 서러움, 그럼에도 끝내 글을 익히고자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떠올리면 당신의 웃음소리가 성지곡 유원지 천년의 숲 끝에서 바람처럼 되돌아오는 것만 같다.
2. 아버지는 일곱 살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위천초등학교 1학년까지 다니셨다. 그러나 2학년이 될 무렵 해방을 맞았고, 넉넉지 못한 형편 때문에 월사금을 내지 못해 핀잔을 들은 끝에 어린 자존심을 안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배움은 그렇게 끊기는 듯했지만, 아버지의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더 깊게 남아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3. 이후 머슴살이하던 아버지는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마을의 십촌 형님에게 천자문을 배웠다. 하루 여덟 자씩, 석 달 동안 오백 자를 익힌 것이 당신이 받은 교육의 전부였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적은 배움이었겠지만, 아버지에게 그것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전부였으리라. 글을 배우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셨다. 해가 기울고서야 멍석 짜는 일을 시작해 얼기설기 엮인 멍석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것을 만들어 갖다주고 욕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만큼 아버지에게 공부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끝내 놓을 수 없는 희망이었다.
4.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만큼은 남녀를 가리지 않으셨다. 공부하겠다는 마음만 보이면 어떻게든 학비를 마련해 주셨다. 당신이 다 배우지 못해 가슴에 남겨 두었던 한이 자식들에게는 기회가 되어 흘러간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떠올릴 때마다 아버지의 가난보다도 아버지의 뜻이 먼저 가슴에 남는다.
5 내가 다니던 독서실 사장님은 독일로 이민을 떠났고, 나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갑작스레 백수가 된 나는 언니를 따라나섰다. 봉제공장에서 재봉틀을 배우고, 옷을 정리하며 시다공으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이 ‘공순이’라는 현실을 또렷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자 내 배우자 역시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닮은 사람을 만나 살게 될 텐데, 일용직 노동자로 이어지는 삶은 너무 고단할 것만 같았다. 그때 아버지가 떠올랐다. 시집갈 밑천은 마련해 주지 못하더라도, 공부하겠다면 학비만큼은 대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6 스물셋 봄, 나는 서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수학 공부가 재미있었고, 영어 단어를 외우는 일조차 즐거웠다. 바로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비로소 ‘앎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세상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고, 모든 일의 원리가 궁금해졌다. 실컷 놀고 난 뒤 비워진 마음에 무언가가 맑게 담겨 들어오듯, 배움은 조용히 그러나 깊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7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또 가르치는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도 공부의 즐거움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삶은 배움을 통해 조금씩 넓어졌고, 나는 그 안에서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갔다.
8. 유아교육과에 다니던 시절, 나는 피아노 학원에도 다니고 기타 학원에도 다녔다. 기타 하나를 메고 다니는 일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마음이 부풀었다. 방학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장미나무로 만든 기타를 샀고, 선생님은 그런 나를 수제자라 부르며 클래식 기타를 정성껏 가르쳐 주셨다. 그 기타는 줄을 살짝 스치기만 해도 온 방 안을 맑은 울림으로 채웠고, 나는 그 소리 속에서 내 젊은 날의 꿈을 키워 갔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내가 애지중지하던 기타의 목이 댕강 부러져 있었다. 나는. 아버지께 따지지도 못한 채 부러진 기타를 끌어안고 사흘을 울었다. 그때 부러진 것은 기타의 목만이 아니었다. 음악을 통해 펼쳐 보이고 싶었던 내 마음 한쪽도 함께 꺾여 버렸다. 아버지는 내가 음악으로 살아가는 삶을 원하지 않으셨던 듯하다. 그렇게 내 음악은 멈추었고, 나는 다른 길 앞에 서게 되었다.
9 신기하게도, 끝났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이 열렸다. 음악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운 것은 공부였다. 대학에 다니며 각종 연수와 배움의 자리를 찾아다녔고,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기쁨에 깊이 빠져들었다. 공부는 경쟁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내 삶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게 해 주는 기쁨이 되었다.
10. 어느 날에는 KBS 방송국 PD가 영남일보에 난 기사를 보고 나를 찾아왔다. 별난 취미를 가진 사람을 취재하고 싶다는 말에 두 번은 거절했지만, 세 번째 찾아왔을 때는 누군가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한자 공부, 아동미술, 독서 토론을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고, 퇴근 후에는 가족 인터뷰로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돌아보면 그날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살아왔는지를 내 삶 스스로에게 확인시켜 준 시간이었다.
11. 내게 배움은 결코 책상 위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도 영양, 재료의 질, 온도 유지처럼 일상에 바로 쓰이는 지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느꼈다. 야간대학에서 배운 내용은 세월이 흘러도 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오징어를 손질할 때 장갑을 꼭 껴야 하는 이유 같은 작은 지식 하나도 누군가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지혜가 되었다. 배운 것은 하나도 헛되지 않았다. 삶은 배움이 필요했고, 배움은 다시 삶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12. 시간이 흐르며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배우는 기쁨은 혼자 간직할수록 줄어들고, 나눌수록 깊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은 매주 화요일이면 범어도서관에 가서 수필 작품 반 합평에 참여한다. 각자의 삶이 글이 되어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함께 읽고 다듬다 보면, 글을 만나는 일이 곧 한 사람의 역사를 만나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한 줄의 문장 뒤에는 그 사람이 견뎌 온 시간과 끝내 놓지 않은 마음이 숨어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문장만이 아니라 삶을 읽는 법도 함께 배운다.
13. 나는 결국 아버지에게서 가장 큰 유산을 물려받았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내는 힘, 나이가 들어서도 배움을 놓지 않는 성실함이 그것이다. 아버지는 아흔이 된 지금도 한자를 즐기며 공부하신다. 나 또한 아버지와 함께 천지 만물의 조화로움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래서 이제 나는 안다. 내가 가진 지적 재산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네기 위해 쌓아 가는 것임을. 배운 것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내 삶의 철학이 되었다는 것을. 한때는 부러진 기타 앞에서 세상이 끝난 줄 알았지만, 지금의 나는 공부하는 즐거움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오늘도 나는 배움으로 하루를 밝히고, 그 기쁨으로 삶의 리듬을 탄다. 그러니 내 삶은 결국, 공부하며 자라고 나누며 익어 가는 한 편의 수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