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늦게 올려서 선생님들과 총평선생님께 죄송합니다
햇마늘을 다듬으며 / 이윤희
1) 골목길이 확성기 소리로 들썩인다. “마늘 사시오. 햇마늘이요!”
집 안에서 빈둥거리던 나는 화들짝 놀라 대문을 밀치고 뛰어나갔다. 정신없이 달려 나가고 보니 파자마 차림이었다. 한낮의 땡볕 아래에서 마늘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내 모습이 우스워 얼른 집 안으로 들어와 긴치마를 둘러 입고 다시 나왔다.
2)그사이 마늘차는 이미 골목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지폐 몇 장을 쥔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폴짝폴짝 뛰어 불렀다. 차가 뒷걸음질 치듯 후진해 돌아왔다. 운전석에는 여든은 족히 되어 보이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노인은 걸걸한 숨소리가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유별난 손님을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3)마늘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흙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밭에서 갓 캐 온 모양이다. 굵은 것은 한 접에 만 원, 작은 것은 두 접에 만 오천 원이라 했다. 개수를 택할지 굵기를 택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실한 놈들로 두 접을 들였다. 집에 와 마당에 펼쳐 놓았다. 마늘을 망에 나누어 담아 처마 아래 그늘에 걸어 두었다. 두고두고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든든했다.
4)몇 통을 까 보았다. 막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의 눈두덩처럼 속살이 붉고 여렸다. 연한 자줏빛 마늘쪽들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한 쪽의 씨 마늘이 땅속에 묻혀 한 통의 마늘로 자라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견뎌 왔을까. 어두운 흙 속에서 겨울을 나고 봄 햇살을 맞으며 한 몸으로 자라난 형제들이다.
가난한 시절, 형제끼리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던 다둥이 가족 같기도 하고, 얇고 고운 속껍질에 싸인 모습은 귀하게 자란 부잣집 자식들 같기도 하다. 갈라놓기 시작한 마늘을 다시 오므려 보았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애틋했다.
5)마늘 한 통을 들여다보니 ‘화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중심을 향해 둥글게 모여 있는 모습은 마치 함께 살아가겠노라고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저토록 단단히 뭉쳐 있는 가족을 어찌 쉽게 떼어 놓을 수 있을까. 그러나 살다 보면 떠나고 싶지 않아도 떠나야 할 때가 있다.
6)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한때 사물놀이에 푹 빠져 지낸 적이 있다. 장구와 북소리에 맞춰 땀 흘리며 연습하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모임에서 중요한 역할도 맡고 있었다. 그 무렵에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취업 소식이 찾아왔다. 생계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결국 아쉬움을 뒤로하고 모임을 떠났다. 한창 물이 오를 때라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내가 빠진 자리를 메우지 못해 모임이 한동안 쉬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의 미안함이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7)마늘을 다듬으며 문득 생각했다. 한 사람의 떠남이 때로는 공동체의 균형을 흔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만남이 영원히 함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늘도 결국은 한 쪽씩 떼어져 각자의 역할을 한다. 함께 뭉쳐 있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헤어짐 또한 삶의 순리다.
8)다시 마늘 한 통을 집어 들었다. 푸른 줄기 끝을 젖히고 속껍질을 벗겨내자 노르스름한 알맹이가 드러났다. 밑동은 여러 마늘쪽이 단단하게 붙어 있어 칼을 대어야만 겨우 떨어졌다. 한때 나는 새로운 삶을 위해 한 모임을 떠났고, 지금은 맛있는 반찬을 만들기 위해 마늘의 결속을 허물고 있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9)인간관계는 마늘보다도 어렵다. 마늘은 서로 다른 크기를 가졌어도 모두 중심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자기 자리만 지키려 한다. 먼저 다가가기보다 상대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이해하기보다 이해받기를 원한다. 나 역시 관계가 깨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먼저 양보하는 편이다. 화합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깨닫는다. 관계는 한 사람의 희생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화합은 서로가 함께 중심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
10)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햇마늘 한 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저마다 크기는 달라도 모두 가운데 큰 마늘을 중심으로 작은 마늘쪽들이 몸을 기울여 둥글게 마주 보고 있다.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어도 시선만큼은 같은 곳을 향한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저런 모습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만 애써 품고 끌어안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중심을 향해 다가서는 일 말이다.
11)문득 내 주변의 인연들을 떠올려 본다. 나는 중심의 큰 마늘처럼 진물과 단물을 아끼지 않고 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함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책임을 모두 남에게 돌릴 수는 없다. 관계를 붙들고 싶다는 마음속에는 상대를 향한 기대와 집착도 숨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먼저 양보한 만큼 상대도 그래 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결국 내가 헤쳐 보아야 할 것은 인연의 겉껍질이 아니라 내 마음속 집착과 기대였음을 깨닫는 것이리라.
12)햇마늘을 다듬으며 나는 또 하나를 배운다. 단단한 결속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를 향해 마음을 모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더 이상 같은 방향을 향하지 못할 때는 놓아주어야 하리라.
13)마늘 한 통의 속껍질을 벗겨내듯, 나 또한 오래 묵은 기대와 집착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초여름 햇살 아래 걸린 햇마늘이 바람에 살랑거린다. 서로 붙어 있던 것들이 결국은 떨어져 나가 제 몫을 다하듯, 사람의 인연 또한 그러한 것이리라. 그래도 함께했던 시간만은 마늘 향처럼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햇마늘 한 통을 갈라 바구니에 담으며, 나 또한 오래 묵은 생각들을 조용히 벗겨내고 있었다.
.